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영화 이야기 2018.03.09 10:19 Posted by cinemAgora

훌륭한 영화는 보편적 이야기를 참신한 형식적 틀에 담아 풀어 낸다. 이를테면 사랑. 가족애. 우정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 소재를 너무 뻔한 그릇에 담으면 관객들은 금새 하품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형식적 틀, 즉 장르적 외형과 그릇의 참신성이 중요한 것이다.


더 훌륭한 영화는 여기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부조리와 역사에 대한 성찰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 두가지를 한데 묶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적지 않은 창작자들이 야심을 부리지만, 자칫하면 지나치게 계몽적이 될 수도 있고, 봉준호의 소문만 요란했던 잔치 <옥자>처럼 서브텍스트의 깊이로 내려가지 못하는 너무 표피적인 동화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바로 그렇기에,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가 찬사를 받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보편성을 아주 신선한 그릇에 담아 풀어내면서도 미국이 갖는 역사성을 날카롭게 꼬집기도 한다. 아주 어려운 작업을 굉장히 솜씨 좋게 해냈다.


멕시코 출신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는 일찍이 연출한 <판의 미로> 등의 작품을 통해 기괴한 비주얼에 대한 독특한 취향을 선보인 바 있다. 그에겐, 이를테면 서구인들이 흔히 상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 외눈박이에 괴이한 외형을 하고 있을지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미에서 잡혀온 '괴물'은 인간들이 멋대로 만든 미적 관점에 벗어나 있다. 보안 책임자는 그의 흉측함을 비난하며 신은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빚었기에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맹신을 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에서 가장 추악한 존재는, 그렇게 말한 바로 그 자다. 오히려 여주인공의 헌신적인 사랑에 소통의 문을 여는 '괴물'은 더 없이 지고지순하기에 눈부시다.


이런 한편, 델토로는 '괴물'을 냉전기의 탐욕으로부터 탈출시키는 주역들을 미국 사회의 약자들로만 배치함으로써 그의 세계관과 주제 의식을 은근히, 그러나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이 영화는 장애인, 흑인 빈민, 실업자를 영웅의 동류항으로 묶는다. 그 대척점에는 캐딜락으로 상징되는 물신주의적 가치와 타자에 대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 미국적 역사성이 조롱의 도마 위에 오른다. 아마도 그건 감독이 멕시코 출신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환상적인 음악, 감독의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디테일한 미술은 이번만큼은 아카데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단 하나의 불만은 굳이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를 단 국내 개봉 제목이다.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의 상징성을 그냥 관객의 해석에 맡기지 못할 정도로, 영화 산업 종사자들은 이제 관객들의 수준을 아주 얕보는 지경이 되었다.


어쨌든 이런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한다. 당신의 감수성이 열려 있다면, 인간과 괴물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변증법의 원리 가운데 "양질 전환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순의 양이 차고 넘치면 더 이상 기존 구조의 그릇으로는 견딜 수 없는 임계점을 맞이하게 되고, 그리하여 기존 구조가 질적으로 바뀌는, 즉 그릇이 바뀌는 일종의 혁명적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건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데도 아주 유효한 개념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앙시앙레짐(구체제)"이라고 일컬어지는 봉건 왕정의 모순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발발했습니다. 우리의 촛불 혁명은 박근혜 정권이 품고 있던 구시대적 모순이 주권자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일어났고, 실제로 우리는 그 연장선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변화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미투운동이 촉발한 폭로의 릴레이 역시 난데 없이 생겨난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왔고, 그것이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상징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은, 이것이 무슨 유행 같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순의 양적 팽창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상황이므로 반드시 질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성 인권,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시대가 요구하는 질적 전환의 상황으로 이어지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꽤나 높고 두텁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버지(남성)의 율법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117위입니다. UN 가입국 기준으로 했을 때 중하위권이고 OECD 기준으로는 최하위권입니다. 아프리카의 튀니지라는 나라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나라보다 우리의 성평등 지수가 낮습니다. 여성의 노동 환경 역시 최하위 수준입니다. 하다못해 여성 가족부 산하 여성인권진흥원의 직원은 100% 비정규직입니다. 고용 안정의 지표인 유지 취업률의 남녀 차이는 취업 기간이 길수록 더욱 벌어집니다. 경향적으로 여성이 한 직장에 머무는 기간이 남자보다 짧습니다.(이런 거 관심이라도 있습니까? 남자들?)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 환경은 어떻습니까. 뉴스에서 남성 앵커는 가루지기처럼 무뚝뚝하게 생겼어도 여성 앵커는 화사하게 꽃처럼 앉아 있는 경우,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기상 캐스터들은 거의 다 S 라인 몸매를 부각시키는 원피스를 입고 나옵니다. 정치, 경제 뉴스는 남자 앵커가, 생활, 문화 뉴스는 여성 앵커가 진행하는 게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방송 언론의 성역할부터 불평등합니다. 나는 그것자체가 문화적 성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직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언론은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 스포츠 소식을 보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오드리 아줄래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언론은 여성 선수의 외모와 가족 관계에 주목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타성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아랑 선수는 스케이팅 실력이 훌륭해서 칭찬 받은 게 아니라 언론에 따르면 "외모도 훌륭한데 인성까지 훌륭하기 때문"에 찬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여성에게 외모는 사회적 자산으로 당연시됩니다.


그러므로 미투운동이 양질 전환의 법칙의 적용을 받기 위해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상황은 위계와 권력을 이용해 강제됩니다. 양성 평등 사회는, 성폭력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입니다. 성폭력의 비인간성이 우리 사회에 이만큼 만연해 있다는 걸 성토하고 분개하는 걸 넘어서 여성이 자기 몫의 역할과 비중을 확보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개선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미투운동은 결코 일시적 상황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2, 제 3의 안희정이 끝도 없이 나올 겁니다. "세상 무서워졌다"는 한탄은, 멍청한 남자들의 술자리 안주로 남겠죠.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고합니다. 김대중을 존경했던 당신의 아내도, 노무현을 사랑했던 당신의 딸도, 문재인을 지지했던 당신의 손녀도 안희정 같은 인간의 수행비서가 될 수 있는 나라를 물려주겠습니까?


멍청한 나라만 아니면 된다

별별 이야기 2018.02.24 17:28 Posted by cinemAgora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다. 반대로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는 표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인이라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나는 그냥, 동아시아에 달린 분단 국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이며, 이 공동체의 시민들이 서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시공간을 꿈꾼다.


자랑스럽다. 부끄럽다. 이 두 표현은 모두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다. 우리 언론은 외신들이 한국 이슈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타전하는 걸 까먹지 않는다. 심지어 올림픽 중계에서조차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순간을 외국 언론이 어떻게 중계 방송했는지를 보여준다. 외부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를 신경 쓰는 것은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내실을 빠트릴 때도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여지는 것'에만 급급하다는 얘기다. 팩트는 이렇다. 한국인은 OECD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고 중하위권의 임금을 받는다.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며, 최첨단 IT 강국인 한국은 자살률 1위 국가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자기 나라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은 미국인들이다. 미국에 가보면 그들의 애국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무슨 국경일도 아닌데, 주택가에는 거의 한 집 걸러 한 집씩 성조기를 달아 놓았다. 그런데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미움을 많이 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20세기 들어 가장 많은 침략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매년 1만 명 이상이 총기 사고로 죽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도 많은 미국인들은 그런 자기 나라를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멍청해 보일 지경이다.


나는 우리 공동체의 시민들이 그렇게 멍청해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자랑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이 멍청해지지 않으면 된다.


증오의 차원

별별 이야기 2018.02.24 17:27 Posted by cinemAgora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노인에게 물을 건네고는 1미터 전방에서 노인의 머리에 총을 쏜 영상이 페이스북에 돌아다녔다. 나는 도저히 그걸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공유할 수 없었다.


치킨 한 마리는 배달 안해준다는 데 분개한 나머지 치킨집 여주인을 온 가족이 출동해 집단 린치하는 영상도 보았다. 아버지로 보이는 듯한 남자는 여주인의 머리를 수차례 무릎으로 때렸다. 여기 한국에서 며칠전 벌어진 일이다. 역시 참혹해서 공유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노인의 머리에 총구멍을 낸 이스라엘 군인과 치킨집 여주인의 머리를 무릎으로 가격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은 차원이 다른걸까? 아니,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심상에 오로지 증오 하나만 남았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병사와 한국 아재는 똑같다.


어금니 아빠만 잔인한 게 아니다. 아파트 관리비 1천 원을 아껴보겠다고 경비원을 잘라 버리는 나의 이웃들도 그만큼 잔인하다. 꼴찌를 내팽겨친 김보름만 인성이 후진 게 아니다. "저 새끼들이 우리 일자리를 없애?"라며 이주 노동자를 폭행하는 아저씨들의 후진 인성은 지천에 널려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부조리는 쉽게 눈감는 우리가, 와 씨바, 신기하게도 TV에서 보여주는 부조리에는 정의의 사도들이 된다.


그건 도대체 왜 그런걸까?


간단하다. 그래도 안전하니까.


언론의 효과

별별 이야기 2018.02.24 17:25 Posted by cinemAgora

저널리즘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한 데는 2차 세계 대전이 촉매제가 되었다. 당시 연구자들은 독일인들이 나치의 말도 안되는 선동에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벌어졌다. 미디어 또는 언론을 동원한 선동 효과는 매우 광범위하게 위력을 떨쳤다.


그래서 저널리즘 연구 초창기에는 언론은 대중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언론에 반응하는 대중의 태도는 수동적이자 획일적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래서 이때의 저널리즘 연구 동향을 이른바 '대효과 이론' 또는 '피하주사 이론' '탄환 이론'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언론의 영향력은 강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이론은 1960년대 들어 비판과 반론에 직면했다. 대중은 그렇게 수동적이지만은 않으며 그들이 언론 보도를 접하며 갖는 태도는 개인마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선 언론 보도를 능동적이고 선별적으로 수용한다는 견해가 우세해졌다. 이걸 '소효과 이론' 또는 '제한 효과 이론'이라고 부른다. SNS 시대의 상황을 관찰하면, 소효과 이론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대효과 이론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SNS도 자유롭지 않다. 많은 이들이 주류 매체의 보도를 인용하고, 미디어 수용자들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종다양의 현상을 해석하는 태도 역시 주류 미디어의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프레이밍(틀짓기)은 언론이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정함으로써,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늠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이 프레이밍을 동원하는 현대 매스미디어는, 당연하게도 대효과를 노린다. 그들이 보는대로 사람들이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 나로선 마뜩지 않게도 실제로 그렇다.


여자 팀추월 선수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마녀사냥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선수들을 비난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또한 많은 이들이 언론이 그려 놓은 프레임을 내면화한 나머지, 그것을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이라고 착각한다. 한번 그렇게 관점이 잡혀 버리면 다른 의견을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인지적 구두쇠'이기 때문이다.


방송 기자 출신이며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언제나 이것이다. '미디어를 의심하라.' 왜냐면 그들은 수용자의 즉자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자극적인 상황을 보도 가치가 있는 사건으로 취사 선택하며, 또한 그것을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미디어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으란 말인가.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논조가 다른 2개 이상의 매체를 통해 스스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언론이 객관적이란 건 환상이다. 어느 언론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한국 언론은 한미동맹을 지지하며 반공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방송 언론에게 한국은 결코 "한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다.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 프레임에 포획되어 있다. 국제 보도는 다를까?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제 3세계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인 대신,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 정보 자체가 불균형적이다.


그래서 객관성은 수용자들이 추구해야 하는 미덕으로 남는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객관이란 불가능하다. 미디어의 보도 태도 자체가 다분히 주관적이며 수용자의 집단 의식에 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주관성 inter-subjectivity'이라는 개념이 유효성을 갖는다. 말 그대로 주관과 주관 사이의 지점이다. 참고로 하는 주관이 많아질수록 객관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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