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침체를 부른 거품들 ③

영화 이야기 2008. 3. 8. 09:58 Posted by cinemAgora
이제 연재를 마친다. 한국영화 전성기가 IMF 이후 한국 경제를 왜곡시켜온 거품 현상에 의해 견인돼 왔다고 주장하는 '거품 시리즈' 마지막 글이다. cinemAgora는 이 글을 통해 황금의 땅으로의 진출처럼 보였던 영화사들의 우회 상장 붐이 거품을 가리기 위한 미봉책에 다름 아니었다고 진단한다. 더불어 왜곡된 경제 상황에 볼모로 잡혀 있는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자율성에 근거한 정책적, 산업적 비전을 세우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관련 포스트
거품들 ① 무분별한 멀티플렉스 확장 부른 부동산 투기 붐 
거품들 ② 이통사와 신용카드의 고객쟁탈전 & 벤처캐피털과 공적자금

버블 #4: 우회상장 붐
 
지난 2005년을 전후해 대부분의 영상전문투자조합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충무로에는 돈가뭄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년째 마이너스를 기록한 수익률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은데다 투자 상황도 경색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이때 적지 않은 영화사들이 마련한 자구책은 코스닥 시장.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영화업의 특성상 직상장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영화사들은 기존 상장사를 등에 업음으로써 코스닥의 백도어를 두드리는, 이른바 우회상장의 길을 택했다.

충무로 중견 제작사 명필름과 강제규 필름이 손을 맞잡고 공구 업체 세신버팔로를 통해 코스닥에 입성, MK픽쳐스로 변신을 선보인 뒤 주식 교환이나 인수 합병을 통한 영화들의 우회 상장이 잇따랐다. 싸이더스 HQ, LJ필름, 쇼이스트, 튜브 픽쳐스, 튜브엔터테인먼트, 팝콘 필름, 태원엔터테인먼트 등이 뒤를 이었다. 충무로에서는 이를 한국 영화계가 산업화 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한국영화계가 바야흐로 규모의 미학을 선보일 때가 됐다는 가슴 벅찬 얘기로 들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코스닥 등록은 겉으로는 안정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황금의 땅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회 상장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자체가 부실의 위험을 내포한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공급 주도의 산업 확장이 부른 필연적 결과로 축적하지 않고 쓰기만 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영화계가,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의 뼈아픈 평가대로 "머니 게임의 숙주" 노릇을 자처하게 된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부동산과 카드 거품에 의해 왜곡된 영화 산업이 바야흐로 주식 거품의 볼모로까지 잡히게 된 수순이다.

그 결과, 작품의 질보다는 당장의 주가와 증자를 의식한 전시용 제작이 잇따랐을 뿐 아니라 2006년과 2007년에 걸친 한국영화의 공급 과잉 현상까지 빚어졌다. 영화는 주가를 올리기 위한 실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설 익은 기획들이 검증 없이 시장으로 밀려 나왔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개발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으니 일본 원작 짜깁기 붐이 일어났다. 산업화의 논리, 사실은 실적의 논리가 미학의 논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채 2년도 안돼 우려는 현실이 됐다. 우회 상장 붐이 일 때만 해도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른바 '엔터주들'은 실적 부진으로 패퇴를 거듭했다. 주가는 극단적으로 곤두박질쳤고, '속았다'는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해졌다. 코스닥 진출 1호 영화사 MK픽쳐스는 지난해 강원방송에 보유 주식 전량을 넘겼고, 튜브 픽쳐스도 경영권이 넘어가며 영화업이 아닌 자원개발로 업종을 바꿨다. 팬텀에 인수된 도너츠미디어(구 팝콘필름)는 관리 대상에 올랐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우회 상장 영화사들 역시 코스닥의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거품에 의해 부양된 산업은 거품이 빠질 위험을 또 다른 거품으로 가리기 마련이다. 영화사들의 우회 상장 붐은 바로 그런, 거품을 가리기 위한 또 다른 거품, 미봉책에 다름 아니었다. 그 미봉책은 안그래도 취약한 한국의 영화 산업을 다시 한번 격렬하게 벼랑 끝으로 몰아 세운 꼴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익률은 사상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질쳤고,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산업을 휩싸고 있던 그 모든 착시 현상이 거품이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충무로는 순식간에 패닉 상태로 접어들었다.  자승자박이었다. 한국영화계는 지금, 추락을 목전에 두고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거품, 어떻게 뺄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한국의 경제 사회적 거품이 만들어 놓은 착시 현상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영화 산업 자체에도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거품에 의해 운용되는 경제는 거품이 꺼지는 순간 몰락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취약한 영화산업의 경우, 거품이 빠졌을 때의 충격파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거품을 뺄 것인가.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할인 서비스를 없애 버리거나 공적 자금의 투입을 중단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억지로 거품을 뺄 수도 없는데다 그랬다간 산업 자체가 붕괴해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국영화가 내포해온 구조적 문제점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반성적으로 진단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회 경제적 거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적 자율성의 테두리 안에서 자생력을 갖춘 건강한 투자-제작-유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산업 주체들이 눈앞의 이해 관계를 넘어 망하지 않고 더 오래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지금 당장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시장주의의 도그마에 함몰돼 산업간 먹이사슬에 방치해 놓는 게 아니라 영화를 시민의 공공재로 인식하고 타당한 해법에 접근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일대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연재를 마치며 이 글은 한국영화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과 그 원인을 진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대안에 대해선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한국영화를 위기에서 탈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도 각론적인 논의는 3월 1일 발행된 영화 주간지 '무비위크'의 '21세기 한국영화의 재발명'이라는 특집 기사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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