영화가 영화로 대접 받기 위하여

영화 이야기 2007. 12. 6. 22:28 Posted by cinemAgora
2007년 영화계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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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군데서 섭외 전화가 걸려 온다. 2007년 영화계를 결산해 달라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인터뷰 요청들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얘기들이지만 올해만큼은 부쩍 ‘부진’이니 ‘위기’니 하는 단어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충무로의 체감 경기를 언론이 실감할 만큼, 현상적인 지표들이 심각해 졌다는 반증이다. 예전엔 그냥 좀 들었다고 말할 수준인 200만 명 돌파 영화가 가물에 콩 나듯 나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실감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위기의 원인 분석에 대해선 여전히 수박 겉 핥기에 머물고 있어 답답하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질문이 날아 왔다. “한국영화들이 요즘 시장에서 잘 안 통한다는 것은, 관객들이 그만큼 똑똑해졌다는 의미이겠죠?” 나는 약간 심사가 뒤틀린 끝에 이렇게 내뱉었다. “그거 설명하려면 굉장히 긴데요. 일단 현상적으로는 이래요. 관객들이 똑똑해진 게 아니라 영화가 멍청해진 거라고 보는 게 맞아요. 영화가 멍청해지니 관객들도 따라서 멍청해지고, 또 그 멍청한 수준에 맞추다 보니 영화가 더 멍청해지는 일종의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이죠.” 그랬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의 피디는 “방송에 쓰긴 좀 거친 표현”이라며 “점잖은 어투로 다시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한다. 나도 점잖게 말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충무로의 상황이 ‘에헴’ 하고 있기에 하도 답답해서 그랬다.

창의력 부족? 그걸 누가 모르나!

한국영화 위기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관객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충무로의 창의력 부족’이라는 분석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 왔다. 충무로가 예전만큼 똘똘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충무로가 언제 그렇게 똑똑했었나? 그런 결론은, 너무 편리하다.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추론이다. 명색이 언론이라면 이면의 구조를 살펴야 하는데, 한국의 주류 언론은 구조와 맥락을 살피는 데는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다. 들여다 보면 골치 아프고, 독자와 시청자 역시 골치 아플 게 뻔하니,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출 참신하고 새로운 영화가 절실하다고 짐짓 정색하고 끝내면 세련되고 깔끔해 보이는 줄 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모르나?

사실상,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의 불황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극장 수익에만 편중된 왜곡된 수익구조와 스크린 독과점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데서 야기됐다고 믿는다. 주지하다시피, 부가 판권 시장은 사실상 고사 직전이다. 이제 와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외양간을 고치기에 너무 오래 전에 소를 잃어 버렸다. 해외 시장도 1~2년전까지 한류 현상에 힘입어 반짝했을 뿐 기대만큼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내수 시장, 그것도 극장 뿐이다. 좁은 방안에 쥐를 가둬 놓듯, 얼마 안 되는 스크린을 놓고 한 주에도 십 수 편의 영화들이 경쟁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독과점 상황이 벌어졌다. 스크린 싹쓸이를 통해서라도 단숨에 많은 관객을 동원하려는 대형 배급사들과 극장들의 이해 관계가 일치했고, 그러다 보니 흥행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 극소수의 ‘되는 영화’와 대부분의 ‘망하는 영화’로 양분된 것이다. 영화 시장 역시 2대 8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험악한 정글이 됐고, 2006년과 2007년을 거치며 그 정글 법칙은 더욱 고착화됐다.

양극화 환경은 개별 영화의 실패 확률을 그만큼 높이게 된다. 위험도가 올라가니 무리수를 둔 마케팅이 횡행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의 컨셉트와 필수적인 정보마저 가려 버리고, ‘일단 동원하고 보자’ 식의 막가파식 홍보는 ‘낚시 마케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설령 관객들의 배신감을 야기할지라도 치고 빠졌으면 그만이라는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관객들은 ‘낚였다’고 한탄하고, 인터넷 영화 평점은 마케팅 방법론에 대한 성토장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은 돈 아끼고 시간 아끼기 위해 왠만하면 불법 다운로드라는 안전 장치를 활용하자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통사 할인도 대폭 축소됐는데 일부러 극장까지 갈 수고를 감수할 만한 화끈한 영화가 별로 자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니 부가 판권 시장은 물론, 최후의 안전지대였던 극장마저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들은 물론, 최근엔 극장들마저 가파른 수익률 저하로 울상을 짓고 있는 상황은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영화 시장의 악순환 시스템을 두고 본 대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양극화 환경, '죽이는 컨셉트' 발명에 사활을 걸고

이런 구조에서 기획 영화나 대중 상업영화들이 취할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어떻게 해서든 관객들의 호기심을 일거에 가로챌 ‘죽이는’ 컨셉트를 발명하는 일에 사활을 걸게 된다. 설득력 있는 스토리나 영화적 완성도는 차후의 문제가 된다. 2년 넘게 시나리오 개발하는 시간이면 차라리 팔릴만한 이야기를 싼 값에 수입하는 게 낫다는 계산에 따라 리메이크작들이 범람한다. 너도 나도 요즘 잘 나간다는 일본 원작들을 사들이기 바쁘다. 그나마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승부를 거는 영화들은 이르면 투자 단계에서, 늦으면 배급 단계에서 ‘흥행성 없음’이라는 주홍글씨를 받고 나자빠진다. 도대체 창의력을 발휘할 멍석이 깔리질 않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충무로에 ‘창의력을 좀 발휘해봐’라고 질타하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적 발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난 2006년 여름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한창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극장들이야 그렇다 쳐도 영화진흥위원회와 일부 제작자들, 배급사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시장 논리’를 근거로 독과점 규제론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스크린 쿼터 제도도 벌써 폐기 처분했어야 옳았지만, 신기하게도 거기서만큼은 ‘영화는 상품이기 전에 문화’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시장 논리’라는 게 코게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스스로도 그 논리적 모순을 모르지 않았던 영화 시장의 기득권자들은 스크린 독과점이 시장 논리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문제가 없지 않으므로 영화계 주체들의 ‘자율적 조절 기능’에 맡기는 게 좋다고 슬쩍 비껴 갔다. 이런 논리는 결국 이 문제를 좀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개선해보겠다는 강경론자들의 입을 막기 위함이었고, 결과적으로 자율 조절론은 힘을 얻었다.

연초 차승재 제작가 협회장은 제작자들 스스로 과도한 스크린을 잡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율 조절론의 실천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니 필연적으로 그 약속이 지켜질 리 없었다. 지난 여름 <디 워>가 6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싹쓸이 했고, <화려한 휴가> 역시 한 주 앞서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독식했다. 한국영화의 부진 앞에 일단 스크린 독과점 논쟁을 접어둔 언론들은 한국영화의 부활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영화가 국가주의나 애국주의와 만나는 순간에는 그 어떤 문제 제기도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사이, 스크린 독과점과 영화 시장의 자본 악순환 구조를 타개할 정책적,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영화평과 상품후기가 다르지 않은 시대,
영화가 다시 문화가 되기 위해선

이제, 시장 논리와 영화인들의 자율적 조정력이 야기한 2007년의 영화 시장을 돌아 보자. 제작자든 투자자든 참혹한 상처를 입으며 패퇴하고 있다. 허리 끈을 더 바짝 졸라 맬테니 제발 투자해달라는 제작자들의 읍소가 처연하게 들릴 정도다. 심지어 투자-제작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홀로 승승장구해오던 상영업마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고 관객들은 볼 영화가 없다고 지청구다.

폐허와도 같았던 2007년을 보내는 즈음에, 영화 시장의 주체들은 한가지 중요한 명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서비스 상품이기 전에 관객들의 정서를 파고 드는 예술이며 동시대의 시민들이 그 정서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한 매체이다. 그것이 연간 매출액 1조 원에도 못 미치는 이 작은 시장에 그 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쏟고 정부조차 따로 진흥 기관을 두는 이유이다. 그것이 노골적인 광고 목적에도 불구하고, 배우나 감독들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영화 홍보를 늘어놓더라도 눈감아주는 이유이다. 유리할 때만 그런 암묵적인 합의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정작 돈을 버는 순간에는 ‘영화는 상품이며 고로 시장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순이며, 고로 자가 당착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이제 관객들조차 더 이상 영화를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돈 냈으니 낸 돈만큼 보여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평점 권력을 동원해 처절한 복수와 응징을 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는 시대다. 영화평과 화장품 사용 후기가 다르지 않은 시대다. 영화를 복권시키는 길은, 영화가 영화로서 대접받는 ‘구조’를 세우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영화인들 스스로 영화의 정체를 다시 아로새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2월 6일자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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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파파라치]의 새로운 기획 !
      관객을 낚기위해, 불철주야 머리 싸매 주시는 그분들에게 낚일까? 말까?

                               싸움 / 주연 : 설경구, 김태희

 




색즉시공 시즌2 / 주연 : 임창정, 송지효
                  & 나는 전설이다 / 주연 : 윌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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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러쉬> 그렇다고 음악은 훌륭해?

영화 이야기 2007. 12. 5. 10: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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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스포일러 약간 있음)

13주 만인가? 한국영화의 독주를 마감시키며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른 할리우드 영화 있으니, <어거스트 러쉬>라고 했다. 그래서 보러갔다. 얼마나 죽이는 영화인지. 포장은 가족 영화이자 음악 영화로 돼 있었다. 가족 영화야 싱글인 관계로 흥미가 대단히 없지만, 음악 영화는 팝 칼럼니스트라는 존재 규정 때문에 일종의 숙제거리인 셈이니 혼자서 봐야 한다는 열악한(!) 상황을 애써 극복하며 쪽팔림 무릅쓰고 봤다.

그런데 음악 영화라 명명(도대체 언 놈이 이걸 음악 영화라고 했는가?)된 <어거스트 러쉬>는 한 마디로 '불쉿'이었다. 천재를 뛰어 넘어 소리에 신끼를 가진 초능력자 소년의 엄마 찾아 삼만리의 황당한 구성이야 드라마의 요소이니 팝 칼럼니스트가 시비걸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영화 어디에 음악이 있어서 음악영화란 말인가?

신내림 받은 어거스트 러쉬가 '세상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고, 단지 귀만 귀울이면 된다'라고 부르짖지만, 영화 속 어디에서도 그럴듯 한 음악 한 곡 온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존 레전드, 크리스 보티, 폴라 콜 등등의 쟁쟁한 아티스트가 사운드트랙에 참가 했지만, 도대체 어느 장면에서 나오는지는 팝 칼럼니스트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존재감 무척 미비해주셨다. 물론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엔딩 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존 레넌드의 <Someday>는 다행히도 '음, 존 레전드군.'이라는 감상을 내 놓을 수 있었지만, 이것만 가지고 음악영화라고 우긴다면, 모비의 <Extreme ways>가 엔딩에 깔렸던 <본 얼티메이텀>도 음악영화라고 주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바하의 음악을 변주로 등장시키는 것이나 아일랜드의 천재 뮤지션 밴 모리슨의 <Moondance>의 편곡 버전을 영화의 초입에 사용한 것으로 음악영화라고 주장한데도 역시 불 쉿이다. 좋다. 일단은 인정해 주겠다. 영화에서 음악이 빈번히 사용되고, 명곡들을 재구성한 노력이 있었고, 음악에 대한 웃기지도 않는 감상 가득한 소녀취향의 재정의가 등장하고, 주인공 소년이 삶의 모든 것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인물이니, 음악영화라고 우긴다는 점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음악들 중 한 곡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충분히 들려주거나 극 속 드라마와 맞물려 고막에 쏙 들어와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음악은 좀 들을만하면 사라져 버리고, 들려질 때도 말 그대로 스코어(Score)의 한계를 넘지 못한채 배경에서 징징거리며 맴돌다 그쳐버리고... 이 쯤 되면 사운드트랙이 있는 영화는 몽땅 다 음악영화라고 홍보를 해도 고개를 끄덕여야 할 상황이다.

음악을 등장시키는 장면도 웃긴다. 여자 주인공 라일라(어거스트 러쉬의 엄마)가 첼로를 연주하고, 남자 주인공 루이스(어거스트 러쉬의 아빠)가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름의 편곡을 거쳐 오버랩 되는 장면은 한 번으로 족했다. 두 번, 세 번이 등장하자 이미 첼로가 연주되면 '아, 또 기타로 넘어가겠군.'이라는 무릎팍 도사의 예언이 들려오니 감동은 물건너간 지 오래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그 음악을 사용하는 장면의 장치도 그리 영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원칙적인 시비를 걸 수밖에 없는 문제는 역시 음악 한 곡도 온전히 보존되어 들려지지 않는다는, 음악영화라는 간판을 단 영화의 불성실함이다. 멋진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일 줄만 알았던 로빈 윌리암스의 하모니카 씬은 몇 번 불지도 않은 채 끝나버리고, 라일라의 첼로 연주나 루이스의 기타 연주도 변죽만 울리다 사라져 버리니 관객이 음악과 몰일체가 되어 감동을 느낄 순간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셈이다. 더구나 어거스트 러쉬의 기타 연주 장면이나 파이프 오르간 연주 부분은 그 음악의 아름다움보다는 '아, 어찌 신은 나를 낳고 모짜르트를 또 낳으셨단 말인가'라는 살리에르의 존재론적 고민을 객석에 던져 주었을 뿐, 별다른 감흥을 느끼게 할 만큼 장면의 집중력이나 음악적 뛰어남도 없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의 뉴욕 필 연주 장면 하나가 음악영화라는 영화 전체의 간판을 아주 힘겹게 짊어지고 있긴 하다. 그래서 본업이 팝 칼럼니스트인 본인은 급하게 음악적 한계를 느끼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거스트 러쉬>를 봤다는 클래식 전문가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이봐 그 마지막 장면에서 어거스트 러쉬가 지휘하고 뉴욕 필이 연주하는 곡, 그거 괜찮은 곡인거야?"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뉴욕 필 아저씨 아줌마들, 아마도 돈이 좀 궁하셨던 것 같다.  그 곡 작법도 엉망에 독창성 제로에, 다시 듣고 싶은 곡이 아니던데." 그랬던 것이다. 본업이 아니었음에도 팝 칼럼니스트의 느낌이 정확했던 것이다. 마지막 뉴욕 필이 연주한 곡도 별로였다는 느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 보고 감동 받았다는 사람들 꽤 많다. 그 분들에게 시비 걸 생각 전혀 없다. 영화의 주관적 감상이란 존중 받아야 하니까. 안그러면 악플에 블로그 작살나니까.(경험으로 충분히 깨닫고 있습니다. --;;) 그러나 제발 부탁은 음악영화라는 황당한 슬로건으로 몇몇 음악 애호가들 주머니의 쌈짓돈 훔쳐가지 마시라는 것이다. 고작 7,000원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봐야 될 다른 영화도 많고, 사야 될 CD도 허벌나게 많으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랜만에 음악영화 보러간다는 기대감 팍 작살 난 것은 어디가서 손해배상 청구하냔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런 생각만 든다. '젠장, <색, 계>나 한 번 더 볼 걸. 탕 웨이의 겨드랑이 털이 <어거스트 러쉬>의 음악 보단 더 정겨웠을 텐데...'
 

2007/12/03 - [비하인드 박스오피스] - <어거스트 러쉬> 음악이 구원한 가족 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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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 비용, 동네마다 왜 천차만별?

애경's 3M+1W 2007. 12. 4. 12:0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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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우리 작가

며칠 전, 집 앞 미용실에서 머리를 볶았습니다. 익숙한 숏컷으로 확 잘라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언제 또 길러보나 싶어 들썩들썩 요동치는 마음 진정시키고 '확~ 볶아주세요'를 외쳤죠. 부르는 게 값인 건, 김장철 배추만은 아니더군요. 점포 앞에 떡하니 '오후 3시 이전 파마 3만원'이란 문구를 붙여놓아 제 발길을 낚더니만, 결국 제게 들이댄 파마는 9만원짜리 '특수펌'이었습니다. "15분 만에 파마가 나오구요, 머리 손상도 덜하구요. 웨이브도 자연스럽구요........."

<-- 파마 당일만 멀쩡했던 머리 상태. 다음날부터 바로 헬렐레~~


3년 여 동안 단골 삼았던 청담동 도산공원 앞 모 헤어살롱에, 한달에 한번 꼴로 기십만원씩 갖다바치던 전적이 있는지라(그나마 20% 할인을 받는 금액이 그랬습니다) 출산 후 '1년여 만의 지붕개량= 9만원'이란 대차대조가 그리 터무니없진 않더군요. 게다가 "9만원짜리는 이러이러해서 좋은데, 그래도 3만원짜리 할래?"라고 물을 때 "어. 그래도 3만원짜리!"라고 말하기엔, 뭐랄까, 살짝 부끄럽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사람의 수치심을 묘하게 자극하는 상술에 홀랑 넘어간 얄팍한 저는, 9만원씩이나 들여가며 머리를 들들 볶았답니다. 결과는? 글쎄요. 또 다른 내가 있었다면, 3만원짜리 파마를 시켜놓고 한번 비교해보고 싶은 심정이랄까. 과연 9만원짜리와 3만원짜리는 뭐가 다를까 싶었던 거죠.  

이런 심정, 처음은 아닙니다. 늘 숏컷을 고수했던지라, 한달에 한번 지붕개량은 필수였고, 그 때마다 만만치 않은 출혈에 지갑과 함께 심장도 벌벌 떨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담동 일대 고급 헤어숍과 이대 앞 저가형 숍의 파마 시술 비용을 비교하면 거의 10배 차이.
파마 약에 무슨 금가루를 넣는 것도 아닐 텐데, 서비스 수준만으로 이런 천차만별의 가격대가 형성된다는 건 정말 납득이 가질 않아.... 게다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파마인데,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고 가격대가 달라지는거지?'

여자들, 파마값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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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www.byfama.co.kr

지난 주말, 몇몇 업계 여자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화두를 테이블에 올렸죠.

"파마 한번 하는데 십만원을 훌쩍 넘긴 금액을 내야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게다가 원장이 시술할 경우엔 훨씬 더 비싸다고." 저가형 헤어숍이나 동네 미용실을 애용하는 A의 주장! "저가형 헤어숍엔 뜨네기 손님들도 많고 너무 바쁘니까 가끔 홀대받기도 해. 그런 면에선 동네 미용실이 최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원장이 밀착해서 관리해 주거든. 로뜨도 직접 말고 가끔 머리도 헹궈준다고. 고급 헤어숍의 경우, 중요한 부분들을 스태프들이 다 처리하고 디자이너는 처음과 마무리만 하고 사라지잖아. 결국 청담동 숍에서는 동네 미용실 원장보다 경력이 짧은 스태프들한테 파마를 하는 셈이라고.” A의 주장대로라면, 최근의 경기불황으로 ‘1~2만원 펌’이라는 대대적인 저가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숍들을 마다하고, 여전히 20만원에 달하는 시술비를 고수하는 고급 헤어숍을 찾을 이유가 없는 셈이죠.

하지만 이 순간 또 다른 동료 B의 촌철살인으로 우리의 미용실 가격논쟁은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두통을 유발하는 그 특유의 냄새 말야! ‘우린, 막 결혼했어요’도 아니고 ‘나, 막 파마했어요’ 광고 하면서 집에 오는 거 너무 싫지 않니?” 고급 헤어숍을 즐겨 찾는 B의 주장은 비싼 곳에서 파마를 했을 때 확실히 파마약 냄새가 덜 났고, 그만큼 모발도 덜 상했을 것이라는 얘기였어요. 가격 차이는 서비스도 서비스지만, 사용하는 약품이나 제품들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었죠. (이 순간, 저는 동의했어요. 확실히 20만원에 달하는 청담동 숍에서의 파마가 9만원짜리 파마보다 냄새가 덜했던 것 같다고 말이죠. 그러니 3만원짜리는 오죽하겠어, 라며.)

파마값의 진상(?)을 파헤치다!
 
다음날, 지고는 못 참는 성격의 A는 인터넷을 뒤져 ‘1천 원짜리 파마약도 있다더라’는 제보를 해왔답니다. "비싼 데나 싼 데나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파마 약은 한 가지이고, 여기에 뭘 추가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냄새가 나거나 덜 나거나 한다더라."

그리하여, 궁금한 거 못 참는 성격의 저는 인맥을 동원해 헤어관련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인 아베스의 배 모 과장과 접선했습니다. 그가 내린 '솔로몬의 선택'은 이러했죠. “비싼 펌제가 상대적으로 냄새가 덜 나는 건 사실입니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또한 저가의 숍에서 싼 펌제를, 고가의 숍에서 비싼 펌제를 쓴다는 것도 일반화시킬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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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드림웨이브로션 1,2제 450원 vs. 로레알 싱크론 치오 1,2제 23,400원



이해를 돕기 위한 파마약에 대한 기초 정보. 살짝 복잡합니다. 일단 파마약은 크게 1액과 2액으로 구분된답니다. 흔히 1액은 환원제, 2액은 중화제로 불리는데, 1액은 다시 치오 성분과 시스테인 성분으로 구분되죠. ‘파마약이 한 가지’라는 A의 말은 ‘파마약 종류가 한 가지’라는 얘기가 아닌 ‘파마약 재료가 한 가지’라는 말이었고, 그 단 하나의 재료가 바로 ‘치오’라는 성분이었던 것. 시스테인은 파마약의 재료가 아니라, 우리 머리카락에서 추출된 아미노산의 하나로 치오와 혼합돼 만들어진 파마약의 한 종류라고 합니다.


 “펌제에 따라 포함 성분이 다 다릅니다. 해조 성분을 첨가하느냐 약초 성분을 첨가하느냐 등 어떤 성분이 첨가되느냐에 따라 냄새 강도도 달라지고, 이에 따라 가격대가 다 달라집니다.”

하지만 비싸고 고급이라 해서 냄새가 덜 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가령 고급 펌제로 구분되는 시스테아민의 경우, 특유의 냄새가 치오나 시스테인보다 훨씬 더 지독하다고 하죠(일본 제품은 그나마 덜한데, 국내 제품의 냄새는 유난하다고 해요). 비슷한 성분이라 하더라도 냄새 여부로 가격대가 달라지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냄새만으로 그 펌제가 모발에 좋은지 나쁜지를 구분할 순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고급 숍이 고가의 제품을, 저가형 숍이 저렴한 제품을 쓴다는 명제는 사실일까요?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저가형 숍에서도 고가의 제품을 취급한다고 합니다. (제가 한 9만원짜리 파마가 대략 이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을까 싶네요.) 차이가 있다면 고급 숍에서는 1액과 2액으로 구분되는 펌제 외에 전 처리제, 후 처리제, 트리트먼트, 그 외 일반 샴푸나 기타 제품들 모두를 고급형 제품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최근 청담동 일대 숍들에선 약 자체에 전후처리제를 아예 포함시켜 시술과정을 단축시키는 동시에 모발손상도 줄이는 추세라고 하구요.

가격 차이는? 시술하는 제품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세라마이드 펌’을 한다고 치죠. 이 시술을 하게 되면 샴푸, 트리트먼트, 두 종류의 전 처리제, 후 처리제 모두에 ‘세마라이드(고급 화장품들에도 포함된)’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이 세라마이드가 미생물인지, 식물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에서 추출됐느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게 되구요.

구체적인 가격대를 밝히는 건 업계 불문율이니 넘어가더라도, 고급 숍에서 주로 쓰는 제품군인 쎄라마이드, 엘바골드 시스테인, 크리스탈 라이징 웨이브와 저가형 숍에서 취급하는 소망과 백광 제품들의 가격을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네요. 따라서 저가형 숍과 고급 숍의 가격 차이는 당연히도 사용하는 펌제와 기타 헤어제품에서 비롯되며, 아울러 지역차와 상권, 서비스 수준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죠


그렇다면 고급 헤어숍에서 20만원을 주고 여러 가지가 다 포함된 시술을 받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저가형 숍에서 2만 원짜리 펌을 하고 여기에 5만 원짜리 앰플을 추가하는 게 더 나을까요?  주머니 사정으로만 따지면 후자가 당연히 경제적이지만 ‘내 머리는 소중하니까요’를 외친다면 전자가 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배 모 과장의 충고를 들어보죠.

“화장품 쓸 때 기초제품부터 영양크림, 에센스까지 같은 라인을 쓰는 게 피부에 좋겠어요, 아니면 기초는 엄마 화장품 바르고 팩이나 영양크림만 좋은 제품 쓰는 게 낫겠어요?”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야 한두 개라도 좋은 걸 써주는 게 좋은 건 당연지사. 하지만 둘만 놓고 비교한다면 당연히 한 라인의 제품군을 쓰며 관리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이겠죠. 결국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결론인데, 흠흠. 출산 이후 한 주먹씩 빠지는 머리카락. 오늘도 수채구멍을 까뒤집으며 저는 부르짖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잖아. 3만원...미련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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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러쉬>는 두 선남선녀의 옥상 위 원나잇 스탠드의 여파로 세상에 태어난 죄로 부성애가 지나친 나머지 조부애는 쓰레기통에 쳐박은 외할아버지의 버림을 받아 산전수전 다 겪은 귀여운 아이 에반(영화속 예명 어거스트 러쉬)이 천재적이라기보다 초능력에 가까운 음악성으로 '우연의 일치' 신공을 발휘, 헤어진 엄마 아빠를 11년만에 한자리로 불러 낸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 영화에 필 제대로 꽂히신 분들은 살짝 열 받으시겠다. 그러나 할 수 없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기타 리듬과 첼로 선율을 절묘하게 크로스오버시킨 음악이다. <어거스트 러쉬>는 객석에 음악의 감동을 돌비스테레오로 들려주는 것도 모자라다고 판단한 듯, 크게 창의적이지 않은, 아니 차라리 게을러 보이는 가족 신파 드라마를 들이민 작품이다. 눈 딱 감고 전형성을 좇은 것은 음악을 보필하기 위한 핑계처럼 보인다.

어쨌든 됐다. 흥행 1위다. 개봉 첫주말 서울에서 12만 6천여 명, 전국적으로 36만 8천여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안 그래도 알싸한 초겨울 바람이 겨드랑이를 파고 들기 시작하는데, 뜨끈한 오뎅 같은 영화 찾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어필한 셈이다. 이런 걸 두고 시즌 특수라 하던가.

한편, 입소문의 뚝심을 발휘하고 있는 <세븐 데이즈>가 지난 주 1위 도약의 이변을 연출한 뒤, 계속 승승장구다. 한 계단 내려섰지만 140만 명을 넘겼다. 롱런 흥행작 <색, 계>도 비슷한 규모의 전국 누계를 기록 중이다. <식객>은 이미 274만 명을 기록, 아쉬울 게 없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어거스트 러쉬>의 예상을 뛰어 넘는 선전 여파였는지, 함께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예상치를 한참 밑돌며 죽을 쑤었다. 스릴러라기 보다 잔혹 누아르에 가까운 <우리 동네>는 20만 명 선에서 민망한 오프닝을 기록했고, 김혜수 주연의 토종 가족 멜로 <열한번째 엄마>도 부진한 스타트를 끊었다.

조지 클루니 주연의 <마이클 클레이튼>은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에 밀려 양심과 정의가 홀대 받는 세상 분위기에 걸맞게 배급과 관객 동원 양면에서 홀대 받았다. 그러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서울 관객수 기준 주말 박스오피스(2007.11.30~12.2)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 주말        전국누계
===================================================================
1위     어거스트 러쉬            68/232                   126,000          368,000
2위       세븐데이즈              60/270                    99,800        1,414,200
3위        색, 계                    55/200                    65,000        1,366,000
4위      우리 동네                 52/239                    52,000          203,400
5위        식객                      58/270                    45,000        2,744,000
6위     열한번째 엄마            46/244                    30,200          167,900
7위    마이클 클레이튼          31/147                    23,800           72,600
8위        히트맨                   34/151                    22,800           94,200
9위        베오울프                45/166                    13,300          910,300
10위      쏘우 4                    38/188                     8,000          255,000


*이 박스오피스의 스코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관련이 없으며 별도 취재를 통해 확인한 각 영화의 실 동원관객수(근사치)임을 밝힙니다.

2007/10/29 - [영화 이야기] - 잘만든 스릴러의 전율 <세븐 데이즈>
2007/10/25 - [영화 이야기] - 戒를 넘는 色 <색, 계>
2007/10/18 - [영화 이야기] - 시장기 돋우는 영화 <식객>
2007/11/23 - [영화 이야기] - <마이클 클레이튼> '올바름'이라는 낡은 가치를 소환하다
2007/11/18 - [영화 이야기] - <베오울프>를 보고 부시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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