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영화 이야기 2016.07.16 09:28 Posted by cinemAgora

월드워Z+설국열차=좀비열차=부산행


영화 <부산행>은 <돼지의 왕><사이비>등의 묵직한 애니메이션을 연출했던 연상호 감독의 실사 연출작이다. 이 작품을 보고 역시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를 연출하는 건 다른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온통 좀비가 된다는 설정과 그래서 벌어지는 열차 안의 아수라장은 여러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그동안 연상호가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줬던 독기 어린 '엣지'가 빠져 있다.


<부산행>은 잠재력 있는 창작자가 대자본을 만났을 때, 그리고 대자본의 욕망인 이윤을 구현하려 할 때 어떻게 버벅댈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나는 이 작품이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달리는 KTX로 옮겨 놓은 것에 자본친화적 스토리인 부성 신파를 얹은 거 빼고 뭐가 다른 건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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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셔널 맨

영화 이야기 2016.07.16 09:26 Posted by cinemAgora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디 앨런이 나오는 영화와 그가 나오지 않는 영화.


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우디 앨런이 나오지 않는 우디 앨런 영화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매치 포인트>를 비롯해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미드나잇 인 파리> <블루 재스민>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이번 영화 <이레셔널 맨>에도 반갑게도(!?) 우디 앨런이 나오지 않는다. 호아킨 피닉스가 알콜에 절어 사는 철학과 교수 에이브로 나오고, 그를 흠모하는 여제자 질(엠마 스톤) 간의 로맨틱한 밀당이 오고 가는데, 사실 이건 영화적 포장지일 뿐이다. 우리 앨런이 말하고자 하는 건, 매우 우디 앨런적이어서, 그러니까 칸트를 비롯한 근대 철학을 현실과 괴리된 개똥 철학으로 냉소해 버린다.


에이브 자신이 그렇다. 그는 철학을 가르치지만 철학이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 칸트의 정언 명령, 인간이 추구하는 도덕이란 게 얼마나 모순되고 헛된 것인가에 대해 역설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너의 집에 한나가 숨어 있다. 독일군이 들이닥쳐 그녀가 어디에 숨었는지 묻는다. 철학적 가르침대로라면 너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네가 도덕을 행하는 순간, 그녀는 죽는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는 에이브조차 반(反)철학적 도그마의 모순 속으로 빠져 든다.


'비 이성적 인간'이라는 뜻의 제목 <이레셔널 맨>은 우디 앨런의 인간관을 직관적으로 대변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언을 풀어가는 방식은, 역시나 우디 앨런의 화법대로, 매우 고약하게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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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

영화 이야기 2016.06.20 16:27 Posted by cinemAgora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그 어떤 권리도 국가 권력이 알아서 흔쾌히 내어준 것은 없다. 여성 참정권도 마찬가지다. 일찍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는 서구 국가들에서조차 20세기 초반까지 여성들은 투표권을 가질 수 없었다.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덜 성숙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갖다 붙였다.


이 영화 <서프러제트>는 191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캐리 멀리건이 맡은 세탁 공장 노동자 모드 와츠는 남성 중심주의가 상식이었던 시대에 여성의 권리를 깨달아가며 투표권 쟁취에 나서는 투사로 변모해간다. 그녀는 단지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남편에게 쫓겨나며 아들까지 빼앗긴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단단해진다.


메릴 스트립은 단 한 장면에 등장하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명연설을 인상적으로 재연한다. "우리는 법을 파괴하기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여성을 위한) 법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상식이 된 여성의 동등한 참정권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굳은 신념으로 비이성적 사회에 반기를 든 용감한 여성들의 피와 희생에 의해 쟁취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귀족 부인이 아닌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이었다는 걸, 이 영화는 확인시켜준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서구 민주주의의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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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

영화 이야기 2016.06.20 16:25 Posted by cinemAgora

영화 <비밀은 없다>를 보는데 자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고백>의 나카시마 테츠야의 냄새가 났다. 오마주는 영화의 전통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스타일을 위해 스토리의 정합성을 희생한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나는 이경미의 전작 <미쓰 홍당무>에서 우연치 않게 드러난 천재적 개성을 보았다면, 이 영화에선 '내가 얼마나 천재인지를 보여주겠어' 하는 조바심을 보았다. 그래서 반짝이되 여운이 길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가 알게 모르게 박찬욱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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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영화 이야기 2016.06.02 12:42 Posted by cinemAgora

이토록 영롱할 수 있을까? 또한 이토록 가슴 아플 수 있을까? 초등학교 4학년 왕따 소녀 선이가 어른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 수줍음 많고 숫기 없는 아이는 왜 친구를 가질 수 없는가. 왜 어렵사리 얻은 전학온 친구마저 빼앗겨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선이의 잘못인가. '다름'을 외톨이로 만들어버리는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것을 방관하는 어른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우리의 인간성 자체가 원래 그렇게 돼 먹은 것인가.


영화 <우리들>(감독 윤가은)은 꽃처럼 아름답고 해맑은 아이들 속에서 어떻게 '소외'가 만들어지는지를, 딱 그 나이의 눈높이에서 포착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 영화가 아동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등학생을 등장시켰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비겁하고 폭력적인 편가르기 심리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와도 같다. 올해 독립영화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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