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작품들을 보면 가끔 일본의 미타니 코우키가 떠오른다. 한국에는 각본과 연출을 겸한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1997)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 역시 장진 감독과 마찬가지로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영화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연극 <웃음의 대학>이 야쿠쇼 코지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송영창과 황정민 등이 출연한 연극으로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여하튼 미타니 코우키와 장진은 웃음과 삶의 비루함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다는 점, 군상극을 잘 만든다는 점 등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장진 감독이 연극 연출가 출신이라는 점은 이를테면, 연극으로 먼저 선보이고 영화로 만들어져 80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는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작품에서도 여실히 느껴지는데, 그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다른 건 몰라도 장진이 특히 코믹 군상극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유감 없이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추석 시즌을 맞아 장진 감독이 새로 선보이는 <퀴즈왕> 역시 코믹 군상극으로서, 전형적인 연극적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초반부와 중간에 끼어 들어오는 몇 개 신을 들어낸다면, 이 영화는 2막 구조의 연극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단순한 장면 설정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한 방송 작가의 교통사고에 연루된 등장 인물들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조우하게 되는 경찰서 교통과 장면과, 이들이 어떤 계기로 100억 원이 넘는 상금을 타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과 심리전을 벌이는 '퀴즈왕' 스튜디오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연극으로 상연될 수 있을 정도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딱 두 곳이니 돈은 참 안들었겠다 싶다.) 그러니까 1막에서는 인물들의 성격이 제시되고 갈등의 동기가 부여되며, 2막에서는 그 갈등이 충돌하다 해소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는 <퀴즈왕>은, 코믹 군상극 특유의 재미를 뽑아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장르 자체가 군상극이므로 누군가에게는 인물들이 다소 많다는 것이 산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선 누가 주인공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물들의 욕심과 그 욕심이 만들어내는 웃지 못할, 그러나 무진장 웃긴 해프닝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배꼽 빠지게 웃기고 한편으로 씁쓸하다는 것은, 힘을 뺐지만 재기만은 오롯이 새겨 넣은 이 영화의 장르적 목표가 무난하게 완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장진 사단'의 배우들은 그 비중의 경중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 훌륭하게 이 연극적 영화에 기여하고 있는데, 특히 해결사로 등장한 김수로와 우울증 여고생으로 나온 심은경은 발군이다. 장진 감독도, 단순한 카메오를 넘어 극 후반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정재영이 <아는 여자>의 그 이름 '동치성'으로 등장하는 것도 색다른 보너스 재미다. 9월 16일 개봉.
트위터: @cinemago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