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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양심'이나 '정의'라는 단어처럼 낡아빠진 어감으로 다가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가 뼛속 깊이 스며든 지금,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장땡이고,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합격만 하면 그만이다. 어르신들은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현실은 돈이 에헴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 벌었든 돈은 권력이고, 권력은 치부마저 별 게 아닌 것으로 둔갑시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당연한 곳, 그 살풍경 속에 양심이나 인륜, 도덕이라는 말은 순진한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낡아빠진 영화다. 여기저기서 양심이 밥 먹여주냐고, 정의가 돈 벌어주냐고 부르대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생뚱맞게도 양심과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거대하고 추악한 진실 앞에서 한 인물의 양심이 발화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유독성 제초제를 팔아 왔던 'U/노스'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피해 주민들의 집단 소송을 무마하려 한다. 그리고 로펌의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이 회사의 승리를 위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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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U/노스의 변호를 중단해 버린 실력 있는 변호사 아서 에든스(톰 윌킨슨)는 그를 설득하러 온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마이클, 우린 그저 청소부일뿐이야." 그렇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 해결사들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더러운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는 거액의 수임료이지만,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대가는 참혹하기 때문이다.

도박 빚에 골칫덩어리 동생의 빚까지 떠안게 돼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른 뒷처리 전문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유혹과 위협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아서의 입을 틀어 막으러 갔다가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직감하는 친구다. 당장 돈이 급하지만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줄 분별할 수 있는 '시비지심'을 지녔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양심의 작동이 그를 올바르지만 위험한 선택으로 이끈다.

유치무쌍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에서도, 나는 이런 영화를 만날 때마다 그 저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기치 나부끼는 가운데서도,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낡아 빠진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는 영화들 말이다. <시리아나> <굿 나잇 앤 굿 럭> <블러드 다이아몬드> <굿 셰퍼드> 등 개인의 실존에서부터 사회와 국가, 세계로 시야를 넓히며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영화 매체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게도 '저들은 노는 물이 다르군'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스스로 연출한 <굿 나잇 앤 굿 럭>과 석유 자본과 결탁한 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친 <시리아나> 등 유독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에 참여해 온 조지 클루니의 '명석한 선택과 연기'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본 얼티메이텀>의 '기가 막힌' 각본을 쓴 바 있는 감독 토니 길로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자신의 첫연출작에서 유감 없이 발휘한다. 완벽에 가까운 스릴러적 이야기 안에 녹록지 않은 메시지를 녹여 낸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치밀한 장르적 짜임새 안에서 시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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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길로이 감독(왼쪽)과 조지 클루니


이 혀를 내두를만한 걸작에는 예의 혀를 내두를만한 대가들이 배우로, 프로듀서로 동참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시드니 폴락(아래 사진)이 로펌의 사장으로 등장하며, <오션스 13>의 스티븐 소더버그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안소니 밍겔라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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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하자마자 평단에선 극찬, 관객들로부터는 혹평을 들어야 했던
영화 'M',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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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일풍(日風)에서 배울 것

영화 이야기 2007. 11. 22. 10:27 Posted by cinemAgora

모처럼 좀 딱딱한 글 하나 올립니다. cinemAgora가 지난 주 동국대학교에서 있었던 '한-중-일 문화 교류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일본에서 더 이상의 한류는 없다." 최근 내가 만난 일본 영화 관계자들은 대부분 한류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한류 현상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배우 배용준과 가수 보아 등 일부 연예인들의 인기는 결과적으로 일본 내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오래도록 유지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특히 영화 분야에서 특정 연예인의 산업적 확장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0년 일본에서 개봉한 <쉬리>의 성공으로 크게 고무된 한국영화는, 2004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와 2006년 <외출>이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의 흥행으로 한류 붐의 정점에 이르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괴물> <왕의 남자> 등 한국 내 빅 히트를 기록한 영화들이 잇따라 저조한 성적을 내는 등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춤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대일 수출액이 전년대비 82.8%(영화진흥위원회 집계)나 감소했다는 것은 적어도 영화 분야에 있어서 만큼 한류의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대표적인 방증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급히 식은 한류 열기의 현황을 수치적으로 재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 내 한국영화의 위상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성에 의해 저변 확대를 추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적절할 것이다. 나는 이런 판단에 입각해 한류 붐의 일환으로 해석돼 온 기존 한국영화의 일본 진출 방식의 한계와 나름의 성과를 확인함과 동시에 일방적인 진출이 아닌 문화적 융화의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일련의 징후들을 통해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 한다. 영화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적 특성에 따라, 이 발표는 학술적인 연구를 토대로 한 정밀한 분석과 대안 제시를 위함이 아니라 저널리즘적 시각에 따른 현상 진단과 전망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힌다. 또한 가요와 드라마, 영화 등 대중 문화 전반의 한류 현상을 유기적으로 아우르지 못하고, 발표자의 관심 분야인 영화 쪽에 초점을 맞춘 한계 역시 부끄럽게 고백한다.

한류, 거품은 빠졌지만 수분은 남았다

과연 한류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말 것인가. 한류를 문화적 유행이나 붐업 상태로 본다면, 객관적인 정황상,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으나 '위키피디아'의 일본 사이트에서 비교적 참고할만한 설명을 얻을 수 있었다. "수입된 한국영화는 주로 연애물이나 한반도의 전쟁을 소재로 한 것 등 내용이 거의 국내에 국한된 것이라 일본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작품이 적어서, 일부 화제를 뿌린 작품을 제외하면 한류가 일본 영화 시장 전체로 확대됐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컨대 일본에 진출한 많은 한국영화들이 일본 관객들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인데, 초창기 <공동경비구역 JSA>나 <쉬리>의 성공이 한국적 특수성을 주요 흥행 무기로 삼은 것을 감안할 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본격 진출 초창기 '분단'으로 대표된 한국적 특수성이 일본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동의 영역을 선사한 것은 분명하다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와 2006년 <괴물> <왕의 남자>의 흥행 부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것이 일본 관객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위키피디아 일본 사이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류가 한국영화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확대 개봉보다 미니 씨어터 중심의 상영이 중심인 것은 1999년부터 변함이 없는데 판권가격이 치솟으면서 한류 전부터 이어져 온 소규모 작품의 구입이 급격히 줄어들어 오히려 한국문화의 침투에 '한류'가 공헌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자는, 이 같은 진단 역시 한류 현상이라는 붐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착시 현상 때문에 문화적 침투의 질적 내용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강한 폭풍이 지형을 바꿔놓듯, 지난 몇 년간의 한류 붐이 일본 내에 한국영화가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뿌리내릴 수 있는 씨앗을 심어 놓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꾸준히 한국영화를 소개하고 있는 일본 배급사 SPO를 들 수 있을 것이다. SPO는 특히, 지난 2005년부터 '한류 시네마 페스티벌' 행사를 마련해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등을 돌며 대표적인 한국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3회째를 맞은 올해 역시 모두 21편의 최신 한국영화를 일본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SPO 뿐 아니라 최근 아뮤즈와 같은 중견 배급사가 한류 거품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 배급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은, 여전히 한국영화가 가진 일본 내 저변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주목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저변의 징후는 비단 극장에서만 찾아지는 건 아니다. 일본의 위성 방송 채널인 '스카이퍼펙트 TV'는 한류 붐을 일으켰던 TV 드라마 <겨울연가>부터 최근 방영 중인 <대조영> <사육신>에 이르기까지 한 달에 70여 편에 달하는 드라마를 비롯해, 10여 편의 영화를 편성 방영하고 있다. 또 K-POP 코너도 20여 개에 달한다. 이 방송국은 인터넷 사이트에도 '한류 나우'라는 별도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위성방송 채널인 'WOWOW' 역시 한 달에 300여 편의 한국영화를 편성 방영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 재팬'의 뉴스 코너에는 독자들이 상시적으로 찾아보는 뉴스 검색어를 따로 분류해 놓고 있는데, 최근 이곳에 '한류'라는 키워드가 사라진 대신 '한국영화'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K-POP'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영화가 붐의 단계에서 문화적 브랜드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는 면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인터넷 공간에선 한류 관련한 정보 페이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Excite, 피아, nifty 등이 여전히 한류 또는 한국 대중문화 정보를 별도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렇듯 불과 7~8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만나볼 수 없었던 한국영화는 이제 일상적으로 일본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물론 와이드릴리스 방식의 개봉 사례는 많지 않지만, 소규모라도 꾸준히 한국영화가 소개되고 있고, 이는 많든 적든 일본 내 한국영화의 기본적인 수요층이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거품은 빠졌지만, 수분까지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닌 셈이다. 적어도 수 천만 명의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경험했다는 것은, 그리고 가장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일본인들에게 한국영화가 더 이상 이질적이거나 낯선 매체가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시장 확대를 꾀하는 한국 영화계로서 지금 당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일본 내 한국영화의 저변에 대한 더욱 정밀한 분석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수출고 통계나 배급과 마케팅 방식에 대한 사례 연구에 머물지 않고, 한국영화의 기본 수요층이 가진 성향과 세대적 특징을 파악하려는 산업적,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일본 영화가 관변적이거나 산업적인 중흥책의 소산인 다분히 조장된 듯한 '류(流)'가 아니라, 개별 작가와 배우들에 대한 마니아 시장으로서 성장 강화되고 있음은 거꾸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 형성된 일본 영화의 브랜드 파워는 초창기에는 이와이 슌지가, 최근에는 이누도 잇신과 오다기리 조가 대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욘사마의 지지층인 중년 여성층에 머물지 않고, 이를테면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이창동을 열렬히 지지할 수 있는, 이른바 오타쿠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스폰지나 시네콰논 등의 소규모 배급사들이 일본영화에 대한 저변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내 한국영화의 저변을 확대하도록 다양하고도 안정적인 유통 환경 마련에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한류 스타들을 내세운 대규모 상업영화가 와이드릴리스 방식을 고집하며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저예산 비주류 영화들을 통해 또 다른 저변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2004년부터 일본 이미지포럼에서 성공적으로 열리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 특별전'은 대단히 고무적인 행사다. 발표자는, 두 차례 참관한 이 행사에서 욘사마나 뵨사마 영화가 아닌, 한국의 '다른' 영화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관심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방향에서 쌍방향 문화 융합으로

앞서 위키티피아의 진단을 인용해 지적했다시피, 그 동안 한국영화의 일본 진출 전략은 '한국적 특수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굳이 어떤 붐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닐지라도 다른 문화권의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보편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양질의 영화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편성을 확보할 것인가. 최근 오히려 일본 콘텐츠를 활발하게 구매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경향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한류의 물꼬를 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앞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올드보이>와 <미녀는 괴로워>의 잇단 대성공이 이 같은 흐름을 크게 부추겼는데, 최근에는 한국 출판 시장에서 일본 소설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영화계의 일본 원작 콘텐츠 확보 경쟁의 열기 역시 부쩍 뜨거워지고 있다. 올해 국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소설이나 만화 등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최근 개봉작만 보더라도 호러 영화 <검은집>, 코미디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바르게 살자><어깨 너머의 연인> 등이 모두 일본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다. 앞으로도 일본 원작 콘텐츠를 영화화한 작품들은 줄지어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주간지 FILM2.0의 보도에 따르면,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모방범>을 비롯,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과 <레몬>등의 영화화 판권이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베스트셀러 <공중그네>와 <남쪽으로 튀어>도 마찬가지다. 오가와 야요이의 <너는 펫>, 마츠모토 코지의 <피안도>,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등 일본 만화의 영화화 판권들도 속속 구매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안티크 서양골동 양과자점>은 이미 캐스팅을 마치고 제작에 들어갔다. 일본 원작 콘텐츠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판권 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영화의 판권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은 한류 붐 시대의 양상이, 거꾸로 일본 콘텐츠 확보 경쟁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영화계가 일본의 원작 콘텐츠로 눈을 돌리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는 최근 들어 많은 기획영화들이 참신한 시나리오와 소재의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대안으로 한국과 정서적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은 일본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 같은 정서의 유사성은, 거꾸로 일본 관객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점을 안겨준다. 특히 일본의 경우 원작에 대한 충성도가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은, 한국을 경유한 일본 원작의 유턴이 기본적인 수요층을 확보하는 이점을 내포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미 대만에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은 일본 만화 원작의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일본에서 다시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는 점,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은 한국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일본 내에서 큰 흥행 성공에 힘입어 다시 일본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는 점은, 그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원작 판권을 구매할 때, 장르나 스토리, 인지도 등에서 일본으로의 역수출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더욱 정교한 전략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발표자는, 일본 원작의 무분별한 코미디화는 위험한 선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대유괴>를 코미디로 각색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같은 경우 기대 이상의 평가를 얻지 못한데다 흥행 면에서도 크게 선전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웃음의 코드가 한국 관객들과 다른 일본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역시 난망이다. 사례를 통해 볼 때, 코미디보다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와 같은 멜로 영화의 흡입력과 안전성이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최근 한국 내에서 인지도를 갖춘 일본 작가들의 원작에만 지나치게 몰려가는 경향을 띄고 있는데, 영화화됐을 때의 잠재력을 갖춘 원작을 미리 발굴해 내려는 노력 역시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같은 일본 원작 콘텐츠의 대량 유입 현상에서 우리는 일방향성 침투에서 쌍방향성 융합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문화적 징후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원작이 한국에서 영화화되고 이것이 다시 일본 관객들에게 문화적 자극을 안겨주고, 조금 더 친숙한 방식으로써 한국 문화에 대한 또 다른 접근 채널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국의 문화적 거리가 그만큼 좁혀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공동의 문화 소비 패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상징한다. 산업적 이해 득실의 차원을 떠나, 우리는 한류 거품이 꺼진 뒤의 제반 현상을 한일간의 진정한 문화 교류의 장을 열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태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해일보다 파도가 지형을 바꾼다

한때 해일이었던 한류는 이제 잔잔한 파도가 됐다. 거꾸로 잔잔한 파도처럼 한국의 문화시장을 두드려온 일본 문화가 최근 한국에서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데서 한국영화 역시 취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브랜드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논리가 조장한 붐업에 의해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인내심과 끈기를 가진 접근과 도전만이 양국 문화 시장의 확대, 나아가서 범아시아적인 문화 교류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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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가창력 논쟁 '유'의미한 이유

음악 이야기 2007. 11. 21. 08: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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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컴백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작곡가인 그가 가수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 온 것까진 좋은데, 컴백 무대에서 들려준 음악들에 대한 가창력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댄스가수라는 그의 특성상 많은 동작들을 필요로하는 라이브 무대에서 연습 부족으로 인한 음정의 불안정함이 눈에 띄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더걸스라는 현재 최고의 상품을 기획한 인물에 대한 호의, 또 그간 가요계에 미쳤던 막대한 영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작용하며 꽤 많은 동정(!), 지지표를 얻고 있다.

박진영은 가수 이전에 음악 스타일리스트라는 것이 이런 지지의 근거물로 제시되고 있다. 파격적인 영상이나 율동 등이 그의 음악의 핵심적인 측면이며, <kiss>를 비롯한 최근 발표작들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굳이 가창력을 문제시 할 것이 없다는 주장들이다. 한마디로 박진영이란 댄스 가수에게 가창력이란 선택 사항일 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며,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스타일이 부족한 면을 충분히 커버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변명들이 댄스 가수로서의 박진영에 대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부여할 수 있을까? Daum의 블로그 뉴스에 올라온 한 블로거의 주장을 분석/비판해보고자 한다. 박진영과 기타 가창력 부족의 댄스가수들에 대한 이들의 논리가 어떠한 것이며 그 한계란 또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박진영의 가창력 부족에 대한 첫 번째 옹호를 위해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밥 딜런'은 포크 가수로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가수다. 하지만 라이브를 들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노래를 결코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가사에 담긴 의미 때문이다. 사회적인 문제, 각종 부조리를 비판하고 반성하게 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다소 생뚱맞게 느껴지는 이 문장을 곰곰히 쳐다보다보니 일견 다음과 같은 주장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밥 딜런은 어디 노래를 잘 해서 인정을 받았나? 그의 가사가 지닌 진정성 때문이었다. 그러니 박진영은 노래를 못부른다고 해도 댄스 음악이 가진 장르의 미덕인 율동과 패션, 곧 스타일로 그 부분을 모두 메우고 있고,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한 가수인 것이다.'

이런 해석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에는 어떤 의견을 내세우시겠는가?

밥 딜런은 노래를 못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기존의 보컬 스타일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적인 창법을 구사했던 아티스트이다. 그는 풍부한 성량과 기교섞인 이전의 정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단조롭고 건조한 보컬색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반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낸 것이다. 노래를 못한 것이 아니라, 의미 전달을 위한 최고의 방식을 찾아 낸 것이다. 그렇다면 박진영의 불안정한 음정은 댄스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시도인가? 속칭 삑사리나 호흡의 빈곤함이 가져온 헉헉거림이 그가 선택한 댄스 음악을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라도 했다는 것인가?


밥 딜런을 거론했던 블로거는 계속해서 이런 문장을 제시한다.


"사진기의 발명 이후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회화는 이발소 그림 취급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진기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빛이라든지 추상적인 개념의 회화가 등장한 것이다. 피카소의 입체적으로 해부된 그림이 그렇고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그렇다.

음악 역시 독일출신 뮤지션인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기계적인 소리를 대중음악에 접목하여 일렉트로니카란 장르를 선보였고 이들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인해 기계적인 느낌의 댄스음악이 70년대 중반을 거쳐 80년대를 강타하며 디스코 열풍을 이끌어 냈으며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는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이 영화에 삽입되었던 비지스의 곡들 역시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Stayin' Alive", "Night Fever"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장르의 (대중)예술을 볼 때 기술의 혁신으로 인하여 예전에 존중받던 미덕이 무의미 해지는 것을 발견한다.사진기의 발명이 그렇고 음악에 있어 기계적인 소리의 도입이 그렇다. 가수의 가창력이 대중음악에 있어 절대적인 시대가 있었지만 이미 30년 전 부터 이런 미덕은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단락에서 거론한 사진기의 발명 이후 사실적 회화가 피카소의 입체파로 바뀌었고, 몬드리안의 추상화로 바뀌었다는 구절은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사진기의 발명 한 참 이후인 1960년대 미국의 뉴욕을 중심으로 사진기보다 더 정밀한 묘사를 선보인 극사실주의 회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회화의 다양한 장르들은 사진기와 다른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지, 사진기의 발명에 밀려 자구책을 찾은 것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몬드리안의 추상화 이전 추상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칸딘스키의 고민은 음악은 추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미술은 왜 그럴 수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지 사진기의 발명 때문이 아님은 미술사에 기초만 가지고 있어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 단락에서 이어지는 크라프트베르크의 기계음이 일렉트로니카란 장르를 선보였다는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인 느낌이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디스코 열풍을 이끌어 냈다고? 팝 칼럼니스트인 나도 별로 들어본 적 없는 이론이다. 일부분 그런 영향이 있었던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디스코 사운드는 흑인들 특유의 그루브가 댄스 음악과 접목되면서 시작된 음악이라는 것이 팝 음악계의 정론이다. 특히나 예로써 제시한 <Stayin' Alive>와 <Night Fever>의 성공은 비지스 형제의 환상적인 팔세토 창법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에서 기인하지 전자 음악의 발전이 그 원인이라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오히려 미디의 발전이 이룩한 팝 음악계의 사조는 80년대의 뉴 웨이브 사운드였고, 당시에도 보컬의 가창력은 중요한 음악적 판단의 부분이었다.

마지막 단락의 기술의 혁신으로 인하여 예전에 존중받던 미덕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앞선 반박으로 대충은 설명이 된 부분이고 '가수의 가창력이 대중음악에 있어 절대적인 시대가 있었지만 이미 30년 전부터 이런 미덕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악' 소리 내뱉을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머라이어 캐리는 90년대 인물이고, 동일 시대 여성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휘트니 휴스턴 역시 그 환상적인 가창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아티스트이다. <한 오백년>, <창 밖의 여인>으로 80년대 가요계의 맹주가 된 조용필도 가창력면에서 흠잡을데 없던 우리의 자랑스런 아티스트이다. 2000년대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현존 최고의 여성 디바 비욘세의 존재와 러닝 머쉰 위에서 노래 연습을 한다는 작은 거인 보아의 노력은 어떻게 해석하시겠는가?    

젊은 음악 팬들사이에 이상한 면죄부가 돌아다닌다. 댄스 가수는 발라드 가수보다 체력 소모가 많은 스타일을 택했기에 노래는 조금 못불러도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노래보다 춤이 자신있다면 백 댄서가 되면 된다. 노래보다 패션 감각에 더욱 소질이 뛰어나다면 스타일리스트가 되면 된다. 그런데 왜 하필 가수인가? 자신들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 것에야 따로 할말은 없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하고 싶을 것을 마음껏 할 자유는 분명히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저들은 댄스 가수니 이해하고 넘어가라'는 주장에 이르러선 일종의 바보선언을 접하는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댄스 가수들이 춤추며 노래하기 힘들어 몽땅 다 노래를 삑사리를 낸다면 어떻게든 이해해 보겠다. 그러나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2시간의 라이브 무대에서 열창을 하는 마돈나가 존재하고, 지금 이시간에도 좀 더 완벽한 가창력을 위해 노래와 체력 훈련을 병행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수들이 연습실로 향하고 있다. 그들을 모두 바보라고 욕하고 싶단 말인가? 댄스 가수가 뭐 그리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냐고 손가락질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노래 못하는 가수는 그냥 노래 못하는 가수로 존재하면 된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가창력이 정말 엉망이니 노래를 그만두라'고 폭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장르가 무엇이든 노래를 원칙으로 하는 가수가 노래를 못하니 노래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비거리가 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맹목적인 충절들이다.

박진영이라는, 이제 중견이 돼가는 가수의 컴백을 통해 다시 한 번 가요계의 불안한 팬 의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정말로 안타까워진다. 활발한 비판이 팬들로부터 쏟아져 나올 때, 연습없이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가수들이 넘쳐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어야 기획사는 준비 안된 가수들을 포장만 예쁘게 해서 내놓는 뻘짓을 그만둘 것이며, 그저 얼굴 조금 예쁘다는 같잖은 자신감으로 스타가 되겠다는 어설픈 가수 지망생들도 줄어 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꿈꾸는 것이어야만 한다. 가짜가 아닌 진짜들이 넘쳐나는 가요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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