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성 감독이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배우들의 면면부터 봤다. 아마 나 말고도 <영웅본색>을 기억하는 이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적룡이 연기한 '송자호'를 주진모가? 흠...뭐 아쉽지만 나름 다른 색깔이 나올 법도 하다. 장국영이 연기한 송자걸은 김강우가? 흠...뭐 좀 원작 캐릭터에 비하면 이미지가 세긴 해도 나쁘지는 않다.
주윤발이 연기한 '소마'. 사실 이게 가장 관건이다. 누가 과연 소마의 아우라를 재연해낼 수 있을 것인가. <무적자>의 선택은 송승헌이었다. 맥이 풀렸다. 결정적으로 이 대목에서 걸렸다. 송승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에겐 너무 거대한 산이다.
아니 '소마'를 주윤발에 버금갈만큼 소화해낼 배우가 과연 한국에 존재하기나 할까? 그 눈빛, 그 호탕한 처연함을 담아낼 배우가? 근사치에 다다를만한 배우를 눈씻고 찾아낸다 할지라도 아쉬움이 남을 터인데 송승헌은 너무 큰 무리수였다.
뭐, 사실 24년 전의 영화를 기억하고 그 추억을 곱씹으며 <무적자>를 찾을 관객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 때 소마를 따라 성냥개비를 씹어대던 소년 마초들 태반이 이미 직장일만 해도 머리가 지끈 거려 극장 언저리도 쳐다보지 않을 기성 세대가 됐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니 나처럼 원작을 신성시하는 관객은 애시당초 타깃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진모와 송승헌, 김강우 정도의 캐스팅만으로도 적어도 여성 관객들의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을 법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영웅본색>의 잔영을 배제한다 할지라도, <무적자>의 캐스팅 선택은 아니다. 특히 송승헌은, 한껏 호기를 부리다 나락까지 떨어진 절망의 사나이를 연기하기에 너무 단선적이다. 한마디로 그에게선 "까짓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하며 죽음의 늪으로 정면 돌진하는, 그런 무모한 치기의 냄새가 베어나오지 않는다.
<무적자>에서 아쉬운 대목은 배우들의 조합뿐만이 아니다. <영웅본색>이 고전이 된 것은 오우삼이 제시한 새로운 스타일 때문이었다. 누구나 기억하듯, 캐릭터를 떠받치는 폼생폼사의 이미지, 총격 신의 강렬함, 세련미와 애틋함을 넘나드는 음악은 형제 화해와 의리의 드라마를 압도하는 <영웅본색>의 액기스였다.
송해성 감독은 이제 와서 원작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게 불필요하다는 듯 그 압도적인 이미지의 향연을 부러 거역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제목 그대로 어디에도 적(籍)을 둘 수 없는, 아웃사이더들의 좌절과 절망의 드라마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그만의 누아르적 스타일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총격전은 밋밋하고 탈북 형제간의 갈등과 화해의 드라마는 익숙한 신파로 흐른다. 그저 원작과 새로움 사이에서 어정쩡한 제스처를 취하다 만다.
한국적 색깔을 넣는다는 게 왜 굳이 탈북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분단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드높은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다고 해도 형제의 갈등과 주인공들의 가련한 처지를 설명하기에 탈북 설정은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작위적이다.
<영웅본색>은 처음부터 한국에서 리메이크되기엔 너무 큰 산이었거나 적합하지 않은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적자>에서 어떤 종류의 역부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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