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이클립스'의 삼각 로맨스

영화 이야기 2010. 7. 10. 08:15 Posted by cinemAgora
*주의: 스포일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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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오그라들거나, 엔도르핀이 솟거나"

네이버에 헤럴드경제 이형석 기자가 쓴 <이클립스> 영화평 제목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영화는 시리즈의 첫작품 <트와일라잇> 때부터 관객들의 세대와 성향에 따라 천양지차의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누군가한테는 손발이 오그라들고, 누군가한테는 엔도르핀이 솟구치게 만드는 이유야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10대 소녀적 삼각관계 로망에 적극 화답하는 영화이니 그 로망을 품은 관객들로선 '꺆~"소리 날만하고 그 로망이 철지난 판타지라고 믿는 관객들로선 유치무쌍의 극단으로 비쳐질게 분명하다. 어쨌든 영화의 상업적 목표 지점은 처음부터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니, 손발 오그라든 관객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자신을 힐난할 밖에 도리가 없다.

두번째 에피소드 <뉴문>에서부터 본격화한 삼각 로맨스는, 이번 편 <이클립스>에 이르러 더욱 점입가경이 된다. 한마디로 벨라를 둘러싼 두 남자의 갈등이 심화됨과 동시에 벨라의 고민도 커진다. (누군가는 부러운 고민이라며 침을 꼴깍 삼킬 것이다.)

차가움과 자상함을 동시에 갖춘 뱀파이어계의 훈남 '에드워드', 그리고 질정없이 들이대지만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 짐승남 '제이콥'. 그 양극단의 매력을 한 놈한테 다 몰아줬다면 오죽 좋으련만, 왠지 그건 재미 없다. 소녀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방법을 <늑대의 유혹>이나 <꽃보다 남자>만 통달했겠는가.

원작과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두 녀석에게 따로 따로 배분해 놓고 벨라의 마음을 흔든다. 에드워드를 갖자니 제이콥이 아깝고, 제이콥한테 가자니 에드워드가 아깝다. 그래서 이 녀석한테도 키스하고 저 녀석한테도 키스한다. 상황적 자연스러움의 정도만 다를 뿐이다. 게다가 에드워드 앞에서 보란듯 제이콥과 한 이불까지?!  

아무리 철 없는 10대들이라지만, 일부일처제적 관점에서 이 정도면 막 가자는 얘기다. 하지만 벨라, 요 친구는 이런 상황을 정당화하는데도 선수다. 제이콥과의 감정을 추궁하는 에드워드에게 벨라는 말한다. "너를 더 사랑해."

"너만 사랑해"도 아니고 "너를 더 사랑해"라니! 대관절 그런 사랑 공식이 현실 속에서 가당키나 한 얘기냔 말이다. 당장 사단이 나도 모자랄 일이지만, 그렇다, 이건 영화다. 자신을 지켜주는 두 남자로부터 동시에 사랑받는 게 왜 불가능할까, 라는 뭇 여성들의 판타지를 어루만져주기 위해 벨라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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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고수하며 벨라를 뻘쭘하게까지 하면서 한사코 혼전 관계를 거부하는 에드워드는 왠지 성적 매력이 거세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점에서 제이콥이 가진 반대급부적 상징성은 비교적 명확해진다. 시종 일관 상체 근육 누드를 과시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육체적 남성성의 상징이자, 에드워드에게서는 결핍된 성적 능력을 잠재한 인물인 셈이다. (요 대목에선 엔도르핀 계열의 관객 내에서도 에드워드 파와 제이콥 파로 의견이 갈릴 수 있겠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벨라는, 분명하게도 두 매력을 동시에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또 그런 감정을 왠지 있어 보이게끔 포장하는 방법도, 그녀는 안다. "나는 제이콥과 너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아냐, 내가 되고자 하는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거지."

말 안되는 소리지만 말 되게 들린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녀에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에드워드의 이른 청혼 등 현실적인 고민이 끼어드니 더더욱 설득력까지 있어 보인다. 요컨대, 그녀는 "선택권은 늬 둘이 아니라 엄연히 나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깝치지 말고 선택 받을 때까지 얌전히 있으라는 무언의 경고랄까.

게다가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는 마치 절개를 상징하는 한국의 '은장도' 미덕을 상기시키려는 듯 자신의 팔을 베어 에드워드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아, 님을 향한 희생적 순정을 하나 툭 내던져 보임으로써 에드워드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저 거부할 수 없는 충절의 제스처!

이 탁월한 밀고 당김에 힘입어 그녀의 양다리는 면죄부를 얻은 셈이니, 한마디로 그녀는 하이틴 화류계의 '선수', 그것도 국대급 선수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동시에 들이대는 두 남자가 질투심을 억누르고 서로 손을 잡게까지 했으니, 가히 여신급 선수라 아니 할 수 없다.

어쨌든 <이클립스>의 삼각 로맨스에 반영된, 혹은 적극 수렴된 여성 판타지를 한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이렇다. '하나도 아닌 두 훈남이 동시에 들이대주면 참 좋겠는데, 그 둘이 나 때문에 싸워서 골치 아프게 하지 않고 사이 좋게 지낸다면 더욱 좋겠다.'

이 판타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논외의 문제다. 내 감상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설정조차 이젠 마초 로맨스만큼 낯익어 지루하기까지 했다는 것.  

슬쩍 궁금해진다. 과연 벨라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에드워드와 결혼하고 제이콥과 동침하게 될까? 그거야말로 인간들의 세상에선 골치 아파지는 일이 될 터인데, 상대가 뱀파이어이고 늑대인간이니 불가능한 꿈도 아니다. 게다가 벨라는 사실상 여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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