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언론 시사 후기

영화 이야기 2009. 4. 24. 21:10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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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감독 박찬욱의 영화적 감수성이 마이너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아, 마이너하다는 게 결코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광이고 그의 작품에는 그의 예술가적 자의식에 영향을 미친, 때론 대중에겐 많이 낯설기도 한, 온갖 영화에 대한 오마주 또는 비틀기로 가득차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존재하지 않은 영화 언어를 창안한다기보다, 있어 왔던 장르적 언어들을 그의 독특한 프리즘을 통해 번역하고 제시해 왔다는 얘기다. 이번 작품 <박쥐>에서도 그는, 뱀파이어라는 익숙한 설정을 빌어와 누아르와 호러를 코미디와 뒤섞으며, 말하자면 장르를 뒤틀고 논다.

기획영화였던 <공동경비구역 JSA>를 빼면, 장편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과 <삼인조>, 이른바 복수 3연작, 그리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과연 엄밀한 의미에서 대중적이었다고 주저없이 평가할 수 있을까? 그를 칸영화제 시상식 무대로 호명한 쿠엔틴 타란티노에 더 가까운 감수성을 지닌 듯 보이는 박찬욱은, 그럼에도 한국의 언론과 극장가에서만큼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대우를 받아 왔다. 확실히 기현상이다. 아, 또 한번, 이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기이한 부조화가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요소로 작동할 것인가 궁금하다는 얘기다.

스즈키 세이준만큼 괴상하고 타란티노만큼 폭력적이고 기타노 다케시만큼 메마르고 길예르모 델토로만큼 강렬한 세계, 어쩌면 주류적 취향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영역의 상황을 연출해 놓고도 박찬욱은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용산 CGV의 거의 전관을 빌어 시사회를 열고, 기자와 평론가들을 한 시간 일찍 오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이 압도적인 영화 외적 상황에서 박찬욱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는 과연 타협했을까, 저항했을까. 아니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했을까. 호기심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 견해로는, <박쥐>는 그의 전작들만큼이나 강렬한 영화다. 그런데 '전작들만큼'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 말은 내가 이 영화에서 전작을 뛰어 넘는 새로움과 전율을 얻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평가는 일종의 역차별이다. 그러니까 그가 박찬욱이기에 할 수 있는 얘기다. 이걸 만약 낯선 신인이 연출했다면 '보석 같은 발견'이라는 상찬이 뒤따랐겠으나 박찬욱의 신작이기에 어지간한 강렬함도 밋밋함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미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목격했던 그것들이 <박쥐>에도 있다. 하나 더 추가됐다면, 연예 언론들이 앞다퉈 대서특필할 게 뻔한 송강호의 성기 노출 신이 포함됐다는 것.(어쨌든 매우 필요하고도 적절한 노출이었다.)

이토록 강렬하고도 독특한 영화에서 나는 왜 전율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왜 후반부부터 지루한 동어반복처럼 느껴졌을까. 원인을 따지는 건 여전히 헷갈린 문제다. 이렇게 분류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박찬욱의 문제, 그리고 어쩌면 그의 영화를 소비하는 우리, 아니 나의 문제. 박찬욱의 문제는 마이너한 감수성이 거대한 브랜드로 고착된 데 대한 압박을 수용하지도 벗어 던지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나의 문제는 그의 브랜드가 실은 뒤틀린 짝퉁을 추구하지만 명품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늘 미장센이 차고 넘치는 박찬욱의 세계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놓고도 그에게서 나의 협소한 영화적 심미안과 세계관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 줄 또 한방을 기대한다. 정확히 말해 익숙한 건 기대다. 헌데 내게 <박쥐>는 익숙한 기대에 익숙한 방식으로 화답하는 영화로 느껴졌다. 물론 강렬하다. 그러나 그 강렬함은 우리 영화의 대표 브랜드, '타란티노적 스필버그'의 건재를 확인시켜주는 강렬함이다. 복수니 욕망이니 증오니 죄책감이니 구원이니 하는 화두는 핑계로 증발되고 스타일과 패션만 남는 것. 영화는 없어지고 배우와 감독만 남는 것. 어쩌면 우리와 저널리즘이 박찬욱을 소비하는 방식이 딱 그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고? 나쁘진 않았다. 놀랍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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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스포일러 다량 함유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에 대해 불만들이 많은 것 같다. 원래 제목은 <비키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인데 국내 수입사에서 무슨 생각인지 제목을 이상 야릇하게 바꿨다. 헌데 영화를 보고 나니 용서가 된다. 제목의 목적이야 원래 낚시질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제목도 아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내 남자의 전 아내도 좋아'이겠지만 영화의 핵심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제목에 끌린 관객들이라면 그 놈의 아내가 언제 나오나 지루한 기다림을 참아내야 했을테지만 말이다.

언제나 귀여운 수다 영화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우디 앨런 할아버지가 이번에도 착착 감기는 한 편의 농담극을 완성해 제시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나는 이 영화를 욕망에 대한 영화로 보고 싶다. 그러니까 욕망을 추구하는 네 사람의 서로 다른 방식을 나열해 놓고 당신은 어느 쪽을 선호하냐고 묻는 영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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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 이 여자는 늘 모험적 관계를 추구하는 욕망의 화신이다. 어느밤 우연히 다가와 섹시 작렬 작업 멘트를 날리는 스페인 화가 후안(하비에르 바르뎀)한테 '뻑' 간다. 동행한 친구 빅키(레베카 홀)는 어이 상실이다. 남자가 다짜고짜 쓰리썸 섹스를 요구했기 때문인데, 이 여자의 세계관에선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두 여자, 남자가 모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오비에도로 향한다.

크리스티나가 중요한 순간에 위궤양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타 데이트에 나선 빅키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내 후안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니까 섹스를 했다. 현실론자 빅키 후퇴하고 다시 낭만주의자 크리스티나 전진. 아예 후안과 동거를 시작해 알콩달콩 모드로 진입할 찰나, 또 한명의 여성 등장해주니 바로 후안의 전처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다. 이 여자 포스가 장난 아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던 크리스티나는 점점 이 여자와의 레즈비언적 관계에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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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하자면, 크리스티나와 빅키는 욕망 추구의 두가지 방법론을 실천하는 주체이며 후안과 마리아는 그들의 욕망을 수렴하거나 반사하는, 일종의 대상들이다.  똑같은 대상에 대한 욕망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구하는 두 여자의 방법론은, 그러니까 저돌형과 망설임 형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는 일단 저질러보고 평가하고, 비키는 위험 요소를 우려해 머뭇거리며 천천히 이끌리는 방식을 택한다.

우디 앨런은 흥미롭게도 두 여자의 여정을 한 곳으로 귀결시킨다. 욕망을 실컷 추구한 크리스티나는 또 다른 새로움을 찾고 싶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망설임 끝에 저지른 빅키는 '죽을 뻔' 한다. 두 사람에게 남는 것은 똑같은 허무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래도 두 사람은 남은 인생동안 대동소이한 방법론으로, 그러니까 저돌적이거나 혹은 머뭇거리며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남는 것은 도돌이표처럼 찾아오는 허무함 뿐일지라도 다시 그렇게 무언가를 애타게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삶의 숙명이 아니던가. 그걸 장난기 섞어가며 드러내는 우디 앨런의 이야기에는 그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냉소와 연민이 교차한다.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이 숨어 있다.

이걸 어쩌면 진보와 보수가 오십보 백보인, 말하자면 경박한 자유와 위선적 경건함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미국적 상황에 대해 그가 느끼는 지루함의 표현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을 유럽에 데려다 놓고 반응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영화 한 편으로 풍부한 수다의 여지를 남겨주는 우디 앨런은 이번에도 그 연세에 걸맞지 않는 꽤 발칙한 농담 한자락을 객석에 툭 던져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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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

별별 이야기 2009. 4. 23. 12:53 Posted by cinemAgora
요 며칠 3M흥업의 포스팅이 뜸했습니다. 어제 긴 침묵을 보다 못한 '웃긴 고양이님이 멋진 글을 올려주셨습니다만, 요즘 흥업 멤버들이 잠깐 이곳을 등한시(?)한 데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야 물론, 가끔 세상에 끽 소리만 냈다가 두들겨 맞는 게 힘들어 요즘은 허구헌날 영화 프리뷰만 올리고 있는 제 자신이 살짝 지겨워진데다 대학원 중간시험까지 겹친 탓이 크지만, 얼마전 PD the ripper님이 미리 고지한대로 '엔터팩토리'라는 대중문화 웹진을 준비하느라 일종의 숨고르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중 문화 각 분야에 숨은 유능한 필진들을 찾아내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곧 3M흥업 멤버들의 매너리즘을 폭로할 신선하고도 도발적인 몇 분의 필진들이 가세할 찰나입니다. 두둥~!(사실 이 말씀은 엔터팩토리 편집장을 맡으신 PD the ripper님이 해주셔야 하는데, 자뻑 단수가 한 수 위인 제가 슬쩍 가로챕니다.^^)

3M흥업이야 필자들의 100% 자발적 의지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만, 엔터팩토리는 정기간행물 등록을 마친 공식 미디어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영리적인 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필진들 원고료는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것을 통해 기존의 대중문화 담론과 차별화되는 새롭고도 도전적인 시각을 제시함과 동시에 돈도 벌고 싶다! 이 말씀 되겠습니다.(너무 솔직한가요?)

그렇다면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지난 화요일 있었던 준비 모임에서 PD the ripper님이 그러시더군요. "제 2회 200만 원으로 영화찍기를 하는 게 목표"라고. 전 반대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연말에 인디 밴드 발굴 프로젝트도 함께 해야 한다"고요. 꿈이 야무집니다. 꿈만 야무지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어쨌든 곧 시동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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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그간 뜸했습니다. ^^ 블로깅도 뭔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얼마전까지 창간 1주년 기념호를 만들어내느라 좀 정신이 없었거든요. 휏휏~ 영국 라이선스 매거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이하 <데이즈드>)를 한국에 들여 와 창간한 지 벌써 1년입니다.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벌써 1년이라니 ㅠ.ㅠ 왜 눈물이 나는건지. 흑흑..  아무튼, 어제 13번째의 잡지인 <데이즈드>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아쉬움도 물론 많지만, 뿌듯한 페이지도 몇몇 있네요.  그 중 하나가 바로 5명의 셀러브리티(뮤지션 이상은, 타이건 JK, 배우이자 사진가인 조민기, 디자이너 정욱준, 아티스트 박미나)가 스페셜 게스트 에디터로 참여한 특집 기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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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진진했던 게스트에디터는 바로 타이거 jk였습니다. 아버지가 기자 출신이시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보고 자란 것이 있어서인지, 그는 참으로 훌륭하게 이 작업을 처리해냈답니다. 기획부터 섭외, 촬영 컨셉트 확정, 촬영 진행, 기사 작성까지. 다 혼자서 해치우는 '저력'을 발휘했죠. 결과물은 윤도현 밴드와 리쌍, 그리고 모 여배우에 대한 인터뷰 형식으로 나왔습니다만. 처음 리스트는 김제동, 윤도현, 리쌍 등이었죠. 당연히 할 수 있을거라 믿었나봅니다. 한데 섭외에 응한 이는 윤도현과 리쌍 뿐. 타이거 JK는 갓 수습을 뗀 초보기자처럼 잔뜩 풀이 죽어 '자학모드'에 들어가기 시작했죠. "처음엔 다 그런거야"라며 등이라도 톡톡 두드려주고 싶을 만큼요. 결국 그는 스케줄 상 도저히 인터뷰가 불가했던 여배우를 '가상의 여배우'로 촬영진행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어쨌든 자신의 배당을 가뿐히 해치워버렸답니다. 뚝딱 쓴 원고를 마감일 이전에 날린 것이나, 이후에도 계속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놓지못해 계속 수정을 요구해 오는 꼼꼼함까지. 정말 그를 위해 책상을 하나 비워놓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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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타이거 JK가 직접 촬영 진행하고 글을 쓴 원고입니다. 요즘 이런저런 화두로 도마 위에 올라있던 윤도현의 상황을, 지인으로서의 주관과 게스트에디터로서의 객관을 잘 버무려, 그럴 듯한 기사로 완성했답니다. 타이거 JK의 진심이 담긴 인터뷰,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WHY BE? TO COEX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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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옆에서 목격한 윤도현의 색깔은, 빨간색도 혹은 파란색도 아닌 하얀색이다. 사람들은 하얀 그의 얼굴에 색칠을 하고, 낙서를 한다. 때로는 가꾸어주려 꾸며주고, 때로는 침을 뱉고 염분을 뿌린다. 옆에서 보는 나는 답답해하고, 대신 억울해한다. 더럽혀진 그의 얼굴에 물을 뿌려주려 하지만, 윤도현은 그냥 통기타를 짊어지고 노래한다. 처음 윤밴과 마주친 날은 아주 더운 한여름, 어느 지방 공개방송에서 풍선들이 파도 치는 관중 앞편, 무대 뒤편의 구석 천막에서였다. 밴드들은 무덤덤하게 악기를 닦고, 튜닝을 마치고, 무릎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윤도현은 “어! 아!”거리며 목을 풀고 있었다. 좀 어려보이는 후배들은 인사하지 않았다. 스타들은 그들을 지나쳐갔다. 하지만 윤밴은 즐겁게 웃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자기들 차례를 기다렸다.

같은 처지이던 날 반갑게 맞아주고, 우린 어느덧 형제 같은 사이가 됐다. 내가 아는 진실은 이것이다. 윤밴은 연주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또 그들을 원하는 관객이 있는 곳으로 여행 다니는 ‘blues travelers’다. 항상 만나면 음악 이야기를 한다. 아주 시시하게, “나 이런 곡 나왔어. 아, 아!” 그리고 노래한다. 자기가 쓴 노랫말과 멜로디에 킥킥거리며, 함께 하자고 한다. 가끔 이런저런 기사들이 메인에 떠서 윤밴이 사회의 적이 되었을 때, 많은 누리꾼의 밥이 되어 꼭꼭 씹힐 때,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 특유의 무덤덤한 톤으로 윤도현은 말한다. “나 그런 인터뷰한 적 없는데. 염병~.” 그리곤 또 기타 들고 노래한다.

술에 취해서 어깨동무하고 거리를 다니며 소리 지르고, 가끔 알아봐 주는 이들에게 “고맙습니다” 하며, 가끔 무례한 취객에게도 하이파이브를 날리고 “rock n roll!”을 외치며 그들을 웃기는 윤도현은 동네 형 같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동네 형. 특히 소외되거나 왕따 당하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정이 많고, 오해받는 이들의 오해를 풀어주려 노력한다. 노브레인, 크라잉넛부터 김C, 강산에, 그리고 전인권 선배님까지 난 윤도현을 통해서 만났다. 많은 장르의 음악인들에게 연결고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전혀 다른 계통의 인간들을 친구가 되게 해준다.

정작 자신은 숫기없고, 오해받고 무시당할 때 아무 말 못한다. 말하지 않는다. ‘overnight sensation’으로 사랑 받을 때도 윤도현은 한결같았다. 전혀 우쭐하거나, “기회가 왔구나”라며 피식거리지 않았다. 윤도현밴드는 단순히 월드컵을 응원했다. 아니 진실이 담긴 응원 소리였다. 연주가 즐거웠고, 분위기가 사랑스러웠고, 열정에 목말라하던 형들은 그저 같이 기뻐했다. 많은 방송과 광고판까지 휩쓸 때, 비판자들은 음악인으로서 그가 외도했다고 했고, 실제론 정치적이지 않은 그가 어느새 혁명가가 되고, 공공의 적이 되었다.

정이 많은 윤도현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활동할 기회를 주었다. 생각보다 작은 회사에 있는 그는 회사의 가장 노릇을 하고, 열심히 살림했다. 기타, 피아노, 드럼까지 연주하는 재주꾼이고, 영원한 소년이다. 나랑 어울리며 랩질하고, 비보이들과 어울리며 춤질하고,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이런 윤도현의 모습을 기회주의자라고 질타했다. 윤도현은 그저 꿈 많은 어린 소년이었을 뿐인데. 아름다운 아내 자랑하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 지루할 정도로 길어지고, 딸과 아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자상한 남편이고 아버지다. 그는 혼자 냇가에 가서 노래하고, 엄마한테 가서 김치 얻어먹고, 나한테 자랑한다. 최고의 김치를 당신의 어머니께서 만드신다고, 한번 먹어보라고. 윤도현 아내의 눈물, 딸의 울음소리를 난 느낀다. ‘잘 되고 있는 놈이 뭘 그리 헝그리한 척하냐’고 모두 손가락질하지만, 윤도현은 녹음실에서 먹고 자고, 시골 산에 박혀 소리 지르고, 작은 앰프에 신기해하며 기타치고, 음악, 음악, 음악만 말하는 촌놈이다.

요즘은 그 하얗던 윤도현이 약간 누렇게 빛바래 있다. 너무도 완벽하게,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운이 찾아와, 윤도현은 사람들이 칠해준 색깔을 모른 채 노래했고, 그 색깔이 싫어진 사람들은 이제 윤도현을 욕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꼬마 로커 윤도현은 이제 눈치 채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다. 옆에서 보는 난 정말 억울하고 답답한데. 어쩌면 이런 윤도현의 한결같은 태도, 무뚝뚝함, 저항 아닌 저항이 윤도현에겐 최고의 용기일 수도 있다. 아직도 널 필요로 하는 팬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노래하라. (wrriten by tiger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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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코미디 '7급 공무원'

영화 이야기 2009. 4. 14. 23:12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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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코미디 영화의 목적은 관객을 간지럽히고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겨주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촌철살인의 풍자까지 담아낸다면 감읍할 노릇이겠지만, 대개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관객들은 그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웃고 나서 뭔가 뻥 뚫린 듯한 시원함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전제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는 코미디 영화 참 드물다. 웃으려고 표사고 들어갔다가 짜증만 왕창 얻고 나오는 경우 많고, 고릿적 유머에 수준 낮은 음담패설적 농담으로, 웃을 만반의 준비 하고 있는 관객들의 허파에 찬물 확 끼얹어 버리는 경우 왕왕 있다. 내 기억으로는 지난 몇년 동안 대부분의 한국 코미디 영화들이 그랬다. 그러니까 웃기는 데 서툰 영화들의 행렬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처럼 나온 코미디 영화 <7급 공무원>을 보러갈 때도 기대 수준을 확 낮췄다. 그러니까, 왠만하면 웃어 주자(요 대목이 중요하다. 웃자가 아니라 웃어주자!) 나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것이다. 한숨 쉬며 코미디 영화 보는 기분이 어떤지 알기에 이건 순전히 자기 방어적인 워밍업이었던 셈이다. 한편으로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적 상황으로 대충 짜깁기 한 썰렁 유머의 파노라마 아닐까 싶은 걱정이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니 나는 시사회장 앞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하며 자기 최면까지 걸었다. 코미디 영화 한 편 보면서 심호흡하는 기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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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영화 시작 초반에는 웃어줄만 했다. 그러니까 별로 웃기지 않는 대목이지만, 그냥 웃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내내 웃어주기만 하다 끝나면 어떡 하나, 하는 또 다른 걱정이 스멀 스멀 고개를 들 무렵, 희한하게도 진짜 웃기는 거다. 계속 웃긴다. 2~3분에 한번씩 나도 모르게 키득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말았다.

나의 반응을 근거로 <7급 공무원>이 훌륭한 코미디라고 즉각적인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무리일 터이나, 적어도 이 영화의 제작진이 관객들을 쉼없이 웃기기 위해 꽤 많은 고심과 치밀한 준비를 했다는 흔적만큼은 역력했다. 김하늘이 첫 장면부터 섹시한 자태 뽐내시며 수상 오토바이를 몰며 야심찬 첩보 영화인 척 하는 영화는, 이내 코미디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첩보원 커플이 서로 첩보원이 아닌 척 해야 하는 설정적 코미디에, 나름 해외파라며 거들먹거리는 강지환이 이론에는 강하고 실전에는 약한 죄로 사사건건 좌충우돌하는 상황적 코미디가 얹힌다.

신태라 감독의 장면 설계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대신, 어울리지 않는 요소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전형적 코믹함과 상황과 대사에서 예기치 않게 파열되는 유머를 적절히 뭉치고 풀면서 의도에 맞게 딱딱 끄집어 내고 있다. 말하자면, 슬랙스팁과 개그의 배합이 그럭저럭 맛깔스럽다.

일등공신은 물론, 완성도 높은 각본이겠지만, 남우 주연 강지환은 이등공신 쯤은 된다. 그는, <영화는 영화다>에 이어서 장르의 목적에 자신의 연기 패턴을 맞추는 데 있어 꽤 주목할만한 감각을 선보인다. 크게 웃기지는 않았으되, 여전히 끝내주는 몸매와 리액션 연기로 존재 증명을 한 김하늘은 삼등공신이다. 류승룡과 장영남 등 수준급 조연들이 선보이는 억지스럽지 않은 코미디도 한 몫을 했다. 아무튼, 한숨만 나오는 계절에 모처럼 웃게 해주니 이 영화가 왜 아니 고맙겠는가. 12세 관람가. 4월 23일부터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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