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기자는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 VIP 시사회를 다녀왔다. 몇 차례 취재 경험은 있지만 VIP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에 결정적인(?) 인터뷰 영상을 제공해 영화 엔딩 크레딧에 ‘자료제공 3M 흥업’이라는 글귀가 올라갔으며 김애경 편집장이 인터뷰어로 직접 출연까지 한 덕분이다. 김애경 편집장을 비롯해 김경찬 PD, 팝 칼럼리스트 김태훈, 최우리 작가, 그리고 기자까지 다섯 명이 함께 극장을 찾았고 이미 영화를 관람한 최광희 기자만 아쉽게 합석하지 못했다.
너무나 즐겁게 영화를 관람했는데 영화가 묘하게 술을 부르는지라 인근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거하게 술도 한 잔 했다. 다들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 관람 후유증이 컸는지 많은 얘기가 오갔다. 한창 준비 중인 ‘인디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이뤄졌다.
<우린 액션배우다> 감상문을 쓰려 한다. 아무래도 영화와 인연을 맺은 3M흥업에 올리는 글인 만큼 칭찬 일색이 될 수밖에 없음을 먼저 이야기한다. 게다가 기존 영화평들과는 다소 다른 글이 될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어쩌겠는가, 글을 쓰는 이가 스포일러나 일삼고 낚시질에나 능수능란한 신 기자인 걸.
<우린 액션배우다>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소재는 액션배우, 우리가 스턴트맨이라 부르는 이들인데 그들은 스턴트맨이 아닌 액션배우라 불리길 원한다. 따라서 기자 역시 그렇게 부르려 한다. 서울액션스쿨 8기 수료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주성치처럼 액션연기를 하는 감독이 되고자 서울액션스쿨 8기 수료생이 된 정병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서울액션스쿨 수료작 <칼날 위에 서다>와 단편영화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등을 통해 수많은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정 감독은 함께 고생하며 액션배우의 꿈을 키웠던 동기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어찌보면 뻔한 소재다. 액션배우라 불리길 원했지만 스턴트맨이라 불리는 그들, 영화 카피처럼 ‘당신(관객)들의 기억엔 없는’ 이들의 이야기. 당연히 고생을 많이 하며 액션배우가 됐을 것이며 액션배우가 된 뒤에도 험난한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좌절과 시련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라는 ‘빤한 예상’이 가능한 영화인 셈. 그렇다면 딱히 돈 내고 극장을 찾아 볼 가치까지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일단 <우린 액션 배우다>는 '무진장' 웃기다. 극장에서 언제 이처럼 무방비 상태로 웃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웃긴다. 그렇다고 극영화처럼 짜여진 코믹이 아니라 실제 상황 그대로인, 다큐적인 코믹이라는 것이 최고의 강점이다. 코믹 요소를 살리는 데 1등 공신이 된 이는 주요 출연진 가운데 하나인 전세진 씨다. 만약 이 작품이 극영화이며 그 모든 게 설정 속 연기였다면 그는 신인 시절 송강호의 아우라를 뛰어 넘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에 나오고 싶다는 이유로 액션배우가 됐다가 금세 그만두고 풀리지 않는 인생사를 상담하러 점집을 찾았다가 사자의 기운에 눌려 있기 때문이라 호랑이 문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등에 호랑이와 용 문신을 새긴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다만 끝내 안타까운 건 그게 실제 그의 인생이라는 것.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에게 엄청난 웃음을 건네주는 그이지만 다큐멘터리 속 그의 진짜 인생을 생각하면 씁쓸함이 뒤따른다. 거침없이 계속되는 코믹을 위해 헌신한 것은 전세진 씨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내레이션을 맡은 여자 성우까지 엄청난 반전(?)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웃음보를 공략한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여자 성우의 비밀이 밝혀지는 대목에서 가장 크게 웃었다.
영화는 <칼날 위에 서다> 촬영 당시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성치를 꿈꾸는 정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인만큼 주인공 역시 정 감독이다. 다큐멘터리의 도입부는 재기발랄하게 꾸민 정 감독의 성장 스토리부터 <칼날 위에 서다> 촬영 당시까지. 만약 <칼날 위에 서다>처럼 다큐에서조차 정 감독이 주연을 맡는다면 흥행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성우는 시작 10여분 만에 주인공을 바꾼다. 보도 자료에 의하면 신성일 씨가 발차기는 어설프지만 얼굴이 잘생겨 서울액셕스쿨에 합격했고 그래서 주인공까지 됐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귄귀덕 곽진석 권문철 등 출연진 모두가 주연이다. 짜인 각본 속 영화에서야 주인공과 조연이 구분되지만 실제 삶에 주연이 어디 있고 조연이 어디 있겠는가, 다큐멘터리는 이런 삶의 진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렇다고 웃긴 것이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의 유일한 미덕은 아니다. 촬영이야 서울액션스쿨 8기 수료생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찍는 것으로 끝이겠지만 관객을 만나기 위해선 적절한 편집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충무로 기대주 정병길 감독의 기막힌 편집이 빛을 발한다. 코믹과 감동,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충실하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적절히 안배한 그의 편집 마력은 두 시간 가량의 긴 러닝타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끌고 있다.
영화 촬영 초반, 이미 10여 명의 서울액션스쿨 8기 수료생 가운데 여전히 액션배우로 활동하는 이는 단 세 명뿐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단 한 명만 남는다. 너무 웃긴 내용의 연속이지만 그들의 아픔을 관객들이 간접 경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유일한 액션배우로 남은 권귀덕 씨가 술자리에서 “우리도 맞으면 아픕니다”라고 얘기할 때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계속된 웃음 가운데 전달된 그들의 진정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진지한 일상을 보여준 액션배우들과 이를 절묘하게 잡아낸 정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 카피에 의하면 ‘눈물 나게 웃다가, 진짜로 울게 되는 다큐’라는 데 사실 진짜 울게 되는 절정은 다른 극영화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어쩌겠는가, 협박하다시피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에 비해 다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걸. 그 절정의 순간은 한 무술감독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대박 영화 <놈놈놈> 이야기에 접근한다. 영화 속 주인공 가운데 몇몇이 영화 <놈놈놈> 촬영 현장에 투입돼 그들을 만나기 위해 제작진이 중국으로 향한 것. 그럼에도 <놈놈놈> 제작진은 촬영 현장 공개를 거부한다. 이에 제작진은 단순무식하게 무단 촬영을 시도하지만 이마저 무산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없는 제작비를 쪼개 중국을 찾았던 제작진은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놈놈>의 무술감독인 지중현 감독이 액션장면 위주의 메이킹 필름을 보내줬다는 것.
여기서 우린 지중현 감독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참고로 그는 이제 고인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지중현’을 검색해봤다.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로 인해 그의 죽음을 언급한 기사가 몇 개 눈에 띄지만 <놈놈놈> 개봉 전 기사는 단 한 개뿐이다. 그마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린 액션배우다>가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와의 연관성을 제외하면 개봉을 즈음해 영화 엔딩 트레딧에 그를 추모하는 글귀가 들어가 있다는 단 한 개의 기사가 유일하다. 한국 영화계에 떠오르는 실력파 무술감독이 영화 <놈놈놈> 촬영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사실이 <우린 액션배우다>가 아니었다면 세인들에겐 비밀이 됐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놈놈놈> 정도의 대작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이 같은 불의의 사고가 있었다면 그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로 인해 많은 영화 팬들이 가슴 아파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여하튼 이 사건은 영화를 절정으로 이끌며 영화 속 액션배우들의 내일을 변화시킨다. 참고로 3M흥업이 제공한 영상은 고 지중현 감독의 인터뷰 내용으로 생전에 그를 인터뷰한 영상을 갖고 있는 매체는 3M흥업뿐이었다. 김애경 편집장의 몇 년 전 모습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며 낄낄대던 3M흥업 멤버들은 그 장면이 흘러나오는 순간, 웃기는커녕 숙연해지고 말았다.
3M흥업 멤버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사흘 뒤인 8월 22일, 기자는 팝 칼럼리스트 김태훈 씨와 항정살에 소주 한 잔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치 않은 행운을 경험했다. 길거리에서 <우린 액션배우다>의 출연진으로 서울액션스쿨 8기 가운데 유일하게 현역 액션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권귀덕 씨를 만난 것. 기자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자 그는 크게 놀라며 기자를 환대했고 김태훈 씨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연예 기자 10여년 만에 길거리에서 연예인을 보고 먼저 나가가 인사를 나눈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기자는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에 반했다.
“우리 영화는 홍보를 크게 못한데요. 그런 만큼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권귀덕 씨를 위해 기자는 바로 다음 날 이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이 글을 올리는 지금은 또 열흘이 지난 9월 1일이다.
물론 기자의 나태함 때문에 늦어진 것이지만 나름의 핑계는 있다. 그날 새벽까지 술을 퍼마신 기자는 아마도 취중에 액션배우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찌어찌한 취중 상황으로 인해 쇄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만 것. 이로 인해 한 팔을 쓰는 게 부자연스러워 영화가 개봉되고도 나흘이나 지나 이렇게 글을 올린다.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시길, 물론 개봉관이 한정돼 있는데다 벌써 꽤 많은 극장에서 이미 내려갔겠지만, 뒤늦게나마 강력 추천한다.
쇄골 하나 부러진 것 갖고 낑낑대는 기자는 관객을 위해 온갖 부상을 무릅쓰며 온 몸을 다해 액션연기를 펼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은 진정한 액션배우다!
* 참고 : 故 지중현 감독에 관한 3M흥업의 포스트- 어느 스턴트맨의 죽음
우린 액션배우다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