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유로 시작해 보자. 어느 마음씨 착한 설렁탕집 주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무료로 설렁탕을 대접했다. 공짜로 설렁탕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줄을 섰다. 다 먹고 난 한 손님, 주인장에게 대뜸 한마디 한다. "거 수육이 너무 적게 들어갔어, 사리도 푸석푸석하고, 에이 맛 없어!" 그런데 그 손님, 다음날에도 공짜 설렁탕을 먹으로 와서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이번에도 한마디 한다. "거 설렁탕이 왜 이렇게 짠거요! 깍두기도 맛없고." 그 손님, 다음날에도 공짜 설렁탕을 먹으러 온다. 맛없다면서 왜 자꾸 오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공짜라니까 자꾸 와서 먹고는 힐난을 던지고 사라진다.

적절한 비유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볼만한 한국영화가 없다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볼멘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슬쩍 저 위에 든 상황처럼 느껴진다.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하다 못해 일상화된 지금, 관객들이 짐짓 영화의 품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자 자가당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모든 관객을 싸잡아 얘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관객 일반'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불법 다운로드는 '안하면 바보'인 세상처럼 돼 버렸다.

내 주변에도 인터넷에서 영화를 공짜로 다운로드 받아 보는 사람들이 꽤 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불법 다운로드는 엄연히 도둑질이다. 도둑질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 건 당연하게도 너도 나도 그렇게 해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불법이라 할지라도 어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죄의식의 크기는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 현상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불법 다운로드가 한국 영화 시장을 좀 먹는 것을 넘어 아사 직전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 영화 시장의 전체 매출 가운데 극장 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83%에 달한다. 그러나 DVD가 차지하는 시장 비중은 불과 1%에 불과하다. 주요 국가 가운데 비디오나 DVD 등 부가 판권 시장이 축소되다 못해 이처럼 고사 직전에 몰려 있는 나라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말할 것도 없이 불법 다운로드의 폐해다.

국내 영화 시장의 전체 규모는 1조 4천억 원 가량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한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피해액 규모는 그 70%에 육박하는 9천 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돈이 어디론가 다 새 버리니, 부가 판권 시장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접은 영화들은 극장 흥행에 목을 매게 된다. 치고 빠지기 흥행 전술과 낚시 마케팅, 스크린 독과점도 다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다. 더 심각한 건 볼만한 영화가 적어지는 것이다. 영화 시장에 돈이 정상적으로 돌지 않으면 품질 저하는 말할 나위 없는 수순이다. 이미 가요 시장이 그 타산지석이 됐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박하다. 체계적인 양성화와 함께 꾸준한 단속도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 시장의 절박한 상황에 네티즌들이 화답하지 않는다면, 이런 건 모두 무소용이다. 자랑스러운 IT 강국의 네티즌들은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고스란히 참담한 문화적 후퇴로 돌아올 게 뻔하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국영화는, 또 다시 80년대처럼 값싼 호스테스 멜로나 만들며 '역시 한국영화는 안돼'라는 냉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장한다. 오늘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고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한국영화 시장 위기의 공범이다. 그러니 그런 분들은 제발 영화의 품질을 논하지 말라. 집주인한테 장물 품평하는 도둑은 없다. 감히 영화를 사랑한다는 말도 입밖에 꺼내지 말라. 누구도 상대방을 착취하고 말려 죽이는 일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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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살 멜로의 진수 <내 사랑>

영화 이야기 2007. 12. 12. 09:30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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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원래 닭살 돋는 짓거리다. 그런데 이게 참 모순적이다. 스스로에게 객관적이기 힘든 사람의 특성상, 자기 자신의 닭살 행각은 참아도, 다른 이의 닭살 행각을 보면 당장 대패를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멜로 영화에서의 닭살 행각은 그래서 가끔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하는데, 오늘 시사회를 통해 본 <내 사랑>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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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아니, 직업이 다른 거 말고는 남성 캐릭터들의 변별력이 크지 않으니 차라리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고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괴상한 여자, 귀여운 여자, 그리고 지고지순한 여자. 멋지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 별 해괴한 짓을 다하고 다니는, 괴상한 여자는 최강희이고, 짝사랑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이쁜 표정은 다 마스터한 듯한, 귀여운 여자는 이연희다. 그리고 남자가 싫다는데도 끝끝내 들이대는, 지고지순한 여자는 임정은이다.

세 말라깽이 여배우들에겐 그리 소화하기 힘든 배역은 아니었을 것 같다. 최강희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 같고, 이연희는 머리 스타일만 바뀌었지 캐릭터 컨셉트는 <M>의 미미와 흡사하다. 임정은도 <사랑하니까 괜찮아>로 '지고지순'의 개념을 미리 예습한 바 있다. 이한 감독도 마찬가지. 꽤 흥행한 연출 데뷔작 <연애소설>의 팬시용품적 '필'을 그대로 가져온데다, 손예진이 '내가 찾는 아이'를 부르는 장면을 술 취한 이연희가 '하와이안 커플'을 부르는 장면으로 살짝 대체하는 센스!

이렇게 세 여자를 중심에 둔 세 커플의 에피소드에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을 엄태웅의 에피소드가 덤으로 얹힌 이 영화는, 워킹타이틀의 유쾌한 멜로 <러브 액츄얼리>나 지난해 흥행에 꽤 성공한 한국영화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이른바 '떼거리 멜로'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굳이 그런 방식을 택했다면, 에피소드 사이의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이 영화는 과감히 폐기처분한다. 그냥 저 에피소드가 지겨울 쯤 이 에피소드가 나오고, 이 에피소드에 하품이 터질 쯤 저 에피소드로 돌아온다.

배우들의 매력에 한껏 기대는 것 말고는 별반 독창적 드라마나 대사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 심심하기 그지 없는 연애담의 나열이 지겹기만 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서두에 썼듯이 대사 한줄한줄 닭살이다. 그 이유를 꼼꼼하게 살폈더니 주인공들, 너나 할 것 없이 속에 있는 말들을 어찌 그리 줄줄 잘도 읊어대는지 모르겠다. 대사란 인물이 가진 심리의 반영임과 동시에 관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영화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 이상, 인물들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정직하게 말로 옮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헤어지기 직전의 한 여자가 등을 돌린 남자에게 "너 정말 그렇게 가버린다면 다시 올 생각은 하지마"라고 했다면, 이 말은 '제발 가지마, 내 사랑'이라는 뜻이다. 우리 민요 아리랑이 괜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투정이었겠나. 그런데, 이 영화는 안그런다. 모두들 너무 착하고, 너무 솔직하다. 세상도 뽀사시하다. 그래서 닭살이다. 미리 본 영화기자는 별점 대신 다음과 같은 권고를 드린다. 극장 문 들어서기 전에 대패 하나씩 준비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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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쾌락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도시, 라스베가스.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들이 불나방 처럼 모여드는 도시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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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으로의 진화를 위한 타블로의 변신

음악 이야기 2007. 12. 11. 18: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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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MBC 7층에서 타블로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타블로가 먼저 예의바른(!) 인사를 건넨다.  
예전 SBS Radio DJ 시절, DJ와 초대손님으로 에픽하이를 만난적이 있었다.
그와의 안면은 그것이 전부였다.
"안녕하세요." 상투적인 나의 답례가 이어졌다.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앨범이 들려 있었고, 수줍은 듯 그 앨범을 내게 내민다.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에픽하이가 신보를 냈나요?" 눈치없는 나의 질문, 그리고 그의 대답.
"아니요. DJ를 하는 페니(Pe2ny)라는 친구와 둘이서 프로젝트 앨범을 냈습니다."
앨범엔 Eternal morning이라고 쓰여 있었다.
앨범을 받고 짧은 목례후에 그와 헤어졌다.

얘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Eternal morning이라고 명명된 앨범을 플래이어에 걸었다. 첫 곡부터 낯설다. 타블로나 에픽하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넘겨 받은 이미지가 적절히 자리잡을만한 공간이 없다. 읊조리는 여성의 나레이션과 이정식의 색소폰이 어반 사운드(Urban sound)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소리들은 힙합이라는 장르로 불리우지만 대중 취향의 팝 사운드를 담고 있던 에픽하이의 음악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건 도대체 뭘까? 타블로라는 익숙한 이름을 크레딧에 포함하면서도 인트로부터 청자의 기대를 능숙하게 배신해버린 이 음반의 정체는? 그리고 타블로의 의도는?'

에픽하이는 주류(mainstream) 그룹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이 될지 모르겠지만, 에픽하이라는 그룹의 음악이 상업성이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자, 그들의 인기와 음원의 판매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타블로는 그 주류 그룹의 일원이다.

그러나 에픽하이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으로서의 타블로는 전혀 다른 지향점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어반 뮤직,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적 분류,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 류라는 근사치 스타일의 설명이 [Eternal morning]의 사전적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은 기존의 에픽하이와는, 그리고 그룹의 브레인으로서의 타블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음악이 앨범에 담겨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존 그룹 활동의 노선과는 다르게 대중적이지 않은 비주류 장르를 선택하고 있으며, 보컬 없는 score는 상업성의 결정적 요소마저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기 절정의 그룹 멤버에게 이런 과도한(!) 실험을 감행하도록 한 것일까?'

대중 가요계는 샘플링과 자기 복제로 자생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리지널리티의 순수성은 힘든 길을 찾아가는 멍청한 일로 취급되고, 무한 반복되는 자기 노래 배끼기는 1집과 2집의 변별력을 소멸시켜 앨범을 구입하는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시류의 우울함 속에서 우연히 듣게 된 Eternal morning의 음반은 타블로라는 에픽하이의 한 멤버가 뮤지션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발견한 반가움을 전해준다. 음악적 변화의 시도는 그가 뮤지션으로의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변화의 폭이 에픽하이라는 소속팀의 아우라에 기대 안정적으로 기존 팬들을 끌어안고 가는 마이너 변형의 형태가 아닌, 전폭적이고 낙차 큰 커브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반갑다. 모험적인만큼 자기 음악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테며 그 모험을 앨범이라는 완성형으로 내놓음으로써 자기 실현의 의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샘플링이나 자기 복제의 틀을 깬 익숙하지 않음과, 그 안에 더욱 익숙하지 않은 음악들을 담아 놓고 있는 것에 타블로의 변화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르의 이동이나 특정 스타일의 집착이 진화 운운하는 평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타블로의 변신을 진화라는 단어로 연결시키는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가 대중적 지지 기반을 지닌 팝 스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부연하면 그가 이미 상업적 성공으로 음악계 활동 목적의 절반은 획득한 수혜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수혜의 반대편 꼭지점에서 다시 써나가는 음악은 그가 아직 스스로 음악적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기 시작하며 평범했던 가수(singer)는 뮤지션(musician)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또 하나의 상업적 성공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으로의 무모한(!) 시도에 '뮤지션으로의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뮤지션이란 말 그대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 음악에 집착하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주류의 뮤지션이 비주류의 음악을 선택한 진지하고도 깊은 고민의 지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시장여건이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 것인가에 대한 확인과 함께 말이다. 의지가 있다면, 음악에의 열정이 있다면, 다른 무엇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타블로의 변신은 멋지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변신을 감행할 만큼 자신들이 택한 음악이란 분야에 애정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가수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말이다.          


타블로와의 잠시 스치듯 지나친 만남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앨범을 들어보고 블로그에 글을 써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그는 앨범을 건네며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이라 기대했을까?
어쩌면 스스럼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것에서 그의 진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ternal morning] / Eternal morning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타블로와 페니가 함께 한 프로젝트 듀오의 앨범
* 일렉트로니카를 배경에 두고 색소폰과 건반, 현악기의 편곡으로 어반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다.
* 곡마다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배치해 감상의 포인트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 한가지 아쉬운 점은 컨셉에 묶인 곡들로 인해 전체 감상이 조금은 지루해진 느낌이다. 비슷한 템포로의 진행들이 곡마다의 차이를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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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는 하지만, 정작 물건은 팔지 않는 이상한 홈쇼핑.
                           오늘은 신작 DVD를 살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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