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외인구단'의 실패 이유

TV 이야기 2009. 6. 7. 00:3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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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 기획 드라마로 방영중인 <2009 외인구단>이 16부로 조기종영된다는 소식이다. 20부작까지 예정돼 있었지만 저조한 시청률에 속상한 방송국 측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모처럼 잘했다. 빨리 끝내는 게 돈 버는 길이라는 데 동의한다. 3류 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를 더 이상 끄는 건 전파 낭비다.

참고로, 나는 10대 때 이현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맹렬하게 좋아했었다. 다음 편이 언제 나오나 만화방에서 죽때리는 걸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비록 최재성이 까치로, 이보희가 엄지로 나왔다 한들 흔쾌히 돈 모아 보러 갈 정도였으니까.

각설하고, 나는 드라마 '2009 외인구단'을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었다. 그 이유와 관련해 편리하게 원작에 대한 훼손 어쩌구 블라블라 하고 싶지 않다. 돌이켜보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자체가 다분히 80년대적인 마초 신파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여, 이장호의 영악하지만 게을렀던 영화 말고,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 하필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던 일말의 마음은 없지 않았다. 물론 나는 제작진의 계산을 모를만큼 아둔한 시청자는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과 WBC 결승 진출 신화에 따른 국가적 감동에 편승해 보자는 것? 이렇다할 스포츠 각본이 창안되면 다행이겠으나 지금 수준의 창의력이라면 차라리 온고이지신하자는 것? 까짓 잘 편승했으면 박수 받을 일. 하지만 욕만 먹게 생겼다.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매우 치명적으로 캐스팅의 실패다. 오혜성 역의 윤태영부터 마동탁 역의 박성민, 하물며 백두산 역의 임현성까지 총체적인 실패다. 몸값 비싼 스타들 쓰느니 원작의 아우라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가겠다는 의도가 묻어나는 대목이지만, 그들의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력은 드라마가 처음부터 졸속이었음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다.

두번째는 내러티브 업그레이드의 실패다. 원작 만화의 마초 신파적 이야기를 21세기의 시대성으로 각색하지 못한 드라마는 구태의연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80년대에는 통하는 이야기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유치찬란 그 자체이다. 제작진들은 흘러간 시간만큼 문화적 감수성이 변화했다는 것을 감지할만큼 똑똑하지 못했다.

세번째는 화면 연출의 조악함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실제 경기 장면과 등장 인물들의 움직임을 대강 짜맞춘 경기 장면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중계 화면은 이미 고도로 진화된 기술에 의해 탄생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박진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중계 화면의 관습적 앵글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작위적인 앵글을 너무 자주 사용함으로써, 거꾸로 경기 장면의 리얼리티를 훼손한다. CG로 처리된 공이 타석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는 장면(이건 대체 누구의 시점이지? 새?) 따위가 대표적이다. 차라리 포수의 시점에서 허공을 향해 타격된 공이 날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훨씬 더 시원해 보일텐데, 이렇게 잔머리를 굴린 앵글들이 의도만큼 세련되지 않고 오히려 유치해 보인다는 게 문제다.

결과적으로 <2009 외인구단>은 대중의 취향을 넘겨 짚는 기획이 얼마나 위험한지 재차 입증한 사례로 남게 됐다. 안그래도 방송가가 불황인데, 자꾸 막장 아니면 졸속으로 승부하면 공중파라고 외인구단 되지 말라는 법 없다. 지옥훈련이라도 좀 다녀오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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