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대한문 앞에 갔다. 영어로 Demonstration, 한국어로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 정부의 '막가파'적 정책이 부른 비극에 분노를 표현하고, 미필적 고의로 이 비극을 조장한 책임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정책 쇄신을 촉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간 나는, '말 그대로'의 시위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슬픔을 채 가누지 못한 시민들이 삼삼 오오 모여 있었고, 그 사이 여고생들이 MB 탄핵 서명 운동을 받고 있거나 대학생들의 깃발이 나부낄 뿐, 해는 뉘엇뉘엇 져 가는데 견고한 차벽에 가로 막힌 시민들은 그저 앉거나 서 있을 뿐이었다. 이렇다할 구호도 없다. 간헐적으로 몇몇 시민들이 "이명박은 물러가라" 외치긴 했지만, 군중을 선도할 지도부도 없었고, 따라서 전통적인 시위에서 볼 수 있는 '아지테이션'도 없었다. 지난해 촛불 집회 때도 느꼈던 그 자유분방함이긴 했지만, 이것을 과연 조직화된 시위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하물며 촛불을 켜면 진압의 빌미가 되니 촛불을 끄라고 자발적으로 말씀하시는 시민까지 계시니, 나는 경찰의 근거 없는 겁박이 학습효과로 이어지는 풍경에 한편으로 황망하기까지 했다.

차벽 너머로 경찰의 경고 방송이 들리기 시작한다. "시위대 여러분, 경찰차를 손괴하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 행위입니다." 실제로 일군의 청년들이 경찰차의 유리창을 각목으로 두드리거나 물을 뿌리고 있었고, 차벽 뒤에 선 경찰들은 카메라로 그들을 열심히 체증하고 있었다. "경찰차를 손괴하는 행위는 반드시 처벌될 것입니다." 요컨대 명색이 법의 수호자인 경찰로서 범법 행위를 눈앞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까진 뭐 좋다. 나는 차벽이라는 국가 폭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을 지금 단계에서 폭력적으로 거부하는 행위에도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데 그 다음 말부터가 가관이다. "곧 경찰이 작전에 돌입합니다. 작전이 시작되면 취재 기자 여러분과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작전 지역은 고도로 위험한 곳입니다. 다른 곳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경찰은 작전 도중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곤 "시위대 여러분 해산하십시오. 작전이 시작되면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뒤따랐다.

아, 경찰은 지금 시민을 협박하고 있는 것인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얘기일까?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동네 깡패들이 애들 '삥' 뜯을 때 써도 딱 어울릴만한, 버전은 다르되 요컨대, "분명히 말했다. 다쳐도 책임 안진다고!"라는 말, 이게 경찰이 시민한테 할 얘긴가.

어쨌든 나는 대한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자신이 선량한 시민이 아닌가, 자문했다. 맞다. 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하지도 않았으며 바쁜 시간 쪼개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해 나온, 매우 선량할 뿐더러 참여적인 시민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헌법을 뛰어 넘는 초법적인 발언을 일삼으면서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잠재적 범법자, 선량하지 않은 불순분자로 모는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작전 지역에서 물러나라는 말처럼 모호한 경고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작전 지역이고 그 작전의 대상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그냥 위험하니 해산하란다. 그러므로 그 방송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장소에 있었던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갈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대한민국 시민인 나는, 국방의 의무도 충실히 수행하고 꼬박꼬박 세금까지 낸 나는, 내 나라 덕수궁 앞 대한문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권리조차 없다는 얘기인가? 이 나라의 정부를 성토할 권리조차 없다는 얘기인가? 그 자리에서 그렇게 서 있다간 다칠지도 모르고, 눈앞에 서 있는 수천, 수만의 경찰들은 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아, 그렇다면 우리 동네 파출소 경찰들은 또 어떻게 신뢰하란 말인가.

대한민국 경찰의 수준이 이 모양이다. 당신들은 헌법 공부부터 하고 나오라. 헌법도 알고 다 아는데 이 정부의 지침을 어길 수 없는 입장이라면, 법적 타당성과 근거를 갖는 경고 방송의 멘트라도 제대로 개발하고 나오라. 그리고 시위에 나선 시민도 명백히 선량한 시민이며 따라서 그들의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 뿐 아니라 안전까지도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사실 역시 새기기 바란다. 만에 하나 선량한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작전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맞다는 것도. 그래야 "무식한 말 하는 놈 상판때기나 좀 보자" 하는 시민들의 비웃음이라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세금 내기 억울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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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스포일러로 여겨질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에는 장르에 정통한 감독이 몇 명 있다. <놈놈놈>의 김지운, <박쥐>의 박찬욱, 그리더 <마더>의 봉준호. 셋 다 지금 한국영화에서 가장 각광 받는 감독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장르를 다루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김지운은 장르 그 자체의 쾌감을 극대화한다면, 박찬욱은 장르를 비틀고 유린한다.

그렇다면 봉준호는? 그는 정직하게 장르를 좇는다. 다만, 그 속에 직설을 풀어 놓는다. 스릴러적 관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사회가 가진 구조적 폭력성과 부조리가 에두르지 않고 파열된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들은 장르적 쾌감과 더불어 관객들의 무의식에 새겨진 동시대적인 공포, 또는 상처까지 파헤치는 기이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의 영화에는 늘 '이곳'의 살풍경이 선연하다. 봉준호는 어쩌면 세 명의 감독 가운데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이 아닐까.

<살인의 추억>이 공권력이 개인을 보호하지 못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초상을 소환했으며, <괴물>이 한강 괴수라는 상상력의 소산을 통해 소외된 자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붙이고 멸살하는 신자유주의를 통찰했다면, 이번 영화 <마더>는 과거의 소환도, 상상력의 대상도 아닌, 낯설지만 익숙한, 그러니까 지금의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면으로써 하나의 구체적 시공간을 뚝 잘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 시공간은 '추억'의 대상도 아니고 '가상'의 괴물이 아니고,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라 더욱 끔찍하다.

<마더>는 겉보기에 모성애에 대한 영화다. 가족 멜로의 단골 메뉴였던 모성애가 스릴러 장르에 포획되는 상황은 아니러니하다. 한편으론 지당하게도 보인다.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정글에 내몰린 자녀들의 약육강식을 대리 체험해야 하는 이 시대의 모성애란 그 자체로 '스릴'이 아니던가. 앞서 원신연 감독의 <세븐데이즈>가 숭고하고 위대한 것으로 추앙받는 모성애가 현실 속에서 잔인하게 충돌하는 풍경을 보여줬다면, <마더>는 모성애가 집착과 광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냉정하면서도 처연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모성애가 갖는 어떤 보편적 특질의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숭고하고 위대한 모성애를 집착과 광기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 

앞서 말한 이유로 나는 <마더>가 모성애를 하나의 장르적 맥거핀으로 삼되, 먹고 먹히는 이 사회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덜 가진 자가 훨씬 덜 가진자를 핍박하고, 바보가 더 바보를 착취하게 만드는 세상,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현실에 뿌리를 박은 <마더>는, 그 덕분에 봉준호의 전작들을 포함해 최근 만들어진 그 어떤 한국영화들보다 훨씬 더 살떨리는 의문을 객석에 던진다. 이런 세상의 연출자는 누구일까? 누가 우리의 어머니를, 그리고 당신과 나를 이토록 독하고 잔인하게 만드는 것일까?


"태풍의 눈으로 돌진하듯 찍었다"
<마더> 봉준호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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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더>는 어떤 영화인가.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야기,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위해서 온 몸을 내던지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위해서 엄마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특히 아들이 여기서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그런 아들을 직접 구해 보려고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이다.

 

Q. 김혜자 씨와 작업 해 본 심정은 어떤가. 많이 괴롭히고 극단까지 밀어붙일 거라 하셨는데.
촬영 전에 내가 김혜자 선생님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본인이 원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젊은 감독들이 선생님 보여주세요, 우린 박수 칠께요.’ 라고 하는 상황들이 싫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저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요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역동적으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김혜자 선생님 팬이었는데 감독과 배우로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금방 적응이 되어서 오히려 십 년 전부터 같이 일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Q. 김혜자 씨에게서 새로운 걸 끌어내고 싶어서 시작한 영화라고도 했다. 어떻게 디렉션을 드리고 어떤 식으로 함께 작업했는가.
명확히 말하면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 원래 사실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회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스토리를 만들 때부터 그런 목적이 있었다. 이미 그런 장이 펼쳐졌기 때문에 혜자 선생님께서도 오랜 시간 그걸 기다리시거나 원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오랜 시간 어항 속에 있다가 갑자기 바다에 풀려난 물고기처럼 마음껏 몸부림을 치신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 국민들이 다 그렇듯 나도 오랫동안 브라운관에서 김혜자 선생님을 보다가 이번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비록 카메라 뒤에 있지만 직접 육안으로 선생님의 신들린 연기를, 가수로 따지면 라이브 공연을 보듯 실제로 봤기 때문에 그것이 감독의 특권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짜릿한 경험이었다. (선생님은) 현장에서 항상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해주길 원하셨다.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같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의견교환을 많이 하고, 시나리오에 대한 해석이라던가 하는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현장에 가서 바꾼 것도 많았다. 현장에 가서 새로운 컨셉이나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또는 여기서 완전 목소리 톤이 이렇게 바뀌거나 아예 저쪽을 보면서 얘기하면 어떨까 하는 등의 그때 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말씀 드리면 그런 것들을 무척 좋아하시고 그 자리에서 하면서 흥분하셨다. 의외로 흥분을 잘 하신다.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Q. 기존 영화와 <마더>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의미인가.
어떤 하나의 소재나 스토리를 가지고 의미나 느낌들을 확대시켜 나가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연쇄살인을 보다 보면 군사독재와 한국사회가 보인다거나 한강의 괴물을 보다 보면 그 괴물에 맞서 싸우는 가족들이 나오고 그 가족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하는 국가와 사회가 나오는 뭔가 확산시켜 나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던 것 같다. 살인사건이 있고, 마을이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결국 엄마, 엄마와 아들, 그 중심부를 향해 계속 돌진해 들어가는 그래서 태풍의 어떤 눈, 또는 태양의 핵, 가운데, 본질을 향해 가운데를 향해 계속 돌진해 나가는 느낌으로 찍었다.

 

Q. 다른 작품과 달리 힘든 측면도 많았을 것 같다.
스텝들이나 제작팀이 워낙 뛰어나서 내가 했던 영화들 중에 일정이나 예산이 가장 정확하게 예정대로 되었다. 조감독 인덕 탓인지 날씨도 잘 따라줘서 정말 스케줄대로 잘 찍은 편인 것 같다. 그 공은 모두 스탭들과 제작사의 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을 좀 시험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스스로에게는 가혹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끝까지 가보자 이 영화는.  스케일이나 화려함의 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들은 뭘까, 엄마의 심장은 어떻게 생긴 걸까, 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끝까지 가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을 하다 보니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Q. 원빈 씨는 촬영 해 보니 어땠나.
되게 자연스럽고 순진하고 지방스러운, 강원도 정선에서 자라서 그렇지만 그런 면이 있어서 참 매력적이었고 영화 속 도준이 역할과 참 잘 맞고 그런 상태에서 출발을 했는데 작업을 해보니 몰랐던 면을 알게 된 것이 엄청난 승부기질이 있더라. 겉으로는 별로 표시를 안 내고 순둥이 처럼 미소를 띄고 다니는데 사실은 승부근성이 대단한 친구여서 그것을 점점 깨닫게 되면서 놀랐다. 원빈씨의 연기는 <마더>의 되게 자랑할 만한 어떤 한 부분인 것 같다.  처음에 배우 분들을 만나면 직접 사진을 찍어보는 습관이 있는데 혜자 선생님 찍은 사진과 원빈군 찍은 사진을 보니 눈이 되게 비슷했다. 그래서 그것도 되게 매력적이었다. 딱히 엄마와 아들을 설명할 필요 없이, 두 사람의 정면 얼굴을 나란히 보면 딱 엄마와 아들 같았다. 눈빛이 되게 비슷하고. 그래서 원빈씨 직접 처음 만난 게 2008 1, 최종 시나리오를 쓰러 가기 전 날이었는데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때 처음 실제로 얼굴을 봤는데 그 순진무구하고 정말 시골청년 같은 느낌도 있고, 더군다나 혜자 선생님 눈빛과 비슷하고, 그래서 되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만나고 내려가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대사에도 그런 것들을 많이 넣었다. 엄마랑 눈이 어떻다는 둥,,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원빈군과 처음 촬영 현장에 나가 본 것이 테스트 촬영 때였는데, 제천 시골의 어떤 장소였다. 거기 논길을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 해보니 그런 장소 역시 되게 편안해 했다. 그 동네 분위기도 잘 알 고 있고, 또 시나리오 얘기할 때도 느낀 건데 시골 마을에서 할일 없이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청년들의 느낌에 대해서 나보다도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빈군이 시나리오를 읽고 이야기 해준 여러 가지 분위기나 얘기들이 영화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많이 도움이 되었다. 원빈 군한테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이 영화 또한 새로 만나는 배우들이 많다. 캐스팅의 기본 원칙은 어떤 것이었나.
나는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 오디션을 물론 열심히 하긴 하지만 그것을 100% 믿을 수는 없다. 오디션은 형식적으로 갖추어진 틀 안에서 짧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그 배우들이 나왔던 영화, 단편영화나 대학로 연극하는 분들 같은 경우는 직접 가서 공연을 많이 본다. 이번에도 형사 역할로 한 분 나오시는 송새벽씨 같은 경우는 연극 공연을 가서 보고 되게 인상적이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윤제문씨나 전미선씨 같은 경우는 원래 작업을 해봤던 배우들이라 워낙 잘 알고 있고, 시나리오 쓸 때부터 시나리오 상 극 중 인물의 이름도 똑같지만 생각을 하고 쓴 경우이다. 진구씨 같은 경우는 작업을 해보진 않았지만 <비열한 거리>나 몇몇 영화에서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이 영화의 어떤 또 한 명의 시골의 빈둥빈둥하는 청년인데 도준이와 함께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사실 마음을 정해두고 썼던 케이스인데 다행히 본인도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감독님, 이건 저예요.” 그러더라. 그 외 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전작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 오디션 때 무척 인상적이었던 배우들, 그런데 캐릭터와 조합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일을 못했지만 전작의 오디션 과정에서 인상적으로 머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이번에 다시 하게 된 경우, 문희라 양처럼. 그런 여러 가지 경우들이 있다.

 

Q. <살인의 추억>보다 더 심하게 로케이션을 다니신 걸로 안다.
심하진 않다. 장소의 개수는 <살인의 추억> 1/2 정도였는데 이동기간이 훨씬 멀었다. <살인의 추억>이 장소가 50군데 정도, <마더> 30군데 정도였던 것 같은데 대신 <살인의 추억>은 전라도 지역에 다 몰려 있었지만 <마더>의 경우는 거의 북한을 제외한 한반도 전체를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 7-8시간씩 이동을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로케이션, 김혜자 선생님에 걸맞은 수준의 로케이션을 펼쳐드리고 싶었다. 배우들도 뭐 이런 장소에서 이런 장면을 찍냐하는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면 연기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고 한다. 그래서 혜자 선생님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 드리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찾게 되었었고 다행히 혜자 선생님도 약간의 연세가 있으시지만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찍는 작업을 즐거워하셨던 게 다행인 것 같다. 그리고 워낙 이동구간이 많다 보니 스탭들이 차 사고 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많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자잘한 사고는 좀 있었지만 큰 사고 없이,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끝나서 다행이다.

 

Q. 헌팅의 원칙은 무엇이었나.
프리프로덕션 시간이 딱 정해진 상태 내에서, 우리가 3월말, 4월초부터 9월 말까지 5-6개월을 프리프로덕션을 하는데 그 기간에 원하는 장소를 다 찾고 싶었다. 기간적으로 그렇게 충분하진 않았다. 보통의 한국영화 프리프로덕션 기간보다 좀 길긴 하지만…. <살인의 추억> 10개월에서 일년 가까이 프리프로덕션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장소를 찾아냈었다. 짧은 시간에 그걸 해내야 했기 때문에 제작팀에서 많았을 때는 7-8팀 가까이 될 정도로, 거의 전 방위적인 전 국토 스캐닝 개념이었다. 심지어 울릉도까지 갔었다. 울릉도에서 우리가 뭘 찍진 않았지만 울릉도를 갔다 오는 길에 좋은 장소를 발견해서 거기서 클라이맥스를 촬영했다. 전 국토를 스캐닝 하다시피 뛰어다닌 스탭들과 제작팀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토건국가다라는 말도 있듯, 개발이나 토건이 하도 많고 변화가 많다. 유럽의 중세풍의 도시처럼 건물 하나가 몇 백 년 동안 있고 그런 게 전혀 아니고, 한달 두 달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모든 것이 바뀌기 때문에 확정이 된 장소는 그걸 촬영 때까지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하는 보존의 문제가 우리 제작팀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촬영을 허가했다가 나중에 변덕을 부리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차례로 돌파한 덕분에 안정감 있게 그 많은 로케이션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세트나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비주얼의 99%가 로케이션에 의존하게 되어 있다.


Q.
인위적인 미술이나 의상 같은 걸 다 배제했다. 프로덕션 디자인 측면에서 어떤 것이 주요 포인트였나.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야기인데 특히 엄마가 보통의 엄마처럼 출발하지만 극단적인 폭주를 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엄마와 아들, 특히 엄마의 캐릭터에 총집중할 수 있는 미술 컨셉, 그게 중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아름다운 배경이 있지만 그 배경으로부터 엄마는 묘하게 분리되는 느낌. 그리고 그 엄마가 입는 옷, 엄마가 차지하는 컬러들에 대해 류성희 미술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던 부분이다. 그 엄마의 심리이건 캐릭터건 어떻게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있는 공간, 그 사람이 입는 옷이건 그런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

 

Q. 음악의 주안점은 어디에 두었나.

혜자 선생님도 그렇고, 예전에 변희봉 선생님도 그렇고 이병우 음악감독님도 고등학교 때부터 팬이었다. 워낙 유명한 기타리스트셨고. 시인과 촌장의 어떤 날같은 음악들 들을 때부터 팬이었고 그래서 같이 일하게 된 것 자체가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인데 <괴물>이랑 <도쿄> 때 이미 호흡을 맞춰본 사이어서 편하게 작업이 되는 것 같다. <마더>에서도 되게 새롭고 아름다운 선율, 이병우 감독님의 음악은 늘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새로움이 있다고 생각된다.

 

Q. 콘티를 일일이 직접 그렸다.
원래 내가 그렇게 한다. 장면을 설계하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보드 작가에게 그리게 해도 되긴 하는데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서 손은 좀 아프지만 직접 그리는 것이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고 나은 것 같다. <괴물>은 드라마 파트는 내가, 괴물이 등장하는 파트는 다른 스토리 보드 작가가 그렸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은 내가 다 그렸다.

 

Q. ‘아나모픽 렌즈를 쓰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들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많이 선택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굳이 아나모픽을 쓴 이유는 무엇이고, 결과에 만족하는가.
<마더> 2.35:1 로 반대로 <괴물> 1.85:1 로 찍었다. 오히려 드넓은 한강과 스펙타클이 있으니까 반대로 생각하시는데 오히려 그 반대 느낌으로 생각을 했었다. <마더>에서 2.35:1을 쓴 이유는 사실 양적인 스펙타클 같은 것에 집착하는 영화는 아니고 인물 중심의 영화, 특히 혜자 선생님 중심의 영화인데 그것에 오히려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 인물을 잡았을 때 생기는 여러 가지 빈 공간이라든가 어떤 불안이나 히스테리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좋은 화면사이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35:1로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았을 때 1.85:1로 잡았을 때보다 분명히 다른 느낌이 있다. 거기서 오는 강렬함이 있고. 개인적으로 2.35:1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같은 영화이다. 그 영화도 전혀 규모가 큰 영화가 아닌데 인물이 갖고 있는 이상한 공허한 불안감이나 외로움이 2.35:1의 비율로 잘 묘사가 되어 있다. 어쨌든 <마더> 에서는 어머니와 아들, 혹은 혼자 있는 어머니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물>과는 반대로 <마더>를 아나모픽으로 찍게 된 것 같다.

 

Q. 엄마에 관한 이야기인데 왜 제목을 엄마가 아닌 마더로 정했나.
영어로 한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처음에 엄마로 제목을 생각했었는데 고두심 선생님 출연하신 동명의 영화가 있어서 너무 근래에 같은 제목이 겹치는 것 같아 마더로 하게 되었다.

 

Q. 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제시한다면.
되게 뜨겁고,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보셨으면 좋겠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관객 분들이 엄마, 또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자신의 엄마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엄마이신 분들은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시고 보시면 더 뜨겁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제공- (주)바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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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한 슬픔과 불순한 분노

별별 이야기 2009. 5. 29. 02:06 Posted by cinemAgora
대한민국 정부에게 서울박물관은 순수이고 대한문 앞은 불순이다. 서울역 앞은 순수이고 봉하마을은 불순이다. 대한민국 정부 여당은 오늘 있을 노제가 순수한 애도의 장에 그치지 않고 불순한 반정부 시위로 변질될까 노심초사다.

도대체 뭐가 순수이고 뭐가 불순인가. 이런 프레임! 꽤 오래된 것이다. 멀리는 1980년의 광주 시민이 불순했고, 가깝게는 작년에 있었던 촛불 시위가 불순했다. '

모두들 알고 있지만 시민들조차 언필칭 '순수와 불순의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린 그냥 순수한 시민이다!" 그렇게 외쳤고, 그 순수한 시민들을 가로막는 경찰을, 차벽을, 시민들은 순수한 척 하는 마음으로 성토했다.

언제까지 시민은 순수한 양이어야 하는가. 이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까지 불순한 것인가.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촛불을 드는 것은 왜 불순인가. 그런 기준은 대관절 누가 세운건가.

나는 순수한 슬픔이 아닌 이른바 불순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 분노를 표출하는 게 불순하다고 불릴지언정, 그것이 늘 끝내 순수였음이 입증된 역사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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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눈뜨자마자 갑작스런 비보를 접한 필자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말 그대로 비상이다.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지지자였던 개인적 입장에선 상당히 충격인 사안이었지만 기자라는 본분을 생각할 때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했다. 담당 부서는 당연 정치부와 사회부. 연예부 기자인 필자하곤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이나 대형 사건사고 현장 경험이 많은 터라 사회부 후배들과 함께 봉하마을로 직접 내려가는 중책을 맡게 됐다.

그렇게 한낱 연예부 기자인 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중차대한 사안의 취재 현장에 투입됐다. 동료 연예부 기자들 입장에선 ‘한낱 연예부 기자’라는 표현이 거슬릴 수도 있다. 마치 정치부나 사회부 기자가 연예부 기자보다 더 월등하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어쩌면 그 이유가 지금 필자가 쓰는 이 글의 주제일 지도 모른다.



 격분한 주민과 노사모 회원들이 노태우 씨가 보낸 화환을 내동댕이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일요신문> 특별취재팀에 떨어진 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현장 르포 기사를 작성해야 했고 두 번째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임박 시점의 근황이었다. 검찰 출두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외부 접촉을 끊고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이를 위해 봉하마을 주민, 노사모 관계자, 비서진 등을 두루 접촉했고 24일 아침엔 봉화산에도 올랐다.


23일 내내 격분한 주민과 노사모 회원들로 인해 격정적이었던 봉하마을은 24일 새벽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았다. 23일 밤 충격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해 부축을 받아 걸어가다 무릎을 꿇은 채 주저 않아 울먹이던 영화배우 명계남도 24일 새벽엔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봉화산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산행 길을 따라 걸어가며 조금이나마 고인의 생각에 다가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저 뒷편 산행 길은 이미 경찰들로 인해 통제돼 있었다. 나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산세를 보니 논길을 따라 돌아가면 산 뒤편으로도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걸어서 사저 반대편으로 돌아가 산행을 시작했다. 구두에 재킷 차림, 누가 봐도 등산객이 아닌 기자스러운 차림으로 시작한 산행, 다행히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두를 신고도 오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쉬운 부분은 정상 가까운 곳, 그러니까 부엉이 바위 바로 인근까지 올라가긴 했지만 더 이상의 접근은 통제로 인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경찰 CSI 요원들이 봉화산으로 오르고 있다

 

산에 오르며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취재 행태였다. 검찰 출두를 전후해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사저 인근에 몰려들었는데 집 앞뜰을 거니는 모습은 기본, 창을 통해 집 안에 있는 모습까지 촬영돼 보도됐다. 심지어 봉화산 정상 부근에 있는 사자 바위 위에 올라가 있는 기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22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사저를 감옥이라 표현한 노 전 대통령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고 아무도 올 수 없다”고 얘기한 뒤 “저의 집 안뜰은 제게 남은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라고 언론에 호소했다.


필자는 그 당시부터 취재진의 취재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필자는 ‘연예인 사생활 침해’로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기자에 속한다. 소위 ‘뻗치기’라 불리는 잠복취재, 이에 이은 미행취재 등을 통해 여러 건의 특종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필자는, 아니 대다수의 연예부 기자들은 늘 기자의 취재에도 넘어서는 안되는 '한계점'을 넘지 않으려 노력했다.
 

몇 년 전 어느 여성 톱스타를 취재할 당시의 일이 대표적이다. 워낙 외부의 눈에 잘 안 띄는 편인데다 당시 모종의 사안과 연루돼 세간의 관심이 그 여성 톱스타에게 집중돼 있었다. 이에 필자는 사진기자와 함께 해당 연예인의 집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이미 <일요신문> 외에도 네 개 매체의 기자들이  와 있었다. 그러다보니 십여 명의 기자들이 차를 줄 세워 놓고 몰래 그녀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잠복 취재에 돌입해 일주일이 넘게 흘렀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일찍 나와 자정을 넘겨 철수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현장에서 밤을 세웠을 정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포착됐다. 해당 연예인이 사는 집 뒤편 야산에 오르면 창문을 통해 집 안이 보인다는 점이다. 망원경을 가져와서 보니 집 안이 어느 정도 들여다보였고 해당 연예인의 모습도 가끔씩 포착됐다. 다음 날 한 매체 사진기자가 망원렌즈를 가져왔고 비로소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렇게 촬영한 사진은 모두 폐기처분됐다. 아무리 취재 대상이 유명인(일각에선 연예인도 공인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인 연예인이지만 사적인 영역인 집안에 있는 모습을 몰래 촬영한 것은 취재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각 매체 데스크들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날 이후에는 뒷산에 오르지 않았다. 쓰지도 못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힘들게 산에 오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연예인 취재 현장에서도 기준을 지키려고 했던 '한낱' 연예부 기자는 집 앞뜰, 노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최소한의 인권'인 그곳에서까지 촬영을 감행하는 매스컴의 취재 열기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기자 입장에선 모두 취재 대상일지라도 전직 대통령과 연예인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검찰 수사 임박 등의 엄청난 이슈와 연예인의 사생활 관련 풍문 역시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렇지만 검찰 수사가 임박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사저에서의 휴식까지 제한하며 개인의 인권을 훼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사적 공간인 '집'은 원칙적으로 취재 공간에서 벗어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특수한 경우,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호텔에 객실을 잡고 비밀회의를 하는 모습을 창밖에서 촬영하는 경우는 가능하다. 호텔 객실 역시 투숙한 뒤에는 개인 소유의 집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공간이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공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고, 범죄 행위 등에 연관돼 있다면 취재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물론 그 기준을 명확히 하는 데 어려움이 많이 따르긴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저를 방문하는 모습은 취재 대상으로 볼 수 있다. 관건은 검찰 수사에 연루된 전직 대통령이 집안이나 앞뜰을 거닐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사적인 공간에서의 공적이거나 불법적인 행위에 해당되느냐의 여부다.
 

선배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그 사진이 시사 하는 바가 있다면 취재 대상이 될 수는 있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연관된 상황에서 '괴로운 심경'이라는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라면 보도 가치는 있다는 것. 물론 기본적인 취재 매너에서는 벗어난 일이다. 요즘 몇몇 매체에서 연예인의 열애설을 취재하기 위해 잠복 미행 등의 밀착 취재 방식을 동원하곤 하는 데 그럴 때마다 주류 언론에선 ‘파파라치적인 취재’, ‘사생활 침해 보도’라며 강하게 비난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 사안에선 주류 언론이 앞장서서 이런 방식의 취재를 했다. 연예부 기자가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다른 부서 기자는 이런 취재를 해도 별 문제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필자의 견해는 '한낱' 연예부 기자인 필자의 좁은 소견과 부족한 경험에 의한 생각일 뿐, 한국 언론의 전반의 취재 원칙이나 관행과는 별개일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촛불 앞에 한 여성 조문객이 엎드려 통곡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도 의문이 따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가십거리에 불과한 연예인 관련 수사의 경우, 관계자들이 수사 도중에 정보를 살짝살짝 흘릴 수도 있지만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인 전직 대통령 관련 수사는 보안이 생명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멍청한 필자의 생각은 정확하게 어긋났다.
 

과거, 경찰의 피의자 신분 연예인에 대한 정보 보호는 박수갈채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이곳에 ‘모경찰랑가’라는 글을 포스팅했을까. 예를 들어 HOT 출신 가수 이재원이 성폭행으로 구속됐을 당시, 담당 경찰은 이재원의 구속 여부에 답변하기는커녕 아예 이재원이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정도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 장자연 문건 파문에선 경찰이 얼마나 피의 사실 공포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고 장자연 문건에 오른 고위층 인사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경찰은, 기자들의 거센 요구에 ‘피의사실 공표는 불법’이라며 맞섰다.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흘러나오는 정보도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중간수사발표에선 이미 공개한 발표문조차, 문서로는 배포하지 않았을 정도다. 글자 하나로 인해 명예훼손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데, 이 얼마나 피의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선진 경찰의 아름다운 모습이란 말인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정반대였다. 수사 도중에 검찰을 통해 알게 모르게 각종 수사 정보가 흘러나왔고 언론은 이를 보도했다. '피의 사실 공표죄'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개념들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어찌 보면 한낱 연예부 기자들의 취재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정치부나 사회부는 보안이 철저한 전직 대통령 수사 관련 정보도 척척 빼내는 데 연예부 기자들은 한낱 연예인 관련 가십 사건 정보도 빼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데 고 장자연 문건 파문의 경우 방송사와 일간지 사회부가 총출동한 사안이었음을 감안하면 반드시 연예부 기자가 무능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예계가 그만큼 경찰의 인권 보호가 잘 이뤄지는 영역이라는 얘기일까.


봉하마을에 있는 내내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이번처럼 기자라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으며 시민들에게 냉대당한 취재 현장은 처음이었다. 마을 주민이나 노사모 회원들은 몇몇 보수 언론사를 집중적으로 비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언론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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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2009. 5. 26. 01:44 Posted by cinemAgora

대학원 수업 들으러 차를 몰아 달리는 길에 라디오를 켰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
핸드폰이 윙윙 댔다.
김태훈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우리 청춘의 깃발이 하나 부러졌습니다..."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음악들이 흘러 나왔다.

킹 크림슨의
'Epitaph'

에디뜨 삐아프의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잠깐 눈물이 났다.

신호대기중에 김태훈에게 답문자를 보냈다.

"음악캠프의 선곡에 감사를 전해주세요."

30분 뒤 전화가 와 김태훈은 문자와 똑같은 얘기를 했고,
나는 "깃발이 부러지면 새 깃발을 세우면 된다"고 억지로 말했다.
이날 그 방송에 출연했던 김태훈은 "스포츠 얘기를 했다"고 말했고.
나는 "잘하셨다"고 했다.
우리는 한숨을 공유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이날 튼 마지막 곡은

The Killers의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이었다.

"I got soul but I'm not a soldier"라는 가사가 가시처럼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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