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도 주지만 종종 현실에 대한 매운 풍자와 비판도 담아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떤 장르의 영화든, 그것이 코미디가 됐든 스릴러가 됐든, 우리 사회에 대해 감독이 느끼는 문제 의식이 담겨져 있기 마련이죠. 그 문제 의식이 많은 관객들의 무의식과 광범위한 접점을 이루게 되면 대박 흥행작이 되는 것이고, 또 제대로 전달이 안되면 쪽박을 차게 되는 것이죠. 어쨌든, 최근 유난히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 그것도 좀더 직설적이고 좀더 과감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낸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개봉한 작품이죠. 수애와 유지태가 주연한 <심야의 FM>이라는 영화도 그렇습니다. <걸스카우트>라는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요. 일단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의 호흡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 유명 방송국 아나운서(수애)가 자신이 진행하던 심야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그 시각 정체 불명의 사나이(유지태)가 이 아나운서의 집에 침입해 가족들을 볼모로 협박전화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2시간여의 상황이 기둥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건이 방송 시간과 같은 호흡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꽤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지난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일단 FM 방송을 소재로 삼은 것부터 독특해 보이는데요.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방송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꽤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범인이 라디오 DJ를 협박하는 이유는 그녀가 방송에서 했던 말들 때문인데요.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들인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은, 그 말들이 서로 앞뒤가 안맞는데다 결과적으로 위선적이었기 때문이죠. 따로 들으면 참 멋지게 들리는 말도 조합을 해보면 그렇게 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이 영화는 흔히 우리 방송이 내 보이는 비일관성과 위선성을 꼬집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됐던 이른바 스폰서 검사를 직접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부당거래>라는 영화로, 다음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류승범이 이른바 스폰서 검사로 등장하고요. 황정민이 광역수사대 강력팀장으로 나오는데, 역시 비리 형사로 등장합니다.
주인공 두 명이 모두 악인으로 설정돼 있다는 것부터가 독특한데요. 비위 혐의를 받고 승진인사에서 탈락된 최철기 형사(황정민), 위기에서 모면하고 한편으로는 상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동 살인 사건의 범인을 조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폭 출신의 기업가인 장석구(유해진)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게 되죠. 한편으로, 주양(류승범)이라는 이름의 검사가 있는데요. 이 사람 역시 떳떳한 사람은 못됩니다. 자신의 스폰서가 최철기 형사에 의해 구속된 사건에 앙심을 품고 최형사의 뒤를 캐기 시작하거든요.
한마디로 이 영화 속의 검사와 형사 모두 뒤가 구리고 털면 먼지가 많이 날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니까 권력이나 기업과 야합한 수사기관의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 구현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지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권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 그 피해는 결국 엉뚱한 이들이나 힘없는 사람들이 받게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얹고 있죠. 아마도 류승완 감독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그렇다고 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최근 불거진 스폰서 검사 파문과 관련해서 간과할 수 없는 시의적인 함의를 가진 영화인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두 영화가 방송에서부터 수사 기관까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꼬집는 작품들이라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이정진과 김태우가 주연한 작품이죠, 11월 4일 개봉을 앞둔 박수영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입니다.
한 작은 시골 마을에 7살 여자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마을엔 아동 성추행 전과 기록이 있는 세진(이정진)이라는 인물이 살고 있는데요. 뚜렷하게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아빠인 충식(김태우)은 세진이 자신의 딸을 납치한 진범이라고 믿게 되고, 그를 집요하게 따라 다니며 해코지를 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진데요. 그의 전과 기록을 이유로 세진의 가족들에게 마을을 떠나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요. 수사 형사도 그가 진범일 가능성을 점차 확신으로 굳히게 되죠.
희생자의 아빠 충식이나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편리하게 적대시할 희생양을 찾아내고, 마녀 사냥하듯 몰아 세우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가학 심리의 단면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자신이 경험한 공포 또는 좌절은 그 가학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가 됩니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그렇게 범죄에 대한 공포나 적개심이 어떻게 거대한 편견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폭력으로 전이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현실의 거울이다, 이런 말이 있는데요.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곱씹어볼 기회를 얻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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