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즈' 앞서가는 자의 고뇌

영화 이야기 2010. 6. 19. 13:52 Posted by cinemAgora
영화도 유행이 있어서 한 때 음악 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질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한 풀 꺾인 것 같다. 지난 3월 개봉한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크레이즈 하트>를 빼곤 이렇다할 음악 영화가 눈에 띄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록 음악 애호가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만한 음악 영화 한 편이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I Love Rock and Roll'로 유명한 여성 로커 조안 제트의 초창기 음악 활동을 담은 <런어웨이즈>다. 기억을 환기할 겸, 1982년 발표돼 무려 7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지켰던 조안 제트의 기념비적 대표곡을 듣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실제 조안 제트가 제작에 참여하고, 여성 뮤직 비디오 감독 플로리아 시지스몬디가 연출한 <런어웨이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안 제트의 전성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10대 시절 소속됐던 여성 록그룹 '런어웨이즈'의 활동상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 영화가 '런어웨이즈'의 보컬이었던 체리 커리의 자서전 '네온 엔젤'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런어웨이즈 시절의 음악을 감상해보자. 77년 일본 공연 실황인데, 속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는 보컬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체리 커리다.



영화는 록이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1970년대에 도발적으로 등장한 '런어웨이즈'를 통해 시대와 대중문화 아이콘이 교호하거나 충돌하는 풍경을 담아낸다. 록이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을 상징한다면, '런어웨이즈'는 남성 중심의 록 풍토에 또 다른 반기를 든 상징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여성을 '요조숙녀'의 틀에 가둬두려는 주류적 가치에 반기를 들며 당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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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항과 전복이라는 상품성은 여성 록 그룹이라는 이들의 정체성과 맞물리며 하나의 역설이 된다. 그 역설은, 이들을 되바라졌지만 섹시한, 또 다른 차원의 성적 아이콘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다. 왜 아니겠는가. 새파란 10대 소녀들의 도발적 무대 퍼포먼스를 혀를 끌끌차며 바라보는 한편, 은근한 눈빛으로 그들의 매끈한 다리를 탐닉하는 시선이 비단 21세기 소녀시대만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이런 쇼비지니스의 관성은 '런어웨이즈'를 침투하고 보컬 체리 커리는 미필적 고의로 그 관성과 화합하려다 팀내 불화의 씨앗이 된다. 그녀가 핀업걸처럼 찍은 화보를 내던지며 조안 제트는 소리친다. "우리는 포르노배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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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흥행을 앞세운 프로듀서와 충돌하며 로커로서의 음악적 정체성을 다져 나가는 조안 제트를 한 축으로, 스타덤의 이면에서 마약에 찌들며 스스로를 파괴해가는 체리 커리를 또 한축으로 비추면서 이른바 파격적 아이콘이 내포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고뇌를 드러낸다. 어쩌면 반항과 타협을 되풀이하며 파괴되거나 다져지는 게 록의 숙명이라는 듯.

말할 나위 없이 조안 제트와 '런어웨이즈'의 훌륭한 음악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인물의 개인사와 비하인드 스토리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와 대중문화의 상관 관계를 곱씹고 있는 건 음악영화로서 <런어웨이즈>가 갖춘 또 하나의 미덕이다.

배우들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겠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트와일라잇>의 청순 소녀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조안 제트의 보이시하고도 터프한 매력을 비교적 훌륭하게 소화한다.

체리 커리를 연기한 다코타 패닝의 성장 또는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다. <아이앰 샘>과 <우주전쟁>의 초롱한 아역 이미지는 온데 간데 없고 마약과 동성애 장면 등 열 여섯 나이에 저런 연기를 해도 괜찮을까 싶은 파격을 선보인다. 어쩌면 그녀는 록 음악사에서 '런어웨이즈'가 차지하는 함의를 온몸으로 증명하려 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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