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찌감치 충무로에 입성, 장선우 감독의 <꽃잎>과 <나쁜 영화> 등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는 김수진은, 한국영화 전성기가 막 시작될 즈음인 1999년 도미해 AFI(미국영화연구소)와 워너브라더스 월드와이드부서 등을 거치며 프로듀서로서의 '감'을 치열하게 익혔다. 그리고는 하필 한국영화계가 불황기로 접어든 2005년 귀국, 영화사 비단길을 차렸다. 그는 2006년 첫 작품 <음란서생> 이후 2년만에 내놓은 <추격자>의 잇단 흥행으로 칼날 같은 흥행 선구안을 과시하고 있다.
<추격자>가 3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화창한 봄날 오후, <추격자>의 프로듀서 김수진을 만났다. 이날 그는 미국 워너브라더스와 체결한 100만 달러 짜리 리메이크 판권 계약 때문에 잔뜩 상기돼 있었다.(인터뷰 내용 중 스포일러 있음)
"<추격자> 흥행 비결은 타협 없는 원칙주의"
최광희(이하 '최') 냉정히 말해서 언론이 흥행 영화의 제작자에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는 타이밍이 약간 빠른 편이다. 예전 같으면 4~5백만 명 정도는 돼야 했는데. 그만큼 충무로가 어려운 데 대한 반대급부적 관심이랄까?
김수진(이하 '김') (웃음) 사실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재미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과도하리만큼 박수 쳐주고 평점이 높은 건, 운도 따르는 것 같다. 워낙 상황이 안 좋다 보니까 우리 영화를 밀어주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것도 같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 98년 IMF 직후에 주식 벼락 맞은 사람들 기분하고 비슷하지 않을까?(웃음) 지금이 한국영화계의 IMF나 다름 없으니까. 어쨌든 아직 대박이라 할 순 없지 않은가.
김 아직 대박은 아니다. 이제 3백만 명 넘었지.
최 5백만까지 바라보고 있다면서?
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5백만을 목표로 좀더 노력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그렇다기 보다 3-4백만 명 들면 사람들이 금방 잊어먹더라. 5백만이 넘으면 굉장히 기억에 오래 남고. <살인의 추억>처럼 이정표를 찍고 가는 느낌이 들려면 상징적인 차원에서 5백만이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거지.
최 투자사들이 처음에는 갸우뚱하다가 밀어보자고 돌아서게 된 계기가 있었나?
김 1년 내내 시나리오 고치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투자사들 다 만났다. 다들 안 한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지 사채를 끌어서라도 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밴티지 홀딩스라는 투자사가 처음 만들어졌다. 혹시나 해서 시나리오를 줬는데 바로 하겠다고 하더라. 너무 기쁘긴 했는데, 그땐 워낙 투자 상황이 안 좋아서 제작비를 많이 쓸 수가 없었다. 애초에 40억 원 정도로 잡았는데, 30억이면 하겠다고 하더라. 줄이고 줄여봐도 31억 5천만 원이 나왔다. 그 예산에 오케이를 했는데, 그 순간에도 엄청 오버될 것을 알고 있었지.(웃음) 밴티지 홀딩스는 처음 만든 투자사였는데, 오래 된 투자사와는 다른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신선한 눈이 있고, 사람들이 다 젊다. 30대 초반의 영화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가 가능했던 것 같다.
최 다른 투자자들이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 제일 먼저 나온 이유는 어둡고 칙칙하다는 거였다. 연쇄 살인마에 출장안마사 사장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닌 것 같다는 반응들이었다.
최 끈질기게 설득을 한 편이었나?
김 굉장히 끈질기게 달라 붙었지. 여러 번 미팅도 하고 제작비도 충분히 조절하겠다고 여러 번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No' 하더라. 그 시기에 워낙 한국영화가 수익률이 낮아서 대부분 수익률이 눈에 보이는 영화, 로맨틱 코미디나 가벼운 영화를 찾는 분위기였다.
최 어둡고 무거운 걸로 치면 <살인의 추억>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김 <살인의 추억>은 그래도 봉준호 감독이 있었고, 송강호가 있었지. 우리 영화는 아무도 없었다. 그 차이점이지.
최 그래도 밀어붙여야 되겠다, 이 영화는 반드시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배경은 뭔가.
김 시나리오를 숨을 못 쉬고 단숨에 읽었다. 그렇게 읽은 시나리오는 굉장히 잘 되더라. 재미있고, 긴장감이 있었고, 관객은 다 알고 엄중호만 몰라서 혼자 뛰어 다니는 상황이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관객들이 안타까워 하면서 엄중호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가 이렇게 재미 있다면 영화는 그 이상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있었다.
최 대중 관객은 영화를 통해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 오히려 그것이 흥행 포인트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김 시나리오를 1년 동안 고치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많이 집어 넣었던 게 장점이 된 것 같다. 처음 초고에서는 그냥 잔혹한 스릴러 정도였는데 그렇게 하면 작은 영화가 될 것 같았다.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겁고 칙칙한 이야기이지만 왜 그런 상황이 되는지 사회적인 환기를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주제도 살아나고 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명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잔혹하고 어두운 정서를 유화시키려는 주문은 많이 했을 것 같고. 어떤 부분에서 감독에게 수정을 요구했나?
김 많이 했지. 초고부터 편집까지 굉장히 많이 했다. 화장실 장면과 개미 슈퍼 장면도 나홍진 감독과 굉장히 많은 논쟁 끝에 30-40%를 들어낸 거다. 나 감독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그 부분이 나간다면 잘못하면 하드코어 스릴러나 컬트 영화처럼 보이게 될 우려가 있어서 최대한 잘라 냈다. 시나리오 단계 때 1차적으로 많이 걸렀고, 촬영과 편집 단계를 거치며 또 걸러냈다.
최 엄중호와 지영민의 막판 격투 장면에서 쓰인 도구가 원래는 망치가 아니라 죽은 미진의 머리통이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바꾼건가?
김 1년 내내 그걸 가지고 싸웠는데, 나 감독이 1년 내내 안 고친 대목이었다. 그 장면 촬영 전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나 감독 숙소에 찾아가서 세 시간을 기다려서 세 시간을 얘기했다. 결국 합의가 됐다. 사람 사체로 영민 머리를 치는 장면이 나오면 영화가 다른 장르가 된다. 관객은 중호의 마음으로 영민을 처단하고 싶어하는데, 그런 감정이 제대로 전달이 안될 것 같고, 가장 중요한 건 심의가 안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여러 얘기를 서 너 시간에 걸쳐 했다. 결국 나 감독이 오케이를 했다.
최 빠진 게 결과적으로 다행이네.
김 그게 있으면 영화가 제대로 완성이 안 된다고 믿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1년 내내 안바꿨고, 콘티 때도 안 바꿨으니 도저히 안되겠더라.
최 영화를 하면서 투자자에게 거절 당하면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을 거고.
김 무지하게 속상하지. 자존심은 많이 상하는데, 오히려 기가 꺾이는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은 도대체 시나리오를 볼 줄 아는 거야 뭐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 두고 보자 하는 오기가 생겼다.
최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 투자자들이 시나리오를 볼 줄 모른다는 게 맞네.
김 그렇게 얘기하면 오만한 건데.
최 사실 그 때 이 작품 안 된다고 했던 투자자들,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 아닌가. 돈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눈도 중요한 건데 말이지.
김 다 임자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안 된다고 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눈이 다르고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우리 영화를 '뺀치' 놨던 사람들의 기준과 원칙은 다른 영화에 꽂혀 있었던 것 같고. <추격자>는 밴티지 홀딩스같은 새로운 투자사가 아주 신선하게 잘 찾아낸 경우다. 영화는 다 임자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최 배우들 가지고도 얘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김윤석 카드에 대해선 거부감이 없었나.
김 없진 않았다. 김윤석 카드는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밀어 붙였다. 투자자들도 하도 밀어붙이니까 오케이 했다. 그런데 김윤석-하정우 카드를 동시에 밀어 붙였다면 분명히 안됐을 것이다. 김윤석과 서영희를 먼저 캐스팅해 놓고 나중에 하정우를 캐스팅했는데, 투자사 입장에서는 다른 한 명 정도는 스타로 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영민 역까지 스타 캐스팅을 안하고 적역 캐스팅을 하겠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안 된다고 반대를 많이 했다.
최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하정우 말고 그 자리에 캐스팅했으면 좋겠다 거론한 배우들은 누구였나?
김 있지만 얘기하면 안 된다. 지금 쓰면 안돼. 정말. (웃음)
최 개런티는 얼마나 줬나.
김 2억 원 위 아래. 그 정도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최 시나리오도 뛰어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를 무릅쓰고 하정우 카드를 고집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 거기에 대해선 논리적인 답이 없다. 물론 스타 캐스팅이 힘든 장르이긴 했지만, 역할에 잘 어울리는 적역을 캐스팅한다는 게 이 영화의 원칙이었다. 영민 역은 무조건 하정우라고 생각한 건 그 선한 얼굴에 영민 역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이상한 고집이었지.
최 편집하는 과정이 남달랐다면서?
김 만날 가서 괴롭혔다. 모든 후반작업을 한 달 안에 해야 하고 2주 안에 편집을 끝내야 하는 시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감독과 생각이 다르니까 논쟁 과정이 길었다. 고쳐 놓으면 다시 가서 보고, 다시 논쟁하고 또 고치고 그랬다.
최 배급 일정 가지고도 설왕설래가 있었지?
김 원래 내가 설 연휴 때 가겠다고 큰소리 쳤지.
최 결과적으로 그 때 안 붙인 게 천만 다행이네.
김 (웃음) 그게 운이라니까. 당초 개봉 시점을 1월 말로 잡았던 것은 설 연휴라는 의미보다, 2월 한 달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쇼박스에는 1월 30일 개봉이니까 무조건 날짜를 비워 놓으라고 얘기를 했는데, 촬영이 늦어지면서 (웃음) 다시 찾아가서 죄송합니다, 못 맞춥니다 그랬지. 쇼박스도 합리적이었다. 그 시기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전략을 잘 짜겠다고 그러더군.
최 이 영화는 무조건 된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된 시점은 언제였나?
김 촬영 전에 전체 리딩 했을 때. 리딩 하는 걸 두 번을 연속해서 듣고는 이 영화 되게 흥행할 것 같다고 그랬다. 영화 너무 재미있고, 김윤석과 하정우 연기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그 때 90% 이상 확신을 가졌다. 그 뒤로 매일 텔레시네를 보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잘 찍혀 오더라. 현장 편집본 보니까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없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했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보면 액션과 리액션이 잘 붙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편집 끝나고도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의 반응일 줄은 사실 몰랐다.
최 감이 남다른 건가?
김 운이 진짜 좋았다.
최 꼭 성공한 감독이나 제작자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얘기하지.
김 (호탕하게 웃음) 아니, 진짜 운이 좋았다니까!
최 어느 정도의 안목을 갖지 않았다면 밀어 붙일 수 없는 시나리오 아니었나. 미국 워너브라더스의 월드와이드 부서에서 시나리오 검토일을 했던 것이 그런 부분에서 바탕이 됐을테고.
김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다. 시나리오를 하루에 열 권 이상씩 읽고 그렇게 트레이닝 했던 게 도움이 됐고, AFI(미국영화연구소)에서 공부했던 것도.
최 결국 관건은 좋은 시나리오다.
김 사람마다 다 기준이 다르지만, 나는 배우고 감독이고 별로 안 본다. 시나리오만 본다. 그 시나리오가 영화적으로 재미가 있으면 그 다음엔 감독을 본다. <추격자>는 그 기준에 딱 맞아 떨어진 합이었다.
최 나홍진 감독과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 단편 영화 <완벽한 도미요리>를 보고 나서 무조건 저 감독 잡아와, 그랬다. <음란서생> 제작실장이 그 영화의 피디를 했다길래 빨리 데려오라고 했다. 같이 저녁 먹으면서 얘기 해보니까 다른 영화사랑 감독 계약을 몇 번 했는데 진행이 안돼 풀이 죽어 있더라. 한 6개월 정도 삼겹살에 소주 마시면서 뭘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추격자>의 근간이 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그러더라. 그리고 2006년 1월에 제목도 없는 초고를 가져 왔다. 보는데 정말 토할 뻔 했다. 숨도 못 쉬고 너무 빠른 시간에 긴장을 하고 봐서. 너무 재밌더라. 어쨌든 시나리오는 많이 고쳐야 겠다, 서로 믿고 한번 해보자고 했다. 나 감독도 기분 좋게 "<살인의 추억>을 뛰어 넘게 해주세요."하더라.
나홍진 감독
김 내가 보기에 나홍진 감독은 천재다. 영화적인 감각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다. 당장 미국 가서 할리우드 영화 해도 굉장히 잘 만들 것 같다.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푸는 데 있어서 나홍진 감독만큼 감각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찍어서 어떻게 붙일 때 관객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다 알고 있다는 거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렇게 트레이닝 된 건지, 아니면 원래 천부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정말 천재다.
최 한국에 돌아와서 제작자로 두 편 했다. <음란서생>도 잘 됐고, 야구로 치면 2연타석 홈런이다.
김 적게 해서 그런 것 같다. 일년에 서너 편씩 하는 제작사도 있는데, 우리는 2년에 한 편꼴인데, 뭐.
최 그만큼 신중한건가?
김 신중하다기보다 꼼꼼하게 따지는 것 같다. 적당하게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씩 다 검토했다. <추격자>를 보면 모든 인물들이 다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나. 그런걸 보여주면서 우리까지 대충대충 넘어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마다 이게 최선인지 다른 대안이 없는지 고민했다. 나 감독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불평 한마디 없이 고치고 또 고치고 했다. 그러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최 기획자 또는 제작자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나?
김 제작자가 하는 일이 만가지 정도 된다고 했을 때 그 중에 천 가지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작자가 선택을 할 때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할 때도 제목을 <추격자>로 붙이고 나니까 굉장히 명확해졌다. 이 영화는 본능적인 추격 드라마이고 더 나쁜 놈을 나쁜 놈이 쫓아가서 잡는 얘기다. 추격에 대한 기획적인 아이템을 이렇게 잡아 놓으니까 명확해졌고, 이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뭘까 하는 데 있어서 원칙적인 타협을 하지 않은 거지. 캐스팅도 그렇고 예산도 그렇고 하나도 타협하지 않고 고집을 부렸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물론 결과가 이렇게 안 나왔으면 바보가 됐겠지만.
최 당신 영화는 흥행했지만 요즘 충무로가 많이 어렵다는 걸 체감하나?
김 작년 한국영화 열 편 중에 아홉 편이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 영화 시작할 때만 해도 촬영하고 있는 영화가 거의 없었다. 투자를 못 받으니까. 그럴 정도로 어려운 때여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많이 느껴진다.
최 관객들의 선택이 이전보다 많이 까다로워졌고, 배우의 면면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다.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다.
김 관객들이 눈이 높아지는데 투자사나 제작사들은 여전히 편안하게 가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이 캐스팅이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진짜 위험한 거다.
최 상황이 어려울 때일 수록 문화 기획자로서 프로듀서의 방향성도 더욱 명확해져야 할 것 같다.
김 사실 어떤 게 새로운 건지, 어떤 게 더 좋은 건지 아무도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장르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과감한 투자 환경이 돼야 한다. 투자자들도 워낙 많이 깨지다 보니까 리스크가 두렵고 자꾸 안전하게만 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안전하게만 가니까 깨지는 폭이 더 커지는 거다. 저 정도 배우에 저 정도 감독이면 기본은 하겠지 하는 영화들이 다 깨지지 않나. 영화는 정말 답이 없는 것 같다. 기획자나 제작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그 확신만큼의 노력으로 뒷받침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최대한 좋은 영화를 만들어 놓고 관객들이 들기를 바라야 한다. 웰메이드도 못해 놓고 이 정도면 될 거라고 자꾸 들이 밀면 투자자나 제작자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최 리메이크 판권 계약은 어떻게 진행이 됐나?
김 처음부터 이 영화는 미국 쪽에서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다. 리메이크 판권을 적극 추진한 가운데 미국에서 스튜디오 담당자들 대상으로 시사회를 두 번 했다. 다행히 워너쪽에서 관심을 보였고, 아카데미 상을 받은 각색자가 각색을 하기로 계약을 하고 100만 달러에 팔기로 했다. 우리가 요구한 가격 그대로 오케이가 됐다.
최 새 작품인 <작전>은 누가 연출하나?
김 이호재 감독이 한다. 신인이다. 한국에서 광고를 오래 했고, 미국에서 마이클 베이가 졸업한 아트센터 영화과를 나왔는데, 다른 대기업에서 감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6개월을 꼬셨다.
최 일단 마음에 들면 6개월은 꼬시고 보는군.
김 (호탕하게 웃음) 갑자기 그런 사람이 됐네. 6개월 꼬셔도 안 넘어 왔는데, 어느 날 "저 시나리오 쓰게 책상 하나 주세요" 하더라. 냉큼 방 만들어줬다. 일주일 정도 뒤에 물어 봤더니 주식으로 사기 치는 사람들 얘기라고 하더라. 그날 바로 계약했다. 하이스트 장르라고 해야 하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2008년 겨울 개봉을 예상하고 있다.
최 <추격자>도 그렇고 <작전>도 그렇고 한국사회의 부조리함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김 감독들이 멜로 안 하냐고 묻는데, 나는 멜로가 잘 안 된다. 자꾸 이런 성향으로 간다. 개인적으로 선이 굵고 사회적으로 할 얘기가 많은 영화 쪽으로 가게 된다.
최 아무래도 대학 다녔을 때 돌 좀 던지신 것 같은데?
김 많이 던졌지.(웃음) 드디어 들통났네. 내가 광주 출신이고 중학교 때 5.18을 겪었다. 대학 시절도 내내 민주화 운동의 절정기였다. 지금 그 얘기를 하니까 그런 성장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최 최근 충무로의 제작자들이 우회 상장 등에 골몰하면서 기획력보다 머니 게임에 치중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기획력의 에너지가 소진돼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 다행인 게 나는 돈을 잘 모른다. 주식도 모르고 우회상장도 모르고. 머리가 나빠서 오히려 영화만 하게 된다. 선배 제작자들이 우회 상장에 신경을 쓰면서 그분들로부터 서서히 좋은 영화가 안 나오는 게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최 개인적으로 자산가는 아닐 것 같다.
김 나, 월세 산다.(웃음)
최 지금이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점인가?
김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 물어 보니까 그러네. 행복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사실 하루 하루가 너무 정신 없고 피곤해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사진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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