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의 Top 5 Albums

순탁's 뮤직라이프 2011. 2. 3. 02:3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가리온(Garion) [Garion 2] 
토씨 하나하나, 음표 하나하나에서 충실한 기본기에 바탕을 둔 실력과, 실력을 두루 갖춘 자의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본작에서 가리온은 보편적 설득력을 발휘하면서도 힙합의 근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한 장르의 장인이 되면, 넓으면서도 깊게 파는 것이 가능해지는 모양이다. 절로 경의를 표하고 싶은 그 어떤 경지가, 이 음반 속에 담겨져 있다.

이 앨범에 변화구는 일체 없다. 강공 일변도의 주제의식으로 시종일관 판을 우롱한 자들을 향해 매섭게 언어의 칼날을 휘두른다. 두 멤버는 커다란 붓으로 쓰윽쓱 스토리를 그려나가면서 큰 형님다운 포스를 묵직하게 발산한다. 변화구가 없어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공백을 대신하는 건, 현재 힙합 판에 대한 진심어린 숙고와 음악적인 치열함이다. 제대로 된 틀에 담긴 이야기의 근원적인 매혹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수록곡들 중에서는 작품의 정확히 중간, 그러니까 ‘영순위’와 ‘판게아’가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결국, 17곡 모두를 내리 들어야 마땅할 힙합 서사시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오욕과 분노, 생활인으로서의 참담함, 미래를 향한 약속 등이 복합적이면서도 치밀하게 뒤섞여있어 단 한곡으로는 그 온전한 의미망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듣는 이들은, 첫 감상에서는 단숨에 달려 들어가 뜨거운 가슴으로 몰입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몇 걸음 물러나 차가운 머리로 앨범 전반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 몇 년 전에 스케치가 이미 끝난 곡들이라 최신 힙합 조류와는 거리가 멀다는 약점 아닌 약점도 물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사우스 비트나 일렉트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지금, 이런 클래시컬한 분위기가 도리어 매력적이다. 노고와 재능이 함께 녹아든 수공예품을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나 같은 멜로디 지상주의자들도 즐거이 음미할 수 있을 만큼 랩과 사운드 모두에서 장르적 이물감도 전연 느껴지질 않아 반갑다. 단지 분위기만 ‘클래시컬한’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클래식이 될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 바로 여기에 있다. 

네온스(Neons) [a-809]
몽구스(Mongoose)의 몬구가 꾸린 1인 프로젝트 네온스(Neons)의 솔로 데뷔 EP. 앨범의 전체적인 기조는 댄스 팝, 그 중에서도 1980년대에 유행했던 신스 팝(Synth-Pop)로 짜여있다. 그러나 본작에 수록된 7곡은 신스 팝의 외양을 두루고 있지만, 전혀 댄서블하지 않다. 마치 펫 샵 보이즈가 2002년에 발표한 [Release]로 ‘감상용 신스 팝’의 원형을 제시했듯, 네온스는 이 음반을 통해 ‘골방족들을 위한 신스 팝’을 들려준다.

내용물들의 수준은 실로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앨범의 첫 곡 ‘별의 노래’를 처음 플레이했던 순간, ‘좋은 레코드’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첫 눈에 반한다는 그런 말을 난 믿어’가 이어서 나오자마자 ‘훌륭한 작품’일 것임을 거의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예상 그대로였다.

일종의 ‘포켓 심포니’ 같다고 해야 할까. 호주머니에 넣고 싶을 정도로 소박한 면모가 전편을 관통하고 있지만, 신서사이저로 표현된 사운드스펙트럼은 그와는 정반대로 제법 웅장한 풍모를 드러낸다. ‘별의 노래’와 ‘Baby Swing’ 등이 대표적일 텐데, 이런 양가적 감정이 선사하는 만족감이 본작의 열쇳말을 형성한다. 여기에 일곱 편의 노래와 네온스가 직접 속지에 쓴 글을 매치해보는 것도 앨범에 심은 또 다른 재미 중 하나. 이렇게 여러모로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작품인데, 전연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굴삭했다는 점에서 그 성취를 인정할 만하다.

세상의 음악을 느낌표와 말줄임표로 나눌 수 있다면, 이 앨범은 아마도 후자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감탄보다는 감동 쪽에 하중을 실은 구석이 확연히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자를 놓치고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닌데, 아티스트 본연의 욕구를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그 음악적 우수성을 높이 사고 싶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뮤지션 내면에 품어왔던 잠재태를 발현태로서 마침내 구현한 작품인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세 장이 더 나와 총 넉 장으로 하나의 시리즈가 완성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하겠다.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마치 습작과도 같은 음악, 고개를 좌우로 살포시 흔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음악, 때로는 가사가 음악보다 중요해질 수 있는 음악, 장르적으로는 록의 남근주의와 멀찍이 떨어져있는 음악. 간단하게,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과도 같은, 착한 음악.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을 처음 들었을 때의 인상이다. 그런데 이번 2집에서, 그들은 변화를 모색했다. 기타를 비롯한 전반적인 연주에 하중이 실렸고,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좀 더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지향했다. 수록곡 중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가사에서 느껴지는 ‘아마추어적 감성’만큼은 그대로다. 그들은 변함없이 쓰리고 고통 받는, 청춘의 한 자락을 노랫말로 위로하려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자칫하면 가사가 음악을 먹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감상(感傷)적인 음악이 간혹 빠지곤 하는 함정이다. 이 지점에서, 그들은 좀 더 직업적인 자세를 추구하면서 현명하게 탈출구를 모색했다. 이번 2집을 향해 다시금 찬사가 쏟아진 결정적인 이유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 [Brown Eyed Soul]
이 앨범의 초반부 ‘쓰리 콤보’는 가히 2010년 최고봉이다. 마빈 게이(Marvin Gaye)풍의 오프닝 ‘Soul Breeze’를 시작으로 ‘Blowin' My Mind’를 거쳐 ‘똑같다면’에 이르기까지, 이 세 곡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플레이했는지 모른다. 듣는 순간 내 마음을 흔들었고, 나머지 곡들까지 쭉 감상해본 결과,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컨템포러리 알앤비의 에덴동산이 있다면 바로 여기겠구나 싶었다. 절대 내가 정엽의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가고 있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결코 노래 잘하는 보컬 그룹 정도가 아니다. 이 음반의 탁월한 완성도가 증명하듯, 그들은 매우 뛰어난 뮤지션이다. 인디 음악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글 같은 메인스트림 신을 버텨온 이런 뮤지션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꾸준히 비춰져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국 대중음악계(특히 평단에서)는 아이돌과 인디의 대척으로만 필드를 재단하면서 정작 브라운 아이드 소울 같은 뮤지션들을 놓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이유로, 대중적인 어법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음악적인 발전을 정주한 그들의 본 3집은 더욱 주목 받아야 마땅하다. 

티비 옐로우(TV Yellow) [Strange Ears]
‘21세기 모든 힙스터가 주목해야할 사운드’가 이 앨범의 헤드라인 카피다. 그렇다면, 힙스터는 과연 어떤 종족인가가 중요한데, 트렌드세터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뉴욕 쪽에서 트렌드세터 대신 힙스터라는 말을 대체해 사용한다고 하니, 이 음반은 뭐랄까, ‘최첨단 유행을 선도하려는 이들을 위한 사운드트랙’이라고 정의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도 본작에 실린 음악들은 말 그대로 ‘트렌디’하다. 최근 영미권의 최신 조류인 일렉트로니카와 복고풍의 신스 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활용한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고, 이를 단순한 전자 사운드 아닌 ‘거라지 록적인 분위기’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즉, ‘전자’(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 모두에서 ‘힙스러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복합적인 감정이 혼재하는 그물망이라고 해야 할까. 쿨하면서도 핫하고, 어두우면서도 밝고, 과거 지향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뉘앙스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걸 음악적으로 설명하면 바로 ‘로킹한 댄스’, ‘댄서블한 록’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해외의 롤 모델들을 단순 이식하는 것이 아닌, 민감한 레이더와 센스로 이를 변용, 변주하는 능력은 분명 티비 옐로우만의 특장이다. 앞으로 댄스와 록의 교집합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어야하는가를 논할 때, 티비 옐로우의 본작은 하나의 레퍼런스로서 좋은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posted by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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