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는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과도 같은 장르다. 관객들은 제시된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남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랑에, 더 나아가 결혼에 골인하게 되느냐이다.
가장 흔한 설정은 '티격태격'이다.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대다가 정분 난다는 이야기는, 과장을 좀 섞어 말하자면 로맨틱 코미디의 90% 이상이 따르는 정석이다. 그러니 관객들은 사실상 그것까지도 알고 영화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포인트는 명확해진다. 어차피 정분 날 남녀가 얼마나 재미있게 사랑에 빠지게 만들 것인가, 그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얼마나 새로운 흥미거리를 안겨줄 것이냐에 흥행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량남녀>가 딱 그런 영화다. 남자(임참정)는 보증 잘못 서 허구한날 빚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하는 형사, 여자(엄지원)는 그에게 바로 그 빚독촉 전화를 거는 채권추심회사 직원이다. 말하자면 견원지간. 일단 '티격태격'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춘 인물 설정이니 통과! 어찌저찌 우연한 만남이 이어지고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으르렁 댄다. 그리고 정해진 공식에 맞춰 정분 난다.
앞서 말한대로, 두 남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삐리리 하게 만들 것이냐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에서 <불량남녀>는 별반 새로운 창의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영화가 시작한 뒤 한 시간 가까이 서로 으르렁만 대다가 여자의 두 차례 만취 상태를 계기로 어떤 종류의 감정이 생긴다. 여자는 의외로 푼수고 남자는 의외로 젠틀하다. 식상하다.
다행스럽게도, 러닝 타임 한시간 이후, 그러니까 임창정이 엄지원에게 본격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제법 맛깔스러운 대사들이 튀어 나온다. 객석에 모처럼 폭소를 터뜨리는 지점도 있다. 그러나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또 너무 전형적이다. 익숙할만큼 오버하는 닭살 설정도 문제거니와, 사랑을 확인하지도 않았던 두 사람이 이별했다가 화해하는 순간, 몇 달 사귄 사람들처럼 군다는 것도 거슬린다.
두 배우의 연기는 제 몫을 한다. 임창정은 특유의 코믹 연기로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관객들에게 비교적 적절히 화답하고, '떠벌이 푼수'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한 엄지원의 새로운 면모도 신선한 재밋거리다. 그렇게 해서 총점을 매긴다면, 썩 나쁘지 않다. 말 그대로 나쁘지는 않다.
커플들은 무한히 태어나고, 새롭게 로맨틱 코미디를 소비할 관객도 무한히 생성된다. 그리고 그들은 로맨틱 코미디에 너무 많은 걸 원하지 않는다. <불량남녀>도 스스로에게 많은 걸 원하지 않았는지, 똑같은 맛이라도 포장지만 바꿔 매년 팔리는 발렌타인 초콜렛 같다. 11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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