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5> 슬프지 않다

영화 이야기 2009. 6. 14. 17:01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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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사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입담이 좋다. 가끔 배우로도 영화에도 출연하는 그는, 자사의 영화 시사회 때마다 직접 사회를 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북이 달린다>에 뒤이어 지난 금요일 <여고괴담 5-동반자살>의 시사회를 연 그는, 이번에도 무대에 나와 능청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입담을 과시했다.

"객석에 빈자리가 있는 걸 보니 이 영화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문을  연 그는, "항간에는 더 세고 더 잔인하며 더 무섭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나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슬픈 정서를 담아내고 싶다"며 이 장수 시리즈를 1편부터 줄곧 뚝심있게 이어온 프로듀서로서의 변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는 참석한 기자들에게 "제발, <여고괴담> 무섭지 않다는 제목만은 피해달라"고 농담을 섞어 신신당부했다.

그의 당부를 가이드라인 삼아, 나는 <여고괴담 5-동반자살>이 무섭거나 혹은 무섭지 않거나, 하는 기준에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여, 이 후기에서도 그런 관점에서의 감상을 늘어 놓지는 않을 생각이다. 실상 1998년에 박기형 감독이 연출한 1편과 김태용, 민규동이라는 걸출한 신인 감독의 출현을 알린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의 작품은 단순한 공포영화의 틀을 넘어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가슴 저린 슬픔을 탁월하게 담아냈다고 봤기에 오히려 그의 가이드라인은 <여고괴담> 시리즈의 미덕을 상기시키는 요소가 됐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다 끝난 뒤에도 이춘연 프로듀서가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그 어떤 슬픔의 정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고 2학년의 시선으로 봐달라"는 이종용 감독의 당부를 따르기 어려워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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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감상은 영화 그 자체의 만듦새 뿐 아니라 관객이 처한 주관적 상태와 세계관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아무리 걸작도 내 취향이 아니면 졸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여고생의 시선을 채택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왠지 억울하다. 그러기엔 영화적인 허점이 너무 많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여고괴담 5-동반 자살>에서 슬픔의 정서를 이루는 요소를 찾아낸다면, 입시와 성적에 대한 중압감, 왕따, 가정 폭력, 이루지 못한 우정 등일 것이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유효하기에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런데 이런 요소들은 피상적으로 전시될 뿐이다. 그러니까 괴담 영화, 또는 전통적인 한국의 귀신 영화들이 자주 사용하는 원한의 플롯이 공포를 강조하기 위한 매개 요인으로만 기능할 뿐 밑바닥에 도저하게 흐르며 관객의 폐부에 와닿는 정서의 아우라에 도달하진 못한다.

영화는 대신,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기 위해 미스터리를 배치한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 세 여학생들이 자살 동맹을 맺는 장면에 이어 그 자리에 없었던 또 다른 여학생 언주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생활관 옥상에서 뛰어 내려 자살했느냐에 대한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의 긴장감을 끌어내려고 시도한다.

셋다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말은 안한다. 그러니까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 알지만 오로지 언주의 동생과 관객들만 모르는 것이다. 영화는 영문을 아는 이들의 입을 단속함으로써 이 미스터리를 꽁꽁 숨기는 가운데, 살아 남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한, 혹은 살아 남은 이들이 지닌 죄책감의 현시로서의 원혼의 갑작스러운 등장이라는 상투적 씬들을 상투적으로 삽입하기 시작한다. 주요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사건은 헐겁게 이어지다가 예정된 순간에 예정된 갈등과 파국으로 치닫는다.

무엇보다 영화적 표현력이라는 측면에서, 전작들과 다른 차원의 공포의 순간이나 정서의 전달 방식을 찾아내려는 감독의 연출가적 야심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게 없다. 귀신이 나타나는 장면에서의 화면 연출과 음향 효과도 비슷하고, 놀라 자빠지는 리액션의 동선도 전작들의 답습이다. 마치 보너스를 얹어주듯 나오는 마지막 반전은 뜬금 없다.

사실 시리즈의 백미랄 수 있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뒤에 나온 속편들에선 이춘연 프로듀서가 강조한 슬픔의 정서가 제대로 포획됐다고 말하긴 어렵다. 3편부터는 차라리 만들어지지 않음만 못했다는 혹평이 잇따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한국영화계 내에서 5편까지 나오는 장수 시리즈 하나쯤 있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역사에 신인 여배우들의 등용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엔 연출의 신선도와 슬픔의 정서가 갈수록 메마르고 있다는 것을, 이 프로듀서가 절감해 주기를 바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의 여고생들은 여전히 세상이 무섭고 슬플 터인데 말이다.

6월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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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이 글에는 ‘태권브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600만 불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소머즈는 예뻐서 좋았고, 맥가이버는 똑똑해서 좋았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하늘을 가리키며 에어울프가 지나간다고 소리쳤고, 오디오 이퀄라이저를 보면 ‘전격제트작전’의 키트가 떠올라 남몰래 말을 걸어보기도 하였다. 주말마다 그들은 미국을 지키고, 더 나아가 세계를 지켰다. 세계를 파괴하는 무기는 왜 그리 많으며, 또 왜 그리 손쉽게 악당들의 손에 넘어가는지. TV속 영웅들은 왜 꼭 1초를 남겨놓고 폭탄을 제거해 사람 간을 들었다 내려놓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렴 어떠랴 재미있는 것을.

어느 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맥가이버가 휴지통을 뒤져 무기를 제조하고, 키트가 실없는 농담을 해주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일주일마다 죽다 살아났는데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야 하다니.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도 그 생각을 하면 화가 치밀었다.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른 채 지구와 함께 사라져버릴 존재라니. 아무 힘도 없는 내가 너무 작아 보여 견딜 수 없었다. 주인공은 아니어도 주인공의 첩보무기 정도는 만들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아보자고 다짐한 것이 그 즈음이다. 하지만 생은 녹록치 않아 태권브이의 김박사는커녕 조수의 조수조차 되지 못한 채 변두리로 물러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국회의사당에 태권브이 조종실이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정도로 나이가 들었기에 포기한 꿈을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웅에게 ‘너도 참 힘들게 산다’며 술이라도 한 잔 건네고 싶은 어른이 되었을 뿐.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돌아왔다. 심판의 날을 겪은 존 코너는 기계군단과의 결전을 준비하고, 스파이더맨은 4편 제작 소식이 들려온다. 더불어 2주 뒤면 트랜스포머가 개봉한다고 하니 여름이야말로 지구를 구하는 영웅들의 계절인 게 분명하다. 

어릴 땐 그런 영화 속 주인공을 응원하며 세계를 구하는 양 영웅주의에 빠져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영웅들이 전투와 전투 사이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생계가 막연한 스파이더맨이 학비가 없어 자퇴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아이언맨에게 가정형편 어려운 스파이더맨의 사연을 들려준다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크게 한 턱 쓰지 않을까 턱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적당한 짝을 만나지 못해 외로운 엑스맨들에게는 맞선 서비스를, 몸 성할 날 없는 인디아나 존스와 존 맥클레인에게는 노후 건강을 책임질 보험과 은퇴설계를 권유하고 싶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마음이 쓰이는 것은 역시 ‘존 코너’다. 정신건강 좋지 않기로는 배트맨도 만만치 않지만 그에게는 재벌 명문가 후손이라는 보호막이 있다. 반면 존 코너는 신분이 밝혀질까 두려워 입원은커녕 친구조차 사귀지 못하는 형편이니 누구보다 외롭고 불우한 운명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그에게는 이렇다 할 초능력도 없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살아 온 과거나 현재가 아닌, 바로 미래 때문에 위협 받는 생을 살아간다. 자신이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삶. 심판의 날이 찾아와도 문제, 찾아오지 않아도 문제. 설령 미래를 바꾸었다 해도 ‘스카이넷’이 영원히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존 코너는 평생 불안을 떨치지 못한 채, 일상적인 삶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격할 수밖에 없다. 심판의 날이 온다면 저항군을 조직해 인류를 구하는 영웅의 삶을 살 수 있으나, 만약 그 날이 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피해망상증 환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운명. 존 코너의 정신건강을 생각한다면 심판의 날이 와 주는 게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다. 

이처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데 들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하느라 보내고 나니 연민이 깊어져 오히려 영화감상에 방해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락영화를 오락물로 대하지 못하고, 코미디를 코미디로 보지 못하게 된 것. 나보다 너를 더 잘 이해하는 이가 어디 있겠냐며 영화 속 주인공에게 참견하려 드는 걸 보면 역시 늙긴 한 모양이다.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여’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Posted by 늙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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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은 여러 영화에서 즐겨 다뤄온 소재 가운데 하나다. 영화에 따라 모성애를 다루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우선 왠지 코끝 찡해지는 가족 휴먼 드라마부터 연상된다. 지금까지 모성애를 다룬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가족 멜로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 2005년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말아톤>이라든가, 2007년 개봉했던 배종옥, 강혜정 주연의 <허브>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자식을 위해서 그야말로 헌신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상이 그려지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흐름은 얼마전 개봉한 독립 영화 <바다 쪽으로 한뼘 더>(위 사진) 같은 작품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작품은 기면증을 앓고 있는 고교생 딸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잔잔한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들
세 영화 모두 자식들이 장애인이거나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설정해서 모성애의 크기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작품들이 전통적인 모성애 영화에 속한다면 최근 모성애를 다룬 영화들의 경우엔 심상치 않은 변화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우선 가족 멜로 영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유사 모성애, 즉 친모가 아님에도 모성애적 상황을 펼쳐 놓는 작품들이 들어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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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년 개봉했던 엄정화 주연의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피아노 학원 강사가 할머니와 홀로 사는 동네 가난한 꼬마에게서 음악적인 천재성을 발견하고, 이를 끈질기게 발굴해서 결국 세계적인 음악가로 대성시키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2007
년 개봉했던 김혜수 주연의 <열한번째 엄마> 역시 유사 모성애라는 접근에서는 일맥상통한 작품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데려온 이상한 성격의 여자와 이 집의 어린 아들이 티격태격하다가 어느새 모자간의 정이 싹트는 과정을 휴먼 드라마적인 호흡으로 담아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방치된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소외된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사회적인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 모성애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최근 또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범죄 누아르라든가, 스릴러 영화를 통해 모성애를 다루는 방식이다.

원신연 감독이 연출해 지난 2007년 예상 밖의 빅 히트를 기록한 작품, <세븐 데이즈>는 한 여성 변호사의 어린 딸이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상당히 빠른 호흡의 영상으로 펼쳐 놓고 있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냉정하게 접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의 목숨이 걸린 절박한 상황이 되면서 여주인공은 거의 이성을 상실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모성애와 모성애가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서 모성애의 이면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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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로 한국영화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서 높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마더>에서는 형사가 아니라 살인 사건 피의자의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적 장애인인 아들이 동네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자신의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는 어머니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경찰과 변호사를 대신해 직접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긴장감 넘치게 묘사되고 있다.

김혜자가 연기한 영화 속의 어머니는 예의 헌신적이다. 그러나 한 순간 그의 모성애는 헌신을 넘어 섬뜩할 정도의 집착과 광기로 이어진다.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를 통해 자식에 대한 희생의 차원을 넘어선 모성애, 사회적 통념이나 윤리에 위배될 정도로, 다소 극단적인 모성애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 모습엔 왠지 설득력이 엿보인다.

사실 우리 시대의 모성애에서그런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자식만 살고 보자, 그래서 교육 정책의 잔인성을 성토하지만 막을 수는 없는 모성애, 그렇게 무기력하고 한없이 이기적이 돼 버린, 그래서 나와 내 자식 아닌 모든 이들에 대한 어떤 적의까지 느껴지는, 왜곡된 어머니성의 살풍경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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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트랜스포머> 1편의 개봉 당시, 나는 '이건 그냥 애들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명백히 애들만 본 건 아니어서, 당시 <트랜스포머>는 무려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국내 개봉한 외화 가운데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움으로써 기대치의 폭발력을 입증해 보였다.

“2편은 국내 개봉 외화 최초로 1천 만 이상의 관객 동원을 노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와중에, <패자의 역습>이라는 부제가 붙은 2편의 언론 시사가 오늘 용산 CGV에서 열렸다. 자랑스럽게도, 불법 다운로드에서는 악명 드높은 동포들 덕분에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서야 영화를 본 뒤, 나는 이 시리즈가 아동영화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데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극장문을 나서야 했다.


그건 근시안적인 즉평이었다는 것을 2편을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여, 뒤늦게나마 나의 속단을 정정해 본다. <트랜스포머>는 결코 애들 영화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 어른이되 '어른이 되지 못한' 애들을 위한 영화다.


1편에서 오토봇과 디셉티콘 사이의 정신없는 CG적 푸닥거리에 집중한 나머지 간과한 요소를, 마이클 베이 감독께서 2편에서 친절히 일깨워 주신 덕분이다. 잘 빠진 스포츠카와 변신 합체로봇, 이 두 종류의 10대 소년적 로망 외에 두 가지 흡입 요소가 더 숨어 있음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은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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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어 라보프 뿐 아니라 뭇 남성들의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든 메간 폭스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상 야릇한 포지션으로 오토바이를 섹시하게 제압하며 등장한다. 약간 아래에서 그녀를 찍고 있는 카메라의 초점은 늘씬한 에스라인과 그녀의 벌어진 다리 어디매에 맞춰져 있다. 다음 쇼트는 예의 가슴 굴곡이다.

아~! 얼마나 익숙한 그림인가. 주유소 엔진 오일 광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제보다 젯밥에 더 관심 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자연스레 가로채는 모터쇼 레이싱걸을 닮은 여주인공. 게다가 그녀는 그렇게 착한 육체를 가지고도 결코 한 눈 팔지 않고 남자주인공에 올인하는 열녀적 면모까지 과시하니, 이 어찌 남성들의 영원한 로망에 “충성!”을 외치는 자태가 아니겠냔 말이다.

2편의 마이클 베이는 영악하게도, 자동차와 변신합체 로봇, 그리고 쭉빵녀라는 코드에 ‘합체’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를 제시하는 데 게으르지 않다. 그것은 ‘뽀다구 만빵’의 밀리터리 액션. 최첨단 헬기와 항공모함, 핵잠수함이 동원되고, 지구를 대신해 조국과 인류의 안녕을 염원하는 유에스 거번먼트 솔져들의 감동 액션 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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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지만 살짝 빈정 상하는 구석도 있으니, 우리의 오토봇은 위기 순간에도 굴하지 않지만, 디셉티콘들은 이쪽의 위기 때마다 알아서 어서 드라마를 만들라고 침묵을 지켜준다는 것.

외계 로봇들의 ‘휘리릭 뚝딱’ 변신 과정의 디테일은 여전히 어지럽고 두통 유발하되, 1편에서 피아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던 엉킴 싸움은 많이 진화했다. 이제야 어떤 분이 오토봇이고 어느 넘이 디셉티콘인지 구별이 좀 된다.


뭐, 어쨌든 <트랜스포머>는 명백히 애들만의 영화가 아니다. 여전히 금속과 군대, 나에게 충성하는 에스라인으로부터 힘을 확인하고 자아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어른 몸의 소년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그러니 이 땅의 헐거운 마초들이여, 즐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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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외인구단'의 실패 이유

TV 이야기 2009. 6. 7. 00:3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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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 기획 드라마로 방영중인 <2009 외인구단>이 16부로 조기종영된다는 소식이다. 20부작까지 예정돼 있었지만 저조한 시청률에 속상한 방송국 측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모처럼 잘했다. 빨리 끝내는 게 돈 버는 길이라는 데 동의한다. 3류 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를 더 이상 끄는 건 전파 낭비다.

참고로, 나는 10대 때 이현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맹렬하게 좋아했었다. 다음 편이 언제 나오나 만화방에서 죽때리는 걸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비록 최재성이 까치로, 이보희가 엄지로 나왔다 한들 흔쾌히 돈 모아 보러 갈 정도였으니까.

각설하고, 나는 드라마 '2009 외인구단'을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었다. 그 이유와 관련해 편리하게 원작에 대한 훼손 어쩌구 블라블라 하고 싶지 않다. 돌이켜보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자체가 다분히 80년대적인 마초 신파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여, 이장호의 영악하지만 게을렀던 영화 말고,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 하필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던 일말의 마음은 없지 않았다. 물론 나는 제작진의 계산을 모를만큼 아둔한 시청자는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과 WBC 결승 진출 신화에 따른 국가적 감동에 편승해 보자는 것? 이렇다할 스포츠 각본이 창안되면 다행이겠으나 지금 수준의 창의력이라면 차라리 온고이지신하자는 것? 까짓 잘 편승했으면 박수 받을 일. 하지만 욕만 먹게 생겼다.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매우 치명적으로 캐스팅의 실패다. 오혜성 역의 윤태영부터 마동탁 역의 박성민, 하물며 백두산 역의 임현성까지 총체적인 실패다. 몸값 비싼 스타들 쓰느니 원작의 아우라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가겠다는 의도가 묻어나는 대목이지만, 그들의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력은 드라마가 처음부터 졸속이었음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다.

두번째는 내러티브 업그레이드의 실패다. 원작 만화의 마초 신파적 이야기를 21세기의 시대성으로 각색하지 못한 드라마는 구태의연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80년대에는 통하는 이야기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유치찬란 그 자체이다. 제작진들은 흘러간 시간만큼 문화적 감수성이 변화했다는 것을 감지할만큼 똑똑하지 못했다.

세번째는 화면 연출의 조악함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실제 경기 장면과 등장 인물들의 움직임을 대강 짜맞춘 경기 장면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중계 화면은 이미 고도로 진화된 기술에 의해 탄생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박진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중계 화면의 관습적 앵글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작위적인 앵글을 너무 자주 사용함으로써, 거꾸로 경기 장면의 리얼리티를 훼손한다. CG로 처리된 공이 타석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는 장면(이건 대체 누구의 시점이지? 새?) 따위가 대표적이다. 차라리 포수의 시점에서 허공을 향해 타격된 공이 날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훨씬 더 시원해 보일텐데, 이렇게 잔머리를 굴린 앵글들이 의도만큼 세련되지 않고 오히려 유치해 보인다는 게 문제다.

결과적으로 <2009 외인구단>은 대중의 취향을 넘겨 짚는 기획이 얼마나 위험한지 재차 입증한 사례로 남게 됐다. 안그래도 방송가가 불황인데, 자꾸 막장 아니면 졸속으로 승부하면 공중파라고 외인구단 되지 말라는 법 없다. 지옥훈련이라도 좀 다녀오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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