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Supported by Tatter & Media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결국 낙마했다. 표면적으로는 사표 수리의 형식이지만, 기획재정부의 해임 건의를 문화체육관광부가 받아들인 결과다. 이로써 그는 지난해 5월 4기 영화진흥위원회의 수장으로 취임한 뒤 1년 2개월여만에 자신의 본업인 교수로 돌아오게 됐다.
감지되는 영화계 일각의 반응은 ‘당혹’이다. 그동안 영진위 수장이 한 번도 기관장 평가를 통해, 그러니까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그야말로 ‘실적 부진’으로 인해 중도 하차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포스트 강한섭’ 체제에 대한 정체 모를 불안이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강한섭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영화계 내에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충무로 주류 세력을 “얼치기 진보주의자”라고 불러 비난을 자초했으며, "한국영화 공황"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바꾸려고 한 탓에, 베를린 영화제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독립영화인들이 장관과 직접 만나 성토하는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예술영화 전용관 문제를 사실상 백지화한 장본인으로 찍혔으며, 지난 4월에는 영진위 계약직 직원들의 계약 해지 문제를 놓고 갈등하던 노조의 퇴진 요구를 받기도 했다.
좀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강한섭 위원장은 임기 1년도 안돼 충무로의 ‘공적’이 돼있었다. 어딜 가도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씨네 21 등 영화 언론들의 맹포화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였다.
이렇게 온갖 비난의 대상이었던 그가 퇴임하는 마당이니 쾌재를 불러 마땅할 일인데, 왜 영화계에는 불안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것일까. 당장 4기 영진위에 구제불능 진단을 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씨네 21의 논조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우선 그가 퇴임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이어가야 할 문화 정책을 단기적 경영 실적으로 판단하려는 기획재정부의 평가 방식이 한마디로 ‘어이 없다’는 평가다. 이렇게 되면, 현 정부 아래에선 앞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일년마다 한 번씩 세 번은 더 바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냉소도 들린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써야 하는 일을 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정부의 경영 기조를 따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강한섭 위원장의 퇴임 이후, 정부의 영화 진흥 정책의 기조가 바뀌지 않겠냐는 불안이다. 실제로 정부 일각에선 영화진흥위원회를 지난 5월 출범한 한국컨텐츠진흥원으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지금은 괴담 수준으로 떠돌고는 있지만,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차기 위원장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일종의 ‘터미네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설득력있게 들린다. 벌써부터, 차기 위원장은 관료 출신일 수 있으며, 적어도 영화계 출신은 아닐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극단적으로 전망한다면, 영화진흥위원회가 공중분해되고, 영화 진흥 정책은 종합적인 컨텐츠 진흥 차원의 한 분야로 축소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수 천 억원에 달하는 영화 발전기금의 향방도 오리무중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너무 먼 얘기라면, 당장 차기 위원장은 적어도 전임 위원장이 노조 관리 실적에서 낙제점을 받아 퇴임한 것을 복차지계로 삼을 게 뻔하다.
이번주 씨네 21의 관련 기사는 “그동안 노조가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는 영진위 노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놓았다. 기사를 쓴 기자가 정확하게 인용한 게 맞다면, 이 얘기는 틀렸다. 노조는 분명 지난 3월 강한섭 위원장과 김병재 사무국장의 퇴진을 요구했었다. 때맞춰 영화계 몇 개 단체가 성명을 내 지원 사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는 정부의 기관장 평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오비이락일 수도 있겠지만, 시점의 미묘함을 감안한다면, 이것을 영진위 안팎이 공조한, ‘강한섭 몰아내기’ 막판 대작전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노조와 영화계 일각이 그를 비판하거나 퇴진을 요구한 게 무조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따져 묻는 게 지당하다. 문제는, 전략의 부재다. MB 정부 하에서의 영화 정책의 향방과 역학 관계 등을 충분히 고려한 싸움이었냐를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흔쾌히 끄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강한섭 위원장에 대한 영화계의 비판에는 정권 교체 상황에 대한 반감과 그를 MB의 영화 쪽 파견사원으로 치부하려는 정서가 작용하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시장주의적 관점과 충무로 주류세력에 대한 날선 독설은, 그런 혐의에 심증을 얹어 놓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반감을 확대재생산시켰다는 것을, 그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강한섭 위원장은 저쪽의 시각에서 한참 우편향돼 있다고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정권 교체 상황에서의 첫 수장으로 적어도 정부의 입김을 막아낼 영화계의 우군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선 오히려 전임 안정숙 위원장보다 진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한 2007년 민주노동당의 법안 과정에 협조할만큼의 유연성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가 현정권의 낙점을 받아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보수의 부역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러는 사이, 영화계는 그를 활용하지 못했고, 그도 영화계를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내쳐졌다.
이런 모든 작용과 반작용이 충돌하며 작금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영화 정책이 실적의 논리에 포획되는 상황 말이다. 반감과 반감의 격돌 사이에서 전략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영화계 공생의 대의가 상기될 여지는 없었다.
강한섭 위원장을 싫어하는 영화계 일각은 결과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내 통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차악이 물러난 자리에 최악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지난하고 힘든 싸움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른다.
MBC 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친구’의 모자이크 장면들은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를 넘어서, 짜증을 유발시킬 정도였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물론, MBC까지도 원치 않았으나, 모자이크 없이는 방송 할 수 없었던 사회적 ‘공기(또는 인식)’ 때문인 듯 하다. 잘 알다시피, 드라마 ‘친구’의 모자이크 촌극은 TV의 폭력 묘사가 개인의 폭력 성향을 부추긴다는 ‘가설’ 탓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대학 시절, 교환 교수로 온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언론학 교수에게서 들은 일화 한 토막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TV나 영화의 폭력 묘사가 개인의 폭력 성향을 부추겨, 범죄율을 높이고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던 시절이었단다. 폭력 장면에 대한 법률적, 제도적 통제를 주장하는 보수 진영에 맞서, 할리우드는 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대항하고 있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 학자들은 공화당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대대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수 백여 명의 학자들이 모여, 폭력적인 영상물이 개인의 폭력성을 증가시킨다는 가설을 학문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매달렸다. 언론학은 물론, 심리학, 아동학, 사회학, 인류학 등, 폭력 영상물의 해로움을 실체적으로 입증하려고, 거의 모든 종류의 학문이 동원됐고, 각종 인문학적 실험과 리서치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단다. 그렇게,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수천 쪽을 넘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단다. 그런데...
연구의 결론은 ‘영상물의 폭력 묘사가 수용자들의 폭력 성향을 증폭 시켜, 실제적 폭력행위를 일으킨다는 가설은 입증할 수 없다’였단다. 결국, 영상물의 폭력 묘사가 폭력 범죄를 부추긴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던 보수 진영의 시도는 무산됐고,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또 한 번 힘을 얻게 된 것. '표적 수사'와 다를바 없었던 보수 진영의 '표적 연구'는 왜 실패했을까?
폭력 묘사가 개인의 폭력성을 높인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면, 일종의 ‘경향성’이 보여야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표본 집단을 폭력
묘사가 가득한 영상물을 자주 보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눠, 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만약, 폭력 장면을 많이 시청한
쪽이 더 높은 폭력성을 지니고, 폭력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면, 가설이 입증된다. 그런데, 당연히 ‘경향성’을 보일 것이라던
당초의 예측과는 달리, 두 집단 사이에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단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당시, 연구진들은 표본과 조사 기간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단다. 가장 과학적인 연구 방법은 유전적 요소가 동일한 쌍둥이들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되, 오직 폭력 영상물에 노출되는 횟수만을 다르게 하고, 성인이 된 후의 폭력 성향을 조사해야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나, 이같은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가설의 입증이 어려웠다는 변명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수천명의 쌍둥이들을 실험실에 가두지 않는 한, 폭력 영상은 통제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실생활에서의 폭력은 막을 수 없다는 것. 기껏, 폭력 묘사가 담긴 영상물은 보지 못하게 막아 놨더니, 학교에서 친구들간의 일상적인 폭력이나, 교권을 빙자한 권위주의적 폭력, 국가기관의 정치적 폭력에 노출되면, 말짱 도루묵이란 점이다.
게다가, 영상물의 거짓‘참수 장면’보다 교사에게 맞은 실제‘뺨 한 대’가 개인의 폭력성에 더욱 강한 정서적 충격을 일으킨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그들의 연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향후 그 누가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게, 당시 교환 교수의 의견이었다. 물론, 워낙 오래 전 강의 내용이니, 구체적인 연구명과 연구에 참여한 학자, 그리고 통계치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상식을 뒤엎는 그의 강의 내용 만큼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폭력적인 영상물이 개인의 폭력 행위, 더 나아가 범죄율 증가의 원인이라는 세간의 가설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 다만, 아동 심리학에서, 어린 아이가 폭력물을 보고난 직후, 폭력성이 다소 증가되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 적은 있다. 이는 물론,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결론은 아니다. 성인 역시, 폭력물에 노출된 직후 얼마간은, 심리학적으로 다소 폭력성이 증가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홍콩 느와르를 보고 나온 뒤, 영화의 주인공처럼 허공을 향해 괜스레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는 이들이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개인간의 편차가 크고, 그저 심리학적 성향의 증가일 뿐, 사회적 해악으로 작용하는 실제적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여부는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마음은 먹을 수 있으되, 이를 실제로 실행하느냐는, 심리학적으로 증가된 폭력 성향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성은 물론, 자신의 폭력 행위가 타인에게 알려지는지, 그리고, 특정 폭력 행위에 대한 사회적 처벌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폭력의 실행 유무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역사와 경험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은 익명성이 보장되거나, 사회적 처벌이 존재하지 않을 때, 가장 높은 수위로 표출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폭력적인 영상물을 얼마나 많이 시청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니라...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은 성인들과 조금 다르다. 폭력 행위의 피해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처벌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낮을 뿐만아니라, 영상물과 현실의 경계 또한, 성인만큼 명확히 구분 하지 못한다. 따라서, 폭력 영상물, 특히, 미화된 폭력 영상물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사회적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영상물을 접한 어린이나 청소년 모두가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인성의 차이나, 부모 또는 사회의 교육이라는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에는 폭력 영상물이 폭력적 행동으로 고스란히 전이된다는 주장 역시, 온전히 ‘참’일 수 없다. 반대로 적용해 보자. 누군가 폭력 영상물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평생 단 한 번도 실제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온전히 수긍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역시 ‘참’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폭력 영상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 옛날에도, 인류는 서로를 때리고, 죽이면서 살아 오지 않았는가? 과거의 폭력성 또한,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잔혹하고 극단적인 형태였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 폭력 영상물이 실제로 폭력적 행위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폭력 영상물이 인간의 폭력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 역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지구상에 단 한 명도 나와 같은 사람이 없듯, 인간의 행동 양식은 도식화가 가능할 만큼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경험을 통해, 폭력 영상물 보다 훨씬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무엇인지는 안다. 그건 바로, 일상에서의 폭력이다.
폭력 영상물 속, 잘려 나간 손이 주는 충격 보다 바로 오늘 A4 용지에 베인 손가락의 통증이 훨씬 더 많은 잔상을 남기는 것 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가족간, 친구간, 사제간, 선후배간의 폭력이 더욱 우리의 폭력성을 부추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습과 관례의 탈을 쓴 일상의 폭력이, 국가 기관의 정치적 폭력을 '정당한 폭력'으로 인식 시킨다는 문제다. 규율이나, 위계 질서를 위해 사용하는 일상적인 폭력을 정당하다고 믿는다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명분으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사회와 국가의 폭력을 용인할 수 밖에 없다. 대신, 폭력 영상물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논거의 희생양이 되어, 폭력성 증가의 책임을 온전히 지게 된다.
이에 격분한 감독 마이클 무어는 범인들이 범행 전날 볼링을 쳤다는 사실에 기초해, '콜럼바인 사건은 볼링이 원인' 이라는 의미로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책임 회피와 이익 추구를 위해, 과학적 근거 조차 없는 해괴한 논리를 설파하는 주류적 시선에 대한 통렬한 조롱인 셈이다.
오늘 하루동안 아주 대조적인 보도 메일을 두 통 받았다. 발신인이 CJ엔터테인먼트로 돼 있는 보도 메일은 제목이 이렇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첫주 288만 기록". 그리고 영화사 진진이 보내온 보도 메일은 "<걸어도 걸어도> 개봉 2주차 6천 명 돌파"라고 돼 있다.
두 영화사 모두 자사 영화의 흥행에 뿌듯한 심정을 피력한 건 분명한데, 숫자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288만 명 대 6천 명. 어떤 영화는 개봉 첫 주말에 우리나라 왠만한 대도시 인구수를 뛰어 넘는 관객을 싹쓸이하고, 어떤 영화는, 2주 동안 꼬박 6천 명을 모으는 현상. 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어차피 대규모 물량 공세를 내세우는 오락영화와 아트하우스 영화를 수평 비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게다가 불과 3개 상영관에서 상영된 <걸어도 걸어도>가 6천 명을 모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하할 일임에 분명하다. 나도 어제 20킬로미터를 달려가 이 영화를 봤는데, 객석이 완전 매진이었다.(이렇게 좌석 점유율이 높으면 상영관수가 늘어나는 게 원리인데, 이상하게도 이런 유의 영화에는 그런 원리가 잘 안통한다는 게 이상하다.)
아무튼, 네이버에다 개봉작 단평을 제공하고 있는 내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그닥 좋지 않게 평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관객의 역습'이 이어졌다. 특히, 적지 않은 분들이 내가 이 영화의 비주얼에 그리 후해 보이지 않는 점수를 준 점에 불만들을 토로했는데, 어떤 비주얼이 훌륭한 건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을 갖고 있지 못한 나로선, 이 영화의 CG 떡칠이 그리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는 걸 10점 만점 중에 '6'이라는 숫자로 표현했을 뿐이다(비주얼이 아닌 CG 부문이 따로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관객들 눈치 보느라 5점 아래로 안 준 게 나름 좀 비겁했다고 자평하는 중이었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으로 잔뜩 오염된 눈을 정화시켜줄만큼의, 진짜 끝내주는 비주얼을 선사하는 영화를 만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걸어도 걸어도>이다.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등의 작품으로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급성장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이 영화는평범한 듯 보이는 어느 가족 이야기다. 죽은 형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마지 못해 집을 찾은 아들 내외와 노부부의 친근한 한편 어색한 조우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들 가족의 만 하루동안의 풍경을 미시적으로 관찰한다. 어찌 보면 참 고리타분해 보일 정도로, 영화는 이들 가족의 소소한 일상적 대화와 동선을 그냥 담는다.
그런데 눈이 번쩍 뜨이게도, 감독은 멀리서 찾아온 아들 딸과 이들의 어린 자녀들로 시끌벅적한 2층집을 너무나 정교한 영화적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아이들의 고성과 어른들의 잔소리로 북적대던 이들이 부엌으로 옮겨갈 때, 카메라는 고정된 채 이들이 방금 떠난 텅비어 버린 거실을 응시한다. 그 잠깐의 응시의 순간, 영화는 행복과 단란함으로 충만해 보이는 이들 가족의 어떤 결핍을 여운처럼 불러낸다. 이런 극적인 응시의 순간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나무 계단에서, 딱 한 칸이 비어 있는 서랍장에서, 가족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가족들 등 뒤 책상 위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작은 사진에서, 거실의 떠들썩한 농담과 웃음이 허허로이 울리는 욕실 한 구석의 벗겨진 타일에서 되풀이 된다.
대가족의 번잡한 소음이 울려 퍼지는 작은 집에서 묘하게 소외된 공간들을 포착하는 감독의 세밀함은, 별반 새로울 것 같지 않은 가족사에 제법 풍성한 사연의 결을 끄집어 올리는 탁월한 역할을 수행한다. 겉과 속내가 따분하고도 답답하게 엇갈리는, 아끼고 사랑함이 분명하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가족애의 부조화. 요컨대, 대사가 아닌 그림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정지돼 있는 사물 또는 비어 있는 공간이 내러티브를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전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비주얼은, 물론 하나도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바로 우리 일상의 순간과 공간에서 퍼올린, 놀랍도록 설득력 있고, 그래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비주얼이었다.
오락영화와 아트하우스 영화를 단순 비교하는 게 바보같은 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본다' 했을 때의 시청각적 체험이 단순히 망막의 자극과 가상의 구경거리를 탐닉하는 쾌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면에서 비주얼은 영화의 장르와 상관없는 보편적 정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걸어도 걸어도>에 흔쾌히 비주얼 점수 10점 만점에 10점을 준다. 그 이유는, 미국 평점 사이트 '썩은 토마토'(Rotten Tomatoes)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 선사한 이 평가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 노래 무슨 내용인지 아세요? 저게 말이죠, 빌리진이라는 여자애가 자꾸 마이클 잭슨을 스토킹하는 거야.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마이클 아이라고 우기는 거지. 그래서 마이클 잭슨은 절대 그런 일 없었다, 빌리진은 내 애인도 아니고, 그 아이도 내 애가 아니다, 이렇게 절규하는 내용이랍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이 그런다. "참 어이 없는 내용이군요."
그렇다. 마이클 잭슨은 그렇게 '어이 없이' 80년대를 강타했었다. 잭슨 파이브 시절 그 청아하고도 천사같은 목소리의 소년 마이클이 아니라, 허리 아래를 가만 두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흰색 장갑을 낀 큰 손으로 벨트 아래를 어루만지는, 살벌하게 불온한 청년 마이클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이룬 음악적 성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문외한인 내가 논할 수 없으되, 아무튼, 가히 뮤직비디오의 혁명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Beat It'과 'Billie Jean', 그리고 'Thriller'를 통해 그가 보여준 시청각적 충격만큼은, 단번에 전세계인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는 깡패들의 패싸움 현장에서 현란한 춤사위로 화해를 부추기고, 심지어 땅 밑에서 올라온 좀비들과도 춤을 췄다.
그는 엉덩이를 박자에 맞춰 앞 뒤로 퉁기는 사뭇 음란해 보이는 동작이 거꾸로 꽤 세련돼 보일 수도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엔터테이너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문 워크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마치 발에 바퀴가 달린 듯 플로어를 미끄러지며 뒤로 가는 동작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80년대의 적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의 신발을 닳게 만들었다.(나는 특히 그가 제기 차듯 허공을 발로 차는 동작을 사랑했다.) 그는, 거리의 춤을 가장 화려하게 무대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장본인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이른바 스트리트 댄싱의 전세계적인 유행을 선도했다.
그의 전성기가 나의 10대 시절과 중첩돼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이클 잭슨이 갖는 문화적 함의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그는 8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에서 나풀나풀 벗어나고 싶은 당대 한국 대중의 욕망과도 꽤 잘 맞물렸던 것 같다. 미국 또는 팝 하면 백인을 먼저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백인보다 백 배는 더 멋진 흑인 영웅의 탄생이 주는 묘한 쾌감이 남달랐던 것이다. 버젓이 브라운관을 타고 흐르는, 그의 불온하고도 음란하며 도발적인 몸짓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에선 '해방'이었다.
그 뒤로 이어진 마이클 잭슨의 생애는 모두가 알다시피, 영욕의 점철이었다. 날기를 소망했지만 끝내 추락하고 만 이키루스의 운명을 닮았다. 그 와중에 그의 영혼과 육신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가 패였다. 한때 그의 날랜 육체로 피를 나르던 심장이 불현듯 박동을 멈췄다.
영웅은 시대의 상처를 껴안고 간다고 하던가. 육신에서 벗어난 마이클 잭슨이, 동시대인들에게 그가 안겨준 어떤 쾌감만큼, 진정한 해방의 안식을 얻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