戒를 넘는 色 <색, 계>

영화 이야기 2007. 10. 26. 00:56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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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영화 <색, 계>를 시사회를 통해 봤다고 했더니 질문들이 한 곳으로 쏠린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대부분 여성들의 것이다. "양조위가 진짜 벗어요?" "배우들이 진짜로 한다면서요?" "어디까지 나와요?"

야한 영화, 남자들만 밝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로틱 신'에 대해서만큼 여성들의 관심도 간단치 않은 것 같다. 하물며 주인공이 누구인가. 한없이 슬픈 눈의, 안아주고 싶은 남자 양조위 아니던가. 그래서 그 질문들을 간단히 압축하면 양조위가 어느 정도 수위의 노출 연기를 선사하느냐, 렸다. 답은 간단하다. 다 벗고 보여줄 것 다 보여주며, 할 것 못할 것 다한다. 소문대로 양조위는 여배우 탕웨이와 정사 장면에서 실연을 펼친다, 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적지 않은 분들이 제일 궁금해 하실 부분에 대한 답을 제시했으니, 이제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를 탐문할 차례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제목 그대로다. 1940년대 상하이를 꿀꺽한 일본 괴뢰 정부의 개를 자임한 첩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한 애국적 스파이 여성이 노린다. 운 나쁘게도 동료들 중 가장 예쁘게 생긴 왕 치아즈(탕웨이)는 사업가의 매력적인 부인을 가장해 매국노에게 접근한다. 그를 유혹해 암살하려는 계획.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얄궂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홀딱 빠져 버린다. 이 홀딱 빠지는 계기를, 영화는 제목 그대로 '색' 즉, 섹스에서 찾는다. 두 사람은 잠재적인 적이지만, 침대에서만큼은 변강쇠와 옹녀다. 육정(肉情)이 무섭다고 하던가. 육정이 드니 이성이 무뎌진다.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바야흐로 색(色)은, 계(戒)를 방해한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편안한 쪽에 섰고, 한 사람은 조금 더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쪽에 서 있다. 그런데 '색' 앞에서 두 사람의 선택은 무의미하다. 치사한 생존이냐, 대의를 위한 희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중요한 건 '막 부인' 왕 치아즈가 "뱀처럼 몸안으로 들어오는" 이의 치명적인 매혹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며, 의심 많은 이도 막 부인의 눈빛에서 다른 의도를 발견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30분간의 정사 장면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감각의 제국: 상하이 편>이나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탱고>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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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작가 애니 프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중국 출신의 여류 작가 장 아이링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서로 다른 소설에서 빌어오긴 했으되, 이안은, 자연이든 시대든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 안에서 사랑이라는 감성에 쉽게 포획되는 인물들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입증해 보인다. 어느 싸늘한 밤에 충동적으로 서로를 탐한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카우보이는, <색, 계>의 리와 왕 치아즈와 다르지 않다.

대관절 이 치명적이고도 신비로운 화학작용을 어떤 신념과 이성의 수사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나 이데올로기, 제도와 윤리가 단죄할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남녀간에 생기는 불꽃일 것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은 보편적이되 누구도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므로 고통스럽다. 내가 아는 한, 이안은 그 모순적인 풍경을 가장 멋지게 묘파하는 작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모델 출신의 배우 탕웨이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다. 세우지 않은 코, 입술 위로 살짝 올라온 인중의 언덕, 깎지 않은 겨드랑이의 털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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