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재단이 발간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에서 영광(?)스럽게도 3M흥업에 기고를 요청해왔습니다. 과도한 자뻑과 약간의 반성이 뒤섞인, 별 재미 없는 글이니 혹시라도 3M흥업에 관심 있는 분들만 읽어보시길.


2007년 5월, 홍대 앞 선술집에서 세 명의 30대 후반 남자들이 둘러 앉았다. 목포 MBC가 제작중인 영화 소개 프로그램 '씨네스쿨'의 녹화를 마친 뒤 가진 뒷풀이 자리였다. 연출을 맡은 김경찬 피디와 두 명의 출연자, 그러니까 팝칼럼니스트이자 영화에도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김태훈 씨와 당시 FILM2.0 온라인 편집장으로 일하던 필자까지, 세 명의 동년배 남자들은 사실 일을 핑계 삼아 한 달에 한번 정도 모여 영화와 음악,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안주 삼아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런데 이날 모임은 결과적으로 조금 특별한 자리가 됐다. 내가 최초로 팀블로그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이 흔쾌히 이 제안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운은 김태훈씨가 뗐다. "뭐 좀 재미난 일 없을까요?" 나는 그동안 속으로만 구상해왔던 꿍꿍이를 풀어 놓았다. "팀블로그란 게 있는데, 우리 셋이 합시다. 만날 청탁 받는 원고만 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쓰고 싶은 얘기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쓰는 겁니다." 김태훈 씨는 "거 재밌겠군" 했고, 김경찬 피디 역시 "30대 후반의 우리들만을 위한 놀이터가 필요하다"며 적극 찬동했다. 그 때까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해왔던 나는, '티스토리'가 팀블로그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활용하면 뭔가 좀 재미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대뜸 적극성을 보여주니 뭔가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갖게 됐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팀블로그 3M흥업이다. 세 명의 필진들은 영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각각 영화, 음악, 방송이라는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3M흥업을 이들 세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는 대중문화 전문 블로그로 묶어 낸다면, 한 분야에만 천착하는 전문 블로그 보다 깊이는 떨어질지 몰라도 더욱 다채롭고도 풍성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동시대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인식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사실은 팀블로그 출범의 중요한 단초가 됐다. 우리 모두 소위 386세대의 끝자락이었고, 그래서인지 좌파든 우파든 경직된 사상적 편향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거창하게 말해 자유주의자, 시쳇말로 날라리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김태훈 씨가 스스로를 문화 건달이라고 칭하고, 나는 '까칠쌉싸름'한 인디펜던트 영화기자라고 자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경찬 피디 역시 이른바 주류적 문화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좋아하는 성향이 강했다. 3M 흥업의 모토를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라고 표방한 것 역시 이 같은 필진의 성향에 근거해 팀블로그의 지향점을 담아낸 것이었다.

당초 우리는 팀블로그를 우리들끼리의 소통과 우리의 이런 성향을 긍정하는 소수들과의 '스몰토크'의 장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팀 블로그 오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이런 생각이 매우 순진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상상도 못한 엄청난 방문자들이 쇄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도연의 칸 영화제 수상 직후, 전도연과의 12년 전 인연을 소개한 김경찬 피디의 포스트가 무려 15만 명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하루 방문자수가 10만을 훌쩍 넘기는 사례가 빈번해 졌다.

전도연의 연기자로서의 프로 의식을 칭찬했던 김 피디의 포스트는, 그러나 엄밀히 말해 '3M흥업적'인 글은 아니었다. 이후 필진들은 특별히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대중의 심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도발적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를 '쿵쾅거림으로 점철된 CG 상품'이라고 비꼰 내 글에는 영화에 대한 부푼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이유로 익명의 악플들이 쇄도했으며, <어거스트 러쉬>를 '음악적 쾌감이 빠진 음악영화'로 평한 김태훈 씨의 글도 "음악 평론가면 다냐"는 식의 거센 반격에 직면해야 했다.

절정은 지난 연말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와 관련한 세 개의 포스트를 잇달아 발행했을 때였다. 먼저 내가 '불법 다운로드족은 영화의 품질을 논하지 말라'는 다소 자극적인 도발을 시도했다.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는 도둑질이나 다름 없으니, 도둑질을 한 사람들은 영화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장물 품평할 권리가 없다'는 게 글의 논조였다. 예상대로 악플의 향연이 시작됐다. 3M흥업을 영화계 대변인으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심지어 영화계가 심어 놓은 플로그(Flog, 가짜 블로그)라는 폭로 아닌 폭로를 하시는 분도 있었다. 곧바로 김경찬 피디가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는 '불법 다운로드족의 비겁한 변명'이라는 더 도발적인 제목의 포스트를 통해 불법 다운로드 옹호론자들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역시 악플 폭탄을 맞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때리면 강해진다고 하던가? 기왕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아젠다가 만들어 졌으니, 이 기회를 놓칠 새라 나는 또 하나의 포스트를 덧붙였다. 제목은 '불법 다운로드는 강도짓이다'였다. 팀 블로그가 개인 블로그에 비해 강점을 갖는다면 바로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두 사람 이상의 필진이 잇따라 견해를 내놓으며 담론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도발과 반격, 그리고 재반격의 과정을 통해 블로그가 거대하고도 격렬한 논쟁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목격하며, 우리는 3M흥업이라는 공간이 당초 구상했던 스몰토크의 장이 아닌, 하나의 '미디어'로 성장했음을 확인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은 편향적 시각을 주입하거나 독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방향적 미디어가 아닌, 방문자와 평등한 관계에서 토론하거나 투쟁하는 가운데 논쟁점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차원의 미디어였다. 미디어 환경을 뿌리로부터 혁신시키고 있는, 웹2.0의 도도한 흐름이 우리의 공간을 시나브로 그렇게 성장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팀블로그에 대한 접근 방법도 더욱 미디어적이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고, 우리들은 블로그의 방향성에 대한 여러 가지 토론을 했다. 그리고 3M흥업을 취향을 공유하는 소수 문화적 동지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대중문화를 매개로 더욱 생산적이고도 유연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진화시켜 나가야 할 때가 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단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강화하는 것을 차별화 포인트로 잡았다. 여전히 블로그는 글이 대세이지만 영상으로도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부터는 3M흥업 필진들이 직접 '씨네 파파라치'라는 제목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일주일에 2~3개 클립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디 영화 제작 지원'과 '인디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도 세웠다. 3M흥업이라는 공간을 통해 재능 있는 영상인과 음악인들을 발굴, 소개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취지다. 우선 올 9월에 블로그 공간을 통해 뮤지션들의 음악 클립을 공모하고, 방문자들의 투표와 필진들의 심사를 통해 세 팀을 추려낼 생각이다. 그리고 홍대 클럽에서 '아메리칸 아이들'과 같은 컨테스트를 열어 우승팀을 가린 뒤, 음반 제작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의 재원은 물론, 블로그가 그 동안 벌어들인 광고 수익이다. 많지는 않지만 1년 남짓 운영하다 보니 조촐한 사업을 할만큼은 모였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객원 필진도 영입했다. 세 남자의 수다로는 다양성을 담보한다는 데 한계를 느낀 우리들은 문화 월간지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의 김애경 편집장에게 '깍두기'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내키는 대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 년간의 월간지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여성들의 현실적 관심사, 이를테면 동거나 기혼자와의 연애, 출산 정책 등의 화두를 대중적이고도 친근한 화법으로 풀어 내는 데 선수였고, 예상대로 그의 포스트는 발행할 때마다 수십만 명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물론, 그녀 역시 가끔 마초들의 반격에 시달려야 했지만. 일요 신문 연예부의 신민섭 기자도 올 상반기 3M흥업에 새로 가세한 객원 필자다. 영화나 음악 등 대중 문화 텍스트 자체도 중요하지만 스타라는 아이콘이 소비되는 방식을 논하지 않고서는 대중 문화의 현재를 조감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 생전 처음 해 보는 '블로그질'에 적응 중인데, 몇 건의 포스트가 극렬한 반발을 일으키자 오히려 한창 고무돼 있다. 인쇄 매체가 아닌, 인터넷 공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가시적이며 직접적인 피드백의 매혹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3M흥업의 개방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소중한 필자들이다. 마음이 맞고 뜻이 맞는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이 공간을 자유 발언대로 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참여와 개방, 공유라는 웹2.0 가치에서 3M흥업도 예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식, 무의식적으로 팀블로그 3M흥업은 미디어로 진화해 나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우선 블로그적 특수성과 기존 미디어의 관성 사이에서 컨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들간의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어설픈 객관성이나 중립성이 아닌 개인의 주관적 관점을 극단적으로 밀어 붙이는 글쓰기이지만 블로그의 덩치가 커진데다 필진들이 모두 미디어 종사자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를 기존 미디어와 같은 권력으로 인식한 독자들이 언론적 책임감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자유분방한 글쓰기라는 블로그 특유의 매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어느 지점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내야 하겠지만,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여전히 3M흥업이라는 공간이 우리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실험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예상을 벗어난 행보를 이어온 3M흥업이 또 어떤 방향으로 물꼬를 트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웹2.0의 흐름에 몸을 맡겨 얻게 되는 당혹스러움임과 동시에 가장 짜릿한 쾌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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