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 격돌하는 한국영화들이 잇따라 시사회를 열고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 <퀴즈왕>과 <무적자>를 못 본 상태에서 섣부르지만 흥행 예측을 해본다면, 이번 주말 한 주 먼저 기선제압에 나서는 <해결사>와 16일 개봉하는 두 편 정도의 영화가 흥행 선두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게 될 것 같다.
그 유력 후보 가운데 한 편이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다. 일단 환경적으로 한국영화의 스릴러 편중 현상이 깊어질만큼 깊어진 상황에서 모처럼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오히려 신선감을 안겨주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기본 관객층이 든든히 존재하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뒤를 받쳐준다면, 흥행 탄력을 얻기 좋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관건은 결국 완성도다. 일단, 나는 이 영화가 꽤 만족스러웠다. 프랑스의 유명 희곡 '시라노 드 벨주락'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의 설정부터 흥미로울 뿐더러, 이야기의 흐름이나 캐릭터들이 제법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제목 그대로, 연애를 '조작'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뭔 말인고 하니,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그 짝사랑을 현실의 사랑으로 이어주기 위해 작업 멘트와 상황을 배후조정해주는 일이다.
얼토당토않은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묘하게도 설득력이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이른바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창궐할만큼 연애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뢰인들의 어수룩한 태도와 행동이 그럴듯한 기시감처럼 다가온다.
이 연애조작단에 의뢰인으로 찾아온 송새벽의 해프닝을 통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정황 소개를 마친 뒤, 영화는 곧바로 이들의 대표 병훈(엄태웅)과 하필 그의 옛 여친을 사랑하게 된 상용(최다니엘), 그리고 타깃이 된 희중(이민정)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의 갈등 구도는 누구라도 예측 가능할 것이다. 병훈은 희중과의 연애를 꿈꾸는 상용이 못마땅하고 의도적으로 상황을 복잡하게 끌고 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표현과 진심의 함수 관계를 솜씨 좋게 풀어 헤친다.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을진대, 다가서는 방법에 미숙하다면 사랑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오직 그것 뿐일까? 영화는 여기에 믿음과 사랑이라는 새로운 연애 방정식을 맞물린다.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 작품답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송새벽의 어리버리한 연기 뿐 아니라 박철민의 재기 넘치는 대사도 잔재미를 안겨주기에 충분하고, 특별출연한 권해효와 김지영도 적재적소에 한방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로맨스와 웃음이 버무려진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목표에 충실한 영화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기왕 연극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면 더 좀 드라마틱하고 멋진 대사빨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9월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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