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삶의 희비극성을 통찰한다. 그런데, 여기서 '본다'는 게 중요하다. '본다'는 행위 자체에 당사자의 입장보다 '관찰자'의 입장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필연적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행위에 천착하게 하는 매체다. 그리고 영화는 삶의 희비극성을 대체로 코미디와 멜로로 세분해 보여주지만, 한꺼번에 보여주기도 한다. 그걸 휴먼 코미디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한국 감독 가운데 이 대목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 장진이다. 그는 많은 영화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비극적 삶에 슬쩍 코미디를 얹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박수칠 때 떠나라>처럼 스릴러와 코미디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작품도 있고, 차승원 주연의 <하이힐>처럼 실패작도 있다. 

부지런하게도, 올 상반기 <하이힐>의 실패를 딛고 새로 내놓은 작품 <우리는 형제입니다>(10월 23일 개봉)는 장진이 어깨에 힘을 뺐을 때 드러내는 그만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슴슴하게 시작했다가 은근히 잡아 끌고, 결정적인 순간에 관객을 엎어 메친다. 물론 이 영화에도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몇가지 작위성이 자연스러운 몰입을 살짝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건 매우 장진스러워서 어느 순간, 울다가 웃어서 X구멍에 털 날 관객이 되고 만다. 기어코 관객을 무장해제시키고 마는 저력. 

얼개는 가족 휴먼 드라마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간 형(조진웅)이 TV 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동생(김성균)과, 그들을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김영애)를 수십년만에 만나기 위해 귀국했다가 벌어지는 소동을 담고 있다. TV 작가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아들을 보기도 전에 행방불명되고, 형제는 상봉의 감격을 누릴 사이도 없이, 치매에 힘(?)입어 전국 방방곳곳에 신출귀몰하는 어머니 찾기 대작전에 나선다. 

이 영화가 객석에 전하는 감동은 가족 상봉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미 탑재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걸 얼마나 빤하지 않게 전하느냐일 것이다. 장진의 전략은 당연히 코미디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잘 붙는다. 코미디는 상황에서 튀어 나온다기보다 중간중간 출몰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에 의해 빚어진다. 형제의 어머니 찾기 행보를 가로막는 그 돌출적인 캐릭터들은 미워할 수가 없다. 도리어 이들 가족에게 도움을 준다. 이건 꽤나 의미심장하다. 길에서 만나는 밑바닥 사람들이, 이 애처로운 사연의 주인공들을 어루만진다. 주인공들의 비극성과 우연한 인연의 희극성이 부딪히며 온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차가운 무관심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장진의 희망 섞인 반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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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영화가 도대체 뭐지?

영화 이야기 2014. 10. 12. 11:51 Posted by cinemAgora



뉴스를 보니 <비긴 어게인>이 역대 다양성 영화 1위를 했다는 소식이 나오는군요. 다양성 영화 1위라...이 말 참 웃기지요? 도대체 뭐가 다양성 영화일까요? 영화 자체가, 하나하나의 영화가 다양성 영화가 아닌가요? 만약 다양성 영화가 따로 있다면, 다른 영화들은 비다양성 영화인가요?

사실 이 분류 자체가 참 웃깁니다. 이건 영화진흥위원회가 만든 분류 방식인데, 한국독립영화와 해외 예술영화가 하도 시장에서 홀대를 받기 때문에 그들을 따로 분리해서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안그래도 잔뜩 양극화되어 있는 영화 시장은 훨씬 더 노골적으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뉘게 됐죠.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 영화는 처음부터 마이너리그 영화 태그를 붙이고 시장에 나오는 셈입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뭐가 다양성 영화인지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죠.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배급 유통을 위한 공급자 태그죠. '유기농'이나 '원산지 표시'와 같은 소비자 친화적 태그가 아니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왜 이런 공급자 태그가 생긴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몇 개 안되는 예술영화관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소정의 지원을 받습니다. 대신 정해진 예술영화 쿼터, 이른바 다양성 영화 쿼터를 지켜야 합니다. 영진위가 분류한 다양성 영화들이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 받기 위한 제도인 셈입니다. 취지는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잘못됐습니다. 다양성 영화가 틀어질 기회를 전체 상영횟수의 천분의 일 빼준다고 다양성이 확보되나요? 오히려 스크린 독과점으로 관객의 선택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겠죠. 상식적으로, 생태계가 불균형 상태에 처하면 포식자의 개체수를 규제하지요. 포식자는 그대로 놔둔채 피식자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만 하는 건 바보짓이죠. 그건 상식에 속합니다. 

그러나 안합니다. 왜 안할까요? 한국의 영화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과 정치인들이 '규제'라면 눈이 시뻘겋게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언제나 기업의 영업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수호해주는 첨단 시장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시민의 문화적 풍요로움은 개나 줘 버릴 일입니다.

<비긴 어게인>의 흥행을 '다양성 영화인데 이렇게 잘들었으니 대단하다.' 쪽으로 몰고 가는 건 '다양성 영화는 원래 마이너리그 영화'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의 이면에는 씁쓸한 진실이 또 하나 숨어 있습니다. <비긴 어게인>을 빼고 다른 다양성 영화, 아니 마이너리그 영화들은 죄다 망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극히 예외적인 현상을 전체인양 호도할 수는 없습니다.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 영화라 흥행한 게 아니라, 다양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한 것이며, 무엇보다 그냥 괜찮은 영화라 흥행한 것입니다. 애초부터 이 영화를 다양성 영화로 분류한 것 자체에 실소를 뿜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만큼 충분히 상업적인 영화도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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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정 멜로는 뻔하다. 그러나 잘만 만들면 흡인력이 있다. 제도의 벽을 사이에 둔 남녀의 애증이야말로, TV 막장 드라마조차 선호하는 동서고금의 치명적 소재이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치정 멜로의 유혹에 넘어가면서도 뻔한 상투성을 넘어서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안게 된다. 거기에서 성공하게 되면, 이를테면 <색, 계>처럼 걸작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게 되면 장혁 주연의 <가시>처럼 범작이나 졸작 대열에 합류해 슬쩍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정우성이 주연한 <마담 뺑덕>(10월 2일 개봉)은 심청전이라는 고전을 통해 상투성 회피 전략을 구사한다. 심청전이 심청을 중심에 둔 서사라면, <마담 뺑덕>은 그 아버지 심학규와 심청의 계모 뺑덕 어멈의 서사를 끄집어 올려, 치정 멜로를 완성한다. 뺑덕은 순수한 처녀 덕이(이솜)로 각색되고, 이제 그녀는 심학규(정우성)의 비겁한 사랑에 의해 처절하게 붕괴된 뒤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다. 심청전이 말하지 않은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이다. 여기까진 참신하다. 

그런데, 이 전략은 뒤로 가면서 뻔한 속살을 드러내고 만다. 심청전의 '재해석'이 아니라 '재활용'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의 인물 구도와 기둥 설정을 가져와 현대적 치정 멜로로 탈바꿈 시킨 게 아니라, 치정 멜로의 정서적 흐름을 심청전의 틀에 꿰어 맞춘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불쑥 불쑥 도약을 일삼고, 후반부로 가면서 급격히 농담이 된다. 

정우성과 이솜의 케미컬은, 이를테면 <가시>의 장혁과 조보아, <은교>의 박해일과 김고은의 합을 넘어서지 못한다. 잘 빠진 남녀가 벌거벗고 뒹구는 장면만으로는 왜 하필 심청전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기 버겁다. 기껏 고전을 뒤집어 놓고는 고전에서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마담 뺑덕>에는 춘향전을 방자전으로 슬쩍 바꿔 놓는 김대우의 도발적 치기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치정 멜로와 심청전은 처음부터 맞지 않는 조합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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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의 효시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입니다. 흑백으로 찍힌 이 영화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약간은 조악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좀비 캐릭터가 원래 저예산 B급 영화의 단골 소재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 영역 안에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에는 '좀비'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고, 원제가 말하듯 살아 있는 시체, 즉 'Living Dead'를 공포의 매개로 삼았습니다. 최근의 좀비들이 바이러스의 유포가 그 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데 반해, 이 영화에서는 인공위성의 폭발로 인한 방사능이 그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죠.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의 미국이 우주 탐험 열풍이 한창일 때라는 걸 감안한다면,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을 탐문하는 데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슬쩍 엿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제시한 좀비 캐릭터는 어그적 어그적 걷고, 살아 있는 사람을 공격하며, 그들의 인육을 먹는 것으로 설정돼 있죠. 좀비에 물리면 똑같이 좀비가 된다는 것도 이 영화가 만든 좀비의 원형적 특징입니다. 

한국영화 <좀비스쿨>(9월 25일 개봉)도 이런 좀비 영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습니다. <월드워Z> 등이 좀비를 블록버스터의 소재로 차용했다면, B급 영화적인 감수성으로 중무장한 것도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설정이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외딴 섬에 문제 학생들만을 수용한 고등학교가 배경이고, 이 학교의 교장과 선생들은 모두 폭력적이거나 치사합니다. 그런데, 교장이 먼저 맷돼지에게 물리고 좀비가 됩니다. 교사들이 차례 차례 좀비가 돼 학생들을 공격합니다.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좀비스쿨>이 교육 현장의 살풍경을 좀비 영화를 통해 풍자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교사들이 먼저 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교 자체가 거대한 좀비의 무덤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니, 이거 참, 직설적입니다. 

그런데 그 직설성이 이 영화의 흠인 것 같습니다. 상징성을 해석할 여지를 안겨주지 않고, 너무나 친절하게 '해설'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B급 영화적인 감수성을 귀엽게만 봐줄 수 없는 걸림돌을 스스로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촌스러운 저예산 영화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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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아이젠버그가 주연한 영국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9월 25일 개봉)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데, 신중현이 작곡하고 김정미가 불렀던 한국의 60년대 가요 "햇님"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운 순간의 연속이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소설 '분신'을 감히 영화로 만들겠다는 치기도 그렇거니와, 몽환적인 미장센과 꿈스러운 서사 구조(그렇다! 이 영화의 서사는 매우 꿈스럽다!)부터 만만치 않은 내공을 뿜어댄다. 뜬금없지만 화면과 이야기의 흐름에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고색창연한 일본 노래들! 여기에 자아와 분신을 동시에 연기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천재적인 연기가 관객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감독은 이제 두번째 작품을 연출한 코미디 배우 출신의 리처드 아요데.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고다르의 <알파빌>과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 오손 웰스의 <심판> 등이 이번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 독특한 감독은 제대로 영감을 받은 걸 넘어, 흥미롭고도 독창적이며 통섭적인 21세기 버전의 '분신'을 선보이고 있다. 영감을 얻고 싶은 자, 이 영화를 꼭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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