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만 명이라는 첫 주말 관객수에 놀랄 일이 아니다. 스크린수를 보시라. 입이 쩍 벌어진다. <캐리비안의 해적 3 세상의 끝에서>, 개봉 스크린수가 무려 912개다. 개봉 당일 800개 넘는 선에서 출발했는데, 주말을 통과하며 이렇게까지 늘어난 것이다. <스파이더맨 3>가 개봉 당시 816개 스크린을 점유해 논란이 일었던 건 유도 아닌 셈이다. '그까이꺼 무슨 논란이나 돼?' 하는 듯 단숨에 기록을 경신해 버렸다. 무서운 기세다. 오금이 저린다.
지금 한국 극장가에선 한 영화가 어느 정도까지 스크린을 독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장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한 영화가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도 먼 일이 아니다. 전국 스크린의 3분 2 이상에서 같은 영화를 틀고 있는 현상이 올 여름에 현실화할 가능성이 꽤 높아졌다.
자제력을 잃은 스크린 독과점 경쟁이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데,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택도 없는 공염불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스크린수를 법적 제도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데, 왜 하필 한국에서만 그게 필요하냐고 나부대신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영화만 보느라 사회 공부 게을리한 자들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 영화가 전국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상시적으로 꿀꺽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미국에서조차 <스파이더맨 3>가 불과 10% 정도의 스크린을 점유한 걸 놓고 독과점을 우려하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1940년대 말 반트러스트법 이후, 보이지 않는 독과점 견제 심리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런 견제 심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되는 영화에 몰아주기, 끝도 없는 무한 경쟁 뿐이다. 남게 될 결과는 뻔하다. 전국 극장의 할리우드 채널화. 1번과 2번 채널만 존재하는 완벽에 가까운 유통 독점이다.
주말 박스오피스(2007.05.25~27)
순위 작품 스크린수 서울주말 전국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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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리비안의 해적 3 912 474,600 2,713,300
2. 밀양 266 73,300 350,000
3. 스파이더맨 3 290 31,100 4,830,100
4. 전설의 고향 202 29,700 240,500
5. 넥스트 140 22,000 402,000
#이 박스오피스 수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기자의 취재를 통해 확인된 스코어임을 밝힙니다.
#박스오피스 도표에 명기되지 않은 다른 영화의 흥행 성적이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문의하시면 아는 한도 내에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