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저주 받을 영화인가

영화 이야기 2007. 10. 29. 09:50 Posted by cinemAgora
이명세 감독의 <M>이 예상대로(!) 개봉하자마자 평점 권력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바야흐로 저주의 공세가 시작됐다. 영화가 대중 관객의 선행한 기대를 배신할 때 그 미학적 도전과 성취에 아랑곳 없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성급한 예단일지 모르지만, <M> 역시 그런 문화 현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M>을 보고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이명세와 영화에 대해 상찬을 늘어 놓은 바 있는 나는, '미스터 M'을 노골적으로 변호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래는 대화체로 구성한 M을 위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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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뭐가 이럴 줄 알았다는거죠?

이명세 감독의 <M> 말입니다. 개봉하자마자 평단에선 극찬, 관객들로부터는 혹평을 듣고 있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겁니다.

영화가 너무 아방가르드 하면 그런 현상이 벌어지죠. 영화 <M>도 대중 영화치고는 많이 아방가르드하지 않나요?

아방가르드? 방가 방가라는 뜻인가요? 어쨌든 <M>, 도대체 그렇게 저주 받을 영화인가. 함께 곱씹어 보도록 하죠.



영화 <M>, 시작부터 혼란스럽습니다.
정신없이 빠른 편집, 음산하고 기괴한 공간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죠.

쉬운 말로 합시다!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라는 말씀이죠?

아방가르드 어쩌구 하실때는 언제고!
좋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직설적이라 함은 에두르지 않고 똑바로 정직하게 간다는 얘깁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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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실 분들 보고 안보실 분들 여기저기 영화 프로그램에서
외우다시피 틀어댔을테니 줄거리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젊은 소설 작가 한민우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죠.
그리고 그 꿈의 주인공은 한민우의 잊혀진 첫사랑, 바로 미미라는 여성입니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군요.

단순하다 못해 쉽죠. 아주 쉬운 이야깁니다.
그런데 이걸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게 이명세 감독의 병이죠.

<형사: 듀얼리스트> 보니까 병도 아주 중병이던데요.

네, 그게 바로 예술가 병이라는 겁니다.
영화란 게 도대체 뭐냐, 영화가 시나 소설과 다른 게 뭐냐,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근본주의자군요.

그렇죠. 말하자면 영화 예술의 근본주의자인 것이죠.

그렇다면 그 탈레반적인 영화감독께선 영화란 게 뭐라고 생각하신답니까?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다!
한마디로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감독과 관객의 무의식이 교감하는 예술이란 것이죠.

흠..자못 철학적이군요. 어려운데요.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M>의 영상들이 다 말해주고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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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틸 사진을 이어 붙인듯한 편집에, 때론 영상과 대사가 따로 놀죠.
이야기체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정서를 전달하고 있는 거죠.

어떤 정서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정서죠. 그러니까 한민우의 꿈에 관객들이 동참하고 있는 듯한 느낌.
왜 꿈을 꾸면 모든 게 논리에 맞게 딱딱 아귀가 맞던가요?

그렇지 않죠.

네, 그렇지 않죠. 그러니까 감독 이명세는 영화 자체를 한 편의 꿈처럼 설계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잘 안가죠. 이 영화 역시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 놓고 시간이나 공간을 명확한 구분 없이 마구 뒤섞어 놓고 있는 것이죠. 관객들조차 진짜 한민우가 꾸는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영화가 살짝 졸렸나?

그럴지도 모르죠. 자각몽이라는 말도 있죠.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꿈꾸고 있는 상황,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어쩌면 그런 자각몽과도 같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저기 미국에도 한분 계시죠.
바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인데요.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가 대표적이죠.

지금은 아주 잘나가고 있는 나오미 와츠를 발견해 낸 영화로도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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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에 온 두 여배우들을 주인공을 내세운 상태에서 꿈과 현실,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오락가락 하면서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죠.

아주 천재적인 관객이 아닌 이상,
영화를 다 본 뒤 마치 자신의 꿈을 해몽하듯,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사실 그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죠.

흠. 저는 이 영화 보고 나와서 별로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본인이 천재라는 얘기를 하고 싶으신거죠?

[뜨끔!]

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라는 영화는 또 어떻습니까.

어우 진짜 머리 아픈 영화였죠. 그래도 흥미진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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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는 것으로 설정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이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과 정반대로 사건이 분절적으로 배열되면서 마치 관객이 주인공처럼 단기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똑같은 감독이 만든 <인썸니아>는 반대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형사의 이야기죠.
사건은 해결이 안됐고, 그 놈의 백야 때문에 잠은 안오고 아주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죠.
신기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자신이 똑같이 불면증에 걸린 듯
졸리면서도 잠이 안듭니다.

같이 미치고 팔짝 뛰는거죠.

그렇습니다. 이렇듯, 꿈과 기억의 문제를 파고드는 영화들은 하나 같이
관객들이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체험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M>으로 돌아올까요?
그러니까 한민우의 꿈과 기억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 <M> 역시
종잡을 수 없는 꿈의 나라처럼 그려질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낯설고 생소한 이 영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죠.

그 가능성에는 이 영화가 숱한 이야기 서술체 영화들이 자주 써먹는
이른바 고전적인 플롯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사건의 필연성, 외부와의 갈등...이런 요소들 대신
시공간이 초현실적이고, 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나고, 갈등은 주인공의 내면에만 존재하죠.
전통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들은 그 예술적이고 과감한 시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죠.

하지만 흥행은 보장이 안된다는 거~!


맞습니다. 그래도 전 관객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대가의 추상화를 처음 볼때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자꾸 보다 보면 그 안에서 어떤 감동을 얻게 됩니다.

내가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영화가 조금 낯설다고 해서,
영화가 영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건 그야말로 아니올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땐, 그냥 이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었어, 라고 말씀하시는 게 더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게 포털 사이트 영화 평점에다 1점의 저주를 쏟아 붓고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보다 문화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명세 감독, 이번에도 관객들의 냉소에 너무 급좌절 마시고,
그 영화 철학 쭉 뚝심있게 밀어 붙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미국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기는 그의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원제 STORY, 황금가지)에서 영화가 구사하는 이야기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고전적 설계라 할 수 있는 아크플롯, 미니멀리즘적 특징을 보여주는 미니플롯, 그리고 반구조적 경향의 안티플롯이 그것이다.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채택했던 방식,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영화들이 채택한 방식은 아크플롯인데, 인과성, 닫힌 종말, 연속적인 시간, 외적 갈등, 활동적인 단일 주인공, 일관된 사실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반해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은 열린 종말, 내적 갈등, 수동적인 주인공, 우연성, 비연속적 시간 등이 특징이다.

이 분류에 의하면 이명세 감독의 <M>은 아크플롯보다는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 쪽에 더 가까이 서 있거나, 혹은 세가지 요소를 모두 뒤섞어 놓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맥기는 영화가 취하는 이야기 형태와 관객층과의 함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함으로써 영화 <M>을 둘러싼 논란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티플롯의 비연속적인 사실성과 미니플롯의 내면화된 수동성, 그리고 논플롯의 변화없는 순환성 등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은유로서 인정하지 못한다. 이야기가 삼각형의 바닥으로 가까워질수록(그러니까 아크플롯보다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쪽으로 다가설수록) 관객층은 자신들의 삶의 사실성을 가끔씩 한번 비틀어보고 싶어하는 소수의 영화애호가 지식인들로 좁아진다. 이들은 분명히 열성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 없으나 아주 적은 수의 관객층이다."

어쩌면 영화 <M>의 비극은, 이 운명을 가리기 위해 고전적 설계의 영화인 것처럼 꾸며야 했던 데서 출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핀트가 잘못된 기대감을 형성하고, 지도가 틀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관객들이 지도를 탓하지 않고, 잘못 찾은 집 주인을 호통치고 있는 셈이다. "지도에는 아크플롯이 살고 있어야 하는데, 당신 왜 여기 살고 있는거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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