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벗을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귀기 위한 전략

애경's 3M+1W 2007. 11. 1. 06:5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피쿠로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 중에서 우정을 쌓으라는 충고가 가장 위대하다. 친구 없이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나 다름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가 맺게 되는 인간관계의 지도는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점점 줄어간다’는 사실이죠.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지금 당장 절실하지 않아서, 행복의 감정을 대가 없이 제공하는 ‘친구’의 존재를 잊고 지내진 않았는지. 심정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순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충고해주는 친구는, 여느 카운셀러나 정신의보다 더욱 훌륭한 상담자의 역할을 무료로 제공한다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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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죠. 하지만 이미 꽂혀있는 코드라도 충분한 에너지가 공급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벗을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귀기 위한 5가지 전략


1 적극적으로 대화하기
노래방에서, 잘 한다 잘한다 하니까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는 사람도 얄밉지만, 다른 사람 노래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면서 노래책만 뒤적이는 사람도 문제가 있습니다. 친구 사이의 대화는 50 대 50, 쌍방향 소통이어야 한다는 얘기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또한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자세. 좋은 친구가 되는 기본 조건이랍니다. 오랫동안 친구관계를 유지했으면서도, 막상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인생을 함께 의지하고 우정을 나눌만한 친구 사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봐야죠. 말이 통한다는 것은 친구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2 항상 웃고, 즐겁게 살기
나의 일상이 즐거워야 합니다. 즐겁지 않은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될 자격도 없으며, 진짜 친구를 사귈만한 기회조차 얻기 어렵기 때문이죠. 행복한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접근하고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길 자청하지만, 우울한 사람에게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럴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삶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3 충고를 아끼지 말기
살아가는 일은 그렇게 순탄한 여정이 아닙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뒤따르기 마련이고, 때로 인생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180도 변화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할 때,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이 돼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이가 진정한 친구 아닐까요? 당장의 기분을 위해 늘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 친구. 그의 입에서 나온 우정의 맹세 같은 건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상대방의 기분을 의식하며 말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도 올곧은 충고를 듣고자 할 리 없으니까요. 서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며, 충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관계가 되어야 진짜 친구라는 얘기.
 

4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진정한 친구는 상대방의 배경이나 능력에 천착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친구로서 받아들이는 거죠.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추억을 함께 생산해내고, 제2의 가족으로서 장래를 함께 맞이할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우선하여 실천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의 연인과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친구의 연인은 나와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아닌, 함께 늙어갈 또 하나의 친구로서 인식해야 옳을 겁니다. 예전에는 결혼과 동시에 우정이 변질(?)되는 사례가 많았지만 그건 분명 불행한 ‘낭비’죠. 진정한 친구관계의 바람직한 청사진은 함께 이웃하며 늙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져 친구 관계가 단절되는 건 너무 슬프니까요.

5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 되기
좋은 친구가 되려면 쓸데없는 공치사부터 삼가야 합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건 더더욱 안 되죠. ‘우리 한번 봐야지?’라는 말만 꾸준히 늘어놓는 친구는, 앞으로도 말만 늘어놓을 확률이 거의 100%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다는 건 모두 거짓말이죠. 매일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부지런해진다면, 잠깐 시간을 내 함께 점심을 먹을 수도, 휴일 아침에 산에 오를 수도 있을 겁니다.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노력하면 친구는 따라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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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에서 점을 보다?

애경's 3M+1W 2007. 10. 31. 22:2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보여지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달라요. 게다가 내면조차 전혀 다른 두 성향으로 갈리죠. 본인 스스로도 깜짝 놀라는 모습이 있을 거예요. 그녀와 마주앉은 책상 위에는 지금, 내 생년월일을 토대로 뽑은 오행이 적힌 A4 용지와 내가 고른 오라소마 병 4(모두 그린과 블루 계열), 그리고 내가 뽑은 타로의 소울 카드 두 장(여사제와 황제)이 놓여 있다. 재미있고 즐겁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반면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것도 좋아하죠. 게다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남들 보기엔 팍팍 지를 것 같지만 의외로 본인은 망설이는 순간이 많아요. 최근 들어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테구요. 그렇다. 난 나이트에 가면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최선을 다해 놀고 최신의 트렌드에 민감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인적 드문 강원도 산골에 처박혀 텃밭 가꾸며 사는 소박한 전원의 삶을 꿈꾸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곳이 점집이었다면 분명 나는 용하다 용해!를 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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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 오라소마, 오행을 이용한 개개인의 본성파악!



하지만 이 곳은 점집이 아니다. 만난 지 2시간 여 만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고 줄줄 읊어대는 그녀 역시 점쟁이가 아니다. 이곳은 인천에 위치한 아이슈타인 한의원 내 명상&두뇌 치료 연구소. 그녀는 동국대학교에 출강하며 웰빙, 명삼심리치유, 요가 등 심신건강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는 젠 테라피스트. 인도에서의 요가 수행과 미얀마에서의 위빠사나 수행 등을 통해 본인 스스로가 한 사람의 자질을 갖춘 전문가다. 이 곳 명상&두뇌 치료 연구소의 취지는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그리고 마음의 병. 그러니 몸을 치료하기에 앞서 마음부터 다스리자는 것이다.
 
비만환자일 경우, 비만이 될 수 밖에 없는 신체 메커니즘의 원인이 분명 있겠죠. 하지만 계속 먹게 만들거나 식이조절에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환경적인 원인, 심리적인 요인도 분명 있어요. 그걸 먼저 치유하자는 취지죠. 그럴 듯 하다. 당장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아도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혹시 죽을 병 아닐까 걱정하며 병원을 찾아도 스트레스를 줄이고 운동을 하라는 뻔한 처방만 내려준다거나, 거금 들여 보약을 지어 먹어도 약효는 잠시일 뿐 이것이 약 기운인지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인지 미심쩍은 상황도 빈번하다. 한데 이곳에서는 스트레스 설문 검사, 사상의학을 기초로 한 체질 검사, 오라소마와 타로의 소울 카드 등을 이용한 본성 파악, 애니어그램을 통한 성격 유형 분석 등 흥미로운 접근 방식으로 일단 환자가 지닌 마음의 근심 나아가 그런 근심거리를 떠안을 수 밖에 없는 개개인의 성향을 먼저 분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고 흥미롭다.

 

그날 내가 고른 오라소마와 타로카드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다는 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맹 정진해야 할 분위기라는 예언을 내놓았다. 또한 연말까지 두 개의 선택을 놓고 지속적으로 고민을 하겠으나, 올해 안에는 어떤 결정이든 내리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려줬다. 당시의 나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이직 혹은 전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던 중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그 날의 예언대로 어떤 결정인가를 내린 상태다.) 치료를 받고 돌아가면서 다들 점 보고 가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시죠. 하지만 점을 보거나 신경정신과를 찾는 것과는 또 달라요. 가령 신경정신과의 경우,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고민을 환자 스스로 털어놓잖아요. 결국 해답을 쥐고 있는 것 본인인데 말이죠.

 

무속인을 찾아 의견을 수렴할 경우 유비무환. 준비해서 나쁠 게 없고 조심해서 손해 볼 일 없는 성격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신경정신과를 찾을 경우 약물의 힘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조금 신뢰감이 떨어지고, 후자의 경우 약물 의존도가 커지는 부작용이 염려된다. 하지만 이곳은 앞서 언급된 과정에서 도출된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한약, 영양제 및 식이요법을 통한 허벌치료, 요가나 보디스캔, 경락 물리치료, 아로마 부황 등의 보디 워크 치료, 명상치료인 마인드 힐링 등으로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고 울분화 화 등의 스트레스를 정화시키는 치료법을 제공한다.

 

어찌 보면 가장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만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학이나 역술도 기본적으로는 의학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기운이나 에너지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명상을 통해 뇌를 활성화하고 심신을 통합해 전반적인 건강을 추구하는 방식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병원들에선 널리 시행되고 있다. 최근 서울 차병원에서 국내 최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병원 내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병원 트렌드의 일환. 한의원 내에 젠 테라피스트가 있는 것처럼 차병원 역시 양방 병원임에도 클리닉 내에 한의사나 기공사 등이 상주하고 있는 것이다.

최첨단 의료 장비를 동원해도 결코 원인을 알아낼 수 없는 정체불명의 질환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의학만으로는 치유가 불가하다는 판단 아래, 양방과 한방 여기에 대체의학까지 합세한 협진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몸에 앞서 마음부터 치유하라는 것!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되는 요즘이라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취재를 빌미로 실로 오랜만에 나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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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길, 머나먼 여정이었으나 마음만은 진정 평화로웠다.


Tip.

*오라소마 : auro soma에서 오라는 을 소마는 을 의미. 1983년 영국의 비키 윌에 의해 창시됐으며, 색깔로 몸을 치료하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다.

*애니어그램 : 일반적으로 성격유형 검사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선천적 유형은 아홉 가지. 이는 다시 심장형, 머리형, 장형으로 크게 셋으로 분류된다. 심장형은 근원적으로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고 감정(관계) 중심의 행동 방식을 보이며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 머리형은 안전을 추구하는 욕망이 강하고 사고(정보) 중심의 행동방식을 보인다. 장형은 지배욕이 강하고 본능(행동) 중심적이며 관심사는 일이다. 최근 들어 병원은 물론 각종 워크숍, 사내 교육 등에서 많이 실시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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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아이슈타인 한의원
032-4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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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에게 감사하는 딱 한가지

별별 이야기 2007. 10. 30. 00:42 Posted by cinemAgora
80년 이른바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중항쟁이 무자비하게 진압당한 뒤 신군부가 이반된 민심을 잡기 위해 시행한 두가지 대표적인 정책이 있었다. 하나는 여의도 광장을 그로테스크한 기운으로 채운 '국풍81'이라는 괴상한 관변 축제였고, 또 하나는 교복과 두발 자율화, 그리고 과외 금지 조치로 대표되는 교육 정책의 변화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권의 교육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나다. 만약 지금과 같은 교육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대학 문턱에도 다가설 수 없었을 것이다. 과외 금지 조치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거짓말이 그때만큼은 참말이었다. 시골에는 이런 플랜카드가 곧잘 걸렸다. '경축! 박씨네 막내, 서울대 합격!' 내가 들어간 대학 입학식에도 시골에서 올라온 대절 전세버스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사돈에 팔촌까지 농사 짓는 박씨네 막내의 대학 입성을 친히 구경하러들 오셨다. 그건 장관이었고 훈훈한 풍경이었으며, 지긋지긋한 가난을 딛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거머쥔  돌쇠들의 축제였다.  

또 한번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권은 바로 그 교육 정책의 수혜자들에 의해 정권 말기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87년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체제의 모순을 이미 피부로 알고 있는 노동자 농민 계급의 출신이었던 것이다. 과외 없이 교과서만 열심히 판 돌쇠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와 불합리한 세상에 제일 먼저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지금,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날 일은 없다. 배운 부모들은 스스로 입시 전문가가 돼 신분 상승이 아닌, 신분 유지를 위해 머리를 굴리고, 그 우산 속에서 사육되는 아이들은 교과서만 파는 게 순진하고도 멍청한 짓이라는 진리를 주입 받는다. 반대로 침 찍찍 뱉는 아이들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들이 루저가 됐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안개 같은 세상을 어떻게 파고 들까 고민한다. 세번째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아이들이 교과서를 불신하는, 말끝마다 '졸라'와 '씨바'를 달고 다니는 마마보이, 마마걸들보다 한국어 발음이 경향적으로 더 명확하다. 이미 기회가 원천 봉쇄된 세상을 혼자 힘으로 뚫고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 보수 언론과 가진 자들이 고대하고, 세상이 무기력하게 예상하는대로 대선 이후 정권이 바뀌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재미 없고 끔찍한 세상이 고착화될 것이다. 강남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못받아 안달이 난 이른바 명문 대학들은 아빠 엄마가 선호하는 정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불구 지성의 썩은 상아탑이 될 게 틀림 없다.
 
어쩌면 지금 가장 확실해 보이는 다음 정권의 뿌리가 20여 년전 그처럼 혁명적인 교육 정책을 펼쳤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뿐이다. 행운아였던 나는, 과외를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갔다. 전두환 씨에게 딱 하나 감사한 것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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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든 스릴러의 전율 <세븐 데이즈>

영화 이야기 2007. 10. 29. 17:15 Posted by cinemAgora
충무로에도 소문이라는 게 돈다. 촬영 과정에서 감독이 스탭들에게 린치를 당했다더라, 모 감독과 여배우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내가 연예 기자도 아닌 이상, 귀담아 들어봤자 큰 쓸모 없는 소문이고, 또 땐 굴뚝에서 연기 안날 경우도 적지 않아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소문들이다. 그러나 거의 들어 맞는 소문들도 있다. 어떤 영화 지금 편집 중인데 촬영 본이 워낙 엉망이라 감독이 편집실에서 쫓겨났다더라, 이런 소문 나는 영화, 십중 팔구 개판 오분전인 퀄리티일 경우 많다. 그 영화 끝내준다더라, 라는 소문도 비교적 신빙성이 있다. 이런 소문 난 영화 치곤 별로였던 경험이 별로 없다.

오늘 언론 시사회를 통해 본 <세븐 데이즈>도 소문이 썩 괜찮았다. 모처럼 괜찮은 장르 영화 한 편이 나올거라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 영화에서 형사로 등장하는 배우 박희순은 무대 인사에서 "구차한 포장은 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보십시오."라고 했고, 원신연 감독은 시사에 온 극장주들을 의식해 "스크린 독과점 안될 정도로만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디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는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과연 자신감 가질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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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긴 설명 하지 않겠다(영화 줄거리는 다른데서 보시라). 스릴러 영화를 소개하면서 긴 설명하는 것은 잘난 척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못된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냥 몇마디 보태면 이렇다.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며 경악했거나,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을 보면서 우리도 저런 '죽이는' 이야기 하나 못만드나 싶었던 분, <24>나 <프리즌 브레이크> <C.S.I> 등 미드 스릴러의 치밀함과 정교함에 푹 빠져 보신 분, <세븐 데이즈>를 보시라. 후회 없을 것이다(무슨 약장사 멘트 같긴 하지만, 영화사에서 시사회 표 말고는 받은 것 없으니 안심들 하시라).

지난해 기가 막힌 폭력 영화 <구타 유발자들>로 세간의 좁은, 그러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원신연 감독은 어떻게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를 요리해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정신 없이 빠르게 장면을 편집하고, 또 정신 없이 요란하게 카메라를 흔들어 대면서도, 중심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관객을 이야기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가는 솜씨는 그가 이미 장르에 통달해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높은 완성도는, 입에 침이 마를 칭찬이 아깝지 않다. 모처럼 잘 만든 스릴러의 전율을 만나니 반갑고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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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데이즈>는 배우 박희순의 매력을 재발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남극일기>나 <귀여워> 등으로 잠재력을 드러냈지만, 막무가내형 비리 경찰이지만 정도 많고 의협심까지 갖춘, 다소 전형적일 뻔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온전히 그의 연기자적 내공이다. 더불어 건달 보스로 등장한 우리의 오광록도 진가를 발휘한다. 그의 입에서 나와야 제대로인 명대사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 "신문지가 날 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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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저주 받을 영화인가

영화 이야기 2007. 10. 29. 09:50 Posted by cinemAgora
이명세 감독의 <M>이 예상대로(!) 개봉하자마자 평점 권력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바야흐로 저주의 공세가 시작됐다. 영화가 대중 관객의 선행한 기대를 배신할 때 그 미학적 도전과 성취에 아랑곳 없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성급한 예단일지 모르지만, <M> 역시 그런 문화 현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M>을 보고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이명세와 영화에 대해 상찬을 늘어 놓은 바 있는 나는, '미스터 M'을 노골적으로 변호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래는 대화체로 구성한 M을 위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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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뭐가 이럴 줄 알았다는거죠?

이명세 감독의 <M> 말입니다. 개봉하자마자 평단에선 극찬, 관객들로부터는 혹평을 듣고 있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겁니다.

영화가 너무 아방가르드 하면 그런 현상이 벌어지죠. 영화 <M>도 대중 영화치고는 많이 아방가르드하지 않나요?

아방가르드? 방가 방가라는 뜻인가요? 어쨌든 <M>, 도대체 그렇게 저주 받을 영화인가. 함께 곱씹어 보도록 하죠.



영화 <M>, 시작부터 혼란스럽습니다.
정신없이 빠른 편집, 음산하고 기괴한 공간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죠.

쉬운 말로 합시다!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라는 말씀이죠?

아방가르드 어쩌구 하실때는 언제고!
좋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직설적이라 함은 에두르지 않고 똑바로 정직하게 간다는 얘깁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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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실 분들 보고 안보실 분들 여기저기 영화 프로그램에서
외우다시피 틀어댔을테니 줄거리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젊은 소설 작가 한민우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죠.
그리고 그 꿈의 주인공은 한민우의 잊혀진 첫사랑, 바로 미미라는 여성입니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군요.

단순하다 못해 쉽죠. 아주 쉬운 이야깁니다.
그런데 이걸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게 이명세 감독의 병이죠.

<형사: 듀얼리스트> 보니까 병도 아주 중병이던데요.

네, 그게 바로 예술가 병이라는 겁니다.
영화란 게 도대체 뭐냐, 영화가 시나 소설과 다른 게 뭐냐,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근본주의자군요.

그렇죠. 말하자면 영화 예술의 근본주의자인 것이죠.

그렇다면 그 탈레반적인 영화감독께선 영화란 게 뭐라고 생각하신답니까?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다!
한마디로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감독과 관객의 무의식이 교감하는 예술이란 것이죠.

흠..자못 철학적이군요. 어려운데요.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M>의 영상들이 다 말해주고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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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틸 사진을 이어 붙인듯한 편집에, 때론 영상과 대사가 따로 놀죠.
이야기체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정서를 전달하고 있는 거죠.

어떤 정서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정서죠. 그러니까 한민우의 꿈에 관객들이 동참하고 있는 듯한 느낌.
왜 꿈을 꾸면 모든 게 논리에 맞게 딱딱 아귀가 맞던가요?

그렇지 않죠.

네, 그렇지 않죠. 그러니까 감독 이명세는 영화 자체를 한 편의 꿈처럼 설계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잘 안가죠. 이 영화 역시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 놓고 시간이나 공간을 명확한 구분 없이 마구 뒤섞어 놓고 있는 것이죠. 관객들조차 진짜 한민우가 꾸는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영화가 살짝 졸렸나?

그럴지도 모르죠. 자각몽이라는 말도 있죠.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꿈꾸고 있는 상황,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어쩌면 그런 자각몽과도 같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저기 미국에도 한분 계시죠.
바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인데요.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가 대표적이죠.

지금은 아주 잘나가고 있는 나오미 와츠를 발견해 낸 영화로도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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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에 온 두 여배우들을 주인공을 내세운 상태에서 꿈과 현실,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오락가락 하면서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죠.

아주 천재적인 관객이 아닌 이상,
영화를 다 본 뒤 마치 자신의 꿈을 해몽하듯,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사실 그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죠.

흠. 저는 이 영화 보고 나와서 별로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본인이 천재라는 얘기를 하고 싶으신거죠?

[뜨끔!]

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라는 영화는 또 어떻습니까.

어우 진짜 머리 아픈 영화였죠. 그래도 흥미진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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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는 것으로 설정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이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과 정반대로 사건이 분절적으로 배열되면서 마치 관객이 주인공처럼 단기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똑같은 감독이 만든 <인썸니아>는 반대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형사의 이야기죠.
사건은 해결이 안됐고, 그 놈의 백야 때문에 잠은 안오고 아주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죠.
신기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자신이 똑같이 불면증에 걸린 듯
졸리면서도 잠이 안듭니다.

같이 미치고 팔짝 뛰는거죠.

그렇습니다. 이렇듯, 꿈과 기억의 문제를 파고드는 영화들은 하나 같이
관객들이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체험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M>으로 돌아올까요?
그러니까 한민우의 꿈과 기억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 <M> 역시
종잡을 수 없는 꿈의 나라처럼 그려질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낯설고 생소한 이 영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죠.

그 가능성에는 이 영화가 숱한 이야기 서술체 영화들이 자주 써먹는
이른바 고전적인 플롯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사건의 필연성, 외부와의 갈등...이런 요소들 대신
시공간이 초현실적이고, 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나고, 갈등은 주인공의 내면에만 존재하죠.
전통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들은 그 예술적이고 과감한 시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죠.

하지만 흥행은 보장이 안된다는 거~!


맞습니다. 그래도 전 관객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대가의 추상화를 처음 볼때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자꾸 보다 보면 그 안에서 어떤 감동을 얻게 됩니다.

내가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영화가 조금 낯설다고 해서,
영화가 영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건 그야말로 아니올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땐, 그냥 이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었어, 라고 말씀하시는 게 더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게 포털 사이트 영화 평점에다 1점의 저주를 쏟아 붓고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보다 문화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명세 감독, 이번에도 관객들의 냉소에 너무 급좌절 마시고,
그 영화 철학 쭉 뚝심있게 밀어 붙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미국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기는 그의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원제 STORY, 황금가지)에서 영화가 구사하는 이야기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고전적 설계라 할 수 있는 아크플롯, 미니멀리즘적 특징을 보여주는 미니플롯, 그리고 반구조적 경향의 안티플롯이 그것이다.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채택했던 방식,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영화들이 채택한 방식은 아크플롯인데, 인과성, 닫힌 종말, 연속적인 시간, 외적 갈등, 활동적인 단일 주인공, 일관된 사실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반해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은 열린 종말, 내적 갈등, 수동적인 주인공, 우연성, 비연속적 시간 등이 특징이다.

이 분류에 의하면 이명세 감독의 <M>은 아크플롯보다는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 쪽에 더 가까이 서 있거나, 혹은 세가지 요소를 모두 뒤섞어 놓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맥기는 영화가 취하는 이야기 형태와 관객층과의 함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함으로써 영화 <M>을 둘러싼 논란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티플롯의 비연속적인 사실성과 미니플롯의 내면화된 수동성, 그리고 논플롯의 변화없는 순환성 등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은유로서 인정하지 못한다. 이야기가 삼각형의 바닥으로 가까워질수록(그러니까 아크플롯보다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쪽으로 다가설수록) 관객층은 자신들의 삶의 사실성을 가끔씩 한번 비틀어보고 싶어하는 소수의 영화애호가 지식인들로 좁아진다. 이들은 분명히 열성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 없으나 아주 적은 수의 관객층이다."

어쩌면 영화 <M>의 비극은, 이 운명을 가리기 위해 고전적 설계의 영화인 것처럼 꾸며야 했던 데서 출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핀트가 잘못된 기대감을 형성하고, 지도가 틀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관객들이 지도를 탓하지 않고, 잘못 찾은 집 주인을 호통치고 있는 셈이다. "지도에는 아크플롯이 살고 있어야 하는데, 당신 왜 여기 살고 있는거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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