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6일 대학원 수업을 마친 뒤 조촐한 종강 파티가 있었다. 신문방송학과인지라 수업 때마다 시국상황에 대한 얘기가 자주 오갔는데 이날 역시 정부의 관보게재 강행 이후 촛불 시위의 향방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촛불 시위의 변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과연 다가오는 주말에도 엄청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일지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이 대목에서 필자는 연예부 기자다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날 오전 연예부 기자들은 KBS 황정민 아나운서의 촛불 시위 관련 발언 때문에 정신없었다. KBS 라디오 <황정민의 FM대행진> 오프닝 멘트에서 그는 “(촛불)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에 많이 실망스러웠다”며 “새로운 시위 문화라고 보도했던 외신들이 ‘그럼 그렇지’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미 개그우먼 정선희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 시위 관련 발언을 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불행히도 황정민 아나운서가 그 뒤를 잇게 될 위기에 직면한 것이었다.


여기서 필자가 제시한 향후 촛불 시위의 앞날이 어찌될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네티즌을 비롯한 대다수 시민의 여론이 촛불시위 초기처럼 날카롭다면 황정민 아나운서 역시 방송에서 하차할 것이며 이미 일정 부분 식어있다면 공식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었다. 그리고 황정민 아나운서는 두 차례의 공식사과를 한 뒤 계속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연예부 기자의 아둔한 기준에 따른다면 촛불 시위에 대한 네티즌을 비롯한 대다수 시민의 여론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되고 만다. 실제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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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아나운서의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얘기는 ‘과격해진 시위에 대한 실망’이 아닌 ‘평화시위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하루 뒤로 돌아가 6월 25일 광화문 사거리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날 필자는 그 공간에 있었다. 부끄럽게도 촛불 시위에 참석한 것은 아니고 회사 인근에서 회식이 있어 술을 한 잔 하고 나왔더니 그 앞에선 시위가 한 창이었다. 회식 장소는 광화문 사거리와 그날 가장 격렬한 시위대와 전경의 충돌이 빚어진 새문안 교회 중간지점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술집을 나선 기자는 한창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교보문고 입구 앞 쪽 보도블록에 걸터앉아 있었다.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 동안 필자가 본 모습은 명박산성이라 불리는 전경차량을 앞뒤로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와 전경들의 모습이었다. 이날 전경들은 명박산성 뒤에서 구멍을 통해 소화기를 뿌리고 있었다. 시위대는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소화기를 뿌리지 말라”고 외치며 물을 공수해와 소화기에 맞섰지만 계속해서 소화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로 인해 광화문 사거리는 마치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곧이어 새문안 교회 인근에서 전경과 시위대의 충돌이 있었고 이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과잉진압과 폭력시위의 딜레마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란처럼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시위대가 위치한 곳에서 바라본 입장에선 마치 전경들이 시위대에 싸움을 거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화기를 뿌리는 이유가 시민들의 청와대를 행한 진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수고 있지만 필자의 눈엔 시위대가 계속되는 소화기 분사를 막기 위해 명박산성 전경차량을 밧줄로 끌어내도록 신경을 건드리는 모습으로 보였다. 역시 시위대는 그렇게 반응했고 그 다음 전경의 준비물은 물대포였다. 물론 이는 진실이 아닌 편협한 필자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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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청와대로 진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곳에 가서 시민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지 않아도 방송이나 뉴스를 통해 청와대도 이를 충분히 접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차라리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며 도심 이곳저곳을 행진하며 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 내는 게 더 전략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만약 정말로 전경들이 의도적으로 소화기를 뿌리며 시위대를 도발한다고 해서 거기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하지만 시위대 현장의 분위기는 이렇게 이론적이고 이성적인 게 아니다. 소화가 분말과 물대포가 날라 오고 당장 옆에서 시위대 일행이 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선 그 누구라도 흥분하고 격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경 역시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방어선을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충돌이 계속되는 게 아닐까.


다시 황정민 아나운서 얘기로 돌아오자. 과연 그는 왜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일까. 물론 그의 말은 맞다. 과격해진 시위대의 모습은 충분히 실망스럽다. 그런데 그가 왜 이런 발언을 했던 것일까, 과연 현장의 상황과 그들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듣고 느껴서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일까. 만약 그가 과격해진 시위대의 당시 상황과 심경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한 뒤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면 필자는 충분한 공감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그게 아닌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만 접한 뒤 그런 교과서적인 얘기를 한 거라면 여기에는 분명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서 실망할 수고 있겠지만 이는 그의 사견일 뿐 방송을 통해 밝힐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그는 분명한 사과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필자는 황정민 아나운서가 해당 프로그램을 자진해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앞서 필자가 제시한 기준처럼 네티즌의 반발이 정선희 당시보다 덜 한 게 이미 촛불 시위에 대한 여론이 돌아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부분까지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반면 개그우먼 정선희와 아나운서 황정민의 형평성에선 분명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선희의 경우 일반 방송도 아닌 홈쇼핑을 통한 방솜 컴백을 두고도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상하게도 주춤해진 촛불 시위 관련 여론이 여전히 정선희에게만 매섭다.


“광우병이다 뭐다해서 애국심 불태우면서 촛불집회해도 이런 사소한 거, 환경 오염시키고 이렇게 맨홀 뚜껑 퍼가고 이게 사실 굉장히 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입니다. 큰일 있으면 흥분하는 분 중에 이런 분이 없으리라고 누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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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정선희의 발언이다. 감정적이고 격한 표현이다. 어떤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시위대를 비하하는 느낌이 강한 발언이다. 그렇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촛불시위 도중에 벌어질 수 있는 환경오염 등에 대한 경고성 발언 정도로 가볍게 여길 수도 있는 발언이다. 물론 필자의 사견이지만 황정민 아나운서보다 표현이 더 격하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더 심각하다고 할 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여론은 황정민 아나운서에겐 비교적 관대하지만 한달 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정선희에겐 매섭다.


그 이유를 정확히 얘기할 순 없지만 몇 가지 논란은 뒤이을 수 있다. 우선 필자가 연예부 기자로서 제시한 기준이 적중한 것이라면 황정민 아나운서는 본인이 촛불 시위 관련 여론 변화의 바로미터라는 얘기인데, 이게 그에게 기쁜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나운서에겐 유난히 부드러운 일반인의 시각과 개그우먼이라면 그냥 웃기는 사람으로 여기는 일반인의 편견이 이전 사안에서 두드러졌다 할 수도 있다. 이는 곧 아나운서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좋다는 얘기인데 이게 그에게 기쁜 일인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아나운서로서 냉철한 판단을 내려 과격해진 촛불시위에 대한 할 말을 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차후에도 사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이런 논리로 접근한다면 정선희는 웃기라고 있는 개그맨이 여론의 추이와 무관하게 냉철한 판단도 없이 아무 얘기나 한 게 된다. 과연 그럴까. 이번 논란이 일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가에서 가장 돋보이는 여성 MC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진정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황정민 아나운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개그우먼 정선희를 향한 세인들의 시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어설픈 연예부 기자인 필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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