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원

영화 이야기 2016. 4. 19. 15:26 Posted by cinemAgora

대개의 한국 코미디 영화는, 웃음 코드를 앞부분에 집중하고, 뒤로 가면서 멜로 감성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위대한 소원>은 어느덧 '왠지 그래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이 관성에서 쿨하게 벗어난다. 좀 싱겁다 싶을 정도로 초반에는 약간 어이 없는 해프닝이 나열되다가,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코미디가 점층된다. 나는 이렇게 훌륭하고도 매끄럽게 코미디를 점층시키는 한국영화를 근래 거의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남대중이라는 걸출한 신인 감독은 루게릭병 시한부라는 비극성과, 10대 소년들에게 으레 찾아오는 리비도의 엄습이라는 희극성을 충돌시킨다. 시한부는 멜로의 관습적 소재이며, 리비도의 엄습은 섹스 코미디와 잘 어울린다. 이 두 요소의 충돌은 의외적이다. 그래서 관객들도 위화감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만약 감독이 판단하고 앞 부분을 구성한 거라면, 그는 대단히 영리한 스토리텔러가 아닐 수 없다. 솜씨 좋게 성공했다. 지난해 이 즈음에나왔던 이병헌 감독(이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한다)의 <스물>에 필적할만한, 아니 그보다 훌륭한 청춘 코미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엔딩신의 마라톤 장면에서 김동영이 지어보이는 표정이 딱 이 영화의 감성이다. 그는 우는 표정으로 웃고 있다.

남성 관객이라면 2차 성징기의 저주와 축복으로 달떴던 그 시절을 미소 지으며 회고할 터이다. 여성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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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더 씨

영화 이야기 2016. 4. 19. 15:24 Posted by cinemAgora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부부를 일컬어 흔히 '브랜젤리나'라고 부른다. 이름을 합성해서 부를만큼 금술이 좋아서일까? 여하튼 두 사람이 꽤나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두 사람이 실제 부부 사이로 출연한, 그러나 어느 권태기의 부부를 담은 영화 <바이 더 씨 By the Sea>에서 역설적으로 확인된다. 안젤리나 졸리가 각본과 연출, 주연을 맡고 남편 브래드 피트를 극 중의 남편으로 (아마도 매우 싼 값에) 캐스팅한데다 자신과 더불어 공동 프로듀서까지 시킨 작품이다. 하니, 브래드 피트는 보나마나 안젤리나 졸리에게 꽉 잡혀 사는 남편임에 틀림 없다(좋은 남편이다).

"바닷가에서"라는 뜻의 제목 그대로, 영화는 뉴욕 출신의 결혼 14년차 부부가 프랑스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휴양을 오면서 시작된다. 남편 롤란드는 한때 잘나가는 작가였지만 지금은 글빨이 예전같지 않다. 뭔가 영감을 얻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 반, 아내 바네사와의 퍽퍽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기대 반을 품고 이곳에 왔지만, 장소만 바뀌었을 뿐 부부의 일상은 딱 권태기의 모습 그대로다. 롤란드는 늘 바깥으로 돌고 술에 절어 있으며, 바네사는 거의 호텔 방에서 갇힌 듯 지내다 식료품을 사러 나가는 게 전부다. 나누는 얘기도 늘 거기서 거기. 냉랭함을 감춘 화목한 대화들의 파편적인 연쇄.

이런 가운데 바로 옆 방에 이제 막 결혼한 프랑스인 커플이 신혼 여행차 묵으면서 상황이 묘해진다. 프랑스 커플은 어쩌면 롤란드와 바네스가 한창 서로를 열렬히 사랑할 때 그랬을 법한 모습을 기시감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은, 바네사에겐 일종의 잊었다가 다시 찾은 거울과도 같다. 남편에 대한 적개심, 젊은 부부에 대한 묘한 동경과 질투는 바네사를 어떤 종류의 게임으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 게임에 중독된 바네사는 미필적 고의로 남편 롤란드를 동참시킨다.

영화 <바이 더 씨>는 감독 안젤리나 졸리의 수준급 스토리 텔링 능력과 녹록치 않은 연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빙의된 연기는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연출자로서의 안젤리나 졸리는 인간의 관음 욕망과 트라우마, 창작의 재료로써의 고통이라는 여러 화두들을 뒤섞어 놓았다. 여백과 스타일이 리드미컬하게 조응하는 이 영화는, 정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아마도 1970년대 언저리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편집과 음악조차 1970년대 프랑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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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영화 이야기 2016. 3. 29. 06:29 Posted by cinemAgora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우연들이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필연'이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연이 필연이 되는 데는 조건이 따르는데, 우연들이 켜켜이 쌓여온 지나온 시간들의 중층이 나의 정신의 너비와 깊이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확인할 때 그렇다. 그랬을 때 과거의 일들은 단지 '있었던' 일이 아니라 '반드시 그랬어야만 했던' 것으로서의 가치를 부여 받는다. 그랬을 때, 필연은 우연적 순간들의 적분이며, 따라서 우연은 필연의 필연적 미분이 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중년 남자 로베르토가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중국 청년 준을 만난 것도 겉으로 보기엔 순전히 우연이었다.


햇볕 아래 맥주 한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쉬고 있던 그의 눈 앞에 택시 강도를 당해 거리에 내던져진 준이 나타난 것이다. 준은 백부를 찾아 아르헨티나 땅에 막 도착한 길이었는데, 곤경에 처한 그를 도와줄 이는 로베르토밖에 없는 상황. 경찰서에도 가보고, 중국 대사관에도 찾아가 보지만 준의 백부를 찾을 길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만큼이나 막연하다.


당장 거처가 없는 준을 외면할 수 없는 로베르토는 별 수 없이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 로베르토로선 피할 수 없는 악몽이다. 성격도 까칠한데다,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이 불청객과 당분간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은, 포장면에 표시된 숫자보다 항상 적게 배달돼 오는 나사못보다 더 불쾌한 일이다. 원치 않는 동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크고 작은 소동들.


휴먼 드라마의 기본 공식에 익숙한 이들은 이제부터 로베르토가 준과의 동거를 통해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것이다. 그렇다. 그는 변화한다. 그런데 그 변화의 과정이 빤하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어느 순간 깊어진 우정에 울먹이며 서로를 껴안지도 않으며, 까칠했던 로베르토가 극적으로 개과천선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해프닝은 진동을 만들어내는 지점들이 있다. 굳이 눈물의 장치를 동원해 강조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알아서 느낄 수 있는 진동이다.


그건 앞서 말한 우연과 필연의 상관 관계와 맞닿아 있다. 로베르토와 준의 만남은, 없었으면 좋았을, 단순한 우연의 소산이었을까. 무엇이 이들을 만나게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어떤 필연성이 도출됐느냐가 중요하다.


세계는 넓고 개인은 파편화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사이에는 수많은 경계들이 그어져 있다. 그러나 영화는 경계를 무력화하는 연결적 세계의 프레임으로 두 인물을 바라본다. 견고한 경계가 슬쩍 붕괴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성의 선한 측면 자체가 필연을 창조하고 있음이 무심결에 드러난다.


경계가 무력해지는 순간, 그래서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수직적 필연이 현재의 수평적 우연과 파열하면서 '앗!'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게 순식간에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행운'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또 하나의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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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착한 아이

영화 이야기 2016. 3. 22. 16:27 Posted by cinemAgora



아동 학대 사건의 주범이 계모나 계부일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친부모의 묵인과 동조가 따른다. 자기 아이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학대하는 부모의 심리는 대관절 무엇일까? 생활고를 비관해 자녀들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부모의 심리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자녀를 자기 욕망의 투영물, 또는 소유물로 바라보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과잉 보호, 아이에게 과도한 성취를 기대하는 부모들의 심리는 그 반대인 것 같지만 맥락적으로는 자녀에게 자아의 욕망을 투영한다는 면에서 '학대 심리'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싶다.


잇따른 아동 학대 사건의 와중에 부모, 또는 어른이라면 새길만한 영화가 한 편 일본으로부터 건너와 소개한다 <너는 착한 아이>라는 작품이다. 재일교포 여성 감독 오미보가 연출한 수작이다.


영화 <너는 착한 아이>에는 학대 받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들이 학대 받는 이유는 부모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 학대 심리가, 자기 투영물로서의 자녀에 대한 학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쁜 아이"라는 생각을 주입 받게 된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는 비단 그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누구든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너는 착한 아이야"라고 말해줄 의무가 있다. 어떤 사람이든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을 권리가 있다. "네가 나의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날 때부터 존엄한 존재임을 그 부모 뿐 아니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슬프고 아픈 아이는 안아주고 토닥여줘야 한다. 불행한 아이는 사회의 불행이다.


지난해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중에 나오는 시를 여기 옮긴다.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아이들이 아닙니다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 딸
그대들을 통해 올 뿐
그대들로부터 온 건 아니기에
그대들과 함께 있어도 
그들 자신에 속해 있지
아이들에게 사랑은 주되
생각까지 주진 못하리
그들 스스로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들의 육신은 집에 들여도
영혼은 그리 못하리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그대들은 꿈에서라도 가볼 수 없기에
그대들이 아이들처럼 되려 할 순 있으나
그들을 그대들처럼 만들려 하지 말지니
삶이란 뒤로 가지 아니하고
어제와 함께 머물지도 않으리
그대들은 활이요
아이들은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 활에서 나아가네
궁수이신 신께서 무한의 길에 새겨진 표적을 보시고
힘들여 그대들을 구부리시어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날아가게 하시네
궁수이신 신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기를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듯
든든한 활도 사랑하시니
궁수이신 신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기를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듯
든든한 활도 사랑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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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데이

영화 이야기 2016. 3. 22. 16:25 Posted by cinemAgora




한국의 청춘 영화는 대체로 어둡다. 청춘이란 게 그렇다. 스무살 무렵의 청춘은 더욱 그렇다. 말만 "푸른 봄" 같은 나이지만 그건 지나고 나서야 가늠할 수 있는 것이고, 당사자들에겐 도통 뭐가 푸른지, 뭐가 봄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어른들의 영향권에 있지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 청소년도 어른도 아닌 시기, 불투명한 미래 앞에 마냥 불안하기만 한 시기. 과거의 성적으로 사회가 구분한 서열의 냉혹한 무대 위에 서야 하는 시기. 우정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았는데 진로가 갈리면서 그것도 아닌 시기. 달뜬 리비도에 한없이 무기력한 시기. 고로, 스물은 포기와 배신을 알아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잔인한 시즌이다.


<글로리데이>도 청춘 영화다. 앞서 말한 청춘의 정의대로, 이 영화는 스스로 제목을 배신한다. 청춘에게 '글로리'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해 오늘날의 청춘에게 영광은 없다. 그들은 뭐가 뭔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사회가 쳐 놓은 덫에 된통 걸릴 위험에 노출된, 몸만 어른인 아이들이다. 더더욱, 정글 사회의 법칙은 그걸 호되게 일깨운다. "너희들은 이제 더러워져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남는다."


누가 감히 청춘을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청춘을 보낸 이들이,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의 이치를 잔뜩 내면화하고 난 뒤, 스스로를 토닥이기 위해 만든 환상, 가정법 과거완료형의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의 청춘은, 본래적으로 잔혹한 시즌이다. 이 영화에는 그런 청춘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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