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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양심'이나 '정의'라는 단어처럼 낡아빠진 어감으로 다가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가 뼛속 깊이 스며든 지금,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장땡이고,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합격만 하면 그만이다. 어르신들은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현실은 돈이 에헴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 벌었든 돈은 권력이고, 권력은 치부마저 별 게 아닌 것으로 둔갑시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당연한 곳, 그 살풍경 속에 양심이나 인륜, 도덕이라는 말은 순진한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낡아빠진 영화다. 여기저기서 양심이 밥 먹여주냐고, 정의가 돈 벌어주냐고 부르대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생뚱맞게도 양심과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거대하고 추악한 진실 앞에서 한 인물의 양심이 발화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유독성 제초제를 팔아 왔던 'U/노스'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피해 주민들의 집단 소송을 무마하려 한다. 그리고 로펌의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이 회사의 승리를 위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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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U/노스의 변호를 중단해 버린 실력 있는 변호사 아서 에든스(톰 윌킨슨)는 그를 설득하러 온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마이클, 우린 그저 청소부일뿐이야." 그렇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 해결사들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더러운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는 거액의 수임료이지만,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대가는 참혹하기 때문이다.

도박 빚에 골칫덩어리 동생의 빚까지 떠안게 돼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른 뒷처리 전문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유혹과 위협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아서의 입을 틀어 막으러 갔다가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직감하는 친구다. 당장 돈이 급하지만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줄 분별할 수 있는 '시비지심'을 지녔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양심의 작동이 그를 올바르지만 위험한 선택으로 이끈다.

유치무쌍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에서도, 나는 이런 영화를 만날 때마다 그 저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기치 나부끼는 가운데서도,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낡아 빠진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는 영화들 말이다. <시리아나> <굿 나잇 앤 굿 럭> <블러드 다이아몬드> <굿 셰퍼드> 등 개인의 실존에서부터 사회와 국가, 세계로 시야를 넓히며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영화 매체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게도 '저들은 노는 물이 다르군'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스스로 연출한 <굿 나잇 앤 굿 럭>과 석유 자본과 결탁한 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친 <시리아나> 등 유독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에 참여해 온 조지 클루니의 '명석한 선택과 연기'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본 얼티메이텀>의 '기가 막힌' 각본을 쓴 바 있는 감독 토니 길로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자신의 첫연출작에서 유감 없이 발휘한다. 완벽에 가까운 스릴러적 이야기 안에 녹록지 않은 메시지를 녹여 낸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치밀한 장르적 짜임새 안에서 시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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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길로이 감독(왼쪽)과 조지 클루니


이 혀를 내두를만한 걸작에는 예의 혀를 내두를만한 대가들이 배우로, 프로듀서로 동참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시드니 폴락(아래 사진)이 로펌의 사장으로 등장하며, <오션스 13>의 스티븐 소더버그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안소니 밍겔라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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