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살인' 어설픈 야심

영화 이야기 2009. 4. 2. 12:1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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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살인>은 이상한 영화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척하다가 너무 일찍 범인(인 게 확실해 보이는 이)을 노출해 버린다. 그렇다면 추리의 향방도 자연스레 살인의 동기와 배후에 집중되는 게 지당할 터.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이 관객은 이미 뻔히 알고 있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한참동안을 할애하며 이것이 일종의 트릭임을 자백한다. 등장 인물과 관객이 바라보는 지점의 이 불균형은 지루함을 유발한다. 그건, 트릭에 걸려든 관객들에게 준비한 회심의 반전이 상쇄하기엔 너무 큰 지루함이다.

여성 발명가 순덕(엄지원)의 개입으로 얼핏 '별순검' 냄새가 나는 인물구조를 만들었지만, 이들은 마치 탐정 추리극이라는 홍보 문구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는 듯 비약적인 추리를 통해 범인의 향방을 뚝딱 알아맞춘다. 사설탐장 진호(황정민)는 뒤늦게 범인을 향해 돌진하고, 그와 짝패인 의학도 광수(류덕환)는 꽤 중요한 일을 할 것처럼 얼쩡대다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뒤로 물러나 있다. 그 뒤로는 차라리 활극이다. 그 사이 추리물 특유의 재미는 급속도로 하강한다.

<그림자 살인>이 이상한 또 한가지 이유는 이 영화가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후경으로만 배치될 뿐, 딱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당대의 공기와 사건이 어떤 맥락을 갖는 건지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비싼 돈 들여 일제 시대를 재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흑인 신부가 등장하는 등 고증의 세밀함이 떨어지는 장면도 맥 빠지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기획과 연출은 야심차 보이지만, 왠지 어설프다.

고백컨대, <그림자 살인>을 시사회에서 본 뒤 일주일이나 지나버려 이 이상 더 구체적으로 영화를 논하기는 어렵다. 미덕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걸 영화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탓으로 돌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극장문을 나서며 뇌리에 떠올랐던 생각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제목은 잘 지었으니 초반에 손님은 좀 들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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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조차 확인하지 않는 연예 언론에 대한 아쉬움

민섭's 3M+α 2009. 3. 30. 17:1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최근 한 인터넷 매체로부터 ‘외제차 몰았다는 고 장자연, 알고 봤더니...’라는 제목의 포스트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이 글의 주요 내용은 <일요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과도 일치하므로 <3M흥업> 포스트뿐만 아니라 <일요신문>에 실린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한 매체가 보도한 것처럼 아버지가 고모가 운영하는 기업체에 간부를 지냈을 뿐이라며 풍족한 생활을 했으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문제가 된 한 인터넷 매체의 기사 내용 가운데 일부다. 여기서 지적받은 매체가 <3M흥업>과 <일요신문>이다. 
이 매체의 보도 내용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우선 이 매체의 기사를 더 살펴보자.

'정읍시 관계자는 “○○○○은 개인 공장으로 운영되던 중소규모의 업체였지만 장사가 잘 됐다”라며 “정읍에서 유명한 업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자연의 부모가 사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2002년 간암으로 사망한 장자연의 아버지는 사망 이전까지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 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라는 이 업체는 정읍에서는 꽤 알려진 업체였다.’

‘이처럼 장자연은 어린 시절 이 지역에서 소위 잘 나가는 업체의 딸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이 업체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2005년 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사망하면서 ○○○○은 이듬해 문을 닫았다.’

‘유산의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자연은 부모의 유산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인의 고향인 정읍시 관계자를 취재해 보도한 기사 내용으로 해당 업체까지 명시했다. 그렇다면 내가 작성한 포스트와 신문기사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일까.


착오의 시작은 내가 해당 업체를 명시하지 않은 것이었다. 해당 기사를 인용하면서도 ○표시를 했다. 그 이유는 취재원 또는 유가족 보호를 위해서였다. 고인의 죽음을 기사화하면서 유가족이 운영하는 업체 이름까지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다.

고인이 자살한 직후, 그리고 문건이 공개된 직후 상황에서 기자들이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장자연이라는 신인 연예인에 대한 정보부족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에서 고인의 부모가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허위 정보가 나돌았고 이것을 대부분의 매체에서 받아들이면서 팩트가 왜곡됐던 것이다. 그 즈음 집안이 부유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엄청난 합의금을 받았다는 얘기가 떠돌았고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획득한 특허로 인해 엄청난 특허권료를 받고 있어 부유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지난 13일 밤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공개한 직후 필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일요신문>의 마감은 금요일이고 신문은 월요일에 나온다. 마감 시점에 문건이 공개되면서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보강 취재를 해 새로운 기사를 작성해야 했던 것. 이틀 동안 필자는 문건보다도 먼저 장자연이 누군지에 집중했다. 그 결과 부모가 교통사고가 아닌 간암과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고인의 부친은 고모가 운영하던 회사의 고위직이었다는 사실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주에 필자는 한 주의 여유를 갖고 취재에 돌입했다. 해당 업체를 찾아가 고모를 인터뷰했고 정읍시를 찾아, 고인 부모의 지인들도 만났다. 그렇게 작성된 게 바로 이번에 지적받은 기사이자 포스트였다.


우선 이 인터넷 매체의 기사 내용 가운데 팩트인 부분은 고인의 부친이 ○○ 업체에 몸담았으며 이 업체가 정읍시에서 유명했으며 잘 나가는 업체였다는 부분뿐이다. 또한 정읍시에서 문을 닫았다는 부분도 '팩트'이긴 하다. 그런데, 이는 1차원적인 취재에 불과하다.

고인의 부친이 자신의 여동생(고인의 고모)과 그의 남편이 운영하던 이 회사의 고위직에서 근무를 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직접 운영하던 회사는 아니었다. 다만 여동생의 남편이 중국 진출을 위해 자주 해외 출장을 떠나 그가 국내 사업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업체가 문을 닫았다는 얘기 역시 사실과 다르다. 물론 정읍시민들 입장에서는 문을 닫은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고인의 부친 사망과 함께 이 업체가 흔들리기 시작해 문을 닫은 게 아니라, 그저 본사를 정읍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전했을 뿐, 폐업을 한 건 아니다. 성공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뒤 교역에 더 유리한 지역으로 본사를 옮겨, 현재도 이 업체는 말 그대로 잘 나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인터넷 매체가 다른 매체와 달리 정읍시민들을 직접 취재하며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높이 사지만, 주변인 취재만으로 사실을 '짐작'하는 바람에, '팩트의 오류'를 불러왔다. 문제가 된 부모의 직업 이외의 사안, 현재 거주 중인 집이 전세인 점과 고인이 타고 다니던 차량이 리스인 점 등은 모두 필자의 포스트 또는 기사 내용과 일치한다. 따로 확인한 것인지 아니면 필자가 확인한 내용을 인용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기사를 쓰며 늘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팩트를 확인하는 것과 진실을 파악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요즘 연예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실은 커녕 팩트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기사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또 하나의 논란을 야기한 '이재진의 휴가 미복귀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매체가 이재진과 같은 젝스키스 출신으로 역시 병역비리조사에서 부실 복무 혐의로 재입대 처분을 받은 강성훈이 현재 군복무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필자가  그는 현재 개인적인 사유로 군 입대를 연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서 기사화하자,  다른 인터넷 매체가 이를 받아 쓴 일도 있었다.  '팩트' 대신 '짐작' 만으로 기사를 양산해 내는 연예 저널리즘의 폐해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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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연예인을 창녀로 만드는가

영화 이야기 2009. 3. 29. 00:27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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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란방> 2008, 첸 카이거


곧 국내 개봉을 앞둔 첸 카이거 감독의 <매란방> 초반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남자로서 여자 역을 연기한 1930년대 인기 경극 배우 매란방이 한 세력가의 처소에 불려 간다. 매란방이 그의 거실에 들렀을 때 세력가는 이미 두 세 명의 미소년들을 희롱하고 있다. 매란방이 들어서자 세력가는 그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를 세력가에게 안내한 인물은, 매란방에게 이왕이면 그의 무릎에 앉으라고 지시한다. 매란방은 화를 내며 그곳을 빠져 나온다.

영화는 이 장면을 슬쩍 배치했지만, 앞서 그의 백부가 경극 배우가 얼마나 미천한 신분인지를 강조하며 왠만하면 그만두라고 충고하는 첫 장면과 연결되며 당대 경극 배우에 대한 세속의 시선을 짐작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매란방은 대중에겐 추앙과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권력가들에겐 희롱의 대상이었던 셈이니, 이른바 엔터테이너의 운명적 아이러니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 '광대'라는 미천한 취급을 감수해야 했던 이들은, 자주 지배층의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됐다. 광대를 역시 남색 취향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대표적이다. 예쁜 남자들이 이러했으니, 여성 예인들의 경우엔 오죽했겠는가. 익히 알다시피, 흔히 '기생'이라는 직업군으로 분류된 이들은 시서를 논하고 매란국죽을 그리는 양반의 고급 취향에 부응해야 함과 동시에 성욕의 배설구가 되는 데도 통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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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 1989, 김호선


현대 미디어 산업의 창궐은 연예인이라는 신흥 귀족을 탄생시키며 또  다른 꿈의 바벨탑을 축조했다. 대중의 욕망이 투영된 연예인들은 TV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 나갔고, 그들 중 극소수는 사실상 권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권력을 쥐기까지 세력가의 은밀한 후원을 필요로 하는 비운의 메커니즘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에서 그러한 풍경을 가장 탁월하게 묘파한 작품은 바로 김호선 감독의 <서울 무지개>(1989)였다.

스타를 꿈꾸는 한 여성이 자신의 성공을 볼모로 한 정치 권력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과정을 담아낸 <서울 무지개>는, 당대 섹시 스타로 달돋음하고 있던 강리나의 광적인 연기에 힘입어 소름 끼칠 정도의 충격을 안겨줬다.(5공 정권 직후 개봉한 이 영화에서는 최고 권력자를 등장시키는 파격을 실험했다. 그 최고 권력자가 대머리였는지 여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정치 권력의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의식/무의식적 불신이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이 상세하게 재연해듯, 당대 연예인은 사회 전분야의 목줄을 쥐고 흔들었던 정치인들의 술자리를 빛내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였다. 수락하면 밥줄이 보장되지만 거절하면 밥줄이 끊기는 절박함 앞에서 절개를 지킬 수 있는 연예인이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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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2004, 임상수


주목할만한 것은, 연예인의 성을 구매하는 권력이 90년대 이후 정치에서 자본으로 급속도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통과하며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담론에 포획된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즉, 70-80년대 정치 권력에 주연을 빼앗겼던 기업과 자본이 주연으로 급부상하게 되면서, 그들은 감시의 눈이 많아져 몸조심 해야 하는 어르신을 대신해 광고주로서의 특권을 만끽하며 마음에 드는 연예인을 골라 노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됐다.(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눈치를 보셔야 했다.)

최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는 지난한 연예인 성 구매사를 또 한번 상기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의미심장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한다. 간단히 말해 새끼 권력, 어린 마초들이 아버지들의 추악한 역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연예인의 육체'라는 대중 사회의 상품을 배타적이고도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쾌감을 누리는 주체가 신분적 세력가-->정치 권력-->자본 권력-->매니지먼트/미디어 권력으로 유전되면서 하향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끔찍하게도, 장자연 리스트는 나로 하여금 불온한 의문을 품게 한다. 대중과 매스미디어는 과연 무엇에 분노하는 걸까? 장자연의 절박한 처지에 진정으로 감정이입하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연예인의 육체, 그 고귀한 상품을 독점한 세력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시대의
연예인을 창녀로 만들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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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에게 부족한 것

늙은소's 다락방 2009. 3. 27. 02:10 Posted by 늙은소

미국에서는 보통 새로운 드라마가 기획되면 파일럿을 제작하여 1차 평가를 거친 다음 6회 정도의 방영을 결정하고, 그 기간의 성과에 따라 1시즌 제작을 결정한다. 그 때문에 어떤 드라마는 1회와 2회 사이에 주인공의 헤어스타일과 캐릭터가 달라지기도 하며, 어떻게든 초반에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1시즌 제작이 보장되는 탓에 용두사미형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용두사미 미드 중 ‘The 4400’이 있다. 50년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사라졌던 4,400명의 실종자가 실종당시의 나이와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혜성과 함께 나타나면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4,400명에게 미지의 능력이 숨어있음이 밝혀지며 호기심을 일으켰다. 매 회마다 특이한 능력자가 등장하니, 이러다 4,400회까지 드라마가 끝나지 않는 게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여타의 드라마가 염력이나 치유력, 투명인간과 같은 다소 흔한 능력자를 등장시켰다면 이 드라마에서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기이한 능력자가 끊이지 않고 등장하여 재미를 주곤 하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재능이 있는지 간파해내는 어느 교사의 에피소드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은 물론이며, 어떤 악기 어떤 장르가 적합한지까지 알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능력이 문제가 된 것은 아무리해도 재능이 파악되지 않는 한 소년에 의해서다.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어떠한 재능도 있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 이 아이는, 자신의 삶이 노동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재능 없음’을 선고한 교사를 원망하기에 이른다.

소년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 교사의 능력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끌어주는 사람을 제 때 만나지 못한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그 안타까움을 이해하기 쉬우리라.  


SBS 교양정보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볼 때마다 그 교사가 떠오른다. 재능을 눈여겨 봐줄 삶의 스승이 있었다면 그들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현재 180회를 넘기며 꾸준히 방송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성실한 자세로 한 가지 일에 매진한 결과 남다른 기술을 보유하게 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달인’을 시청하다보면 머리가 복잡해져 안타까운 한숨을 내쉴 때가 있다. 저렇게 성실한 사람이 예민한 감각과 손재주까지 갖추고 있다면, 봉투붙이기가 아닌 다른 일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반지 만들기의 장인이 정확하고도 신속한 손놀림은 갖추고 있으나 예술적 감각이 없어 지극히 평범한 금은방 반지만 만들고 있다거나, 예술적 기초지식이 전무한 채 오로지 정교한 기술력만으로 버텨온 도자기의 달인을 보고 있자면 그에게 기초조형 수업을 권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생활의 달인’ 출연자들은 자신의 동료가 30개를 만드는 사이 100개를 만들거나, 남보다 더 정확히 불량품을 찾아내고 똑같은 모션을 반복하여 마치 기계처럼 작업을 수행하는 인물이 주를 이룬다. 그들이 하는 일은 자동화 기계 시스템이 들어오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의 미래가 가끔은 불안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그들이 ‘생활의 달인’이 된 것은 그런 위태로움을 잘 알기에 남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함으로써 살아남겠다는 의지의 반영이기 쉽다.  


지금 ‘달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동료가 30개를 처리할 때 100개를 처리하는 능력의 과시가 아니다. 빠른 작업 속도로 30개를 처리했다면 70개를 더 작업할 게 아니라, 남은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확보해 재능을 보다 높은 차원의 작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수 있다. 수제가위의 달인에게는 미술관 관람과 디자인전을, 제빵의 달인에게는 제과 장식 관련 해외 잡지들을 몇 권 보내고 싶어진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오만한 계몽주의자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달인’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작업’만을 강조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장인으로 올라서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니겠는가.  

요즘 우리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관리하는 수장께서 내리는 결정을 보고 있자면 ‘생활의 달인’이 절로 떠오른다. 문화와 예술이 효율과 경제성을 중시하기 시작하면 ‘명인’과 ‘장인’은 거꾸로 ‘달인’이 되어야 한다. 똑같은 가격으로 더 많은 작업을 '처리'하기 바라는 그분. ‘생활의 달인’의 열혈 시청자이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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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애프터 리딩' 바보들의 행진

영화 이야기 2009. 3. 26. 13:51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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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멍청할까,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쉴 때 말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나 역시 하루에도 두 세번 씩 바보 같은 언행을 후회하고 사니까. 신이 인간을 빚은 게 정말 맞다면, 그 역시 하늘에서 인간 사회를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 게 틀림 없다. 에구~내가 어쩌다 저런 것들을 만들었누, 하시면서.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의 세계관이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멀리는 <바톤 핑크>부터 가까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까지, 그들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늘 전전긍긍하고, 무리수를 두고, 예상치 못한 세상의 반격에 고꾸라진다. 생각은 하지만 멀리 보지 못하고, 행동은 하지만 늘 자기 발등을 찍는다. 한마디로 바보들의 행진이다. 이번 영화 <번 애프터 리딩>도 마찬가지다.

얘기는 이렇다. 자존심만 드높은 CIA 직원 오스본(존 말코비치)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이유로 좌천당하자 홧김에 때려 치운다. 그리고는 재직중 얻은 별 거 아닌 정보로 회고전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의 아내 케이티(틸다 스윈튼)는 바람둥이 보안관 해리(조지 클루니)와 바람 피우다 이혼을 결심한다. 그녀는 오스본의 재정 기록을 CD에 담아 변호사에게 넘기는데, 하필 그 안에 오스본의 회고록이 담겨 있다. 이걸 헬스클럽 트레이너 채드(브래드 피트)가 우연히 줍는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린다(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마침 성형 수술 경비도 마련할 겸 이걸로 한 몫 챙길 계획을 세운다. 바보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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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번 애프터 리딩>을 보다 보면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폭소가 아니라 헛웃음이란 게 중요하다. 하나 같이 찌질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의 군상극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해리는 인터넷을 통해 수 많은 여성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면서도 아내가 자신을 버릴까 전전긍긍하고, 채드는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채 신나서 까불댄다. 성형 수술에 집착하는 린다는 모든 걸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달인이다. 세상이 자신을 몰라준다고 성질만 내는 오스본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기로 가득차 있다. 어디 그들 뿐이랴. CIA조차 이들이 왜 쫓고 쫓기는지 모른 채 그냥 조용히 사라져 주기만을 바란다. 모두들 주체적이고도 현명하게 행동한다고 믿지만 어느 누구도 바보가 아닌 자가 없는 곳, <번 애프터 리딩>이 그리는 이 세상이다.

'읽은 뒤 태워 없앨 것'이라는 뜻의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첩보물을 연상시킨다. 실제 첩보물이었다면 아마 오스본의 자료는 일급 기밀에 해당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엔 형제는 이걸 별 거 아닌 회고록 찌꺼기로 바꿔 놓고는, 쓸데 없는 데 목숨 거는 인간들의 추격 게임을 낄낄대듯 풀어 놓는다. 첩보물 특유의 긴장감이 놓일 자리에 조소를 배치하는 냉소적 유머 감각이 빛나는 대목이다.

존 말코비치와 틸다 스윈튼,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말할 것도 없고, 브래드피트와 조지 클루니의 능청스러운 연기 변신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쾌감이다. 특히 백치에 가까운 헬스크럽 트레이너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는, 벤자민 버튼 역 말고 차라리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아야 마땅했을 정도다.
 18세 이상 관람가, 3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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