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 조사실에서...

별별 이야기 2007.05.21 21:54 Posted by PD the ripper
당시, 운동권에는 '정리'라는 용어가 있었다. 만약, '짭새'에게 붙잡혀 누군가의 이름을 불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미 거창한(?) 이유로 수배된 인물에게 '몰아주기'를 감행하라는 것. 어차피 감옥행이 확정된 사람에게 자잘한 죄목 몇 개쯤 덧붙여도 형량에는 별 차이가 없으니, 노출되지 않은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노출된 꼬리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그 시대의 불문률이었다.  

그해 5월에 '정리'하기로 예정된 인물은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 노태우 처단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아무개 선배였고, 지침에 따라 나 역시, 조사담당 형사에게 '정리'를 시작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호구조사를 거쳐, 집회 참여과정을 시간대 별로 타이핑 하던 형사가 드디어 내 이름표가 달린 철근을 손에 들었다.

형사 :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누가 준거야? 박아무개야?
나    : 네? (최대한 어리둥절하게...) 그거...제꺼 아닌데요?
형사 : 죽을래? 이름표 안보여? 똑바로 말 안해?
나    : (잠시 어벙벙한 표정으로 뜸들이기...타이밍이 중요해, 타이밍.) 아~ 그거요?
      그게 제께 아니구요. 경찰들이 저를 잡으니까, 다른 학생들이 경찰한테 던진 거에요.
      근데, 잘못 던지는 바람에, 제가 맞아가지고...
      (뒷머리를 보여주며) 여기 보세요. 머리가 깨졌잖아요. 제가 제 머리를 때리겠어요?
      (신경질 난 것 처럼) 아이~ 씨, 땜통 생기겠네.
형사 : 니가 갖고 있던 게 아니라고? 조사해 보까?
나    : (제발...조사하지마, 조사하지마...) 저 잡은 경찰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그게 끝이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애써 감추며 거짓말을 토해냈건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뭐야, 이거. 뭐가 이렇게 쉽지? 내가 '내츄럴 본 라이어'야? 아니면, 조사담당이 초보형사야?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유치장에 돌아오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친구였다. 시위대열 맨 앞에 있었던 녀석은 최루탄을 뒤집어 쓰는 바람에 ,얼굴이며 목은 물론, 팔까지 몽땅 수포로 뒤덮여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성을 자랑하는 한국산 최루탄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 고통으로 신음하는 친구 옆에 앉아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낸 나는, 조사실 상황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 담당 형사는 왜 그렇게 간단하게 조사를 끝냈을까? 철근소지면 무조건 구속사유인데, 딱 한 번 묻고 끝나다니. 설마, 이미 구속이 확정된건가?

잠시 후, 끙끙거리던 친구가 불려 나갔다. 조사실로 가는 군. 어라? 조사실로 향했던 친구는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나    : 왜 이렇게 빨리 오냐?
친구 : 최루탄 냄새 난다고, 저녁 근무자한테 조사 받으래.
나    : 뭐? 저녁 근무자?

순간, 번쩍~ 하며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Good cop, Bad cop'. 르와르 영화 속에서 숱하게 봐왔던 취조실 장면과 함께 떠오른 그 단어가 모든 의문을 푸는 열쇠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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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 오피스(2007.05.18~2007.05.20)
순위  영화명 개봉일 스크린수
서울/전국
서울주말 전국누계
1  스파이더맨3 05.01 145/627 122,600 4,577,000
2  못말리는 결혼 05.10 69/315 86,700 1,008,500
3  넥스트 05.17 41/140 85,000 259,000
4  눈물이 주룩주룩 05.17 42/136 26,600 89,300
5  극락도 살인사건 04.12 39/196 13,800 2,244,100
6  아들 05.01 43/235 11,400 478,300
7  더블타겟 04.26 17/82 11,000 501,000
8  저 하늘에도 슬픔이... 05.17 15/83 10,000 29,200
9  리핑: 10개의 재앙 04.19 22/75 7,800 697,700
10  내일의 기억 05.10 28/95 7,100 83,000

별로 할 말이 없는 박스오피스다. <스파이더맨 3> 500만 바라보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김수미와 임채무가 의기투합한 '못말리는' 코미디 <못말리는 결혼> 100만 돌파했다.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잘 될줄은 솔직히 몰랐는데, 이런 유치무쌍 애드립 코미디가 시장에서 먹힌다는 건 약간 놀라운 발견이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이 영화의 감독에게 '관객론' 강의라도 들어야 할 것 같다. 주제는 아마, '대중 코미디의 유치함, 그 시장적 성공 사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새 영화 가운데 니콜라스 주연의 액션 스릴러 <넥스트>가 그나마 선전했다. <눈물이 주룩주룩>은 사토시 오빠 인기 덕에 '조금' 모았다. 일본 영화 <내일의 기억>이 서울에선 형편 없었지만 지방에서 선전한 게 눈에 띈다. 가족 영화의 범주 안에 들기도 하지만 '중년 멜로'적인 컨셉을 들이댄 이 영화에 서울보다 오히려 지방에서 반응이 온다는 건 또 한번 약간 놀라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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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사랑

영화 이야기 2007.05.21 10:27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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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본 <내일의 기억>도 그렇고, 지난 2005년 일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언젠가 책 읽는 날>도 50대 장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와타나베 켄이 주연한 <내일의 기억>은 일찍 찾아온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을 계기로 중년부부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위안이 돼 주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언젠가 책 읽는 날>은 수 십년이 지난 뒤에야 서로를 향한 감정을 아주 짧은 순간 확인하게 된 어느 행복하고 불우한 50대 남녀의 애틋한 이야기다.

두 영화 모두 이른바 '50대 멜로'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이런 유의 영화가 만들어질 뿐더러 시장에서도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황혼 이혼의 증가와 같은 일본적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읽을 수 있을테지만, 인생에서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적 파장이 10대, 20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영화는 보여준다. 게다가 늙어도 저렇게 예쁘게 늙을 수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내일의 기억>의 히구치 카나코나 <언젠가 책 읽는 날>의 다나카 유코(아래 사진) 같은 배우들의 존재감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중장년층 배우들이 시대의 구미에 맞춘 코믹 이미지로 재부상하는 게 고작인 우리로선 더욱 그렇다. 흰머리가 늘어도, 보톡스 주사를 맞지 않은 주름살 얼굴이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포획됐을 때 사람의 표정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두 편의 영화는 웅변한다.

한국영화는 어떤가. 길거리에서 '사랑한다'를 소리 높여 외치는 걸 멋으로 아는, 에너지 과잉의 20-30대 로맨스만 존재한다. 애들이 불치병에 걸려 징징 짜고, 심지어 애들이 치매까지 걸려 오열한다. 삶도 제대로 모르는 애들이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의 몸을 어떻게 탐할 것인가만을 전전긍긍하는 리비도 과잉의 짝짓기 해프닝이다. 사랑이란 게 정녕, 그뿐인가?

사랑을 통해 삶을 더 깊게 볼 수 있다면, 아이들의 전유물으로 전락한 로맨스를 해방시켜야 한다. 어른들이 사랑하는 풍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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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5월, 유치장에서...

별별 이야기 2007.05.20 00:07 Posted by PD the ripper
광주 동부 경찰서의 5평 남짓한 유치장엔 30여명쯤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지. 얼굴과 상의는 피범벅이요, 바지에는 군화발 자국이 곳곳에 찍혀 있었으니, 영락없는 좀비 몰골. 유치장 담당 형사가 보다못해 화장실로 데려가 씻으라길래 별 생각없이 씻다말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치장에는 학생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잡혀가는 학생들을 구해주려다 괘씸죄로 끌려온 '아저씨들'도 몇 명 있었는데, 이 분들이 걸작이었다. 처음에는 유치장이 떠나가라 수다로 소일하더니, 나중에는 우유팩을 잘라 연필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라? 뭘 저리 열심히 그리나?  잠시후, 그들은 우유팩 화투로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고~ 스톱! 아...c-bar 쌋다...

고스톱 판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나를 부르더니, 동부서 뒷쪽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주고 약준다더니... 머리통 깨고, 이제는 꿰매준단다.  어쨋든, 3바늘쯤 꿰맨 것 같다. 그리고는 조사실로 이동. 드디어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사실, 백골단에게 잡혀 '닭장차'를 타고 오는 순간부터, 병원에서 바느질 당하던 순간까지 내 머리속을 짖누르던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들고 있던 철근.  당시, 시위하다 잡혀오는 학생들이 워낙 많다보니, 시위 방법에 따라 어느 정도 합의된(?) 형량이 있었다.

단순가담은 훈방. 투석은 구류. 철근 또는 화염병 소지와 투척은 구속. 나중에 재판을 받게 되면, 철근소지는 징역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화염병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기본 형량이었다. 나를 잡은 백골단은 동부서에 증거물로 내가 들고 있던 철근에 내 이름까지 적어서 넘겨 논 상태이니, 꼼짝없이 구속에 징역형이겠지. 아~ ㅈ 됐다.

조사실로 들어가 담당형사의 책상앞으로 다가가니, 역시나, 내가 들고 있던 철근이 책상위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책상앞 의자에 앉아 질문을 기다리는 살 떨리는 순간, 뒷머리 상처가 욱신거리기 사작했다. 바로 그때,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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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에 걸리면...

별별 이야기 2007.05.19 23:32 Posted by cinemAgora
초기 증상 때 요양원에 가야 한다.
보살펴 줄 사람을 확실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
요양원에 들어갈 만큼의 돈을 축적해 놓아야 한다.
고로 알츠하이머는, 웰빙 병이다.
오늘 일본영화 <내일의 기억>을 보고 든 생각이다.

기억 회로가 꼬여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마구 뒤섞인다.
감정 조절이 안되고 우울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결국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된다.
고로 알츠하이머는 지랄 맞은 병이다.
그 병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알게 된 사실이다.

모두들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
손을 많이 쓰고, 책을 많이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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