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일부 독자들에겐 낯선 영화 용어를 설명하면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영화 <목격자>를 말하기 위해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흔히 '프로타고니스트'라고 부른다. 그 반대의 인물, 즉 그와 적대적 관계에 놓인 캐릭터는 '안타고니스트'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프로타고니스트만큼이나 안타고니스트를 매력적으로 설정하는 게 관객들을 극 안의 세계, 즉 디제시스 속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관건이 된다. 이를테면 <양들의 침묵>(1991)의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나 <다크 나이트>(2008)의 조커(히스 레저)처럼 잔인무도하며 위력적인 안타고니스트일수록 관객들은 더욱 침을 꼴깍 삼키며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목격자>에서 표면적인 안타고니스트는 새벽에 아파트 단지에서 망치 살인을 저지른 범인(곽시양)이다.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이자 갓 아파트를 장만한 소시민적 세대주 상훈(이성민)은, 얼떨결에 살인 현장을 목격하는 바람에 엄청난 불안에 휩싸인다.
이렇게 되면 흔히 예측 가능한 대립 구도는 상훈과 범인이 되어야 하겠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범인을 확증하기 위해 애타게 목격자를 찾는 형사(김상호)와 진실을 알지만 침묵하는 상훈의 줄다리기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상훈은 아파트의 평균적 입주민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괜히 쓸데 없는 일에 끼어들기 싫어하는 그는 경찰에 협조했다가 가정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들, 즉 또다른 상훈들은 영화 곳곳에서 발언한다. 그들은 사건의 와중에 집값이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한다. 따라서 경찰은 물론 언론에 협조하지 말자는 서명까지 돌린다.
이 침묵. 누군가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는 아파트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며, 그로 인해 집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의 이기적 담합은 이 영화가 설정한 진짜 안타고니스트이다. 따라서 살인 사건의 범인은 '맥거핀', 즉 정말 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전개시키기 위해 설정된 핑계일 뿐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끌어 들여 안타고니스트로 만든다. 너희들이 이렇게 살고 있지 않니? 하면서 말이다. 관객들에겐 불편한 설정이다. 그러나 탁월한 사회 비평이다.
"4억 밑으로 안내놨지? 4억 밑으로 내놓으면 안되는데?"
영화 말미에 부녀회장이 내뱉는 이 말만큼 끔찍하게 공포스러운 대사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우리 현실에서 건져 올렸기에, '슬픈 공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영화 <목격자>는 최근 본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묵직한 주제 의식을 선보였다. 긴장을 만들어내는 촬영과 편집도 아주 찰지다. 모처럼 제대로 몰입하며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