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영화로 대접 받기 위하여

영화 이야기 2007.12.06 22:28 Posted by cinemAgora
2007년 영화계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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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군데서 섭외 전화가 걸려 온다. 2007년 영화계를 결산해 달라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인터뷰 요청들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얘기들이지만 올해만큼은 부쩍 ‘부진’이니 ‘위기’니 하는 단어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충무로의 체감 경기를 언론이 실감할 만큼, 현상적인 지표들이 심각해 졌다는 반증이다. 예전엔 그냥 좀 들었다고 말할 수준인 200만 명 돌파 영화가 가물에 콩 나듯 나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실감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위기의 원인 분석에 대해선 여전히 수박 겉 핥기에 머물고 있어 답답하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질문이 날아 왔다. “한국영화들이 요즘 시장에서 잘 안 통한다는 것은, 관객들이 그만큼 똑똑해졌다는 의미이겠죠?” 나는 약간 심사가 뒤틀린 끝에 이렇게 내뱉었다. “그거 설명하려면 굉장히 긴데요. 일단 현상적으로는 이래요. 관객들이 똑똑해진 게 아니라 영화가 멍청해진 거라고 보는 게 맞아요. 영화가 멍청해지니 관객들도 따라서 멍청해지고, 또 그 멍청한 수준에 맞추다 보니 영화가 더 멍청해지는 일종의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이죠.” 그랬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의 피디는 “방송에 쓰긴 좀 거친 표현”이라며 “점잖은 어투로 다시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한다. 나도 점잖게 말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충무로의 상황이 ‘에헴’ 하고 있기에 하도 답답해서 그랬다.

창의력 부족? 그걸 누가 모르나!

한국영화 위기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관객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충무로의 창의력 부족’이라는 분석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 왔다. 충무로가 예전만큼 똘똘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충무로가 언제 그렇게 똑똑했었나? 그런 결론은, 너무 편리하다.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추론이다. 명색이 언론이라면 이면의 구조를 살펴야 하는데, 한국의 주류 언론은 구조와 맥락을 살피는 데는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다. 들여다 보면 골치 아프고, 독자와 시청자 역시 골치 아플 게 뻔하니, 관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출 참신하고 새로운 영화가 절실하다고 짐짓 정색하고 끝내면 세련되고 깔끔해 보이는 줄 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모르나?

사실상,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의 불황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극장 수익에만 편중된 왜곡된 수익구조와 스크린 독과점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데서 야기됐다고 믿는다. 주지하다시피, 부가 판권 시장은 사실상 고사 직전이다. 이제 와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외양간을 고치기에 너무 오래 전에 소를 잃어 버렸다. 해외 시장도 1~2년전까지 한류 현상에 힘입어 반짝했을 뿐 기대만큼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내수 시장, 그것도 극장 뿐이다. 좁은 방안에 쥐를 가둬 놓듯, 얼마 안 되는 스크린을 놓고 한 주에도 십 수 편의 영화들이 경쟁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독과점 상황이 벌어졌다. 스크린 싹쓸이를 통해서라도 단숨에 많은 관객을 동원하려는 대형 배급사들과 극장들의 이해 관계가 일치했고, 그러다 보니 흥행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 극소수의 ‘되는 영화’와 대부분의 ‘망하는 영화’로 양분된 것이다. 영화 시장 역시 2대 8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험악한 정글이 됐고, 2006년과 2007년을 거치며 그 정글 법칙은 더욱 고착화됐다.

양극화 환경은 개별 영화의 실패 확률을 그만큼 높이게 된다. 위험도가 올라가니 무리수를 둔 마케팅이 횡행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의 컨셉트와 필수적인 정보마저 가려 버리고, ‘일단 동원하고 보자’ 식의 막가파식 홍보는 ‘낚시 마케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설령 관객들의 배신감을 야기할지라도 치고 빠졌으면 그만이라는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관객들은 ‘낚였다’고 한탄하고, 인터넷 영화 평점은 마케팅 방법론에 대한 성토장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은 돈 아끼고 시간 아끼기 위해 왠만하면 불법 다운로드라는 안전 장치를 활용하자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통사 할인도 대폭 축소됐는데 일부러 극장까지 갈 수고를 감수할 만한 화끈한 영화가 별로 자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니 부가 판권 시장은 물론, 최후의 안전지대였던 극장마저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들은 물론, 최근엔 극장들마저 가파른 수익률 저하로 울상을 짓고 있는 상황은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영화 시장의 악순환 시스템을 두고 본 대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양극화 환경, '죽이는 컨셉트' 발명에 사활을 걸고

이런 구조에서 기획 영화나 대중 상업영화들이 취할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어떻게 해서든 관객들의 호기심을 일거에 가로챌 ‘죽이는’ 컨셉트를 발명하는 일에 사활을 걸게 된다. 설득력 있는 스토리나 영화적 완성도는 차후의 문제가 된다. 2년 넘게 시나리오 개발하는 시간이면 차라리 팔릴만한 이야기를 싼 값에 수입하는 게 낫다는 계산에 따라 리메이크작들이 범람한다. 너도 나도 요즘 잘 나간다는 일본 원작들을 사들이기 바쁘다. 그나마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승부를 거는 영화들은 이르면 투자 단계에서, 늦으면 배급 단계에서 ‘흥행성 없음’이라는 주홍글씨를 받고 나자빠진다. 도대체 창의력을 발휘할 멍석이 깔리질 않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충무로에 ‘창의력을 좀 발휘해봐’라고 질타하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적 발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난 2006년 여름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한창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극장들이야 그렇다 쳐도 영화진흥위원회와 일부 제작자들, 배급사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시장 논리’를 근거로 독과점 규제론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스크린 쿼터 제도도 벌써 폐기 처분했어야 옳았지만, 신기하게도 거기서만큼은 ‘영화는 상품이기 전에 문화’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시장 논리’라는 게 코게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스스로도 그 논리적 모순을 모르지 않았던 영화 시장의 기득권자들은 스크린 독과점이 시장 논리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문제가 없지 않으므로 영화계 주체들의 ‘자율적 조절 기능’에 맡기는 게 좋다고 슬쩍 비껴 갔다. 이런 논리는 결국 이 문제를 좀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개선해보겠다는 강경론자들의 입을 막기 위함이었고, 결과적으로 자율 조절론은 힘을 얻었다.

연초 차승재 제작가 협회장은 제작자들 스스로 과도한 스크린을 잡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율 조절론의 실천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니 필연적으로 그 약속이 지켜질 리 없었다. 지난 여름 <디 워>가 6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싹쓸이 했고, <화려한 휴가> 역시 한 주 앞서 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독식했다. 한국영화의 부진 앞에 일단 스크린 독과점 논쟁을 접어둔 언론들은 한국영화의 부활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영화가 국가주의나 애국주의와 만나는 순간에는 그 어떤 문제 제기도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하는 사이, 스크린 독과점과 영화 시장의 자본 악순환 구조를 타개할 정책적,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영화평과 상품후기가 다르지 않은 시대,
영화가 다시 문화가 되기 위해선

이제, 시장 논리와 영화인들의 자율적 조정력이 야기한 2007년의 영화 시장을 돌아 보자. 제작자든 투자자든 참혹한 상처를 입으며 패퇴하고 있다. 허리 끈을 더 바짝 졸라 맬테니 제발 투자해달라는 제작자들의 읍소가 처연하게 들릴 정도다. 심지어 투자-제작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홀로 승승장구해오던 상영업마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고 관객들은 볼 영화가 없다고 지청구다.

폐허와도 같았던 2007년을 보내는 즈음에, 영화 시장의 주체들은 한가지 중요한 명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서비스 상품이기 전에 관객들의 정서를 파고 드는 예술이며 동시대의 시민들이 그 정서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한 매체이다. 그것이 연간 매출액 1조 원에도 못 미치는 이 작은 시장에 그 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쏟고 정부조차 따로 진흥 기관을 두는 이유이다. 그것이 노골적인 광고 목적에도 불구하고, 배우나 감독들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영화 홍보를 늘어놓더라도 눈감아주는 이유이다. 유리할 때만 그런 암묵적인 합의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정작 돈을 버는 순간에는 ‘영화는 상품이며 고로 시장 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모순이며, 고로 자가 당착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이제 관객들조차 더 이상 영화를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돈 냈으니 낸 돈만큼 보여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평점 권력을 동원해 처절한 복수와 응징을 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는 시대다. 영화평과 화장품 사용 후기가 다르지 않은 시대다. 영화를 복권시키는 길은, 영화가 영화로서 대접받는 ‘구조’를 세우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영화인들 스스로 영화의 정체를 다시 아로새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2월 6일자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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