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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해리’도 울고 갈 유능한 런던 경찰이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가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만납니다. ‘나쁜 녀석들’을 때려 잡아야 하는 ‘첩혈쌍웅’의 치명적인 무기, 즉 리썰 웨폰은 과연 무엇일까요?


눈치 빠르신 분들이라면 방금 제가 6편의 영화 제목을 말씀드렸다는 것을 알아차리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영화에 이들 영화들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고 그런 유치무쌍한 패러디 코미디 아니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좀비 영화에서부터 할리우드 액션 영화까지 온갖 영화들을 잡탕으로 버무렸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새로운 맛이 난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영국의 유명 제작사 워킹 타이틀의 야심작이죠, <뜨거운 녀석들>, 그 엉뚱 발랄한 세계로 안내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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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는 저 사나이. 우리의 주인공, 런던 경시청 소속 니콜라스 엔젤 경관입니다. 제작진이 소개하는 그의 프로필, “지난 12개월동안 그는 특공 훈장 9개를 받았고...” 이렇게 대단한 엔젤 경관이 상관에게 불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됩니다. “자네를 경사로 임명하네. 글로스티셔 샌드포드로 가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엔젤같이 유능한 경관을 시골로 전근 보내다니.


이렇게 해서 거의 좌천되다시피 샌드포드로 향하게 되는 니콜라스 엔젤. 마음을 나눌 동료로부터 그를 위로해주는 전화 한통화 없이 기르던 화분 하나 달랑 든채, 참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부임지인 샌드포드에 도착한 엔젤, 근무는 내일부터인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할 겸 동네 선술집에 들릅니다. 천상 경찰 나리인 엔젤, 그 새를 못 참고 직업 의식 발동합니다. 여기 저기 눈에 띄는 술집 안의 미성년자들. 우리의 민중의 지팡이, 이런 걸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겠죠. 일망타진 작전 개시! 게다가 부임도 하기 전에 음주 운전 단속까지! 가는 날이 장날인지, 이번엔 노상방뇨 현장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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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경관은 이 시골 마을에 적응을 해야 합니다. 평소대로 아침 조깅해주시고...그런데 약속이라도 한 듯 생면부지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난데 없이 나타나 썰렁한 농담으로 댓바람부터 김새게 만드는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봤다 싶으실 겁니다. 바로 007 티모시 달튼입니다. 그도 참 많이 늙었습니다.


어쨌든 엔젤 경관에겐 마을 분위기가 대략 난감인데, 경찰서 돌아가는 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게다가 어제밤의 그 고주망태 음주운전자가 동료 경찰이었다니! 갈수록 태산입니다. 그런데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서장은 한술 더 뜹니다. “통계에 따르면 샌드포드는 영국에서 가장 안전한 마을이야.” 그러니까 괜히 조용한 마을에 평지풍파 일으키고 다니지 말라는 얘기죠.


서장의 말대로 경찰서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 그리고 마을 감시 동맹이라는 이상한 조직이 경찰서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기껏 한다는 얘기. “우리들의 친구 살아 있는 석상이 토요일 이곳에 나타났어...”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샌드포드는 경미한 기초 질서 위반 사범 외에는 이렇다할 범죄 가능성이 없는, 아주 아주 안전한 마을로 보입니다.


게다가 들어오는 범죄 신고라는 것도 참 심심하기 이를데 없고. 달아난 백조나 잡으러 다니는 신세가 된 엔젤 경관. 액션 영화에 푹 빠져 지내는 파트너 대니 버터맨은 자꾸 엉뚱한 말로 심기를 건드립니다. 사건 다운 사건 하나 터지지 않는 한가로운 마을에서 이렇게 썩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정말 처량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래도 수퍼마켓 좀도둑이 엔젤의 레이더에 딱 걸렸으니, 모처럼 실력 발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추격전에는 이골이 난 엔젤, 대니도 액션 영화에서 숱하게 봐왔던 그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실제로 보니 마음만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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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절도범 검거에 성공한 엔젤.그러나 뜻하지 않은 얘기가 뒷통수를 칩니다. “고소하지 않겠다는군.” 다 잡은 범인을 풀어주게 된 엔젤의 불편한 심사에도 아랑곳 없이 대니는 태평하게 계속 영화 얘기만 늘어 놓습니다.그런데 우리는 영화를 즐기기 위해 이 대사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대니가 언급한 영화들이 영화 말미에 모두 황당한 방식으로 재현되기 때문이죠.


엔젤 역시 평화롭고 한전한 이 마을의 상황에 적응할 무렵. 영화의 급반전을 예고하는 불길한 장면! 아니나 다를까. 마을에서 연극 공연을 마친 두 명의 배우가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경찰들은 대충 사고로 수습하고 싶어 합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엔젤의 눈빛이 모처럼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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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황당한 저주> 제작진이 선보이는 황당 무계 패러디 액션 코미디 <뜨거운 녀석들>은 이제껏 우리가 봐왔던 여러 할리우드 액션과 형사 버디 무비의 온갖 장면들을 뒤섞으며 패러디의 쾌감과 진수를 제대로 전해줍니다.


영화는 이제부터 황당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고, 모두 사고로 위장된 흔적이 발견되죠. 엔젤 경관의 명민한 수사력이 빛을 발할 것인가. 숨겨진 마을의 비밀이 벗겨지면서 모두가 깜짝 놀랄 대반전이 그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포MBC '시네스쿨' 출연 코너의 방송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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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반목의 협곡을 가로질러 화해의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들을 위해 천리를 마다 않는 아비의 마음.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을지언정,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끝끝내 바다가 됩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고향길 오른 분들 많으시죠. 우리는 왜 명절 때만 되면 그 힘들고 고단한 길을 마다 않고 고향을 찾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언제나 말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품어주는 부모님의 그 따뜻하고 넓은 품이 그립기 때문일 겁니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이런 부모님의 사랑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아주 따뜻한 영화 한편 소개합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 장이모우의 휴먼 드라마, <천리주단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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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감독 장이모우가 일본 배우 다카쿠라 켄을 캐스팅해서 만든 이 영화는 아들과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는, 다카타라는 한 노년의 일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아들의 입원 소식을 듣고, 다카타는 이걸 계기로 아들과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며느리의 안내로 아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은 다카타. 과연 아들 켄이치가 자신을 반갑게 맞아줄까, 슬며시 걱정이 앞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에게 차가운 문전박대를 당하고 마는데요. 켄이치는 도대체 어떤 억하심정 때문에 저렇게 아버지를 냉대하는걸까요?


아버지는 결국 쓸쓸하게 발길을 돌립니다. 미안한 마음에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달래 보지만, 이미 깊게 패인 상처를 가누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건네는 비디오 테이프. 아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그가 찍은 비디오라도 아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단초는 얻을 수 있겠죠.


절박한 심정에 비디오 테이프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다카타. 비디오에는 동양 민속예술학과 교수인 아들이 중국 운남성에서 찍은 경극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인터뷰한 한 경극 배우. 최고의 경극이라고 자랑한 <천리주단기>의 공연을 다음 기회로 미룬 배우, 일년 후 다시 오면 멋진 공연을 보여주겠다 약속했지만,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 있는 아들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다카타는 결국 병상의 아들을 대신해 중국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얼마 살지 못하는 아들에게 해줄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끝내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진 못했지만, 아버지로서의 어떤 본능이 그를 중국으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요.


중국에 오자마자 곧바로 경극 배우가 살고 있는 운난성 리장으로 찾아간 켄이치. 천리주단기의 공연을 촬영해 아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심산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해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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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디오 테이프에 나왔던 그 배우, 리쟈밍이 감옥에 갔다는 소식. 다른 배우는 안되는데...아들은 그 배우를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사람들이야 아들의 약속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싶은 다카타의 절박한 마음을 알 리 없겠죠.

중국에 오자마자 뜻을 이룰 수 없게 된 다카타. 리쟈밍이 갇혀 있는 감옥에라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겠죠. 어쨌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다카타는 감옥에서라도 리쟈밍의 천리주단기 공연을 촬영하기 위해 당국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역시 예상대로죠.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는 법.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데 말입니다. 다카타는 마지막 호소를 시도합니다. 죽어가는 아들에게 해줄 것이 이것밖에 없는 아버지. 그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똑같이 절감할 수 있는 것이겠죠.


결국 다카타는 교도소에서의 촬영 허가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극 배우 리쟈밍을 만나게 되는데. 드디어 촬영 개시, 우여곡절 끝에 이제사 아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해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요? 리쟈밍이 노래를 하지 않습니다. 가면 뒤에서 구슬피 울고 있는 리쟈밍, 도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어렵사리 교도소 촬영허가까지 얻어 온 손님 앞에서조차 노래 할 기분이 아니라는 리쟈밍의 눈물, 저 눈물의 의미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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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그건 앞서 다카타가 흘렸던 그 눈물과 다르지 않은 눈물일 겁니다.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목이 매어 노래를 할 수 없는 이 젊은 아버지 앞에서 다카타는 순식간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사 직전에 리쟈밍의 감정 상태 때문에 촬영을 못하게 된 다카타, 이제 정말 별 도리가 없는 것일까요?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바로 리쟈밍의 아들을 데려와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는 것. 이제 다카타는 리쟈밍의 아들을 데리러 먼 산골 마을 석촌으로 향합니다. 참으로 산넘고 산입니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마지막 진심. 그 진심을 이루기 위해 이곳 교도소에 갇힌 또다른 아버지 리쟈밍의 소원을 이뤄주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과연 다카타는 리쟈밍의 아들을 데리고 가 촬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기만 합니다.


<영웅>이나 <황후화> 등의 블록버스터급 무협 영화 뿐 아니라 <책상 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 등 소품 휴먼 드라마에서도 남다른 통찰을 선보여온 장이모우 감독, 부성애라는,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중국 운난성의 유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담아냅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비전문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사람들이 가진 선한 마음의 풋풋한 표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죠.


자식 사랑의 마음은 천리를 달려도, 바다에 이르고 맙니다. 그 끈질기고도 아름다운 풍경은, 그래서 저절로 눈물이 나게 만듭니다.


*목포mbc '시네스쿨' 출연코너의 방송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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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더딘 듯 빠르기만 한 시간의 속도는, 첫 사랑이 잊혀지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요?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많은 분들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을 떠올리죠. 그런데 미야자키 말고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은 일본에 그리 적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초속 5센티미터>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그 가운데 한명인데요. 빛의 연글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예술적 경지의 애니메이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은은하면서도 짠하게 전해져 오는 감동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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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키와 아카리는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이제 그 둘은 주고 받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하고 있죠. 아카리가 먼저 먼 곳으로 전학을 갔고, 이제 타카키 역시 전학을 앞두고 있죠.

도시의 밤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처럼 보입니다. 두 사람은 타카키의 전학을 앞두고 만날 약속을 합니다.

잔잔한 소녀의 편지글로 내레이션을 대신하는 <초속 5센티미터>의 서두는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풍경이 더해져 두 사람의 애잔한 정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드디어 아카리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지만, 소년 타카키로서 제법 긴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비는 저녁부터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1년만에 아카리를 다시 볼 생각에 타카키는 마음이 급합니다.

3시 54분, 약속 시간인 7시까지는 시간이 충분합니다. 전철에 올라탄 타카키는 아카리와의 즐거웠던 한때를 떠올립니다. 초등학생 치고는 참 조숙해 보이지만, 저 나이 때 저런 첫 사랑을 나눌 수 있겠죠. 게다가 둘은 통하는 게 많았으니까요.

아카리를 만나러 가는 길, 그런데 생각만큼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처음 타보는 노선인데다 내리는 눈 때문에 열차가 예정 시간보다 느리게 움직입니다. 타카키는 은근히 불안해집니다. 약속 시간은 불과 1시간 남았는데, 오늘 따라 열차는 계속 연착입니다. 초조한 마음에 자리에 앉지도 못하는 타카키. 마음에 담아둔 여학생을 1년만에 만나러 가는 길. 약속 시간은 코 앞인데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 정말 속이 바짝 바짝 타들어갈 겁니다.

드디어 약속된 7시, 그러나 아직 갈길은 멀기만 합니다. 이제 시간은 이미 약속 시간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폭설은 여전히 애타는 타카키를 괴롭힙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자판기에 선 타카키. 그런데 그만, 정성들여 쓴 편지, 아키라에게 해줄 말을 적은 그 편지를 바람이 앗아가 버렸습니다. 약속도 터무니 없게 늦어버린데다 편지까지 잃은 타카키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차 버립니다.

빛의 연금술사로 불리우는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빛을 중요하게 다루는 감각적인 작화로 소년 타카키의 마음을 묘사하며 관객들의 정서를 파고 듭니다. 열차 내부의 디테일한 묘사 역시 그냥 실사를 보는 것 이상의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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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때문에 아예 철로 한가운데 멈춰 서 버린 열차. 타카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됩니다. 악의를 품은 시간은 느릿 느릿 지나가고, 아카리를 만나러 가는 이 멀고도 험한 길을 타카키는 고통스럽게 견딥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 과연 이 시간까지 아카리는 타카키를 기다리고 있을까. 날씨도 추운데다 폭설까지 내렸으니 아무래도 희망을 접는 게 좋겠습니다. 대합실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타카키. 과연 아카리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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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센티미터>는 앞서 만나보신 ‘벚꽃 이야기’를 비롯해 다른 두 편의 단편이 옴니버스로 묶여 있습니다. 각각 타카키의 고교 시절과 성인이 된 뒤의 한때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특히 섬마을에 전학 와서도 여전히 아카리를 잊지 못하는 고교 시절의 타카키와 그를 짝사랑하게 된 카나에의 러브 스토리는 보는 이의 가슴을 깊이 흔들어 놓습니다.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등장 인물에 대한 특별한 배경 설명 없이도 사랑이라는 흥분되고도 안타까운 감정에 관객들이 흠뻑 빠져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타카키와 아카리의 첫 사랑은 결실을 맺었을까요? 시리도록 어여쁜 둘의 마음이 초속 5센티미터로 흩날리는 벚꽃처럼 영롱하게 반짝입니다.

*목포mbc '시네스쿨' 출연코너의 방송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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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언론 시사 후기

영화 이야기 2007. 9. 18. 10:16 Posted by cinemAgora
잔인할지언정, 사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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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 애니 프루는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역작 <시핑 뉴스>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내고 있다.

"물이 빛보다 먼저 생겼을 수도, 뜨거운 염소 피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깨질 수도, 화산이 차가운 불을 뿜어낼 수도, 바다 한가운데에 숲이 나타날 수도, 게 위로 손만 가져가도 그 손그림자에 게가 잡힐 수도, 매듭 속에 바람이 갇힐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그러므로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어쩌면 고통과 불행이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사랑은 상처를, 마침내 찾아올 권태를, 그리고 이별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또 그 지긋지긋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온몸이 사랑의 감정에 달뜨기 시작했을 때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에 받았던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는 기적, 누군가가 무작정 아무 이유 없이 좋아지는 기적, 그 찰나의 기적에 거역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허진호의 영화 <행복>은, <봄날이 간다>나 <외출> 등 그의 전작들이 고수해오던대로 고통과 불행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봄날은 간다>에서 일갈했듯, 사랑은...변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남녀 주인공들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깊이 패인 상처 때문에, 혹은 지금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존재의 끝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싹트는 순간의 기적에 대항할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감에 만취된 그들 역시,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이 가끔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잔인한 이별의 순간은 어김 없이 찾아온다.

허나 영화 <행복>에 방점이 찍히는 지점은, 이별이 아닌 것 같다. 허진호는 두 남녀가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유별날 정도로 행복한 표정에 집중한다. 사랑 때문에 상처 받고, 사랑 때문에 치유받고, 또 다시 그 사랑 때문에 상처 받는 게 인간사라면, 이번에 그는 치유의 순간에 피어나는 절정의 행복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 결혼한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별이 있어서 사랑은 잔인한 행복이다. 그런데, 그것도 행복이다. 은희(임수정)는 영수(황정민)에게 용감하게 말한다. "우리 같이 살래요? 나중에 어떻게 되든."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 벅차게 행복을 껴안는 은희야말로,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다. 그래서 나는 이별의 순간에 시골길을 내달리며 울부짖는 은희의 처연함보다, 수줍고도 달뜬 표정으로 영수의 입맞춤을 맞이하던 그 눈부신 미소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눈에 밟혔다.


[그래서? 영화가 볼만 하다는 얘기야?]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봄날은 간다>와 <외출>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친절하게 빠진 영화라서, 오히려 살짝 신파적이라는 냄새까지 풍긴다. 어떤 면에서 그동안 봐왔던 허진호의 색깔이 약간 탈색됐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그도 성숙한 것일 수도 있다. 대중영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을에 볼만한 꽤 괜찮은 멜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황정민과 임수정의 연기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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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빠지게 멋있게 보이기 '완전정복'

이 여자에게 휴대폰을 걸어온 건 분명 남자일 것이다. 유추컨대, 그녀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헌데 이제 그녀에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에서 오이 마사지를 하거나 오랫동안 정성스레 립스틱을 바르거나 마스카라를 하는 따위의 일에 신경 쓰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부담이 더해졌다. 언제 걸려 올지 모를 영상 전화에 자신의 생얼을 노출해야 할 부담. 그것이 엄마도 동생도 친구도 아닌, 남친이라면!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비상 상황에 즉각 대처할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 주변의 사물이나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떻든 오직 프레임 안에 잡힌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예쁘고 섹시해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재빠르게 눈꼽을 떼고 침을 닦아내며 머리를 다듬는 동작을 숙련시켜야 하는 건 기본이고, 생얼을 가리기 위해 입김을 액정 화면에 불어 뽀샵 효과를 내거나, 선풍기를 소품으로 특수효과까지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휴대폰 벨 소리 하나에 그녀의 행동은 참 이상해진다.



집단 생쑈 vs 나홀로 생쑈

KTF의 '쇼를 하라' 광고 시리즈가 '집단 생쑈'를 통해 시선을 끈다면 SKT는 이른바 '영상통화 완전정복' 시리즈로 맞불을 놓고 있다. '쇼를 하라'가 서비스의 혜택을 얻기 위해 공중 장소에서 각종 기기묘묘한 쇼를 펼쳐 보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 인물들이 컨셉이라면, 완전정복 시리즈는, 한 젊은 여성이 영상 통화에서 자신을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각종 잔기술을 부리는상황을 마치 어떤 생활의 팁이라도 가르쳐주는 듯한 컨셉으로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요 없어? 자랑할 수 있는데도?

'완전정복 시리즈'는 영상 통화 서비스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제 1의 원동력이 '필요'보다는 '과시'이며, 결국 소비자의 보여주기 욕망, 즉 나르시시즘에 근거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서비스의 광고 초창기에 써먹었던 '필요의 강조', 즉 멀리 떨어진 애인의 식사 메뉴를 대신 주문해 주는 일이나 부인에게 사줄 속옷을 비쳐 보여주는 것 따위의 광고 컨셉은 오히려 핀트에서 살짝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영상'은 보는 것이자 보여주기이다. 다른 이를 비쳤을 때는 관음증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이자, 나를 비쳤을 때는 자기 도취의 도구로 치환되기 일쑤다. 그러므로 영상통화 서비스 광고가 (일견 우스꽝스러운) 도취의 풍경조차 사랑스럽게 포장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쩌면 때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정복' 광고는 그 나르시시즘의 풍경을 희화화해 놓고, 짐짓 요가 동작이라도 교습하듯 시침 딱 떼며 당신은 그동안 디카에게만 헌사했던 얼짱 각도를 이제 영상 통화 서비스를 통해 남친에게 생중계로 전송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광고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도 전광석화와도 같은 동작으로 최대한 예쁘고 섹시한 자태를 급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어떤가. 말씀이 거친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면, 한마디로 '지랄 얘엠병'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광고 속의 여성이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남친의 액정 속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로 비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사실은, 거꾸로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지랄 얘엠병' 상황까지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푼수 짓도 미인이 해야 먹힌다는 것은, 이미 'SHOW'의 서단비가 입증하지 않았던가.

멋있게 되기가 아닌 멋있어 보이기

본질적으로, 광고 매체는 결코 멋있어 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멋있게 '보이는' 방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더한 문제는, 그 멋있게 보이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이 대부분 여성들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광고 속의 여성은 더 멋있어 보이는 다른 여자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넘어 이제 멋있게 보이기 위한 '헛지랄'을 개의치 않는, 표피적인 가치를 숭앙하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여성성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멋있게 보이는 것만이 중요해진 시대를 디카가, 휴대폰 영상통화 서비스가 앞장서 이끌고 있고, 광고는 그 처연한 시대 정신에 유머라는 토핑을 살짝 얹어 뽀샵 처리를 해준다. 오늘도 길거리에는 멋있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차고 넘친다. 저 중에 진짜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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