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만큼 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곳도 드물 것이다. (현실 속의 이중성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굳이 영화 쪽에서 꼽는다면) 몇 년 전 극장에서 개봉한 봉만대 감독의 에로틱 멜로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 흥행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그러나 인터넷 상영에서만큼은 대박이었다. 1년이 넘도록 부동의 1위였다.

극장에선 안되고, 인터넷 상영에선 되는 이런 기현상의 배후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비록 어둠이라는 보호장치가 있긴 하지만 극장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있다는 게 민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어떤가. 문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야함'이란 이렇게 여전히 밀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은밀한' 무엇인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색, 계>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선전한 것을 두고, 이 영화가 야한 영화로 포장됐기 때문에 손님을 끌었다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지나치게 순진한 분석이자, 그 분석 자체가 성을 바라보는 이중성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눈빛 반짝이며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에헴'하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갈피 모를 황망함에 언어적인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셈이다. "야한 게 다가 아니야"라고 애써 강조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야한 것을 기대하고 영화를 고른 건 천박한 것"이라는 뒤틀린 우월 의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색, 계>는 야해서 손님을 끈 것이 아니라, '야하기까지 한 영화'였기 때문에 손님을 조금 더 끈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안은 이미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 등으로 국내에 광범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신작에 양조위가 캐스팅된데다, 여배우 탕웨이와의 짜릿하고 감성적인 러브신이 포함됐다면, 그건 야하고 말고를 떠나 영화적으로 매우 강력한 흡입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또, 야해서 흥행하면 좀 어떤가. 양조위의 은밀한 곳을 보고 싶은 욕망은 단죄할 수 있는 것인가?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을 보고 싶은 마음은 천박하고 음흉한 것인가? 그 아름답고도 긴장감 넘치는 섹스신을 더 많은 관객들이 보고자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좀더 융통성 있는 열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냔 말이다.

관음의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다. 누구라도 아름다운 섹스 장면을 보고 싶어한다. 적지 않은 러브호텔의 벽과 천장에 거울이 달린 것도 스스로를 관음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 하는 욕망을 수렴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감정은 거세하고 오로지 동물적 교미의 순간에만 집중하는 포르노그래피적 욕망과는 차별된다. 사회적 맥락과 개인사적인 배경 안에서 그려지는, 또한 사랑이라는 달뜬 감정의 탄생을 내포하는 탐미적 섹스 신은 그 자체로 예술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러브호텔의 거울 역할을 자처한 이안은 관객이 가진 관음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가운데, 가장 감칠맛 나고, 가장 짜릿한 러브 스토리를 선사한다.

관객들 각자가 지닌 욕망에 상응하는 만족을 얻었다면, 그걸로 <색, 계>는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누군가는 '왕 치아즈'를 파멸로 이끈 '이'의 치명적인 매혹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 하며 극장문을 나섰을테고 또 누군가는 그날밤 함께 영화를 본 연인과 영화 속의 멋진 체위를 흉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좀 어떤가.

2007/10/25 - [영화 이야기] - 戒를 넘는 色 <색, 계>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2007.11.09~11)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주말       전국누계
======================================================================
1위       식객          75/376                151,000      1,341,000
2위      색, 계         69/233                 97,000        274,000
3위    바르게 살자      55/268                 56,000      2,023,000
4위   로스트 라이언즈   40/158                 32,800        108,200
5위    더 버터플라이    42/207                 29,300        128,500


*이 박스오피스의 스코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관련이 없으며 각 영화가 동원한 실제 관객수의 근사치임을 밝힙니다.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