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너바나, 그리고 중경삼림

별별 이야기 2007. 6. 11. 23: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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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뉴시스 기사 사진


610 항쟁이 벌써 20년이 되었단다. 신문마다 특집으로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현재를 비교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난 87년에 뭘하고 있었더라? ... 고3이었다. 인3이나 산3으로도 해결 안된다는 인생의 암흑기... 더구나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재수생 시절까지 더했으니 80년대란 내게 그리 유쾌한 시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386의 끝세대 (69년생에 89학번)이면서도 스스로는 90년대가 청춘기였다고 생각하곤 한다.

68세대에겐 전시대에서 건너온 고다르와 트뤼포가 있었고, <관객모독>의 페터 한트케가 있었다. 물론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과 비틀즈도 있었음은 부연이 필요없다. 그렇다면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우리세대에겐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너바나, 그리고 왕가위가 아닐까?

최근 한 문학 평론가가 2000년대 대한민국 문학계의 위기를 진단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대충 이런 요지의 평을 남겼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깊이는 없고, 단문의 리듬이 만들어낸 싸구려 댄스에 열광한다'
90년대에 나 역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기에,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 다시 읽을만큼 좋아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하루키가 그렇게 싸구려였나? 아니면 그 책을 좋아했던 우리가 한심한 세대였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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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나의 90년대 대학생활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었던 시기였다. 학생회에서 간부생활을 하던 운동권이었으며 강남의 전설적 나이트 클럽 월팝에 출석부 찍던 날라리였고,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한 후유증으로 대학의 담장을 월담해 어디론가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던 주변인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 하루키의 소설을 만났다. 후에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내가 읽었던 책은 <상실의 시대>라는 국내명으로 출간된 것이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사실 곡의 원뜻은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든 가구이다... 아무튼) 도입부에 등장하는,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다는 우물의 은유. 말 없는 소년이 수다쟁이로 변신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청춘이 되었다는 슬픈 독백. 사랑하는 사람과 겪는 소통의 부재와 죽음.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만 했던 혼란. 나의 90년대에도 그 모든 것이 있었기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강철군화> 옆자리엔 <상실의 시대>가 꼽혀 있어야만 했었다. 나이 쉰이 될때까지 독신을 고집하고 있는 선배 한 명이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표류한 톰 행크스의 표정 하나까지도 다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든 책이든 혹은 전화기 너머 그녀의 투정이든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엔 절묘하게 '쪽쪽' 흡수되는 것이니, 90년대의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그랬던 셈이다.

Nevermind

군대를 다녀왔지만 여전한 뒤죽박죽 속에서 끙끙거리던 93년, 막내가 LP로 구입해 놓았던 너바나의 앨범 [Nevermind]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Come as you are>의 비장한 분위기, <Polly>의 건조한 기타 사운드, 그리고 <Smells like teen spirit>의 분노의 질주가 가져다주는 묘한 쾌감을 만끽했었다. 얼마나 반복해 들었는지 턴테이블의 카트리지 바늘에 긁힌 LP는 앞면과 뒷면이 뚤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 닐 영의 음악을 들으며 자살 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이런 어설픈 비명소리를 내야만 했다. '젠장, 내 청춘도 이제 끝장났군' (지금 생각해 보면 같잖은 똥폼이다)
자다가 일어난듯한 부시시한 머리, 빨래줄에서 막 걷어 입은 듯한 구김많은 셔츠, 계단에도 앉고, 길에서도 자고, 그래서 결국 빵구 난 듯한 청바지, 그리고 폼잡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사운드와 보컬... 너바나는 그 명료한 단순성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 엉덩이에 강렬한 똥침을 날렸던 것이다. 이런 대사와 함께 '이봐 친구 인생 뭐 있어? 그냥 헤드뱅잉하라구~!'

중경삼림

5년간의 대학생활에도 결국 졸업장이라는 증빙서류 한 장을 얻는데 실패한 채 터덜터덜 학교를 제발로 걸어 나왔을 때, 왕가위를 만났다. 물론 그 이전 이미 <몽콕하문-열혈남아>와 <아비정전>으로 첫 인사는 나누었었지만, '음 괜찮은 감독이군' 정도의 감상이었으니 아직 '열렬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시기 상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처음 본 그의 영화 <중경삼림>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몸의 수분을 땀으로 빼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금성무의 재기발랄한 독백도 그럴듯 했지만, 역시 후반부 양조위와 왕비(당시에는 왕정문이라고 불리웠다)가 등장한 에피소드는 웃으면서 눈물이 났던, 그래서 거시기에 털 날 것 같던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역시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는 전작 <아비정전>처럼 '97년 홍콩반환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제도권을 나타내는 경찰 양조위는 매번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스튜어디스 여자친구를 부러워한다. <California dream>을 틀어 놓은 왕비의 정서 역시 낙원(이라고 상상하는) 캘리포니아를 동경하며 현재의 그 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 역시 스튜어디스가 되어 홍콩을 떠나간다. 물론 영화의 엔딩에서 다시 양조위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녀가 다시 떠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90년대의 나 역시 지치고 우울한 날들엔 가열찬 투쟁정신을 망각한 채 무조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으니, 비록 사회에 나와 본 영화라곤 할지라도 영화속 인물들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학교를 박차고 나온 사회에서도 희망은 인사불성 상태이고, 낙관은 그로기였으니 굳이 옛 기억을 더듬어 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키와 너바나, 그리고 왕가위의 중경삼림이 있었기에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 마치 '쟤들 봐, 나보다 더하잖아!'라든가, 아니면 '그래그래 나 같은 인간들이 또 있군' 정도의 위로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의 위로만으로도 다시 벌떡 일어설 만큼 정력 세던 시절이니(아, 그 정력 그립다!). 물론 어디론가 떠날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음도 고백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영화 <중경삼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크랜베리스의 <Dreams>를 리메이크한 왕비의 <몽중인>이나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곡은 디나 와싱턴의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이다. 섹스를 끝낸 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 양조위가 모형 비행기를 가지고 스튜어디스 여자친구에게 장난을 치는 장면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불안한 미래의 홍콩을 떠나고 싶은 양조위의 마음이 모형 비행기로 묘사되었던 씬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음악만 들으면 나 역시 이기동 선생의 말처럼 '어디론가 맬리맬리 떠나고 싶어지니...'

68년도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87년도는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90년대 역시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는 칼 포퍼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하더라도 느낀 것과 기억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한 문학 평론가의 혹평도 '그러려니'라는 나의 평소 인생관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문득 서글퍼지는 것이 2000년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와 블로그(이 글을 블로그에 적고 있음에도...) 등에 별다른 감흥이나 추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나 역시 2010년도의 어느 날, '스타크래프트는 조악한 그래픽과 호전적인 야만의 결합이며 블로그란 서투른 일기장의 다름아니다'라는 망언을 뱉어내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청춘의 한 때 겪어야 독약처럼 강렬한 맛에 비로소 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P.S.
1.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글쓰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또 잊어버렸다. 아~ 이토록 가난한 기억력이라니...
2. 2010년도의 어느 날, 스타크래프트가 어쩌고, 블로그가 어쩌고 하는 글을 쓰게 되더라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앞서 자백했듯 빈곤한 기억력이 언제 또 도져 망발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니...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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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도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논란이다 보니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확인할 때도 관객수가 아니라 스크린수를 제일 먼저 본다. 지난 주말 개봉한 <슈렉 3>, 놀랍게도 전국 450개 스크린이다. 이게 뭐 놀랄 일이냐고? 그렇다. 놀랄 일 아니다. 5월 이후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하나 같이 8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낼름 하시다 보니, <슈렉 3>의 비교적 겸손한(?) 스크린수를 보고도 놀라게 된다.  

겁나먼 나라 왕좌도 자진 포기하시는 녹색 괴물 슈렉의 겸손이 지나쳐, 스크린수도 만용을 부리지 않으신건가? 나도 살고 너도 살아야지, 나 살자고 늬들 다 죽일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거라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다.

허나 그건 아닐게다. 왜? 잭 스패로우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 마당에, 개봉 첫 주말 프리미엄 가지고 들이대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작용했다고 봐야 옳다. 실제로 개봉 3주차로 접어든 <캐리비안의 해적 3 세상의 끝에서>는 여전히 전국 501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주말 관객수야 조금 떨어졌지만, 어쨌든 500만 앞두고 있는 <스파이더맨 3>의 뒤꽁무니를 부지런히 뒤쫓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450만까지 그럭저럭 모았다.

<슈렉 3>를 수입한 회사가 국내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라는 정황도 살짝, 아주 살짝 작용했을 것이다. 함께 붙는 <황진이>가 비록 경쟁작이긴 하지만, 배급사 시네마서비스는 자주 공동제공으로 묶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사이다. <황진이>도 잘돼야 하는데, <슈렉 3>가 판을 망쳤다는 혐의를 뒤집어 쓸 이유는 없다. 게다가 CJ로선 곧 <트랜스포머>라는 대어가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지 않은가. 외화로 떼돈을 벌지언정, 여전히 한국영화가 주력사업인 CJ로선 이래저래 표정관리, 처신관리 조심해 줘야 할 상황이다.
 
암튼, 그래도 <슈렉 3>가 1위다. 사실 1위 안하면 이상한 작품 아닌가. 그 영화 별로 재미없다던데, 제 아무리 귀 밝은 학부모들이라도 떼쓰는 아이들 고집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크린 450개로 첫 주말 160만 명이면 엄청 선전한 셈이다.

<황진이>? <슈렉 3>를 웃도는 489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야심찬 첫 행보를 디뎠는데, 첫 주말 71만 명이다. 요건, 완존히 배급이 만들어준 스코어라고 우겨대도 그리 욕 먹을 일 없을 것이다. 관객 반응이 차갑다 못해 빙하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롭이 거셀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주말엔 반타작으로 뚝 떨어질 공산이 크다. 손익분기점이 300만 명이라는데, 앞날이 걱정된다.

주말 박스오피스(2007.06.08~06.10)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        서울주말        전국누계
===========================================================
1위            슈렉 3            450              291,000       1,616,000
2위            황진이            489              104,200         715,600
3위    캐리비안의 해적 3      501               75,500       4,485,100
4위             밀양             279                48,600       1,360,300
5위            메신저            148               19,300         157,700


#이 박스오피스 수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기자의 취재를 통해 확인된 스코어임을 밝힙니다.
#박스오피스 도표에 명기되지 않은 다른 영화의 흥행 성적이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문의하시면 아는 한도 내에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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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세계 최초 시사 후기

영화 이야기 2007. 6. 11. 16:2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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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댓바람부터 핸드폰 압수당했다. 카메라가 달려서란다. 까다로운 선생님 수업시간도 아니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 최초 시사회라는데, 이쯤이야...침 흘리며 봤다. 전타석 홈런으로 일관하시는, 흥행의 귀재 마이클 베이 형님도 아시아 정킷에 맞춰 오늘 저녁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연단다. 아, 벌만큼 버셨을텐데, 왜 자꾸 비슷비슷한 영화로 더 돈을 버시려 드는지 질문하고 싶어진다.

나는 안다. 마이클 베이는 절대로 여름 블록버스터의 익숙한 흥행 공식을 거스르는 모험을 저지를 분이 아니다. 이번에도 그렇다. 외계 로봇도 선과 악이다. 선한 편 로봇은 물론 착하고 엉뚱하다. 인간적이다. 악한 편 로봇은 목소리 흉측하고 강력하다. 그런데 꼭 제일 약자들한테 진다.

지구는 그들 외계 로봇의 전쟁터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는 얼뜨기가 지키고, 결정적인 열쇠는 마이너리티의 몫이다. 그래야 흥행하니까. 일부 미국민과 적지 않은 세계인들의 정서를 적극 수용, 부시에 대한 조롱임이 확연한 설정들도 살짝 포함시켰다. 그래야 통쾌하니까.

어쨌든 포인트는 트랜스포머라고 일컬어지는 변신 로봇들의 위용일 터,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정체를 살살 드러내 보이는 중반까지는 제법 알싸하고 현란하다. 문제는 중반 이후다. 로봇끼리의 대결 장면이 주로 롱샷과 부분 클로즈업으로만 돼 있어 얘들이 싸우는 것 같긴 한데 이리쿵 저리쾅 하다 어느 순간 삐빅 죽는다. 거대 로봇들은 또 왜 그리 수다스러운지.

자동차와 변신로봇이라는, 뭇 남성들의 2대 로망을 그럭저럭 볼품 나게 실사화했으니, <터미네이터>의 모조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러저런 상투적 설정들은 까짓 용서할 수도 있겠다.

어릴 적에 변신 로봇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구경조차 못한, 게다가 자동차란 신발과 다름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별반 신기할 것 없는 쿵쾅거림이었다. 결론? 비슷한 영화로, <우주전쟁>이 훨씬 재밌다.

덧붙임#1) 올여름 최대 기대작이란다. 뭔 얘기를 들어도 볼 사람들은 본다는 얘기다. 마케팅과 물량의 흡인력을 당해낼 재간 없으니, 지금 내가 한 얘기가 대다수 관객들에겐 공염불로 들릴 거라는 것, 나도 안다. 너무 걱정 마시라. 아주 꽝은 아니니까.^^

덧붙임#2)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우라를 높이 평가하시는 분들께선, 부디 원작까지 챙겨 본 다른 분의 리뷰를 참고 바란다. 요 글은, 원작을 보지 못했거나 추호도 관심 없는, 이를테면 나 같은 관객들을 염두에 둔, 말 그대로 '첫인상 리뷰'니까.

덧붙임#3) 제목의 '세계 최초'라는 말은 뒤따라 붙는 '시사'를 수식하지, '후기'를 수식하는 말이 아니다. 가끔 헛갈리는 분들 계셔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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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김학도를 만난다. "청년학도 김학돕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던 그 개그맨 김학도 말이다. 요즘 이 사람 뭐하나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섭섭해할 게 분명하다. 그는 나와 함께 부산 MBC 영화 정보 프로그램 시네마월드의 MC를 맡고
있으며 라디오 DJ까지 겸하느라 나름 바쁜 방송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어쨌든, 나보다 늘 먼저 분장실에 도착해 있는 그는, 멀리서 걸어오는 내 기척을 귀신 같이 눈치채고, 거대한 목청으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최~강의 최광희 기자니임!" 그리곤 늘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신 과일과 떡을 가져와 아침을 챙기지 못한
분장실 스탭들의 영양을 돌본다.

쉬지 않는 입, 과잉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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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도는 늘 과잉의 에너지로 엄청난 양의 수다를 떤다. 방송 직전까지 입이 쉬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유이한 개그맨 가운데 한명인 그를 보며, 개그맨들은 평소의 생활이 유머의 점철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작컨대 그렇다. TV 카메라에 불이 켜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목소리와 얼굴 표정으로 돌변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늘 스스로의 기분을 업시킨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도대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진 않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슬쩍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아무래도 신끼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개그맨들은." 나는 그를 보며 그 말을 믿게 됐다.

그가 요즘 탐독하는 책, 먼나라 이웃나라
봄 개편 이후 교통방송에서 라디오 디제이 일을 맡게 되면서 그는 요즘 부쩍 공부를 많이 한다. 요즘은 만화로 된 세계사 책 '먼나라 이웃나라'를 탐독하고 있는데, 분장실에 내가 오면 어김 없이 그날 배운 지식으로 날 테스트한다. "최 기자님, 프랑스 혁명이 몇 년에 일어난 줄 알아요? 배운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알겠지?" 나는 틀리기 일쑤고, 그러면 그의 표정은 더욱 의기양양해진다. 어쨌든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어쭙지 않게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사 놓고 6개월 째 1권도 못떼고 있는 나에 비해 어떤 지식이든, 어떤 교양이든 열려 있는 자세로 수용할 줄 아는 그가
훨씬 문화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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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를 마친 그와 나는 자주 KTX를 타고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꼴에 혼자 기차를 타도 꼭 할인해서 5만원짜리 특실 티켓을 사는 나이지만, 그와 함께일 때는 언제나 3만원짜리 일반석이다. 역방향일 때도 많다. "특실은 불편해요, 일반실이 책 읽기도 좋고..." 기차 안에서 그의 행동 패턴은 언제나 일정하다.
약간의 수다, 그리고 DMB를 켜 뉴스 보기, 먼나라 이웃나라 읽기, 그리고 잠.
 
두 사람이 길을 가도 그 안에 스승이 있다고 했던가.
김학도에게서 나는 에너지를 배운다.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 너무 많아서 흘러 넘치는 에너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힘 나게도 만드는 에너지.

끼리끼리 독점은 방송가의 정글 법칙?
그런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청년학도 김학도는, 그러나 최근 개그맨 전성시대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나 부익부 빈익빈이고 어디나 양극화지만 그 판에서도 그런 정글의 법칙은
예외가 아닌가 보다.

열차 안에서 가지고 있던 MP3를 꺼내 진담반 농담반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역시 진담과 농담을 섞어 줄줄줄 말을 한다. 듣자하니 뼈가 있다.
제법 가시 돋힌 뼈다. 시청률을 명분 삼은 연예 권력의 철옹성이 그에게도 남 모를 상처를 안겼나 보다. 어쨌든, 그를 통해서나마 방송가의 또 다른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개그의 혁명을 꿈꾸다
이게 만약 인터넷을 통해 유통돼 회자되면 그가 곤란해질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부디 그의 발언이 하이 코미디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 열려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동의를 얻어 인터뷰 클립을 올린다.
즐청하시길.

(소음이 많은 열차 안에서 MP3 플레이어로 녹음한 클립이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파일 변환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음에도) 음성이 약간 변조됐으며 특정 연예인의 실명이 거론된 부분은 묵음 처리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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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랑> 짧은 시사 후기

영화 이야기 2007. 6. 7. 17:20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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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에로스에 연민이 실리면, 제도의 벽을 뚫어 버리기 일쑤다. 제도 뿐이랴, 눈 색깔도 계급도 무가치해지는, 희열과 고통이 중첩된 세계로 날아오르게 돼 있다고, 김진아가 뉴욕을 무대로 창조한 두 남녀가 증명한다.

한국인 불법체류자 김지하(하정우)보다 파란 눈의 뉴욕 상류층 소피(베라 파미가)에 더 크게 실려 있는 감독의 애착으로 보건대, 이 영화는 멜로이자 감독의 전작 <그 집 앞>에 이어 여성적 본능의 어떤 지점을 고찰하는 성장 영화로도 보인다.

그런데 <그 집 앞>에 비해 관객과의 소통을 크게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이번 영화는, 별반 새롭지 않은 치정 드라마의 얼개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적인 클로즈업과 장면에 휘감기는 매력적인 음악(마이클 니만)에 힘입어 어렵지 않게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맨다. 그 힘은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이라기 보다 정서의 흐름을 지휘하는 감독 김진아의 연출력에 기댄 바 크다.

세련된 사랑 영화이며 성숙한 여성 영화이다. 재미 있다. 무엇보다 여운이 짙게 오래 남을 것 같다. 투썸업!

덧붙임) 멜로 영화는 무조건 눈물을 흘리게 해줘야 한다든가, 해피 엔드 또는 이별의 이분법이 아니면 안된다고 믿으시는 분들에겐 권해드리지 않는다. <사랑하니까 괜찮아>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같은 영화를 감동적으로 보신 분들에게도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다. 삶과 사랑이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단순한 것이라는 것을 직관하는 결혼 5~6년차 여성분들에게 강추! (하정우의 벗은 엉덩이를 보고 싶은 여성분들에게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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