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 없는 한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 1위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가 차지할 게 뻔하다. 예매율 지표 따위를 거들떠 볼 필요도 없다. 원작 게임 자체가 워낙 유명한데다, 스펙터클 모험 판타지라면 손님이 몰릴 게 당연지사니까. 극장들로선 '기왕이면 3D로 나왔으면 좀 좋아?" 하며 아쉬움 한켠으로 팔 벌려 환영할만한 영화다.
일찍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재미를 톡톡히 본 디즈니는, '이국적 볼거리'라는 흥행 포인트를 좀더 밀어 붙이기로 했나 보다. 이번에는 고대 페르시아다. 그런데 아무리 장사가 된다손 치더라도 '미국적 보수주의'의 문화 전령사를 자처해온 디즈니가 페르시아를 오락영화의 무대로 활용하기로 한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월트 디즈니는 1940년대 미 하원의 공산주의자 색출 조직인 '‘비미국적 활동 조사위원회’(HUAC)에 출석해 동료 영화인들을 빨갱이로 몬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도 디즈니는 부시 전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의 배급을 금지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페르시아가 어떤 곳인가. 지금의 이란. 북한과 더불어 초강대국 미국에 맞대거리 하는, 지구상의 몇 안되는 지역의 조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들> 때부터 서구인에 의해 야만인 취급 당했던, 바로 그 페르시아가 웅장한 문명의 외피를 두르고, 디즈니에 의해 스펙터클 모험극의 무대로 재현된 것이니, <300>의 스파르탄들이 봤으면 땅을 칠 일 아니겠냔 말이다.
물론 흥행을 위해서라면 구원(舊怨)이 다 무슨 소용이냐 할 일이지만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적대적으로 으르릉 대고 있는 중동의 국제 정세를 감안컨대, 괜시리 아이러니한 구석이 느껴지더란 얘기다. (오락 영화 한 편 갖고 별 생각 다하지? 직업병이다.)
그럼 그렇지,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에서의 페르시아는, 사실상 앞서 말한 이국적 볼거리를 위해 슬쩍 차용된, 그러니까 말 그대로 '배경'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똑같은 얘기를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 가져다 놓아도 별 차이를 못느낄 정도라면, 웅장한 성곽의 미로 안에서 펼쳐지는 휘어진 칼의 향연을 위해, 그러니까 오로지 뭔가 색다른 비주얼을 위해 페르시아가 필요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물론 원작 게임의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계산도 선행됐겠고.)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시 전대통령 때 벌어진 이라크 전쟁의 코미디, 그러니까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해프닝을 슬쩍 가져다 놓음으로써 제법 풍자적인 제스처까지 취한다. 여기에 주인공 제이크 질렌할은 마치 성룡으로부터 사수 받은 듯한 액션 연기를 펼치고, 그를 뒤쫒는 암살 조직 '하새신'은 일본의 닌자를 판에 박았다. 한마디로 무늬만 페르시아이지 온갖 현란한 다국적 흥행 요소들을 뒤섞어 놓은 잡탕 짬뽕 같은 오락영화라는 얘기다.
부왕 살해 누명을 쓴 왕자가 결국 시간의 모래를 둘러싼 신비의 마법에 의해 누명을 벗는다는 뻔한 이야기, 내내 쫓기기만 하다가 우르르 쾅쾅 어찌 저찌 이러쿵 저러쿵 결국 주인공이 이기긴 이겼는데 어떻게 된거야 라는 의문 따위는 닥치고, 눈이라도 호사했으니 만족하고 나가라는 뻔뻔한 스펙터클.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고대 페르시아를 훔친 디즈니가 꽤 값비싼 장물로 포장해 내놓은 듯한, 요란 뻑쩍지근한 눈요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