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신화학자 조셉 캡벨에 따르면, 어느 문화권이든 신화는 기본적으로 영웅의 여정이라는 유사성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영웅의 여정은 보통세상에서 특별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보통 세상으로 귀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영웅은 특별한 세상에서 협력자를 만나고 적과 대립하며 사활을 건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가 극적으로 귀환한다. 이때 영웅은 유무형의 보상을 얻고 돌아온다. 오늘날의 많은 영화들이 신화적 스토리텔링을 한다. 신화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 이야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도 야구는 신화적이다. 홈베이스를 밟아야 득점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윷놀이는 말이 시작점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 역시 신화적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송강호는 서울의 택시운전사다. 그는 독재에 항거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으로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떠난다. 모든 길이 막혀 있는 상황. 10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우회로를 택해, 택시운전사는 19805월 광주라는 특별한 세상으로 진입한다. 그 다음 이야기 역시 앞서 말한 신화적 구조에 대입된다.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그를 살갑게 대해줬던 이들의 희생을 목격하며 그 자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보안사의 추격에 얼떨결에 휘말린다. 그리고...그가 속했던 보통세상으로 귀환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얻은 보상은 무엇일까. 영화는 그것을 관객들의 해석에 맡긴다.

 

'신화적 이야기틀'의 요체를 앞서 나는 조셉 캠벨의 분석을 빌어 '영웅의 여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 영웅은, 엄밀히 말해 독일인 기자가 아니라 택시 운전사 송강호다.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는 기자의 책무는 목숨을 걸고 그를 실어 나른 송강호에 의해 완성된다. 중요한 건, 그 영웅이 대단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홀로 남겨진 딸 아이를 걱정하는 소시민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게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이들은 송강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보통 사람들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송강호를 돕는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다. 시위에 나선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아낙들이었다. 외국인이 탄 서울 택시를 잡으라는 상부 지시에도 눈 질끈 감고 통과시켜준 이름 모를 군인이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싶어 대학을 갔다는 날라리 대학생이었다.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한 택시 운전사들이었다.

 

<택시운전사>의 감동은 바로 그 지점에서 파열된다. 역사를 전진시키는 이는 특별한 이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양심과 시비지심과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 맞선 보통 사람들, 지난 겨울의 수백만 촛불처럼,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이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서 재연되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소시민들의 영웅적 희생에 한없이,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영화의 한 지점, 독일인 기자를 홀로 남겨두고 학살의 현장을 떠나 몰래 서울로 향하던 송강호는 가수 혜은이의 "3한강교"를 꾸역꾸역 부른다. 그러다 흐느낀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결국 그는 불현듯 택시를 돌려 다시 광주로 향한다. 영웅은, 친구를 남겨 놓고는 절대 특별한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그가 핸들을 돌리는 순간이 신화적 구성의 하이라이트, 심연으로의 돌진이자 영웅이 얻게 될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개인이었다가 역사에 개입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공범자들

영화 이야기 2017.07.31 18:01 Posted by cinemAgora

김기춘이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MBC에서 해직된 최승호 피디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2016)이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 최승호 피디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김기춘을 집요하게 따라 붙으며 그가 유신 시절 자행했던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다. 당연히 김기춘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오늘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실형을 받았으니, ‘사필귀정’은 역사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가 유신 시절에 자행했던 숱한 사법 살인을 떠올리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라는 생각도 든다. 최승호 피디가 따라 붙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역시 대선 개입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또한 권력에 빌붙어 국민을 속이고 우롱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은 언론인의 책무다. 그러나 아다시피 MB 정권 이후 많은 언론인들이 바로 그 책무를 다했다는 이유로 해고, 정직, 감봉, 부당 발령의 대상이 되었다. 권력에 장악된 방송 언론은 권력 비판적 언론인들을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마이크를 빼앗기고 카메라를 빼앗긴 그들은, 그러나 가만히 있지 않았다. 뉴스타파, 국민TV, 고발뉴스 등의 대안 언론을 만들어 이른바 공영 방송이라는 곳이 상실한 언론의 책무를 이어나갔다. (개인적으로 나는 뉴스타파 후원 회원이다.)

MBC 재직 시절 'PD 수첩'을 제작했던 최승호 피디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진실 규명의 책무를 영화 매체로 확장했다. 그가 지난해 선보였던 <자백>은 그 첫 번째 실천이었다. 그 작품은 방송 PD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편견을 가볍게 일축했다.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현란한 영상 테크닉이 아니라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지치지 않는 시대 정신과 진정성임을 그는 입증했다.

이제 최승호 피디는 바로 그가 속했던 곳, 아니, 여전히 속해 있는 방송 언론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8월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이 그것이다. 제목이 선언한 것처럼, 이 작품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두 개의 공영 방송, MBC와 KBS의 권력 부역자들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MBC의 김재철 전 사장, 김장겸 현 사장을 비롯해 KBS의 길환영 전 사장, 고대영 현 사장까지, 이른바 ‘앰부싱(매복했다가 인터뷰를 시도하는 취재 방식)’의 표적이 된 그들은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당황한다. 감독이자 주연인 최승호 피디는 이 작품에서 추격자가 되었다. 한국의 공영 방송을 망친 공범자들에게 집요하게 달라 붙어 끊임 없이 질문한다. MB에게도 달라 붙는다. 질문을 못하게 막자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만 방송계의 권력 하수인들을 비판하는 데 그쳤다면 여운이 길지 않았을 것이다. <공범자들>은 한편으로, 불이익을 감수하며 끊임 없이 저항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언론인들의 투쟁을 담아낸다. 강요된 침묵에 굴복하지 않은 양심적 언론인들이 분명이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MBC에서 해직된 뒤 암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는 영화 속에서 말한다.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부조리에 대한 언론인들의 함성은 그 자체로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은 그들의 기록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기록은, 망가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공영 방송이 다시 설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 신호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침묵하지 않는 언론인들이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군함도

영화 이야기 2017.07.31 18:00 Posted by cinemAgora

영화 <군함도>는 송중기의 영웅 활극과 황정민의 가족 휴머니즘과 소지섭의 로맨스를 일제강점기라는 양은 도시락통에 넣고 마구 흔들어 비볐다. 마구 비볐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비벼지지가 않았다. 이 영화의 감독은 류승완이 아니라 돈이다. 알파고가 연출을 했어도 이보다 더 잘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 <군함도> 흥행의 경마 중계식 보도가 지난 며칠 동안 전개된 양상은 아래와 같다.

역대 최단 기간 2백만 돌파--> 
역대 최단 기간 300만 돌파 '타이' 기록 --> 
'올해' 최단 기간 400만 돌파.


2천 개가 넘는, 역대 최다 스크린 확보 신기록을 세워 놓고 흥행의 신기록 행진은 주춤한 것이다. 영화판에서는 흥행세가 주춤하는 걸 ‘드롭(drop)’이라고 부른다. <군함도>가 예상보다 빠른 드롭세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하는 건, 아전인수가 아니다. 앞서 천만을 넘었던 <부산행>이나 <암살> 등의 네티즌 평점이 각각 8점대와 9점대였던 데 비해 <군함도>는 7점대에 머물고 있다. ‘역사 왜곡‘ 논란을 떠나 영화의 완성도가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일본 언론의 폄훼는 감독 류승완이 따로 낸 보도자료에서 지적한 바대로 “일본이 아직도 그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와 청산되지 않은 어두운 역사를 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영화적 재연 방식에서 그럴만한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일본은 물론 절대악으로 다뤄지지만, 영화의 기둥 플롯과 갈등 구조는 ’조선인 대 조선인‘이다.


류승완은 “친일파에 대해 계속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친일파는 징용된 조선 민중 속에도 있다. 심지어 주인공도 사실상의 친일파다. “살기 위해 협조했다“는 건 친일파의 대표적인 방어 논리다. 관객들은 그것이 불편한 것이다.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창작물“인 이 영화는 류승완의 주장대로 역사적 고증이 철저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시대와 교호하는 ‘역사 의식'의 부재를 고백한다.


이 영화를 통해 그 시대, 징용되었던 이들의 고통에 한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건 내가 너무 관념적이어서일까? 아니다. 이 영화의 관심사는 친일파이고 나발이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송중기의 벗은 상반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우리의 잘생긴 송중기만은 훈도시 입은 식민지 조선 민중의 굴욕적인 하체를 보여주는 데 예외가 된다.


나는 이 영화가 천 만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훈장을 받을 가치가 있는 영화가 아니다. 만약 이 작품이 천 만을 넘긴다면, 그건 영화의 힘이 아닌 순전히 배급의 힘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의 감독이 류승완이 아니라 ‘돈’이라고 말한 건 그런 맥락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영화에 대한 인문적 접근

영화 이야기 2017.07.31 17:59 Posted by cinemAgora

영화에 대한 인문적 접근

모든 예술은 상징 체계이다. 특히 영화는 기술 혁명에 의해 발명된 시청각적 상징이다.

상징은 예술가라는 필터를 통해 창안된다. 따라서 예술가가 무엇을 어떻게 상징하는가를 읽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오늘날, 숱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굳이 상징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상 체험의 롤러코스터. 즉, 자극을 동원한 쾌감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태반의 관객은 굳이 해석의 수고를 겪지 않아도 쾌감, 오로지 그 쾌감에 반응하는 것을 원한다. 영화 산업이 관객들을 그렇게 길들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에 문제 의식을 품은 영화 예술가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오감과 예민한 인식의 촉수로 끌어 안은 현실을 목도한다. 그리고 거기서 상징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끌어낸다. 따라서 영화라는 상징은, 창작자가 가진 현실 인식의 반영이다.

여기서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인간)인 관객에게 숙제가 주어진다. 도대체 창작자는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가 가진 삶과 세계, 인간에 대한 태도는 얼마나 타당한가. 이것을 따지는 게 비평 행위다. 그리고 모든 관객은 비평가다. 분명히 말하지만 상품 사용 후기와도 같은 별점 매기기는 비평이 아니다.

현실--->창작자--->상징

이 공식을 인지한다면, 관객은 상징성에 내포된 현실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상징화된 현실은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고, 그 의미(significance)를 찾아내는 것이 해석이다.

물론 귀찮은 작업일 수 있다. 영화 한편 보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일축하는 분들은, 그냥 쭉 그렇게 생각하고 보시면 된다. 그러나 한 가지, 그런 관성에 익숙해 있는 한, 일년에 백 편의 영화를 본들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비자본주의의 영화 상품은 구매자로서의 당신의 선택과 감상이 '항상 참'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예술적 체험에 있어서 항상 참은 없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상징의 미학적 완성도와 더불어 타당성까지 탐색할 준비가 된 것이다.

항상 참은 존재하지 않지만 끊임 없이 참을 향해 나아가는 것, 별점이 아닌 정제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그게 영화 매체에 대한 인문적 접근의 요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옥자

영화 이야기 2017.07.31 17:58 Posted by cinemAgora

"리와인드 리와인드! 바로 거기! 재생! 바로 저 이미지. 저 순수한 소녀를 저렇게 함부로 다루는 저 이미지. 내가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은 새끼들이! 바로 저 이미지 떄문에, 우리는 좆된 거야."

잊기 전에 기록해 둔다. <옥자> 중에 틸타 스윈턴 대사.

<옥자>는 이미지의 향연이다. 틸타 스윈턴과 제이크 질렌할과 폴 다노를 캐스팅하고, 뉴욕을 배경으로 소동극을 연출한 이미지. 준중심부 감독이 언감생심 미국 자본의 세례를 받아 만들어낸 다국적의, 그러나 울림 없는 이미지. 그 이미지에 대한 종속 때문에 이 영화는 좆됐다. 신화적 구성에서 한치도 오차 없이, 600억 원에 힘입어 설계된 "있어 보이는 이미지." 게다가 오 마이 갓! 구출의 승부수가 구매라니!

나는 이 영화에 대한 리뷰의 제목을 구상했다. 
"600억 짜리 동화 또는 해프닝"

참고로, 나는 삼겹살을 먹는 나에게 추호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삼겹살을 먹기 위해 돼지는, 수퍼 돼지든 말든 죽어야 할 운명이다. 그리고 인간은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으면 죽게 돼 있다.

나의 일차적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하필, 그 숱한 수퍼 돼지 중에 옥자만큼은 살아야 하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옥자는 우리의 주인공 미자의 반려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변희봉 할아버지의 닭백숙은 당연한 죽음인가?

만약 이런 유의 영화를 통해 환경주의에 대한 대단한 은유를 꿈꿨다면, 봉준호는 어리석은 감독이다. 그런 건 마야자키 하야오가 이미 훨씬 더 훌륭하게 완수했다. 이 영화에서 작가적 야심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는 전형성으로 대중을 사로찹고 싶은 넷플릭스에 의례적 감사를 표할 뿐이다.

봉준호는 그 자신 오이만 먹는 채식주의자인지 묻고 싶다. 또 하나, 온라인으로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나는 넷플릭스 무료 기간 끝나면 해지하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59)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679)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17)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17/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