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막 어떤 화학작용이 시작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긴장과 설렘의 국면. 눈에 보이는 거라곤 그 사람 밖에 없다. 그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인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뽀얗다.
종점: 좋아서 만나긴 했는데, 이게 아니다 싶어 우물쭈물대다 마침내 용기를 내 이별을 통고한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회한: 지가 뭐가 잘한 게 있다고 나한테 상처를 주나,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 그 대가가 이토록 깊은 고통이라는 건 너무 억울하다. 사랑은 시나브로 미움으로 바뀐다. 복수라도 해주고 싶다.
어정쩡함: 남들은 잘 어울린다 해도 왠지 이 사람하고는 긴장이 없다. 너무 편하다. 편한 건 좋은 건데 왜 연애가 안되지?
<조금만 더 가까이>에는 이 네가지 국면의 커플들이 등장한다. 사랑에도 서사가 있겠지만, 영화의 포커스는 서사가 아니라 순간이다. 네 가지 국면에 맞닦뜨린 사람들이 보내는 한 순간, 그러나 그 순간은 그 자체로 서사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통과하고 있으며 또 어떤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됐는지를 작은 대사의 결, 손가락 움직임, 표정 한 조각으로 건져올린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통과했거나 통과하고 있을지도 모를 순간들. 그래서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 순간들은 특별함을 발한다.
남다른 음악적 감수성과 섬세함을 선보이는 이 영화의 감독은 남자다. 일찍이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 김종관 감독.
이별했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 티격태격하는 윤계상, 정유미 커플의 연기는 발군이다. <아저씨>의 소미 엄마로 분했던 김효서가 커피 볶는 향 같은 오프닝을 열고, 영화 출연이 처음인 오창석, 염보라, 장서원 등 새 얼굴들의 과감하면서도 풋풋한 연기도 좋다. '홍대 천사' 요조와 (<의형제>에서 남파간첩으로 나왔던) 윤희석이 함께 부르는 마지막 노래는, 상처를 거듭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위안처럼 들린다. 이 가을의 강추 멜로다. 10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