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 저널리즘의 베끼기 시합

별별 이야기 2008. 2. 18. 10:57 Posted by cinemAgora

영화기자로서, 가끔 인터넷 영화 기사를 뒤지다 보면 참담해질 때가 있다.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을 관념의 찌꺼기를 내뱉는 글도 그렇지만, 영화사들이 송신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기사를 발견했을 때 역시 그렇다. 한 두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런 기사를 거의 매일 접하다 보면 도대체 이들은 저널리즘이란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비평을 포함한 영화 저널리즘이 권위는 고사하고 신뢰조차 얻지 못하는 책임을, 이들 베끼기족들에게 다 떠넘기고 싶진 않다. 나조차 영화 저널리즘의 추락에 일말의 기여를 했다고 반성하고 있으니까. 허나, 이건 아니다. 이렇게 독자들을 속여선 안된다.

스스로 만들어낸 기사가 아닌 이상, 적어도 소스(Source)를 밝혀 주는 게 기본이라고 배웠다. 이들은 기본이 안돼 있다. 그런데도 버젓이 NAVER에, Daum에 기사로 둔갑한 보도자료를 송고해 독자들을 미혹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영화 저널이 도매금으로 '찌라시'가 된다. '영화 기사=홍보 대행'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영화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이 초래된다. 더 나아가 영화 담론 문화를 죽인다. 아무리 요즘 담론 공간이 블로그로 옮겨 오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확한 사실 관계와 정제된 시각의 그릇으로써의 온전한 저널리즘이 살아 있어야 한다. 저널은 담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인터네에서 창궐하고 있는 언론들의 소위 베끼기 시합을 '퀵서비스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런 퀵서비스 저널리즘은 포털들의 미필적 공모에 의해 자라나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지적하고 싶다.

다음은 최근 필자가 받은 한 보도자료의 도입부와 그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베끼다시피한 세 개 언론의 기사의 도입부만을 옮겨 놓은 것이다. 기획 기사의 형식으로 돼 있는 해당 보도자료는, 실은 기사 안에 포함된 한 영화를 강조해 드러내보이기 위한 의도로 작성돼 있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언론이 이 기사를 거의 그대로 copy & paste 했거나, 조금 손을 봤다 할지라도 보도자료의 기획 컨셉을 그대로 활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니 이 기사들은 기자가 아닌 영화 홍보사들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낚시 마케팅의 대상은 관객들만이 아니다. 게으른 기자들도 머리 굴린 보도 자료에 쉽게 낚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요즘 보도자료들이 기사 대필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상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보도자료 원문(배달 시간 2.17. 오전 07:00)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들이 한국에 온다!!

2월 24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들이 대거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화제이다. 특히, 각 7개와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 어톤먼트 >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가 단연 화제이다. 여기에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주노>와 전미비평가 협회 각본상 및 10대 영화에 선정된 저력을 지닌 영화 <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경제 기사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들 한국에 몰려온다

한국영화 '추격자'가 호평속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2월 24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들이 대거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화제이다.

각 7개와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어톤먼트>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단연 화제이다. 여기에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주노>와 전미비평가 협회 각본상 및 10대 영화에 선정된 저력을 지닌 영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출고시각: 2008.02.17. 20:14

씨앤비뉴스 기사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들 한국 온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들이 대거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화제이다. 특히, 각 7개와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어톤먼트>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단연 화제이다. 여기에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된 <주노>와 전미비평가 협회 각본상 및 10대 영화에 선정된 저력을 지닌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출고시각: 2008.02.17. 14:24

조이뉴스 24 기사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 대거 개봉한다

2월 24일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을 앞두고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들이 대거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1일에는 '어톤먼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주노'가 개봉한다.

출고시각: 2008. 02.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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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가 소비되는 방식

별별 이야기 2008. 2. 15. 13:46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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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CF는 하나의 장르이자 독립적 미디어다. 30초짜리 예술이라는 상투어를 동원하지 않다 할지라도, 누가 어떤 CF에 출연했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예면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생활 미디어로써의 CF의 영향력은 드라마나 영화를 능가할 정도가 됐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식적으로 내건 분야에서 거의 활동 사항이 없다 할지라도 CF만 줄줄이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구축해 나갈 수 있음을, 여러 명의 'CF퀸'들이 입증한 바 있다. 전지현이 그랬고, 이나영, 김남주 등이 그랬다. 그러니 누군가 이들에게 배우라면 배우로서의 존재 증명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윽박지른다면, 그거야말로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CF 스타로서의 존재 증명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게다가 훨씬 많은 돈을 벌어준다. 쓸데 없이 다른 장르에 도전해 연기 못한다는 소리 얻어 먹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설령 연기력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다 할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상품화한 이미지에 수렴돼 새로운 이미지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전혀 새로운 모델을 구축한 인물이 있다. 아니 이름이 있다. 동경과 관음의 대상이자 힐난과 시기의 대상이라는 모순적 이미지를 한꺼번에 활용하는 대표적인 경우, 미국에 패리스 힐튼이 있다면 한국에는 김태희가 있다. <중천>과 <싸움>으로 연기력 논란이 벌어져도 끄떡 없는, 우리의 진정한 CF 퀸이다.

김태희가 종전의 CF퀸들과 가장 큰 차별성을 갖는 지점은, 출연하는 광고에서 그녀의 이름 석자, '김태희'를 전면에 내거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김태희는 거의 모든 CF 속에서 30초 내러티브에 종속된 가공의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는다. 김태희라는 이름 자체가 거대한 상품성을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가 됐다는 반증이다.

김. 태. 희.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영악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하도록 조장된 여러 미덕이 한꺼번에 자동 연상되는 이름으로 활용된다. '김태희는 예쁘다'는 미디어의 주입식 상징 조작의 힘에 의해 객관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미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그녀는, 게다가 더욱 결정적으로 서울대 출신이다. 그것은 김태희라는 기표의 상징성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배경이 된다. 말하자면 그녀는 학벌 사회의 최고 미덕과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화된 여성의 가장 큰 무기, 즉 미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은, 비록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녀가 똑똑하다는 가설을 기정 사실로 만든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라는 말이 작동하는 방식은 대체로 그렇다. 이것이 '예쁘다'와 결합하게 되니,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예쁜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그녀는, 스타여서 돈도 잘 번다. 김태희는, '용모단정'을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쌍거풀 수술을 해야 하거나, 점심 메뉴로 스파게티를 먹고 싶어도 김밥집으로 향해야 하는 주접스러운 고민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언젠가 어느 준수한 재벌 2세의 프로포즈를 예약해 놓은 듯한 이름이다. 예쁜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김태희는 쓰고 싶을 때 쓰고, 게다가 야무지게 쓴다. 그녀의 미모와 우아한 위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소비라면 주저하지 않는다. 멋지게 소비하는 그녀는, 상품 사회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소비의 아이콘이자 여신으로 추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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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똑똑한 김태희'를 최근의 CF가 소비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태희라는 브랜드 파워를 단순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그녀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조차 적극 활용하려는 전략이다. 디지털 카메라 올림푸스의 CF는 말미에 '김태희, 내숭 떨지마'라고 윽박지른다. 김태희를 호명함으로써 그녀의 브랜드 파워를 상기시키되, 동시에 그녀조차 남자 앞에서 내숭 표정을 지어 보여야 하는, 평범한 욕망을 지닌 여성의 자리로 격하시키려는 의도가 충돌한다. 여기서 조장되는 심리적 기제는 김태희라는 이름이 아닌, 그 이름을 소유한 인물에 대한 질투, 혹은 시기이다. 뭇 남성들의 흠모를 한몸에 받고 있는 예쁜 똑똑이도 사실은 내숭 떨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가상의 폭로다. 그러나 CF 안의 내러티브는 결국 그 내숭조차 그녀의 브랜드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자 경쟁력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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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수염차 CF도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김태희를 활용한다. 외모가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여성으로서의 가격을 책정하는 시대, 성형업계가 개발해낸 새로운 전략의 일환으로, V라인 얼굴은 축복이자 특권처럼 강요된다. 그런데 CF 속에서의 김태희는 타고난 V라인을 가진 미녀로 설정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특권의 소유자다. 알지 않은가. 예쁜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그녀를 많은 남성들이 침 흘리며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광고는 부추긴다. "김태희와 경쟁하라!"고. 누가 감히 그녀와 경쟁하겠는가. 절망할 필요 없다. 옥수수 수염차가 도와준다. 국민 모두에게 V라인을 선사해줄 옥수수 수염차, 이제 이 물 마시면 당신도 김태희처럼 V라인이 될 수 있다. 옥수수 수염차는 김태희를 특권의 소유자인 귀족의 반열에 올려 놓고 '지가 뭐 얼마나 잘났다고'라는 부정적 시선을 받았다가 반사시킨다. 당신들도 (사실은 잘 난 것 하나 없는) 김태희와 경쟁할 수 있다고.

CF 속의 김태희는 소비자들을 향해, '메롱' 혀를 내밀고 있다. 나를 닮을 수 없다면 흉내라도 내보라고 부아를 돋운다. '평민인 늬들이 갖지 못한 걸 난 한꺼번에 가졌어, 그러니 잔뜩 질투해보라고. 난 벌써 이 나이에 남주 언니가 들어간 푸르지오에 갔잖아? 내 속도를 따라 올 수 있겠어? 그럼 열심히 써봐! 지갑을 열라고!'

여성 소비자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CF는, 관행적으로 '과시 욕망'을 부추긴다. 많은 아파트 광고들의 주인공이 여성들이며, 그 여성들이 대체로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흐믓하게 받고 있는 표정이 전시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김태희도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그 이름에는 20대 동년배 여성들의 구매욕을 한껏 자극해야 하는 임무가 부여돼 있다. 그리고 김태희의 브랜드를 활용한 광고 전략은 단순한 과시를 넘어 동경과 질투라는 모순적 시선을 한꺼번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어떻게 해도 흔들리지 않는 CF적 진리는, 질투의 대상이 되는 이유조차 그녀가 너무 잘났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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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수록 멋진 배우가 있는 반면,
                 추한 배우도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
   

                                                          1부


  2부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분들을 위한 오디오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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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숭례문에 드리운 분노

별별 이야기 2008. 2. 13. 01:16 Posted by cinemAgora
격앙된 목소리로 숭례문 화재 사건의 여파를 전하는 뉴스가 택시 안에 흘러 나온다. 용의자가 69세 노인이라는 것. 살고 있던 집이 재개발 대상지가 됐는데 토지보상금으로 4억을 요구했음에도 9천만 원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듣고 있던 기사 아저씨가 대뜸 그런다. "한국에 총기 소지가 허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다들 쏴 죽이고 난리 날걸요?" 아저씨 왈, "그러면 뉴스는 신나겠네." 그와 나는 나란히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범인은 분노다. 그리고 증오다. 수많은 인터넷 댓글에 어른거리는 표적을 찾지 못한 저주들이다. 하필 노인의 가슴에 똬리를 튼 분노는, 그러나 매우 정확히 국가를 겨냥했다. 따지고 보면 번지수가 잘못됐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는 마음 먹었을 것이다. 국가라는 아버지는 나를 버렸으며, 죽기전에 그를 향해 복수해야 겠다고. 조선과 대한민국의 아이콘이 하나 불탐으로써 그의 상징적 복수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600년 전통? 까고 있네, 늬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뭔대? 노인은 숭례문 2층 누각에 1.5리터의 시너를 뿌리며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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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구로사와 아키라, 195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근대 소설 '나생문'의 무대 나생문은 폐허가 될 운명의 숭례문을 닮았다. 기근으로 굶어 죽는 자들이 속출하는 시대, 나생문의 누각에는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다. 바로 거기, 한 노파가 유령처럼 죽은 이의 머리칼을 잘라내고 있다.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은 윤리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따진다. 노파는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윤리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한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아쿠타가와의 소설을 바탕으로 찍은 영화 <라쇼몽>에서는 비를 피해 나생문 앞에 모인 세 남자가 숲속에서 벌어진 한 여인의 강간 사건을 두고 두 남자와 피해 여성의 엇갈린 증언을 전하며 윤리의 상대성에 대해 토론한다. 실존의 위협 앞에서, 죽음의 절박한 위기 앞에서 과연 시비지심이 발동할 수 있는지.
 
국보 1호가 불타 대한민국이 부끄럽단다. 문화재 관리가 이게 뭐냐고 뒷북들 열심히 쳐 대신다. 언제부터 그리들 나라 사랑하셨다고. 진짜 부끄러운 건 그게 아니다. 응어리진 분노를 양산해내는 징그러운 양극화 사회의 처연함이 부끄러워야 한다. 저 강남 땅에는 부동산 졸부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과 아파트 시세 위에 앉아서 '억억'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러고도 모자라 내 재산 지켜줄 새로운 구세주의 출현에 경배드리고 있는데, 평생 땅 파먹고 살던 누군가 '나는 이게 뭐냐'고, 울분을 삼키게 만든 세상이 부끄러운 것이다.

성장하면 복지는 따라온다는 게 새 정부의 철학이라던가. 말이 좋아 능동적 복지다. 그럴줄 뻔히 알긴 했는데 어찌 그리 한치의 오차 없이 주접을 까잡수시고 계신지. 비정규직 문제 등의 산적한 민생 현안은 인수위 국정 과제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다시 한번 21세기판 '잘 살아보세' 구호가 메아리친다.

혹자는 다들 먹고 살만해졌는데 왜들 지랄인지 모르겠다고, 콱 터뜨리고 싶은 배 두드리며 한소리 한다. 그 산처럼 부른 배를 숨기지 않고 고기 먹은 이빨이나 쑤시고 계신 추한 몰골이 지랄을 부르는 게다. 필연적으로 관계 안에서 사람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만족감은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측정되게 돼 있다. 쌀 없어 굶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삼겹살 깨나 먹게 됐다고, 다는 아니라는 얘기다. 양극화 문제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높디 높은 성장의 탑을 쌓아 올려 보시라. 부자는 재산을 열 배 늘리고, 빈자는 재산을 고작 1.5배 늘린 것으로 중산층입네 착각하게 되는 세상을 연출해 보시라. 언젠가 그 주춧돌 하나를 간단하게 빼 버려 성장의 바벨탑이 사상누각이었음을 입증할 노인은 둘이고 셋이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아도 마리 앙뚜아네뜨의 자손들을 향한 사적 복수는 계속될 것이다. 그게 소외를 돌보지 않는, 가진 자만을 위한 경제의 잔인한 귀결이다.

타 버린 숭례문 위로, 예고된 분노와 저주의 악취가 살 타는 냄새처럼 넘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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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편의 한국영화가 격돌한 설 연휴 극장가는 예상대로 승자 없는 혈투로 마무리 됐다. 표면적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챙긴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승리인 듯 보이지만, 설 연휴에 한주 앞서 개봉한데다 무려 닷새동안이나 이어진 연휴 기간을 감안하면, 118만 7천여 명에 그친 전국 누계는 연휴 기간 1위라는 성적을 머쓱하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이 정도 성적이라면 명절 특수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스코어다.

이 같은 사정은 일단 기선 제압에 성공했던 <더 게임>도 다르지 않다. 첫 주말 호기심 관객들의 낙점을 받아 1위에 오르긴 했으나 그 기세를 연휴 기간까지 이어가지 못한 채 129만여 명의 관객 동원에 그쳤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와 <라듸오 데이즈> 역시 연휴 기간 초반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고 각각 53만여 명과 25만여 명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제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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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연휴 직전에 개봉한 <6년째 연애중>과 <마지막 선물>은 희비가 엇갈렸다. 전국 누계 관객 76만 명을 챙긴 <6년째 연애중>은 서울에서는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마지막 선물>은 명절 시즌에 맞춘 가족 휴먼 드라마로 정공법을 펼쳤으나 전국 22만 8천여 명의 심금을 울리는 데 머물렀다.

결국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설 연휴, 명절까지 뒷심을 이어가며 400만 명을 눈앞에 두게 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어부지리를 톡톡히 누린 셈이 됐다. 신작 가운데 딱히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판단한 관객들이 입소문이 괜찮은데다 화제까지 몰고 있는 <우생순>을 ‘안전하게’ 선택한 결과다.

곧잘 영화 산업을 A매치 축구 경기와 혼동하는 일부 언론들이 순위 상위권에 한국영화가 줄줄이 매달려 있는 겉모양에만 현혹돼 '한국영화의 부활'을 운운하고 있지만, 보시는대로 설 연휴 극장가를 통과한 한국영화의 성적은 처참할 지경이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이익을 남긴 영화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영화는, 이 절호의 기회조차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지 못했으니, 다분히 자초한 결과다.

설 연휴에 앞서 우려한 바 대로(설 연휴 극장가, 대어가 없다!) 명절 특수마저 무소용이 된 것은 지나치게 많은 영화들이 한꺼번에 쏠린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명절 대목에 걸맞는 스케일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기대작을 생산해 내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고만고만한 작품들끼리의 도토리 키재기였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이번 주말 개봉하는 <추격자>의 뚜껑을 미리 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사후약방문적 생각까지 품게 된다.  

설 연휴 한국영화 동원 관객수(근사치)

작품명                서울연휴(6,7일) 서울주말(8,9,10일)     전국 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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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연애중              61,100       133,000                 761,600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67,500       122,900               3,904,400

원스 어폰 어 타임         55,100       117,800               1,187,100

더 게임                   66,400       115,500               1,295,100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20,500        36,000                 530,000

라듸오 데이즈             10,700        22,900                 253,200

마지막 선물               15,800        32,700                 22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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