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의 원리 가운데 "양질 전환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순의 양이 차고 넘치면 더 이상 기존 구조의 그릇으로는 견딜 수 없는 임계점을 맞이하게 되고, 그리하여 기존 구조가 질적으로 바뀌는, 즉 그릇이 바뀌는 일종의 혁명적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건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데도 아주 유효한 개념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앙시앙레짐(구체제)"이라고 일컬어지는 봉건 왕정의 모순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발발했습니다. 우리의 촛불 혁명은 박근혜 정권이 품고 있던 구시대적 모순이 주권자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일어났고, 실제로 우리는 그 연장선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변화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미투운동이 촉발한 폭로의 릴레이 역시 난데 없이 생겨난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왔고, 그것이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상징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은, 이것이 무슨 유행 같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순의 양적 팽창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상황이므로 반드시 질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성 인권,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시대가 요구하는 질적 전환의 상황으로 이어지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꽤나 높고 두텁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 사회는 아버지(남성)의 율법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117위입니다. UN 가입국 기준으로 했을 때 중하위권이고 OECD 기준으로는 최하위권입니다. 아프리카의 튀니지라는 나라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나라보다 우리의 성평등 지수가 낮습니다. 여성의 노동 환경 역시 최하위 수준입니다. 하다못해 여성 가족부 산하 여성인권진흥원의 직원은 100% 비정규직입니다. 고용 안정의 지표인 유지 취업률의 남녀 차이는 취업 기간이 길수록 더욱 벌어집니다. 경향적으로 여성이 한 직장에 머무는 기간이 남자보다 짧습니다.(이런 거 관심이라도 있습니까? 남자들?)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 환경은 어떻습니까. 뉴스에서 남성 앵커는 가루지기처럼 무뚝뚝하게 생겼어도 여성 앵커는 화사하게 꽃처럼 앉아 있는 경우,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기상 캐스터들은 거의 다 S 라인 몸매를 부각시키는 원피스를 입고 나옵니다. 정치, 경제 뉴스는 남자 앵커가, 생활, 문화 뉴스는 여성 앵커가 진행하는 게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방송 언론의 성역할부터 불평등합니다. 나는 그것자체가 문화적 성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직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언론은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 스포츠 소식을 보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오드리 아줄래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언론은 여성 선수의 외모와 가족 관계에 주목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타성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아랑 선수는 스케이팅 실력이 훌륭해서 칭찬 받은 게 아니라 언론에 따르면 "외모도 훌륭한데 인성까지 훌륭하기 때문"에 찬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여성에게 외모는 사회적 자산으로 당연시됩니다.


그러므로 미투운동이 양질 전환의 법칙의 적용을 받기 위해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상황은 위계와 권력을 이용해 강제됩니다. 양성 평등 사회는, 성폭력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입니다. 성폭력의 비인간성이 우리 사회에 이만큼 만연해 있다는 걸 성토하고 분개하는 걸 넘어서 여성이 자기 몫의 역할과 비중을 확보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개선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미투운동은 결코 일시적 상황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2, 제 3의 안희정이 끝도 없이 나올 겁니다. "세상 무서워졌다"는 한탄은, 멍청한 남자들의 술자리 안주로 남겠죠.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고합니다. 김대중을 존경했던 당신의 아내도, 노무현을 사랑했던 당신의 딸도, 문재인을 지지했던 당신의 손녀도 안희정 같은 인간의 수행비서가 될 수 있는 나라를 물려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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