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살인' 어설픈 야심

영화 이야기 2009. 4. 2. 12:1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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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살인>은 이상한 영화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척하다가 너무 일찍 범인(인 게 확실해 보이는 이)을 노출해 버린다. 그렇다면 추리의 향방도 자연스레 살인의 동기와 배후에 집중되는 게 지당할 터.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이 관객은 이미 뻔히 알고 있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한참동안을 할애하며 이것이 일종의 트릭임을 자백한다. 등장 인물과 관객이 바라보는 지점의 이 불균형은 지루함을 유발한다. 그건, 트릭에 걸려든 관객들에게 준비한 회심의 반전이 상쇄하기엔 너무 큰 지루함이다.

여성 발명가 순덕(엄지원)의 개입으로 얼핏 '별순검' 냄새가 나는 인물구조를 만들었지만, 이들은 마치 탐정 추리극이라는 홍보 문구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는 듯 비약적인 추리를 통해 범인의 향방을 뚝딱 알아맞춘다. 사설탐장 진호(황정민)는 뒤늦게 범인을 향해 돌진하고, 그와 짝패인 의학도 광수(류덕환)는 꽤 중요한 일을 할 것처럼 얼쩡대다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뒤로 물러나 있다. 그 뒤로는 차라리 활극이다. 그 사이 추리물 특유의 재미는 급속도로 하강한다.

<그림자 살인>이 이상한 또 한가지 이유는 이 영화가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후경으로만 배치될 뿐, 딱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당대의 공기와 사건이 어떤 맥락을 갖는 건지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비싼 돈 들여 일제 시대를 재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흑인 신부가 등장하는 등 고증의 세밀함이 떨어지는 장면도 맥 빠지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기획과 연출은 야심차 보이지만, 왠지 어설프다.

고백컨대, <그림자 살인>을 시사회에서 본 뒤 일주일이나 지나버려 이 이상 더 구체적으로 영화를 논하기는 어렵다. 미덕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걸 영화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탓으로 돌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극장문을 나서며 뇌리에 떠올랐던 생각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제목은 잘 지었으니 초반에 손님은 좀 들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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