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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는 양면성을 갖기 마련이다.
 단순히 즐기고 넘어가는 오락영화의 한계에 머물지 않았다는 호평이 뒤따르는 한편, 그래서 흥행 면에서는 불리함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것. 블록버스터에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을 기대하는데 익숙해진 대중 관객에게 과도하게 머리를 굴릴 것을 요구하는 짓은, 스피노자를 액션 어드벤처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나 다름 없는,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중은 피곤하다. 그러므로 판타지의 임무는, 현실 세계에 찌든 '생각'이라는 녀석을 단숨에 지워낼 수 있는 2시간 동안의 짜릿한 가상 체험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개봉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그런 면에선 판타지 블록버스터에 대한 대중 일반의 기대에 살짝 엇나간다. 앞서 언급한 양면성을 지닌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셈이다.

일단 이 영화, 꽤 생각이 많다. 해리포터가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진 것은 그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따른 자연스러운 통과 의례다. 시나브로 해리포터는 마법 학교의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의 불합리를 알게 된다. 부당한 권력이 자유를 속박할 수 있다는 현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친구들과 '덤블도어의 군대'를 조직할만큼 혁명적 자유의지와 연대의 중요성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 '초'를 통해 키스의 매혹과 사랑을 알게 되지만, 사랑의 이면에 배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법학교 5학년생인 그가 듣게 되는 소리도 자못 철학적이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만 구별할 수 없어. 선택이 본질을 규정할 뿐이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관객의 머리도 따라서 약간 복잡해진다(학생들에겐 논술 교보재로 괜찮다고 추천할만 하다). 전편의 퀴디치 경기나 트리위저드 대회 같은 엄청난 규모의 스펙터클이 선사하는 시청각적 쾌감의 서비스가 빠진 상황에서, 해리포터는 이제 마술봉의 트릭보다 전편보다 훨씬 더 강건한 신념과 의지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니 이건 흥행면에선 쥐약이다. 일단 역대 시리즈 중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우긴 했으나 가장 많이 든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425만을 넘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최고로 평가 받고 있는 3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시리즈 중 최저인 273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친 바 있다. 그 3편에 필적할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불사조 기사단>이 걷게 될 운명은, 그러므로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여러가지 시장 상황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필자는 이 영화가 배급사의 기대대로 400만 명까지 바라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근거가 뭐냐고? 말했잖나. 작품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고.

<트랜스포머>는 외화 흥행의 한계치로 여겨졌던 500만 명을 가뿐히 뛰어 넘어 외화 역대 최고 흥행작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597만 명까지 넘볼 기세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개봉에도 흔쾌히 서울 관객 23만 명 이상을 챙길 정도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번주 출격하는 <다이하드 4.0>이 또 한번의 걸림돌이겠지만, 한번 흥행 가속도가 붙은 영화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은, 오프닝에서 죽 쑨 영화가 기사회생하는 일만큼이나 드문 일이다.

올 여름 약속이라도 한듯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일련의 한국공포영화 가운데 비교적 선발 주자인 <검은집>이 나름 선전한 데 이어 <해부학 교실>도 나쁘지 않은 오프닝을 선보였다.  '나쁘지 않다'는 말은 썩 좋지도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어도 100만 이상은 들어야 안정적인 흥행권 안에 드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첫주말 적어도 50만 명 이상은 챙겼어야 했다. 지금처럼 단타로 치고 빠지는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주말 박스오피스(2007.07.13~07.15)

순위        작품명                              서울주말                 전국 누계
1위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            365,500                  1,819,600
2위      트랜스포머                             235,000                  5,505,000
3위      해부학교실                              63,400                     362,600
4위         검은집                                 18,000                   1,380,000
5위         디센트                                 10,900                     22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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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나의 단골 저녁 코스

별별 이야기 2007. 7. 14. 00:1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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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하면 많은 분들이 클럽들을 떠올린다. 아슬아슬한 치마를 입고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는 녀들이 인기 많은 클럽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운좋게도 홍대앞의 진수를 안다. 홍대 앞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그래서 홍대앞 스피릿을 몸소 체현하는 주인장들을 안다. 그래서 나의 홍대앞 기행은 매번 단골집을 순회하는 코스로 점철된다. 그들을 보고 오면 삶은 다시 즐거움으로 충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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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워줘야 한다. 산울림 소극장 앞에 위치한 '오리엔탈 브런치'가 딱이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베트남 쌀국수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값도 싼데다 엄청나게 맛있다.

두번째 이유, 주인장들이 직접 베트남과 태국 등에서 공수해온 나무 수저와 장식물들이 작은 가게를 앙증맞게 장식하고 있는데다, 이곳 단골들인 문화 게릴라들이 자신들의 행사를 알리는 벽지를 붙여 놓아 정보 수집에도 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0대 중반의 용감 무쌍, 재기발랄 여성 주인장들과는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아내의 지인들)인데다, 그래서 이 가게의 이름을 내가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노동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 자신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열정적으로 노는 그들을 나는 언제나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뿐더러, 내 삶의 가식적인 부분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어쨌든 여기서 늦은 저녁을 챙기고, 주인장들이 일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왜? 그들과 놀아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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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 브런치의 열혈 주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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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 짜리 준마이 사케를 시켰다.

오리엔탈 브런치 건너편, 그러니까 산울림 소극장 오른편에 나 있는 철도길(지금은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을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면, '光'이라는 일본식 선술집이 나온다. 한 열 명 들어가면 자리가 꽉 차 들어설 자리가 마땅치 않지만, 이 집에선 진짜 맛있는 안주들을 판다. 오뎅과 꼬치가 기본 메뉴이긴 한데, 연어 초회라든가, 겨울철에만 하는 고등어 초회, 메로 구이 정도는 먹어줘야 이 집의 진수를 알게 된다. 여기에 통 크게 2만 원짜리 준마이 사케를 시키면 달큰하게 취할 수 있다. 정종 먹고 취하면 애비도 못알아본다던가? 못알아볼 애비가 없어 그건 잘 모르겠으나, 기분이 삼삼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후덕하게 생기신 배불뚝이 주인 아저씨는, 이 집의 마스코트다. 아주 아주 귀여우신데다, 인심도 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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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도 음식 갖고 장난치지는 말자. 잘못하면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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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에서 적당히 취했으면 이제 놀 차례다. 다시 산울림 극장 쪽으로 나와 길을 건너면, 주택가 쪽으로 내려 서는 계단을 따라 아는 사람만 아는 '꽃'이라는 클럽이 도사리고 있다. 여긴 마치 도둑놈들, 또는 마약 중독자들의 소굴마냥, 담배 연기 그득하고 벽은 온통 누런 색이다. 수천장의 LP, 그리고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이 집에 헌납한 각종 그림들(그 중엔 주인장의 초상화도 있다), 그리고 주인장의 역맛살을 짐작하고도 남을 사진들이 시야가 허락하는 한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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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벽들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나 밥 말리를 사랑하는 주인장 미진씨는, 실제 가수 출신이다. 노래를 썩 잘하는데, 요즘은 브라질 음악에 심취해 삼바 스쿨을 열기도 했고, 얼마전엔 서울여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연도 했다. 아무튼 이 집에서 트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다 보면, 도통 초면인 누군가가 옆에서 같은 음악에 취해 흐느적 대고 있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기 일쑤다. 부비부비같은 리비도 과잉의 짝짓기 몸부림은 없다. 여긴 그냥 호모 루덴스적 인간들이 스스로 유희하는 인간임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공기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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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론 미진씨에겐 '마티스'라는 애인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와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그의 풀 네임은 류마티스!



자, 이렇게 세 단골집을 돌고 나면 어느덧 시계는 새벽 2시를 넘어서기 일쑤다. 취기가 돌면 치기가 생긴다. 아래 사진은 그 결과물로서의 나다. 주인 모를 스쿠터에 올라타 잔뜩 폼을 잡고 앉아, 나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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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 센세, 나도 좀...<인더풀>

영화 이야기 2007. 7. 13. 16:13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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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종로를 어슬렁 거리다 스폰지 하우스에서 하고 있는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을 보러 갔다. 프로그램을 슬쩍 훒으니 왠 오다기리 죠 영화가 이리 많나 싶다. '차라리 오다기리 죠 영화제라고 하지 그래?' 괜한 질투심에 심통이 도진다. 오다기리라면, 턱에 난 점까지 사랑해 마지 않는, 그의 열혈 팬들이 쫙 깔렸으니 프로그래밍에 영향을 안미칠 수가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인디 영화라지만 흥행 안되면 가져다 트는게 무소용인 것이다.

뭘볼까, 시간도 많지 않아 딱 한 편만 볼 생각에 <인 더 풀>을 골랐다. 그런데 이 영화,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단다. 게다가 내용도 <공중그네>의 연장선에서 괴짜 신경과 의사 이라부가 주인공이라니 슬쩍 걱정이 앞섰다. 얼마전 그 책을 읽다가 도중에 던져 버렸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소설이 아니라 동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에피소드와 인물 설정이 작위적이어서 크게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같은 작가의 소설로 <남쪽으로 튀어!>는 좀 나으려나 했는데, 역시 몇 장 읽다가 같은 이유로 놓아 버렸다(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본 작가들 가운데서는, 일상에 천착하는 요시다 슈이치나 가쿠타 미쓰요 같은 작가들이 내 취향에는 맞는다. 장르 소설 작가 가운데서는 요코야마 히데오가 괜찮았고).

여하튼, <공중그네>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 책은 소설보다는 드라마로 보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몰라." 영화로 만들어진 <인더풀>도 그런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선택한 셈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 영화, 꽤 괜찮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라부를 등장시킨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문체나 서사에서 크게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인물 설정은 매우 드라마틱해서 차라리 영화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영화가 되고 나니 과연 독특한 휴먼 코미디로 완성이 됐다.

마츠오 스즈키가 연기한 영화 속의 이라부는 소설에서 묘사된대로 전혀 거구의 모습이 아니다. 더러 이라부의 겉모습이 소설과 다르다고 미스캐스팅이라고 주장하시는 관객들도 있던데,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근거 없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힐 필요는 없다. 어쨌든 우리는 그가 재창조한 이라부를 즐기면 되고, 더 중요한 것은 장인의 수준을 보여주는 그의 과장된 코믹 연기가 역시 연극 무대에서 갈고 닦은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입증해 보인다는 점이다.

'연기 잘하고 싶어 하는 꽃미남' 오다기리 죠는 그 이미지에는 참 안어울리게도 발기 상태가 지속되는 희한한 병을 앓는 30대 이혼남을 연기했다. 발기된 것을 숨기기 위해 어정쩡하게 걷는 그의 모습이 참 웃기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치카와 미와코는 가스를 끄고 나왔는지, 전깃불은 켜 놓은 채 외출한 건지 늘 걱정이 태산이라 다시 집에 돌아가 확인을 해야 속이 풀리는, 강박증의 소유자다. 다나베 세이이치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 수영에 집착하는데, 그러다 보니 수영을 하고 싶을 때 못한다는 또 다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인더풀>은 원작의 의도대로 현대인 또는 도시인의 신경증 또는 강박에 대한 블랙 코미디다. 강박은 모두들 껍데기 속에 스스로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인데, 곧잘 환자를 이끌고 병원을 벗어나는 이라부의 처방은 일견 괴팍스러워 보여도, 결국 일리가 있다. 껍데기를 벗기고 알맹이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오다기리, 넌 좀 화를 낼 필요가 있다. 바람 피우고 떠난 아내에게 결국 화를 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화를 내라. 이치카와, 얘는 어렸을 때 자신의 실수로 친구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걱정이 강박을 만들었다. 그러니 친구가 안죽고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하면 된다. 그렇다면 수영 강박에 걸린 다나베는? 이 대목에서만큼 감독은 처방의 몫을 관객에게 넘긴다. 앞서 두 사람에 대한 이라부의 처방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줘야 할지 추론할 수 있다. 내 처방은 이렇다. 일상의 스트레스에 용감하게 대면하라고. 물 속으로 도피하지 말고, 땅 위에서 맞서라고 말이다. 덤으로, 영화를 통해 나 스스로의 강박증에 대한 처방까지 얻을 수 있었다면, <인더풀>은 꽤 괜찮은 영화가 아니겠는가.

사실 일본 인디 영화 페스티벌에 오다기리 영화만 있는 건 아니다. 오카다 준이치와 우에노 쥬리 영화도 있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이나 <신동> <첫사랑> <카모메 식당> 등 볼만한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이달 25일까지다. 색다르게 재미있는 영화를 볼 소중한 기회, 부디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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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무능 좌파 척결'을 외치며 10년만의 정권교체를 확신해 마지 않는 한나라당은 도덕성 검증을 명분으로 자중지란에 빠졌고, 대통합을 운운하는 여권은 여전히 지지부진 이렇다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매번 선거때마다 벌어지는 일부 연예인들의 정치 마스코트화, 혹은 연예인 스스로의 정치판 줄서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연하게도, 정치에 나서는 모든 연예인들을 싸잡아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소신의 결과로 보기엔 고개가 갸웃해지는 경우를 우리는 왕왕 목격해 왔다. 3M흥업의 야심찬(?) 팟캐스트 프로그램, '김학도의 츄잉클럽' 그 두번째 시간, 정치판에 줄서는 연예인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강조하건대, 이건 오로지 블로그 전용으로 올리는 김학도와의 사담이자 잡담이다. 당초 녹음했던 '싸이 편'이 용량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과감히 날려 버린 나의 성능 후진 녹음기도 그걸 아는지, 우리의 잡담을 위한 적지 않은 잡음을 비지엠으로 깔아 주셨다. 감안하시고 들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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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 스포일러라고 여길만한 구절이 포함돼 있습니다. 민감 체질의 독자들에게 권하지 않습니다.)

두기봉의 홍콩 누아르 <익사일>이 죽이게 멋있다기에 필름포럼을 찾았다. 아침 첫회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관객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이었다. 이런, 홍콩누아르는 평단에서만 부활했군.

여하튼 이 영화, 몇년 전의 <무간도>에 이어 모처럼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때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한다. 그러나 유위강과 마찬가지로 스타일면에서 오우삼을 계승하는 듯 다르다(적어도 비둘기를 날리지는 않는다). 감독 두기봉은 <흑사회> 시리즈로 명성을 날렸다지만, 그 명성의 증거를 이제껏 만나 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익사일>은 내가 본 그의 유일한 영화인데,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가 주는 독특한 쾌감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그 폼생폼사의 미학에서만큼은 오우삼을 압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우삼이 80년대스럽다면, 두기봉은 확실히 21세기스럽다(아무나 할 수 있는 논평이라 미안하다). 소마가 옥상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린치 당하는 장면과 같은, 처연한 감정의 과잉이 여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쿨하다.

영화의 메시지만큼은 홍콩 누아르의 전형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론가들의 습관적인 분석대로, 홍콩 반환 이후의 홍콩과 중국의 미묘한 관계, 방향타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홍콩인의 정체성 혼란이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사실 설명 듣고 보니 그렇지, 보다 보면 잘 모른다. 서양인들이 이창동의 <밀양>이나 김기덕의 <시간> 같은 영화를 보며 한국사회를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홍콩 누아르에서 홍콩의 정치 사회적 현재를 쉽게 취할 수 있을리라 기대하는건 무리다. 다만 어설프게 짐작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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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그보다 더 확연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있었다. 한마디로, 남자들의 우정은 파멸로 완성된다는 것. 이거야말로 홍콩 누아르의 영원한 테마가 아니던가. 두둑하게 황금까지 챙겨 놓고는 죽은 친구의 아내와 아기가 붙들려 있는 악당들의 소굴로 터벅 터벅 기어들어간다. 죽을 거 뻔히 알면서 악당 보스 약올리는건지 호기롭게 즉석 사진 찍고 놀다가  보스가 던진 캔이 하늘을 붕 날았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꽝꽝꽝, 그리곤 상황 오버다. 죄다 죽는거다. 아, 이 무슨 지랄 맞은 짓거리들인가, 어렸을 때는 광분해 마지 않았던 그 다방향 총격전의 향연을 보며, 뜬금없이 이런 주책없는 생각이 스치는거다. 빛좋은 개살구지, 우정과 의리의 결과물이 기껏 공멸인 것을. 순간, 친구 믿고 보증 서줬다가 패가망신한 여러 지인들의 얼굴이 스친다. 나도 이제 세상의 쓴맛을 좀 아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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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누아르의 멋진 부활 <익사일>은 또 하나의 단순하고도 심오한 삶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 영화에는 남자들이 떼거리로 나오는 대신, 여자는 단 두 명만이 나온다. 악당 보스에게 죽임을 당한 친구의 아내, 그리고 시시때때로 총격전의 언저리에 있게 되는 정체 모를 창녀다. 둘은 이야기의 흐름에 크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가운데, 영화의 말미에 엄청나게 충격적인 방점을 찍는다. 길게 설명하자면 입 아프고, 아무튼 남자들은 죄다 죽는데, 두 여자는 각자 살.아.남.는.다. 이게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황추생을 비롯한 네 명의 의리파 남자들이 한탕 해서 건진 1톤의 황금이다. 그 황금은, 당연히 살아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러니까 여자들의 몫이다.

기껏 우정과 의리 파먹다가 공멸하고 마는 띨빡한 남자들의 시체를 딛고 여자들은 살아 남아 전진한다. 그 질긴 생명력으로, 황금을 떠 안는다. 그러니 누가 감히 홍콩 누아르를 마초들의 영화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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