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피처링이야?' Feat. 누구냐, 넌?

순탁's 뮤직라이프 2010. 6. 29. 01:2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이제 막 인터넷을 배운 50대 초반의 모씨. 음악이 듣고 싶어 관련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최신 인기 가요 차트를 클릭하고는 놀란다. 특정 가수의 노래가 거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 천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모르는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아들을 불러서 이렇게 묻는다. “어이, 아들! 얼마나 인기가 대단하면 다 얘 노래밖에 없냐? 도대체 ‘Feat.’이 뭐 하는 애야?”

물론 위의 일화는 우스갯소리지만, 어쩌면 정말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지금 가요계는 ‘피처링 중독’에 빠져 있다. 혼자 부르는 노래가 반가울 정도로 모두들 피처링에 의존해 곡을 만들고 작업한다. 도대체 피처링이 뭐기에? 우선 피처링(Featuring)의 뜻부터 살펴보자. 피처링은 흑인 음악, 그 중에서도 힙합과 R&B 진영에서 먼저 사용한 용어로 현재 대중음악의 전 장르에 퍼져 있는 음악 만들기의 한 방법이다.

보통 친한 동료 뮤지션을 초대한 뒤, 노래나 악기의 파트를 나누어 작품을 녹음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힙합의 경우 랩과 멜로디 파트가 합쳐진 스타일이 많기에 래퍼는 멜로디를 소화하는 가수가 필요했고, 일반 가수의 경우는 래퍼가 필요한 탓에 피처링이란 방법 선택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피처링은 엄연히 듀오나 듀엣과는 의미가 다르다. 어디까지나 음반이나 곡을 발표한 가수가 ‘주인’이고 피처링으로 참여한 가수는 ‘게스트’이기 때문이다. 듀오나 듀엣이 노래의 주체와 거의 등권(等權)을 지닌다면, 피처링은 게스트의 개념과 그리 다르지 않다.

피처링의 근어(根語)인 피처(Feature)의 수많은 해석들 중 ‘주연배우를 시키다’와 ‘(무엇을) 주요 특색으로 삼다’라는 뜻이 그 의미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끈끈한 파트너십을 매우 중요시하는 흑인 뮤지션들의 성격이 피처링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즉, ‘피처링 누구’는 ‘누구를 피처링하다’가 되는 것으로 여기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손님의 음악적 취향도 중시하는 흑인들만의 평등 지향 문화를 잘 파악할 수 있다.

사실 과거에는 피처링이 노래를 꾸며주는 ‘양념’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원래 가수보다 피처링 가수가 더 주목받는 주객전도형 피처링도 많다. 피처링의 본래 목적은 음악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른 가수를 통해 보완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유명 가수가 피처링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면서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기 때문이다.

신인 가수 쪽에 유독 ‘빅 네임’ 급의 피처링이 많고, 심지어는 가수가 아닌 연예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타에 열광하는 10대의 속성을 극단적 상업성으로 이용하는 경우랄까. 당연히 메인스트림에 데뷔하는 신인 가수(와 그 소속사)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방면의 고수를 모셔와 ‘음악과 화제성’ 모두를 포획하려 들게 된다.

물론 잘할 수 있는 것만을 단련해 더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 가수가 여러 스타일에 능란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윤미래처럼 랩과 노래 모두에 번뜩이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늘은 정말 불공평하니까. 그러나 그 뻔히 보이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나라 주류 가요계는 무슨 대초원의 버팔로 떼도 아니고, ‘우르르 정신’이 과도하다. 돈 되는 일이라면 자존심 따위 버린 지 오래다.

“또 피처링이야?”라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나돌고 있다. 저 멀리서 희미하지만 명확하게 다가오고 있는 경종(警鐘)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한국 가요계에 조종(弔鐘)이 울릴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posted by 배순탁(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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