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전화통에 또 불이 붙었습니다. <DAZED KOREA: 데이즈드 코리아> 5월 런칭을 위해 정신 없을 저를 배려하던 ‘하자 많은’ 싱글 친구들이 긴 연휴를 빌미로 ‘통화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는지 안부를 겸한 전화를 걸어오더군요. 반가운 소식도 들었고, 이마에 내 천자 새겨지는 사연도 전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올리는 글에 적합한 주제일지는 모르겠으나, 하도 속이 터져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요는 이겁니다. 남자가 떠나간다! 왜? 이유는 명확합니다. 김동률도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라고. 다른 여자와 눈이 맞은 악랄한 상황이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니 미리 취하는 선량한 조처이건 간에, 정말로 사랑한다면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제 조언은 한결 같습니다. ‘잡지 마라. 잡는다고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잡을수록 더욱 달아나려고 안달할 것이다.’ 그런 남자들의 머리 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이 찰거머리 같은 여자를 떼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일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문제는 ‘보내고 싶은데 보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바보 같은 줄 뻔히 알면서도, 정작 상처받는 건 본인이라는 걸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 주제에 관한 카운셀링은, 해봐야 시간낭비요, 말하는 제 입만 아픕니다. 왜냐. 상대 남자가 유부남이기 때문입니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다는 건, 발목에 철근을 묶고 늪에 뛰어드는 행동과 다름없습니다. 처음엔 그저 ‘외로워서’ 시작했을 뿐인데, 점점 더 많이 집착하고 가슴 아파하고 안달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여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행동에 옮기지도 않을 거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방법’에 관해 물어옵니다. 명절 내내 지겹도록 짜집기 재방을 ‘스페셜’이란 타이틀로 틀어대는 공중파 tv 프로그램보다 더 진부한 주제입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나름 엘르 재직 시절 ‘연애&섹스’ 칼럼 담당으로 일하며 주워들은 노하우를 전수할 수 밖에요. 일단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본인이 ‘나쁜년’이면 상대남자는 ‘최악질 나쁜 놈’입니다. 여자는 한 남자만 사랑하는 거지만, 남자는 최소 두 여자 자식이 있을 경우 그 이상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나마 그것이 ‘사랑’이면 땡큐감사겠으나 대부분은 ‘유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법’의 1단계는 바로 정을 떼는 겁니다. 전 그 남자에게 당당히 “부인하고 당장 이혼하고 나와 결혼해. 사랑한다면 그렇게 해”라고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래…”라는 반응, 그렇게 바보 같이 배려하니 열이면 열 당하는 겁니다. 사랑? 개뿔. 설령 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더라도, 일단 이혼을 요구해야 합니다. 열이면 아홉은 ‘내가 집안의 장남이라…’ ‘난 이혼하면 다시 결혼은 안 할거야…’ 식의, 너무 구차해서 귀에서 구더기라도 나올 만한 핑계만 늘어놓을 겁니다.
그렇게 그 남자의 본심을 확인했다고 ‘절대 안 만나’라고 선언해선 안됩니다. 금지될수록 더욱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대신 평일 퇴근 이후 정기적인 취미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충고했습니다. “기왕이면 벨리 댄스나 필라테스 등 몸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열정적인 것들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절대 빠지지 마. 혹시 그 남자를 만나려거든 꼭 수업을 듣고 만나. 그렇게 되면 그 남자가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봐야 해서’ 오랜 시간 함께 있을 수 없을 거고, 두 사람만의 은밀한 공간으로 가는 일도 줄어들 테고, 그런 접촉이 뜸해지면 남자는 분명히 네게 이전보다 소홀해질거야.” 여자 입장에서야 오직 남자에게만 집중돼 있던 에너지가 취미생활로 분산되니, 남자만 생각하며 눈물 짓던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정도 단련이 되면 주말엔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겁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취미를 갖는 것, 그리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는 것이 급선무. ‘어서 빨리 저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해야해’라고 조급해 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여자가 병신 같고 걸레 같고 어쩌고 해서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거지 아햏햏’ 식의 악플들이 예상됩니다. 지금 셋째 아이를 임신한 채 남편과 너무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제 절친한 친구 K도 한때 유부남을 사랑했었습니다. 한데 제 친구가 처음 만난 그 남자는 유부남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총각 행세를 했고, 꽃바구니를 들고 회사까지 찾아오며 남자친구 행세를 했었더랬죠. 그렇게 연애한 지 1년여, 남자가 잠수를 탔고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갈 무렵 나타나서는 “예전에 실수로 잔 여자가 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 집안끼리 아는 사이라 결혼을 해야한다”라며 심각한 척 변명을 해댔다고 해요. 그 아이의 나이가 다섯살이었습니다. 아무리 ‘명백한 거짓’이라 말해줘도, 사랑했던 남자의 말이라면 다 믿고 싶은 제 친구는 끝까지 그의 말을 믿어줬습니다. 결국 단숨에 정을 떼기 힘들었던 제 친구는, 그 후로도 얼마간 그 남자를 만나다가, 결국 상대 마나님에게 테러를 당하는 가혹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답니다. ‘너무 사랑해서’ 븅신 같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걸레’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의 걸레는, 자신이 유부남인 걸 속이고 상습적으로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닌 상대 남자가 ‘걸레’였죠. 더욱 코믹한 상황은, 그런 상황에서도 상대 마나님은 ‘자기 가정은 절대로 깨뜨리지 않고 싶어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 말 있죠. 남편과 다른 여자가 침대 위에 있는 걸 목격해도 ‘아내’들은 ‘난 이 여자와 아무 일도 없었어’라는 남편의 말을 믿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저 또한 현재 '아내'의 신분이지만, 이런 아내들의 심리는 정말 이해하기가 힙듭니다.
세상이 점점 골 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혼자 소리내는 손바닥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카운셀링의 끝맺음은 “정신차려 미친뇬아”이지만, 그래도 ‘헤어나오고 싶어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그 상황에 괜히 마음이 짠해집니다. 부디 새해에는, 이런 바보 같은 사랑을 하는 여자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안 볼 것이 분명한 A야, 혹시 봤다면… 자승자박이여~ 그래도, 너 자신부터 사랑해. 넌 네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우리 친구들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마. 알았지?
영화계 안팎의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제법 어리둥절할 수도 있는 뉴스가 최근 잇따라 전해졌다.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가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안정숙, 이하 '영진위')의 책임자들과 이른바 영화계 주류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주장을 좀 들여다 보자. 일단 영진위가 3천억 원에 달하는 공적기금을 전횡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영진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 전횡의 불법성을 입증할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으니 어쨌든 이 주장의 심리적 기제만을 유추해 보면 한마디로 영진위가 '지들 구미'에 맞는 단체한테만 돈을 줬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은 명계남과 문성근 두 영화인을 '콕' 찝어 영화계를 떠나라고 촉구했다. 이유는 이렇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정치권력과 결탁한 몇몇 영화인들은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영화인을 타도 대상으로 몰았다"는 것. 간단하게 해석하면, 대표적인 '노빠' 영화인 두 사람이 원로들을 홀대하는 데 앞장섰다는 얘기 되겠다. 지난 10년의 문화 예술이 이념 선동의 수단?
한국영화감독협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10년의 문화 예술은 이념 선동의 수단으로 동원됐다"고 주장하는 한편, "파행과 갈등에서 벗어나 새 정부의 문화정책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며 문화예술인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새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를 기대한다"며 새 정부의 문화부 장관 인선에 대해서도 훈수를 잊지 않았다.이념 얘기가 나오니 보수 언론은 '얼씨구'로 화답했다. 2월 1일자 중앙일보는 '좌파 주도 문화예술계 다양성 되찾아야'라는 제하의 칼럼을 싣고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감독협회의 주장을 조금 거칠게 요약한다면, 지난 '10년간 해 먹은 놈들 다 쫓아내라'는 말이다. 그들 눈에 그 '해먹은 놈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나름대로 친밀한 관계를 가져온 영화인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 안정숙 위원장(전 씨네21 편집장)과 이현승 부위원장 등 정책과 돈(수 천 억원의 영화발전기금)을 주무르는 핵심 인물들을 일컫는다.
여기서 잠깐, 주장의 근거를 따져보기에 앞서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필요할 것 같다. 한국에는 감독들이 참여하는 두 개 단체가 공존한다. 앞선 주장을 펼친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와는 별도로 이현승, 박찬욱, 김지운, 정윤철 등 비교적 젊은 감독들이 포진한 한국영화감독네트워크라는 단체가 따로 있다.
두 단체간의 차이점? 표면적으로는 평균 연령이며 내용적으로는 활동상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1월 25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자. 정인엽 이사장, 정진우 고문, 강대선 고문, 김호선 상임고문, 남기남 감독 등 대부분 원로 감독들이다. 동석한 정초신 감독이나 남기남 감독을 빼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내놓은 작품이 사실상 전무(全無)한 이들이다.
이사장인 정인엽 감독은 80년대 <애마부인>과 <파리애마> 등을 연출한 바 있으나 92년 <성애의 침묵> 이후 연출 일선에서 '침묵'을 지켜왔으며, 고문을 맡은 정진우 감독 역시 95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10년이 넘게 연출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양반은 지난 2000년 자신의 연출작 <판도라>가 영진위의 극영화제작지원 심사에서 탈락하자,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며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당시 영진위를 둘러싼 신구대립의 불씨가 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권 교체기 틈탄 영화계 구파의 반격
몇몇 인물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이들이 왜 지금의 영진위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신구 영화인들의 해묵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기존의 영화진흥공사를 대체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되자 김지미 전 영화인협회 이사장 등을 앞세운 영화계 구파는 문성근, 정지영으로 대표되는 영화계 신파와 영화진흥위원회 장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진흥위원회는 정부가 지원할 수천 억 원의 영화진흥금고를 책임지게 될 기관이었으니 어떤 세력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돈의 향방도 엇갈릴 터였다.
당시 정부는 (현재 차기 문화부 장관으로 하마평이 나돌고 있는) 유인촌 씨의 형이자 연극계 중견인 유길촌 씨를 위원장 자리에 앉혀 신구 세력의 화합을 유도했으나 앞서 언급한 극영화제작지원사업 등의 문제에 봉착하며 갈등 양상이 불거지면서 뜻대로 되지 못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신구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페스티벌을 공동 주최하는 등 나름대로 갈등 해소를 위한 제스처를 펼쳤으나 역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영화계 신파들은 이후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더욱 공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 한편, 구파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대부분 70-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했던 구파 영화인들이 자연적인 노화에 따라 창작 활동을 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커진데다, 대기업 위주로 재편된 영화 산업의 환경 변화에 젊은 영화인들만큼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상황도 이들의 입지를 좁히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여전히 '싹수머리 없는 후배들이 정권과 결탁해 선배들을 몰아 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구파 영화인들이 독재 정권 하에서 검열 등의 혹독한 영화 정책에 시달리면서도 창작 활동을 보장 받은 반면, 이들을 체제 순응적인데다 구시대적 비리의 온상으로 비판한 신파가 영화계 주류로 떠오른 이래 사실상 실업자 상태로 전락하게 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성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은 지금의 주류 영화인들을 '좌파'로 규정하며 이념적 공세의 대상으로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충무로의 이른바 주류 세력들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 놓고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좌우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비난을 들어야 했던 노무현 정권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 왔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한 평가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이라 부르는 것이 '좌파'의 본질을 모르는 매우 유치한 정치적 수사이듯, 지금의 주류 영화인들을 좌파로 모는 것 역시 지나친 단순화인데다 편의적인 적대시라는 얘기다.
"영화계 주류는 좌파" 정말?
지난 10년간 영화진흥위원회는 공공재로서의 영화 다양성을 능동적으로 확보하는 것보다는, 할리우드에 대적할 한국영화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 왔다. 최소의 규제와 최대의 지원을 병행하는, 전형적인 정부 주도의 시장 팽창 정책을 선보여 왔다는 얘기다. 때문에 지난 두 정권의 영화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의 결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대단히 '우파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스크린 독과점 등 시장 팽창에 따른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신 시장 자율 조절론을 펼치며 대자본의 손을 들어줬으니 대관절 무슨 근거로 이들을 좌파적 성향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혹여 이들 가운데 학생운동권 출신이 많았으며 현직 영진위원장과 영상자료원장이 나란히 한겨레 신문 출신이라는 게 그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차라리 386 세대는 죄다 좌파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2MB께서도 4.19 당시 학생운동권 출신이니 그분도 좌파인가?). 불행히도 지난 10년간 정권 언저리에 진출해 한자리씩 차지한 386들은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으로서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게다가 그 사이 양산된 부동산 졸부들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은인이었다(물론 그 졸부들은 단박에 은인을 좌파로 매도하고 집값 지켜줄 2MB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지만). 우파도 이런 우파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보수 언론의 시각을 내면화한 영화계 구파들이 덩달아 이들을 좌파라고 몰아 붙이는 것은, 정권 교체기를 맞아 좋았던 시절을 되돌릴 호기가 왔다는 흥분이 지나친 나머지 한참 오버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아직도 세상이 6.25 때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 분들의 시대착오적 행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민군 물러간 동네에 부역자 색출하기 위해 날뛰는 청년동맹이 연상된다면?
노무현 정권의 코드 인사에 대한 반발심이라면, 때가 너무 늦었다. 그때 강력 반발하지 않고 지금 나서는 것은 '차기 정권과 우리는 코드가 같으니 우리 중에, 혹은 우리를 긍휼히 여길 분께 한 자리 달라'고 읍소하고 있는, 또다른 해바라기처럼 보일 뿐이다. '88만 원 세대'를 쓴 우석훈 박사의 관점을 빌면, 세대간 경쟁에서 밀려난 구세대의 단말마처럼 들린다. 그러니 더 처연하다. 분명히, 지금의 위기 국면을 초래한 영화계 주류 세력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허나, 이런 방식은 아니다.
나는 롤러스케이트장 죽돌이였다. 동네 대형 마트 옥상에 롤러스케이트장이 들어온 게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후로 용돈만 생기면 쪼르르 그곳으로 달려갔고, 쿵짝 쿵짝 들려오는 리듬에 맞춰 옆으로 가기와 뒤로 가기를 맹렬히 연습했다.
친구들끼리는 그곳을 '롤라장'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어감조차 사랑했다. 디스코텍을 뜻하는 '닭장'이나 '고고장'보다 덜 퇴폐적이고 훨씬 더 경쾌한 느낌. 듣기만 해도 내 몸이 '룰루랄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의 롤러 스케이트는 지금의 롤러 브레이드와 달리 신발 앞 뒤로 바퀴가 2개씩 나란히 달려 있었다. 신발 앞코에 붙은 뭉툭한 고무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체중이 가벼운 초등학생이 롤러 스케이트를 타면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이 뛰어다니듯, 거의 신발에 끌려 다니는 것처럼 보일 지경으로 무게도 꽤 나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스케이팅에 통달하게 되면 그 중력의 압박을 회유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되는데, 나 역시 중학교 1학년 쯤에는 그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거창하게 말하면, 관건은 바퀴가 굴러가는 운동 역학에 내 몸을 맞추되, 바퀴의 물리적 속성을 본능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었다. 그 통제력에 따라 옆으로 가다가 뒤로 가기, 연속 동작을 통해 마치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듯한 동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때 한발은 열심히 좌우로 움직여 동력을 제공하고 다른 한발로는 방향을 잡는다. 사실 옆으로 가는 동작은 마치 게가 달려 가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속력을 내면 그 포즈도 꽤 멋져 보인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뒤로 달리기로 턴하는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도 중요하다. 한번 뒤로 돌면 시선을 후방 45도 각도로 고정한 채 특히 코너를 돌 때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롤러맨들과 충돌하는 불상사로 애써 고양시켜 놓은 스타일을 단번에 구기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여학생이나 초보자와 부딪히면 대망신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를 잡을 때! 가능한 최대 가속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한쪽 발의 앞코를 슬쩍 내려줌으로써 사사사악 미끄러지듯 제동을 거는 것인데, 요 지점에서의 내공이 진정한 '뽀다구'를 만들어준다. 롤러맨에게 '뽀다구'는 중요한 미덕이었다. 롤러장에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의상도 중요하긴 마찬가지. 지금의 스키니진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하체 곡선이 완연히 드러나는, 그러면서도 신축성이 뛰어난 '쫄쫄이' 스판 청바지, 여기에 깃을 살짝 세운 청재킷을 맞춰 입어줘야 롤러장 드레스코드가 완성된다. 물론 스판 청바지를 구입할 형편이 못된 내 경우, 누나로부터 물려 받은 검정색 쫄쫄이 골덴 바지로 만족해야 했지만.
조근식 감독의 <품행제로>(2002)는 80년대 롤러장 분위기를 제대로 묘사했다. '죽순이 파숑'을 생생히 재현한 공효진의 자태를 보라!
아무튼 내가 롤러장 죽돌이가 된 것은 인간의 몸에 부착된 바퀴가 속도와 동작 반경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게 해준다는 해방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롤러장은 그 자체로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오는 일종의 음악감상실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는데, 꽤 큰 롤러장엔 디제이 박스까지 설치돼 있을 정도였으니 청소년들의 문화함양과 체력단련에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이 없었던 셈이다. 물론 그 또래의 남녀가 함께 모이는 공간이 다 그렇듯, 그곳조차 '부킹'의 장으로 적극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의 넘쳐나는 리비도 때문에라도 진정한 '뽀다구의 지존'들이 펼치는 롤러와 댄스의 절묘한 결합이 때때로 롤러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것이다.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나 ABBA의 'Gimme Gimme Gimme'가 흘러나오면, 나는 신나게 코스를 돌았다. 그러나 혹독한 개인훈련을 통해 습득한 묘기(?)를 선보이기 위해선 다른 음악이 필요했으니, 그건 바로 Blondie의 'Call Me'였다. 디줴이의 탁월한 선곡에 의해 Call Me의 전주부가 흘러나오면 나는 기대고 서 있던 기둥을 힘차게 박차고 코스로 나오며 "칼러미야, 칼러베이베"를 외침으로써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어떤 '끼'를 끄집어내곤 했던 것이다. 여학생들의 므흣한 시선을 독점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칼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며, 여덟 개의 바퀴가 내 몸을 열락의 경지로 실어다주는 듯한 짜릿함을 만끽하며.
...하지만 그건 단지 자위적 '뽀다구'에 불과했다. 내가 롤러장에서 '꼬신'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