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지게 멋있게 보이기 '완전정복'

이 여자에게 휴대폰을 걸어온 건 분명 남자일 것이다. 유추컨대, 그녀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헌데 이제 그녀에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에서 오이 마사지를 하거나 오랫동안 정성스레 립스틱을 바르거나 마스카라를 하는 따위의 일에 신경 쓰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부담이 더해졌다. 언제 걸려 올지 모를 영상 전화에 자신의 생얼을 노출해야 할 부담. 그것이 엄마도 동생도 친구도 아닌, 남친이라면!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비상 상황에 즉각 대처할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 주변의 사물이나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떻든 오직 프레임 안에 잡힌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예쁘고 섹시해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재빠르게 눈꼽을 떼고 침을 닦아내며 머리를 다듬는 동작을 숙련시켜야 하는 건 기본이고, 생얼을 가리기 위해 입김을 액정 화면에 불어 뽀샵 효과를 내거나, 선풍기를 소품으로 특수효과까지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휴대폰 벨 소리 하나에 그녀의 행동은 참 이상해진다.



집단 생쑈 vs 나홀로 생쑈

KTF의 '쇼를 하라' 광고 시리즈가 '집단 생쑈'를 통해 시선을 끈다면 SKT는 이른바 '영상통화 완전정복' 시리즈로 맞불을 놓고 있다. '쇼를 하라'가 서비스의 혜택을 얻기 위해 공중 장소에서 각종 기기묘묘한 쇼를 펼쳐 보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 인물들이 컨셉이라면, 완전정복 시리즈는, 한 젊은 여성이 영상 통화에서 자신을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각종 잔기술을 부리는상황을 마치 어떤 생활의 팁이라도 가르쳐주는 듯한 컨셉으로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요 없어? 자랑할 수 있는데도?

'완전정복 시리즈'는 영상 통화 서비스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제 1의 원동력이 '필요'보다는 '과시'이며, 결국 소비자의 보여주기 욕망, 즉 나르시시즘에 근거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서비스의 광고 초창기에 써먹었던 '필요의 강조', 즉 멀리 떨어진 애인의 식사 메뉴를 대신 주문해 주는 일이나 부인에게 사줄 속옷을 비쳐 보여주는 것 따위의 광고 컨셉은 오히려 핀트에서 살짝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영상'은 보는 것이자 보여주기이다. 다른 이를 비쳤을 때는 관음증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이자, 나를 비쳤을 때는 자기 도취의 도구로 치환되기 일쑤다. 그러므로 영상통화 서비스 광고가 (일견 우스꽝스러운) 도취의 풍경조차 사랑스럽게 포장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쩌면 때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정복' 광고는 그 나르시시즘의 풍경을 희화화해 놓고, 짐짓 요가 동작이라도 교습하듯 시침 딱 떼며 당신은 그동안 디카에게만 헌사했던 얼짱 각도를 이제 영상 통화 서비스를 통해 남친에게 생중계로 전송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광고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도 전광석화와도 같은 동작으로 최대한 예쁘고 섹시한 자태를 급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어떤가. 말씀이 거친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면, 한마디로 '지랄 얘엠병'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광고 속의 여성이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남친의 액정 속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로 비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사실은, 거꾸로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지랄 얘엠병' 상황까지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푼수 짓도 미인이 해야 먹힌다는 것은, 이미 'SHOW'의 서단비가 입증하지 않았던가.

멋있게 되기가 아닌 멋있어 보이기

본질적으로, 광고 매체는 결코 멋있어 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멋있게 '보이는' 방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더한 문제는, 그 멋있게 보이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이 대부분 여성들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광고 속의 여성은 더 멋있어 보이는 다른 여자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넘어 이제 멋있게 보이기 위한 '헛지랄'을 개의치 않는, 표피적인 가치를 숭앙하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여성성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멋있게 보이는 것만이 중요해진 시대를 디카가, 휴대폰 영상통화 서비스가 앞장서 이끌고 있고, 광고는 그 처연한 시대 정신에 유머라는 토핑을 살짝 얹어 뽀샵 처리를 해준다. 오늘도 길거리에는 멋있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차고 넘친다. 저 중에 진짜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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