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는 송중기의 영웅 활극과 황정민의 가족 휴머니즘과 소지섭의 로맨스를 일제강점기라는 양은 도시락통에 넣고 마구 흔들어 비볐다. 마구 비볐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비벼지지가 않았다. 이 영화의 감독은 류승완이 아니라 돈이다. 알파고가 연출을 했어도 이보다 더 잘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 <군함도> 흥행의 경마 중계식 보도가 지난 며칠 동안 전개된 양상은 아래와 같다.
역대 최단 기간 2백만 돌파-->
역대 최단 기간 300만 돌파 '타이' 기록 -->
'올해' 최단 기간 400만 돌파.
2천 개가 넘는, 역대 최다 스크린 확보 신기록을 세워 놓고 흥행의 신기록 행진은 주춤한 것이다. 영화판에서는 흥행세가 주춤하는 걸 ‘드롭(drop)’이라고 부른다. <군함도>가 예상보다 빠른 드롭세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하는 건, 아전인수가 아니다. 앞서 천만을 넘었던 <부산행>이나 <암살> 등의 네티즌 평점이 각각 8점대와 9점대였던 데 비해 <군함도>는 7점대에 머물고 있다. ‘역사 왜곡‘ 논란을 떠나 영화의 완성도가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일본 언론의 폄훼는 감독 류승완이 따로 낸 보도자료에서 지적한 바대로 “일본이 아직도 그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와 청산되지 않은 어두운 역사를 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영화적 재연 방식에서 그럴만한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일본은 물론 절대악으로 다뤄지지만, 영화의 기둥 플롯과 갈등 구조는 ’조선인 대 조선인‘이다.
류승완은 “친일파에 대해 계속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친일파는 징용된 조선 민중 속에도 있다. 심지어 주인공도 사실상의 친일파다. “살기 위해 협조했다“는 건 친일파의 대표적인 방어 논리다. 관객들은 그것이 불편한 것이다.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창작물“인 이 영화는 류승완의 주장대로 역사적 고증이 철저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시대와 교호하는 ‘역사 의식'의 부재를 고백한다.
이 영화를 통해 그 시대, 징용되었던 이들의 고통에 한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건 내가 너무 관념적이어서일까? 아니다. 이 영화의 관심사는 친일파이고 나발이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송중기의 벗은 상반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우리의 잘생긴 송중기만은 훈도시 입은 식민지 조선 민중의 굴욕적인 하체를 보여주는 데 예외가 된다.
나는 이 영화가 천 만을 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훈장을 받을 가치가 있는 영화가 아니다. 만약 이 작품이 천 만을 넘긴다면, 그건 영화의 힘이 아닌 순전히 배급의 힘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의 감독이 류승완이 아니라 ‘돈’이라고 말한 건 그런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