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가창력 논쟁 '유'의미한 이유

음악 이야기 2007. 11. 21. 08: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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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컴백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작곡가인 그가 가수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 온 것까진 좋은데, 컴백 무대에서 들려준 음악들에 대한 가창력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댄스가수라는 그의 특성상 많은 동작들을 필요로하는 라이브 무대에서 연습 부족으로 인한 음정의 불안정함이 눈에 띄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더걸스라는 현재 최고의 상품을 기획한 인물에 대한 호의, 또 그간 가요계에 미쳤던 막대한 영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작용하며 꽤 많은 동정(!), 지지표를 얻고 있다.

박진영은 가수 이전에 음악 스타일리스트라는 것이 이런 지지의 근거물로 제시되고 있다. 파격적인 영상이나 율동 등이 그의 음악의 핵심적인 측면이며, <kiss>를 비롯한 최근 발표작들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굳이 가창력을 문제시 할 것이 없다는 주장들이다. 한마디로 박진영이란 댄스 가수에게 가창력이란 선택 사항일 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며,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스타일이 부족한 면을 충분히 커버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변명들이 댄스 가수로서의 박진영에 대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부여할 수 있을까? Daum의 블로그 뉴스에 올라온 한 블로거의 주장을 분석/비판해보고자 한다. 박진영과 기타 가창력 부족의 댄스가수들에 대한 이들의 논리가 어떠한 것이며 그 한계란 또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박진영의 가창력 부족에 대한 첫 번째 옹호를 위해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밥 딜런'은 포크 가수로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가수다. 하지만 라이브를 들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노래를 결코 잘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가사에 담긴 의미 때문이다. 사회적인 문제, 각종 부조리를 비판하고 반성하게 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다소 생뚱맞게 느껴지는 이 문장을 곰곰히 쳐다보다보니 일견 다음과 같은 주장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밥 딜런은 어디 노래를 잘 해서 인정을 받았나? 그의 가사가 지닌 진정성 때문이었다. 그러니 박진영은 노래를 못부른다고 해도 댄스 음악이 가진 장르의 미덕인 율동과 패션, 곧 스타일로 그 부분을 모두 메우고 있고,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한 가수인 것이다.'

이런 해석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에는 어떤 의견을 내세우시겠는가?

밥 딜런은 노래를 못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기존의 보컬 스타일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적인 창법을 구사했던 아티스트이다. 그는 풍부한 성량과 기교섞인 이전의 정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단조롭고 건조한 보컬색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반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낸 것이다. 노래를 못한 것이 아니라, 의미 전달을 위한 최고의 방식을 찾아 낸 것이다. 그렇다면 박진영의 불안정한 음정은 댄스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시도인가? 속칭 삑사리나 호흡의 빈곤함이 가져온 헉헉거림이 그가 선택한 댄스 음악을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라도 했다는 것인가?


밥 딜런을 거론했던 블로거는 계속해서 이런 문장을 제시한다.


"사진기의 발명 이후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회화는 이발소 그림 취급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진기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빛이라든지 추상적인 개념의 회화가 등장한 것이다. 피카소의 입체적으로 해부된 그림이 그렇고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그렇다.

음악 역시 독일출신 뮤지션인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기계적인 소리를 대중음악에 접목하여 일렉트로니카란 장르를 선보였고 이들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인해 기계적인 느낌의 댄스음악이 70년대 중반을 거쳐 80년대를 강타하며 디스코 열풍을 이끌어 냈으며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는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이 영화에 삽입되었던 비지스의 곡들 역시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Stayin' Alive", "Night Fever"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장르의 (대중)예술을 볼 때 기술의 혁신으로 인하여 예전에 존중받던 미덕이 무의미 해지는 것을 발견한다.사진기의 발명이 그렇고 음악에 있어 기계적인 소리의 도입이 그렇다. 가수의 가창력이 대중음악에 있어 절대적인 시대가 있었지만 이미 30년 전 부터 이런 미덕은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단락에서 거론한 사진기의 발명 이후 사실적 회화가 피카소의 입체파로 바뀌었고, 몬드리안의 추상화로 바뀌었다는 구절은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사진기의 발명 한 참 이후인 1960년대 미국의 뉴욕을 중심으로 사진기보다 더 정밀한 묘사를 선보인 극사실주의 회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회화의 다양한 장르들은 사진기와 다른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지, 사진기의 발명에 밀려 자구책을 찾은 것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몬드리안의 추상화 이전 추상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칸딘스키의 고민은 음악은 추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미술은 왜 그럴 수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지 사진기의 발명 때문이 아님은 미술사에 기초만 가지고 있어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 단락에서 이어지는 크라프트베르크의 기계음이 일렉트로니카란 장르를 선보였다는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인 느낌이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디스코 열풍을 이끌어 냈다고? 팝 칼럼니스트인 나도 별로 들어본 적 없는 이론이다. 일부분 그런 영향이 있었던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디스코 사운드는 흑인들 특유의 그루브가 댄스 음악과 접목되면서 시작된 음악이라는 것이 팝 음악계의 정론이다. 특히나 예로써 제시한 <Stayin' Alive>와 <Night Fever>의 성공은 비지스 형제의 환상적인 팔세토 창법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에서 기인하지 전자 음악의 발전이 그 원인이라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오히려 미디의 발전이 이룩한 팝 음악계의 사조는 80년대의 뉴 웨이브 사운드였고, 당시에도 보컬의 가창력은 중요한 음악적 판단의 부분이었다.

마지막 단락의 기술의 혁신으로 인하여 예전에 존중받던 미덕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앞선 반박으로 대충은 설명이 된 부분이고 '가수의 가창력이 대중음악에 있어 절대적인 시대가 있었지만 이미 30년 전부터 이런 미덕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악' 소리 내뱉을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머라이어 캐리는 90년대 인물이고, 동일 시대 여성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휘트니 휴스턴 역시 그 환상적인 가창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아티스트이다. <한 오백년>, <창 밖의 여인>으로 80년대 가요계의 맹주가 된 조용필도 가창력면에서 흠잡을데 없던 우리의 자랑스런 아티스트이다. 2000년대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현존 최고의 여성 디바 비욘세의 존재와 러닝 머쉰 위에서 노래 연습을 한다는 작은 거인 보아의 노력은 어떻게 해석하시겠는가?    

젊은 음악 팬들사이에 이상한 면죄부가 돌아다닌다. 댄스 가수는 발라드 가수보다 체력 소모가 많은 스타일을 택했기에 노래는 조금 못불러도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노래보다 춤이 자신있다면 백 댄서가 되면 된다. 노래보다 패션 감각에 더욱 소질이 뛰어나다면 스타일리스트가 되면 된다. 그런데 왜 하필 가수인가? 자신들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 것에야 따로 할말은 없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하고 싶을 것을 마음껏 할 자유는 분명히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저들은 댄스 가수니 이해하고 넘어가라'는 주장에 이르러선 일종의 바보선언을 접하는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댄스 가수들이 춤추며 노래하기 힘들어 몽땅 다 노래를 삑사리를 낸다면 어떻게든 이해해 보겠다. 그러나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2시간의 라이브 무대에서 열창을 하는 마돈나가 존재하고, 지금 이시간에도 좀 더 완벽한 가창력을 위해 노래와 체력 훈련을 병행하는 수많은 미래의 가수들이 연습실로 향하고 있다. 그들을 모두 바보라고 욕하고 싶단 말인가? 댄스 가수가 뭐 그리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냐고 손가락질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노래 못하는 가수는 그냥 노래 못하는 가수로 존재하면 된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가창력이 정말 엉망이니 노래를 그만두라'고 폭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장르가 무엇이든 노래를 원칙으로 하는 가수가 노래를 못하니 노래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비거리가 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맹목적인 충절들이다.

박진영이라는, 이제 중견이 돼가는 가수의 컴백을 통해 다시 한 번 가요계의 불안한 팬 의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정말로 안타까워진다. 활발한 비판이 팬들로부터 쏟아져 나올 때, 연습없이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가수들이 넘쳐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어야 기획사는 준비 안된 가수들을 포장만 예쁘게 해서 내놓는 뻘짓을 그만둘 것이며, 그저 얼굴 조금 예쁘다는 같잖은 자신감으로 스타가 되겠다는 어설픈 가수 지망생들도 줄어 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꿈꾸는 것이어야만 한다. 가짜가 아닌 진짜들이 넘쳐나는 가요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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