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만 읽기를 권합니다.
영화 <황해>는 마작을 하고 있는 구남(하정우)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 장면에 흐르는 영화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내레이션은 구남의 목소리다. 그나마 몇 푼 남지 않은 돈을 탈탈 잃은 구남이 허탈한 표정으로 마작판을 떠날 때 그는 말한다. “개병이다. 개병이 돌고 있다.”
이 선언과도 같은 내레이션이 암시한대로 나홍진이 <황해>를 통해 응축한 세상은 개병, 즉 ‘미친개들’이 들끓는 지옥도다. 전반부엔 삭막한 이미지의 연변, 중반 이후엔 남한의 도시들이 ‘황해’를 사이에 둔 이질적 공간으로 등장하지만,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두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개병, 즉 광견의 포악한 이미지다.
나홍진은 바로 그 이미지를 연쇄적인 폭력의 전시로 형상화하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미친 개들의 싸움과도 같다. <추격자>가 추격의 서스펜스에 집중했다면, (물론 이 영화에서의 추격신 역시 압도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지만) <황해>가 천착하려는 것은 서스펜스라는 장르적 쾌감보다 충돌의 이미지에서 튀어 나오는 처절함이다.
영문도 모른 채 생면부지의 인간의 목에 칼을 쑤셔 넣고, 닥치는대로 도끼를 휘두르며, 김윤석이 “족발 뼈”라고 설명했지만, 인간의 뼈라고 봐도 무방할 기이한 살인 도구들이 난무하는 <황해>는, 그렇게 충돌과 살육의 지옥도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거나 피 흘리며 쫓기는 이 미친 개들의 충돌에 배후가 있다는 것이다. 연변이라는 편리한 저임금 노동의 제공처는, 남한 사회의 탐욕이 배설되거나 세탁되는 하수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가 하면 남한 사회는, 온갖 탐욕이 충돌을 일으키는 정글이다. 영화 <황해>에서의 광견병은 남한에서 발병돼 연변의 가난을 숙주 삼아 잠복해 있다가,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포악의 절정을 이룬다.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탐욕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구남은,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먹이사슬의 끝이 무엇인지 보고 싶어한다. 표면적인 적은 면가(김윤석)이지만, 그는 말그대로 돈의 충실한 개일 뿐, 그림자처럼 뒤에서 이 모든 것을 배후조종한 지옥의 연출자와 끝장을 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맞닥뜨리게 된 추악한 진실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 자신이 가졌던 그 가난한 동기와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보는 이에 따라선 다소 허탈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뭔가 거대한 야합과 음모가 숨어 있을 것 같지만 이 지옥도의 끝은 처음과 연결돼 있다. 이 지점에서 나홍진의 태도에 대해 찬반이 엇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자는 모든 비극을 사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결말이 지나치게 편의적이거나 게으르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대목에 대해선 유보적이다.
영화의 비주얼적 전략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올 수 있겠다. 사실 혐오와 쾌감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는, 상업영화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필연적으로 인간이 혐오하는 대상을 드라마 안에 녹여내야 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혐오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쾌감을 얻는다. 문제는, 더 많은 관객들이 그 과정까지 혐오스러운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통계적으로 더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것으로 사료되는) 영화적 쾌감에 집중하기 위해 혐오감을 적당히 조율하는 선택을 한다면, 누군가는 혐오를 더욱 과장하거나 최소한 혐오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정범의 <아저씨>가 전자였다면, 나홍진은, 후자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 그러니까 <아저씨>의 폭력이 온전히 원빈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면, <황해>의 폭력은, 증오가 빠진 대리인들의 기계적 살의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한 폭력이다. 제작비 130억 원의 입장에 선다면 그건 위험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황해>는,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 안에서 타협하지 않고 밀어 붙이려는 감독의 야심이 때로는 넘칠지언정 때로는 빛난다. 그 빛나는 순간들은, 적어도 현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환기로 작용한다. 그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곱씹을 가치가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황해>가 꽤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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